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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와 같은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항해하던 배가 암초가 걸렸다. 선장은 모든 선원들을 동원해 암초를 제거하라고 명령하고, 보트를 내려 커다란 정과 쇠망치를 동원해 암초 제거 작업을 시작한다. 7일 밤낮의 작업 끝에 가까스로 암초는 제거되었고,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3일이 지나 다시 암초에 걸렸다면? 정말이지 환장해 죽을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장은 암초 투성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암초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 정치가 ‘지역주의’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거, 모르는 사람 있는가? 3김 정치의 폐해, 모르는 사람 있는가? 저질 색깔론과 당리당략에 얽매인 정치공세, 모르는 사람 있는가 말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 정치를 골병 들게 하는 이런 ‘정치적 암초’가 연례 행사처럼 상시적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질 연례행사는 그 주최측인 정치인들과 그것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저질 언론에 의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된다. 그거 제공받은 국민들, 겉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한 듯 ‘탈정치화’된 것처럼, 혹은 정치인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는 ‘정치 혐오증’ 환자들로 변해 가고 있지만, 대선이나 총선 따위와 같은 정치 행사가 되풀이 될 때마다 얼굴 벌겋게 달아 오르는 것을 보면, 그들이 혐오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기실은 ‘정적’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만다.

인터넷과 인터넷 언론이 발달함과 동시에 정치에 대해 자기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환경이 다양화 되면서 정치적 암초를 만들어 내는 연례행사에 얼굴을 드러내는 새로운 세력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네티즌 논객’, 혹은 ‘네티즌 칼럼니스트’들이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거셌던지, 이들에게 ‘또 하나의 권력’이라는 딱지까지 붙여졌다.

이렇게 하여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네티즌 논객(칼럼니스트)들은 연례행사처럼 만들어지는 ‘정치적 암초’를 만들거나 혹은 제거하기 위해 열심히 삽질을 하거나 때로는 정과 망치를 들고 부지런히 보트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암초 만드는 족속들을 제거하고 암초 제거 작업을 열심히 하는 것일 뿐이겠다.

그러나 암초 제거가 그렇게 만만한 일일까? 뿐만 아니라 그 암초 생산 공장의 공장장들에게 사표를 받고 공장의 가동라인을 중단시키는 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일 수 있느냔 말이다. 더군다나 그 암초들을 만들어내는 이 나라의 정치, 민초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심부름꾼’으로서의 임무는 제쳐두고 민초들조차 암초생산공장으로 열심히 내 모는 ‘완장’ 찬 호객꾼들 아니던가 말이다.

필자는 가열차게 진행되는 민주당의 신당 추진 논란을 지켜보면서 씁쓰레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정치적 연례행사에 새로운 ‘얼굴’로 참여하는 네티즌 칼럼니스트들이 비판적 견제자로서의 역할은 내 팽개치고 자기가 그 정치 현장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인 마냥 정치인과의 ‘자기동일시’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넷 토론방에 참여했던 칼럼니스트들이 대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인터넷 정치인’으로 돌변해 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장신기의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장신기 씨가 지난 4월 29일 서프라이즈에 올린 <노무현 대통령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글은 그 자신이 여러모로 매우 정치적이고 당파적이며, 편파적이고 미시론적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그의 글을 보면서 그는 서프라이즈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민주당 당사로 출근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의 내용은 제목에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다만 하나 빠져 있다면 ‘탈당 할 생각 마라’는 것이다. 하나 더 첨가 하자면, ‘대북 송금 특검, 그거 노무현의 대책 없는 낙관론이 저지른 실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노무현더러 ‘탈당 할 생각 마라’는 것일까? 강경파 신주류가 신당 창당을 위해 분당을 결행할 가능성이 커질 때,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노무현이 민주당을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억측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자. 그렇다면 그가 이런 ‘억측’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신당론이 노무현 대통령이 지향하는 바대로 안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을 통해서 <1>현재의 정치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분명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나는 이와 같은 시도는 결코 <2>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 중략 –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을 통해서 민주당 개혁에 불을 붙이게 되면 분명 민주당의 개혁 방안은 현재 신당론에서도 가장 강경한 세력들이 주장하는 방식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중략 –

이와 같은 신당은 결국 <3>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노무현 이념에 따른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 된다. <4>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은 민주당의 분당을 초래하게 되고 내년 총선에서 두 개의 여당이 서로 경쟁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


일목요연하게 압축이 되어 있다. ‘노무현 탈당 => 신당 추진 => 민주당 분당’ 여기에 장신기 다운 가치판단이 들어간다. 이것은 <1>”현재의 정치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이어서 <2>”바람직하지 않”으며 <3>”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4>”내년 총선에서 두 개의 여당이 서로 경쟁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먼저 <1>이다. 노무현이 탈당을 결행해라도 신당을 창당에 밑거름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장신기의 억측은 그야말로 소설에 가까운 그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왜 “정치 질서에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것인가? 그리고 “현재의 정치 질서”에 왜 도전하면 안되는가, 대체 왜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인가 말이다. 장신기 조차도 작금의 정치 질서는 개혁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치 않는가 말이다. 혁명적인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궁금증은 그것뿐이 아니다. 신당 추진이 “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장신기의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각개격파 되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이 동교동 구파의 주장과 정확하게 부합하다는 김동렬을 비롯한 일부 논객들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며 철회할 이유가 없다.

