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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004 vote 0 2005.06.15 (21:00:28)

이 글은 ‘메인스트림 대 질풍노도’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두 번째 글입니다.


 

주제를 간략하면

한국에서 ‘주류질서의 전복’은 일어나고 있다. 이는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향촌 공동체의 해체와 관련이 있다. 이 에네르기의 핵심적인 인자는 최근 일, 이십년 사이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심리적 상실감이다.

이러한 밑바닥의 에네르기가 밀고 가는 역사의 흐름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당이 집권하게 되어 있다.

잃어버린 가족의 복원을 원한다는 점에서 일부 보수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을 통한 소속감을 원한다는 점, 그리고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역할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집회,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진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 및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가상의 커뮤니티가 바로 이러한 밑바닥 에네르기의 표상이 된다.

이는 서구의 계급적 잣대로는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노당은 이 시기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개인적인 신분상승과 출세주의라는 관점으로 보는 전두환 군부 떨거지 한나라당 사고방식과도 다른 것이다.

현재로는 우리당의 포지셔닝이 이 흐름에 근접하여 있다. 바로 이 부분이 필자가 누차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계급적 성격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변증법

유교적 전통과 도교적 전통이 있다. 역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유교가 주류이고 도교는 비주류다. 그러나 아세아 문명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도교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세계사에서 농민반란이 성공한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다. 가장 일찍 노예제도가 철폐된 나라도 중국이다. 중국사를 이해하려면 유교보다는 도교를 살펴야 한다.

도교가 주도권을 잡았던 시대는 남북조시대 뿐인데 삼국시대가 끝나고 수나라, 당나라가 들어서기 까지 약 150년간의 혼란기였다. 불교가 융성하고 도교가 꽃을 피웠다. 당나라 전성기의 화려한 귀족문화도 이 영향권 안에 있다.

문화의 힘은 오래 간다. 가장 중국적인 것은 이 시기에 다 만들어졌다. 가장 중국적인 중국은 진시황의 진도 아니고 한무제의 한도 아니고 명나라도 청나라도 아니다. 남조-당의 문명이야말로 중국의 정체성에 닿아있다.

주류건 비주류건 질서에 관한 논의다. 도교는 천하에 질서를 가져오는데 실패했다. 그 점이 유교와는 다르다. 죽림칠현이 있었고 청담사상이 꽃을 피웠지만 그들은 정치를 혐오했다. 그 결과로 정치에서 졌다. 유교가 승리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대문화도 그 정체성으로 보면 남조의 도교문화에 있는데 역사학자들은 대개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정도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

문제는 주류에 속하는 유교주의가 변방의 도교, 혹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수는 있어도 변방의 도교나 불교가 중앙의 유교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선종불교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조선의 통불교도 유교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것을 자기식으로 소화해 내었다는 증거는 없다.

주류적 가치와 비주류적 가치가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해서 안 된다. 중앙집권적인 유교적 질서도 필요하고 지방분권적인 도교적 질서도 필요하다. 이를 변증법적으로 통일하는 중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밸런스의 문제다.

인간은 상승하기 위해 존재한다

인간은 비참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구원되어야 한다. 인간은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승해야 한다. 문제는 상승을 꾀함에 있어서 그 가는 길이 빗나가면 속물이 되고 만다는 사실.

민중이라면 세 그룹이 있다.

● 상승을 포기한 즉 그냥 사는 보통사람.
● 상승하려고 하지만 어설프게 귀족의 흉내나 내고 있는 속물.
질박한 가운데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한 각 분야의 달인.

세 번째가 중요하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있다. 명인 혹은 달인 혹은 고수, 혹은 명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도교적 가치가 주장하는 질서, 수호지가 묘사하고 있는 양산박 도둑떼의 질서는 여기에 있다.

엘리트 역시 세 그룹이 있을 수 있다.

● 상승을 선언한 다음 체념하고 사는 껍데기 지식인.
● 거짓 상승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금 밖으로 밀어내는 가짜.
세상을 바꿔가는 극소수의 진짜.

이는 유교주의가 주장하는 질서에 가깝다. 도교가 서민적이고 민중적이라면 유교는 어쩔 수 없이 엘리트 위주의 성향을 가진다. 이는 유교의 병폐가 된다.

두 그룹이 있다. 민중의 그룹에서는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도달 가능한 최상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일러 변방에서 오는 사람 곧 ‘아웃사이더 영웅’이라 부를 수 있다.

민중에게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지만, 엘리트에게는 단 하나의 분야, 단 하나의 단일한 질서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성공하여 지도자가 아니면 실패하여 교사가 되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 지도자의 자리는 단 하나 밖에 없다.(물론 여기서 교사나 지도자는 직업이 아닌 역할을 의미.)

