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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이 안걸리기로 유명한 김근태, 구주류에 얻어터지더니 드디어 발동이 걸렸단 말인가?』

“정치를 하려면 일단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또한 뱃속이 시커매야 한다. 허다한 영웅호걸, 왕후장상, 내노라 하는 성현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후흑학을 통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이 있었던가?”

후흑학(厚黑學)이라면 청나라 때 이종오라는 교수가 신문에 발표하여 한시절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풍자적인 학설이다.

지금도 중국과 대만에서는 후흑학을 뒤집는 반후흑학이니 혹은 그걸 다시 뒤집는 반반후흑학이니 하는 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알고보면 노무현도 얼굴이 그다지 얇은 편은 아니다. 이마에 굵은 주름살 하며 나름대로 한 후흑은 하고 있다.

얼굴이 두껍다는 것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회창이 토론 때 약간만 약올려줘도 얼굴이 벌겋게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종오교수의 후흑 3단계설에 의하면 .. “기차의 입석표로 남의 자리에 앉고서도 조금도 불안하지 않으며, 임자가 나타나면 태연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후흑의 기초가 갖추어진 셈, 여기에 수련을 쌓아 낯가죽이 두껍고, 뱃속이 검은 것을 타인이 간파할 수 없게 되는 무형무색의 지극한 경지에 다달아야 후흑학은 끝난다.”

한 후흑 한다는 9단 노무현도 아직은 멀었다. 조중동에 꼬투리잡히고 있는 말실수는 노무현이 아직은 ‘무형무색(無形無色)’의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앗! 오해해서 안된다. 낯이 두껍다는 표현이 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종오에 의하면 공자, 맹자 등 성인들도 나름대로 후흑학의 대가였던 것이다.

공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 정치를 한다
요는 공(公)과 사(私)를 구분할 수 있는가이다. 리더는 사의 영역에 있어서는 감정을 드러내어도 좋으나 공에 임해서는 결코 감정을 드러내어서도 안되고 또 감정에 휘말려서도 안된다. 속으로는 눈물을 삼켜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다.

김근태는 어떤가? 후흑학으로 논하면 까맣게 멀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너무나 정치적이지 못하다. 김근태가 동작동 방씨의 장례식에나 쫓아다니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김근태는 신문도 안보고 사는 사람인가? 안티조선을 위주로 하는 시류의 흐름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새삼스레 김근태가 후흑학을 연마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공사구분은 하고 살자는 거다. 김근태는 강하다. 우리가 한시절 김근태를 우러러본 것은 그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근태의 강함은 100번쯤 두들겨 맞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그런 강함이다.

이미 다 뽀록나고 말았다. 얼마전 김근태는 '나는 원래 강경파였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다 드러났듯이 김근태는 체질적으로 강경파가 아니다. 그는 원래 유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100번쯤 두들겨 맞아야 기어이 강해지는 사람이다. 민주당 내분의 와중에 김근태가 기어이 구주류로부터 100방을 맞고야 말았다.

김근태.. 곰 같은 사람이다. 여간해서 화를 안내지만 한번 화가 났다하면 태산을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다. 김근태.. 헐크같은 사람이다. 너무나 순진하고 너무나 순박한 김근태지만 한번 화나면 무서운 사람이다. 아니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신당은 결코 노무현당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역사를 눈꼽만큼이라도 공부했다면 알 수 있다. 고어는 클린턴 근처에 얼씬거리다가 망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킹의 주변에 가는 즉 죽음이다. 대통령 주변에 얼쩡거려서 감옥간 인간은 많아도 그걸로 출세한 인간은 역사이래 한사람도 없다.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등이 노무현당을 해서는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신당이 노무현당이라는 이유로 김근태가 미적거렸다면 진짜 오판한 거다. 노무현의 당정분리를 농담으로 들었다면 대단히 착각한거다.

노무현과 신당은 불가근 불가원이다. 지시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고, 장악하지 않는다. 오직 이심전심으로 보이지 않게 손발을 맞춰줄 뿐이다. 그것이 이른바 노무현의 코드론이다. 코드만 맞으면 굳이 명령하지 않고 장악하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해두는 거다.

