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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기자의 현장속으로>(2)이회창후보 서울유세 동행취재기
김용옥 기자/doholk@munhwa.co.kr

내가 이회창후보 유세단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7일 오후 3시쯤 광화문 앞 공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재하는 단식기도회에서부터였다.

“하느님이시여 이 세상에 정의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소서. 이 차가운 땅에 다시 앉지 않게 하여주소서. 비굴하고 비참한 역사를 후손에게 남기지 않도록 하여주소서.”

이때 갑자기 이회창후보와 박계동 전의원·이부영의원이 서 있는 곳으로 달걀이 날아왔다 미사를 집도한 김영현 신부님이 미사도중, 정치인들은 이 자리에 서있지말고 돌아가라고 말씀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치인이라 해도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미사에 참여한 사람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의로움을 말하는 자들의 지나친 독선일 수도 있다.

평화의 기도는 역시 포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경호팀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달걀세례를 퍼부은 젊은이가 붙잡혀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는 보고가 나중에 들어왔을 때 이후보는 그들에게 아무 피해가 없도록 부탁한다고 말했다.

황급히 자리를 뜬 후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두타·밀리오레 광장 앞이었다.

“젊은이 여러분 12월19일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새나라·새조국을 만듭시다. 우리의 조국을 우리의 손으로 만듭시다.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조국을 만듭시다. 거짓말하지 않는 깨끗하고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젊은세대와 서민을 위하여 일자리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실망에 찬 국민들에게 모두 제자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5년동안에 250만가구의 주택을 건설하겠습니다. 저는 불의 앞에 머리숙이고 엎드려 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속에서 당당한 자존심을 지키는 강력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불의로부터 이 사회를 지키는 강력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우리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명예를 다시 찾아드리겠습니다.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회창을 밀어주십시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노무현후보와 이후보의 연설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노후보는 분명한 테마가 있다. 노후보는 산발적으로 말을 던져도, 연속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변조해나간다. 노후보는 무엇인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이후보는 스타일이 다르다. 그의 언어는 센텐스마다 단절되어 있다. 단절되어 있기에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자이크의 나열인 것이다. 테마를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지를 즉흥적으로 호소할 뿐이다.

노후보는 한번 연단에 서면 30분을 넘어간다. 이후보는 5분을 넘기지 않는다.

노후보의 부산 롯데유세장과 이후보의 서울 두타유세장은 콘트라스트가 극적이다. 부산은 노후보가 인기를 못끄는 곳이지만 유세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열기가 넘쳤다. 서울은 이후보의 인기가 좀 떨어지는 곳인데 유세장의 분위기조차 좀 피상적이고 어색했다. 심금을 울리는 한표보다는 떠들썩한 이벤트성의 과시가 위주였다. 선거참모들의 전략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후보는 이후보님께서 서민의 삶과 지방민의 서러움을 체험하지 못한 중앙집권지의 엘리트일 뿐이라는 점을 들어 유세장에서 맹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뭐라 답변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클 시절에는 사실 서민과 귀족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봐야 거기가 거기였습니다. 우리국민 모두가 다 어렵게 살았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우리엄마도 닭을 키워 달걀을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을 꾸려가기도 했습니다. 외가는 좀 부자였는데 부친이 처가집 도움받는 것을 극히 싫어하셨기 때문에 저도 동아일보 신문배달원 노릇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충남 예산에 사시는 자작농이었는데 방학때 내려가면 새벽같이 일어나 똥장군도 지고 다니며 밭에서 일하곤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출신성분만으로 자기인격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은 심한 어폐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사는 각유소장(各有所長)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키 어렵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도 부유한 환경에서 컸습니다. 좀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오히려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정의에 대한 균형있는 감각을 지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노후보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요즈음 신문광고를 보면 이후보는 노후보를 인신공격하거나 DJ와의 연계라는 측면에 매달려 비판을 하곤하는데 반하여 노후보는 21세기를 향한 발돋움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네거티브한 선거전략은 좀 유치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진영은 당권과 대권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광고전략은 당차원에서 결정되어 제가 모르는 사이에 나갈 때가 있습니다. 김교수님께서 지적하신 그런 부분은 즉각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지적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연설하는 것을 들으셔도 아시겠지만 저는 노후보를 인신공격하는 그런 발언은 하지 않습니다.”

우중충하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토요일 오후 밀리오레 앞 인파를 비집고 이후보가 타는 카니발 속에 들어갔을 때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처투성이인 손을 보라는 것이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악수를 해대는지 손이 긁힌다는 것이다. 유세자의 곤혹스러운 삶을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였다.