역사의 흐름과 함께 호흡하는데 성공하면 세상을 바꿔놓은 지도자가 되고, 지도자가 못되면 물러나서 후학을 키워야 한다.

개인적으로 상승한 걸로 치고 은둔하는 인간들도 있다. 좋지 않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지식인의 살롱문화에 안주하면서.. 겉으로 죽림칠현을 표방하는 속물들 말이다.

녹림에 호걸은 필요해도 죽림에 칠현은 필요 없다. 자신이 속한 전문분야의 최고수가 된 민중의 아웃사이더 영웅은 필요하지만 지식인 아웃사이더는 필요 없다. 현명한 자라면 당연히 세상으로 나와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용기 있게 나아가서 세상을 바꿔놓지 않으면 안 된다.

산 속에 숨어서 터득한 도(道)는 의미 없다. 개인의 상승이 천하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개인의 상승에 만족한다면 엘리트의 특권의식에 불과하다.

그들은 상승한 자신의 신분을 굳히기 위해 타인의 상승을 방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진짜는 둘 뿐이다

질박한 가운데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한 달인들.

서민의 영웅들이다. 이들은 많을수록 좋다. 수호지의 호걸과 같은 괴짜들이다. 이들의 무애행은 용서되곤 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야구의 박찬호나 최희섭, 바둑의 이창호, 음악의 서태지, 축구의 박주영.. 넓게 보면 이들 역시 민중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중심을 치지 못하는 변방의 영웅은 의미가 없다. 이들의 개인플레이는 주류질서에 구색 맞추기로 이용당하는 수가 있다.

비주류인 흑인의 영웅으로서 백인의 위세에 구색 맞추기로 이용당하는 파월과 라이스, 비주류인 여성정치인으로서 메인 스트림에 투항한 여성정치의 배신자 박근혜.. 이들은 이용당할 뿐이다.

그들은 결코 독립적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할 수 없다. 파월과 라이스의 이름은 부시의 페이지에 끼어들지언정 결코 자신의 독립적인 페이지를 가지지 못한다.

박근혜의 이름은 전두환과 조중동의 페이지에 꼽살이 낄 지언정 결코 자신의 열전을 남기지 못한다. 이것이 주류에 투항한 배신자의 말로. 역사의 희비극이다.

세상을 바꿔가는 극소수의 진짜들.

이들은 엘리트 영웅들이다. 그러나 그 문은 너무나 좁다. 노무현과 같은 한두 명의 성공사례를 제외하고 대개 실패하고 만다.

진정한 승부는 변방에서 시작되어 중심에서 종결된다. 노무현은 변방에서 일어나 과감하게 중심으로 치고들어온 자다.

현실을 떠나 외곽을 맴돌며 혼자 고상한 척 하면서도.. 온갖 잔소리는 다 늘어놓는 자칭 아웃사이더 좌파 먹물들은 경멸되어야 한다. 중심을 치지 못하는 그들은 진짜가 아니다.

먹물 깨나 먹은 엘리트 신분이라면 당연히 지도자의 꿈을 꾸어야 한다. 주류의 노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뒤에서 풍자와 야유를 즐기는 것은 서민의 특권이다. 진중권, 김규항류처럼 인에서 아웃으로 도망간다면 퇴행이다.

진짜 중에 진짜는? 그것은 변방에서 서민의 영웅으로 일어나 단호하게 중앙으로 뛰어들어 세상을 바꿔놓는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백년에 한 명쯤 나올 수 있겠다. 한번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절차를 가져야 한다. 부활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쉽지 않다.


휘파람새가 노래하는 이유는?

휘파람새가 노래하는 이유는 노래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휘파람새는 청중을 위해서 노래하지 않는다. 세상을 위해서 노래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존재의 중심에 서야만 한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라야 한다. 자기 내부 깊은 곳에서의 갈망이 없다면 열정이 식어버린 인간이다.

우리 내부에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이 틀렸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바로잡겠다고 말하면 약하다. 노동자 농민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해 주겠다는 식이라면 건방지다.

세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역사는 제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잘 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 내부에 커다란 비전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빛나는 이상주의를 가지고 세상을 설득해 나가는 것이다. 빌어먹을 세상이 틀려먹은 것이 아니라.. 아뿔사! 우리가 커다란 꿈을 가져버린 것이다.

 

‘메인스트림 대 질풍노도’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맥락을 이해하려면 이곳을 눌러 앞글을 먼저 읽고 하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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