생각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천년 역사에 있어 이런 일이 어디 한 두 번 있었단 말인가? 기득권세력과 신진세력의 싸움.. 조선왕조 500년간 수도 없이 되풀이되어 온 것이다. 이런데도 김근태가 신주류를 의심하고 오판을 한대서야 말이나 된다는 말인가?

김근태..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본인이 신당을 주도하고 나서야 한다.

다시 후흑학으로 돌아가서
필자는 앞에서 후흑학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건 풍자다. 그러나 그 행간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공사구분'이다.

정치인은 공의 영역과 사의 영역에 따라 처신이 달라야 한다. 사의 영역에서는 눈물을 삼키다가도, 공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180도로 표변해서 태연하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걸보고 정치인은 낯이 두껍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종오는 공자도 맹자도 후흑학의 대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 코미디언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도 카메라 앞에서 웃어보였다고 한다. 그 코미디언을 보고 낯이 두껍다고 꾸지람할 자 누구인가? 이것이 바로 공사구분이다. 역설이다. 정치인이 낯이 두껍지 않다는 말은 역으로 공사구분을 제대로 못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DJ는 낯이 두꺼운 사람이다. 사실이지 노무현도 낯이 상당히 두껍다. 때로는 적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지지자들을 선동할 줄도 알고, 때로는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거창한 공약을 내걸 수도 있다는 거다. 공에 따라서 사에 따라서 포지셔닝에 따라서 적절히 처신을 달리할 줄 안다는 거다.

그걸 꼭 비난해서는 안된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떳떳하지 않은 비밀도 때로는 무덤까지 지켜야만 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안보와 관련된 일이라면 국민 앞에 감추어야만 하는 일도 있는 세계가 더럽다는 정치판이다. 왜? 그것이 사(私)가 아니라 공(公)이기 때문이다.

김근태에게 2프로 부족한 것이 그거다. 김근태는 정치자금수수 고백은 용기있는 결단이다. 나는 공과 사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는 정치인 특유의 이중적 태도(?)를 절대로 보이지 못하는 김근태 특유의 결벽증이 양심선언을 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결벽증.. 후흑학으로 논하면 정치인으로는 자격미달이다. 동작동 방씨와 사적인 친분이 있다해도 그건 사(私)의 영역이다. 배역을 맡은 코미디언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시청자가 지켜본다면 웃음을 지어야 한다면 김근태는 방씨를 조문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정치인의 공(公)이다.

노무현은 나름대로 능구렁이다. 김근태는 순박하다. 얼굴이 얇은 김근태, 순진한 사람 김근태, 정치 9단은 절대로 못되는 김근태, 후흑학은 도무지 모르는 김근태, 결벽증의 김근태, 그 김근태가 3일간의 일정으로 단식을 한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이 한번 화가나면 진짜 무섭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숨겨진 김근태의 진면목을 이번에는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덧글.. 김근태에게 기대할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초반전의 전술과 중반전의 전술은 다릅니다. 초반은 신주류의 발빠른 행마로 요소요소에 찔러놓아야 하지만 중반전엔 그 흩어진 것을 다 하나로 이어붙여야 합니다. 김근태나 추미애가 필요하지요.

물론 다 이어붙일 필요는 없어요. 개혁당 니는 그쪽 구석에서 두집내고 살아라 하고  떼놓는 것도 전술입니다. 이는 적의 후방교란용이고 그래도 주력은 다 끌어모아 함께가야 합니다. 물론 ‘정박후’넘들은 본보기로 잘근잘근 씹어놔야 하고.

물론 이런 식으로 ‘정치’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면 안되지요. ‘정치’는 결정적인 시기에 한번 써먹는 거고.. 하여간 지금은 중반전인데, 중반전에는 김근태나 추미애나 조순형 같은 독립세력들의 무대입니다. 이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가려면 다 안고 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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