그러면서 동대문 포장마차 집에서 방금사온 식어가는 만두쪼가리를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연설을 하면 허기가 진다고 했다. 아무거나 먹어 배를 채워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뱃심이 없이는 입심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연설끝나면 부지런히 춤을 추세요. 춤한번 잘추면 백만표입니다”라고 옆에서 훈수두는 보좌관 말에, “춤도 젊어서 추어야 춤이지. 내가 춤까지 추는 것이 좀 어색하지 않아? 김교수님, 어때요?”

그의 말은 정확했다. 그의 삶의 역정과 오늘의 유세의 현장이 무엇인가 괴리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만 맞추라고 나는 충고를 했다. 어색하게 춤을 추면 오히려 표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 묘사되고 있는 이 장면에서 나에겐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나와 만난 이 긴박한 짧은 시간 속에서 이후보는 전혀 나를 유세전략의 일부로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후보는 모든 순간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감각이 뛰어나다. 노후보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실상 모두 정확히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보는 자기가 치열한 선거의 와중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 의식조차 별로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의식조차도 없는 자연인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중앞에 선 이후보는 매우 어색하고 인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튼 이후보에게는 불리한 신의 마술이다.

대쪽이라구? 깐깐하다구? 천만에 이후보를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하며 자애로운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식이 없는 천진난만한 한 어린애 같은 인간이다. 역시 그는 고귀하게 큰 사람이 분명하다. 나의 세속적 감각으로도 그는 너무 체할줄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경직된 것처럼 보인다.

“이후보님께서는 법관시절에 우리사회의 현실적인 진보를 기록한 매우 혁신적이고도 파격적인 판례를 많이 남기셨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일반육체근로자의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려 손해배상을 받게 해준다든지, 남편이름으로 되어있는 재산도 부부공동소유로 판결을 내리신다든지, 북한을 찬양하는 표현이 이적물에 들어있다 할지라도 국가존립을 해치는 것이 아니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든지, 계엄이 풀린후에도 군사재판을 계속 강행하는 것은 위헌이라든지 하는 판례는 당시의 역사상황에서 도저히 내리기 어려운 획기적인 판결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법조계의 존경을 받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이 사신 분이 왜 오늘날에는 보수당의 보스로서 사회진보를 거부하는 인물처럼 비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가 없는데도 여러사람이 계속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호랑이가 정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정치에 입문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내 신념대로만 살며는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통하지 않더군요. 요즈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많이 생각을 합니다. 구정물을 뒤집어쓰고서도 깨끗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의 역량이요, 국가혁신의 사명이라고 다짐하고 있지요. 우리사회는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규정해야 합니까.”

“정의입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페어네스(Fairness)라는 것입니다. 공정성이라는 것이지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정확히 해주는 것이 공정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원칙성과 상황성이 모두 같이 고려되는 공정성이지요. 법의 가치란 바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페어네스란 한마디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간의 페어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개인들간의 자유의 상충을 균형잡는 것이 곧 법이지요.”

“혁신적인 판례의 배경에 깔린 후보님의 생각도 그러한 정의와 관련된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저의 사상은 한마디로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헌법의 기본정신입니다.”

“법이라는 틀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료사회의 부패를 가장 잘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일각에 있습니다. 그 결정적 복안은?”

“클린 거버먼트(clean government) 즉 깨끗한 정부입니다. 부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정확히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와 핀란드의 예를 생각하시면….”

“역대의 모든 대통령후보가 부패척결을 기치로 들고 나왔지만 그것을 실천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실천의지로만은 될 수 없는 문제 아닙니까.”

“저는 우리사회를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관념이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법관으로 살았지만 상앙(商쐙)과 같이 엄형을 주장하는 법가(法家)가 아니었다. 그는 인치(人治)를 말하는 유가(儒家)였다. 그리고 법은 단순한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법관은 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법을 창조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법의 창조의 궁극적 기준은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평등을 도외시한 자유는 죽은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평등은 바람직한 가치가 아닙니다. 평등은 제가 말씀드린 정의의 속성일 뿐입니다.”

나는 이틀동안 이후보를 동행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효순이·미선이네집이었다. 진눈깨비가 쌓인 마찻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이후보와 효순이네집에 들어갔을 때 윗목에 놓인 메주덩어리들이 너무도 처량하게 보였다. 효순이가 너무도 맛있게 먹었을 텐데…. 미선이 삼촌은 추모비는 의미없는 것이라했다. SOFA가 개정되어 우리민족의 자존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두 소녀의 죽음은 추모비로 보상될 수는 없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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