더 황당한 것은 김근태의 ‘통합개혁신당’ 추진에 대해 그가 “김근태의 생각이 정확히 나의 생각”이라며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는데, 김근태의 그 ‘신당’이 강경퍄의 입장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근태의 ‘통개당’에도 “민주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요소가 있을 것인데, 자시의 이러한 이율배반적 입장에 대해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통개당’도 당 밖에다 ‘신당추진 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하니, 동교동계 구파가 여기에 참여하지 않겠다면 민주당의 분당은 자명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김근태의 ‘통개당’을 전폭 지지했는데, 그렇다면 노무현 탈당으로 인한 분당 시나리오는 안되고, 김근태의 ‘통개당’으로 인한 분당은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가 장신기를 서프라이즈보다 민주당에 출근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다소 비아냥 거렸던 것은 그의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논리적 곡예가 ‘논객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인’의 원칙에 의해 감행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원칙은 뭘 말하는 것일까? 별 거 아니다 당파적 입장의 ‘유불리’에 대한 ‘대응 원칙’일 뿐이다. 정당한 원칙조차도 현실적으로 정치적 불이익을 줄 것 같으면 뒤집으려는 원칙. 이게 바로 정치인의 원칙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작고한 김현은 ‘정치 언어’를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언어”라고 했을 것이다.

그의 ‘정치적 원칙’에는 철학이 없다. 오로지 ‘유불리’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하는 데 필요한 매우 민감한 촉수만 있을 뿐이다. 동교동 구파에 철학이 있는가? 그들에게 철학이 있다면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철학’ 하나 뿐이다. 동교동 구파가 DJ와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이다. 그들이 DJ와 호남을 위해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지만, DJ의 철학이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기 시작할 때, 그들 역시 정치적 생존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동물들로 변해버렸다. 그들이 ‘민주당의 정통성’을 운운할 때, 그들이 정말 ‘민주당의 정통성과 법통’에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이건 우끼는 소리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단 하나. ‘밥그릇’.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 정통성’을 팔아먹고 있다는 것을 장신기는 모른단 말인가.

장신기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가 말한 ‘민주당의 정통성과 법통’이 동교동 구파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그의 논리는 기실 동교동 구파의 생존 논리를 강화시키는 데에 이바지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말한 ‘정통성과 법통’이 동교동 구파가 말한 그것과 정확하게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설명해 내지 못하면 그의 발언의 맥락이 여전히 동교동 구파의 밥그릇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철학은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지, 이름 하나 지킨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다. 노무현의 당선이 임시정부의 철학과 법통을 잇고 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도, 철학과 신념을 계승 발전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50여 년 전의 임시정부와 2003년의 노무현을 실질적으로 잇고 있는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해서가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암초를 제거하는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건 불가능하다. 항해지도에 암초를 표기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비유’에 불과할 뿐이라는 인정해 주시기 바란다. 설령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그 항해지도는 암초를 피해가는 방법만 보여줄 뿐이지 없애는 방법은 아니다.

암초를 표기하는 지도가 필요없이 배가 암초에 걸리지 않고 항해를 할 수 있는 방법, 암초에 걸린 배를 물에 띄우기 위해 정과 쇠망치를 동원해도 되지 않은 방법은 뭘까. 그건 바로 물을 늘리는 방법이다. 물을 늘려서 암초를 물 밑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하여 배를 띄우는 것이다. 물론 비유이다. 물을 늘린다는 것은 암초가 시시때때로 횡횡하는 현재의 정치적 조건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암초에 좌초되고, 제거하기 위해 별꼴의 푸닥거리로 날밤을 새우는 짓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필자는 신주류 강경파들의 신당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라고 판단한다. ‘현재의 정치질서’를 전복시키지 않고서는 ‘암초’라는 정치적 연례행사를 피할 방법은 없다. ‘정치 질서’가 ‘기득권’의 분포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장신기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작금의 정치 형태의 작동 기저에 그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질서’라는 장치를 가동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민주당의 정통성과 법통이 그 질서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것조차 전복시켜야 한다. 그런 것들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암초만 제거하기 위해 쇠망치와 정을 들고 달려가는 어리석은 짓을 지난 수 십년 동안 우리는 수없이 해 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장신기는 김근태의 ‘통개당’ 추진에 환호작약하며 ‘내 말이 옳지 않았느냐’고 강변하기 전에 이미 쏟아놓은 자기 기만적 논리를 수거해 가시기 바란다.


스피릿


사족 두 가지.

1. 필자는 노무현을 지지했던 칼럼니스트들이 노무현 정권의 실책을 비판하는 것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대표를 자처한 변모씨의 말처럼 모든 비판은 ‘살리는 비판’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그 비판의 대상이 자신들 손으로 뽑은 노무현 정권임에야!!

그렇지만 그 칼럼니스트들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자신의 논지 강화를 위해 부적절하면서도 왜곡되어 있는 논거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역겨움을 느낀다. 살리는 비판을 하자는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 글의 정당성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죽이는 논거’를 들이대는 게 역겹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지난 번 글에서는 서프라이즈 대표를 자처한 변모씨의 역겨운 글을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글의 정당성을 위해 노무현 정권을 ‘아마추어 정권’으로 규정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정권을 두고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좃선일보와 꼴보수들의 저열한 작태 아니었던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아마추어 정권’이 아닌 정권이 어디 있는가? 대체 대한민국 정권 역사상 ‘프로 정권’은 또 언제 있었던가 말이다.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공격은 야당만 하다가 97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DJ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꼴보수 집단의 논리 아니었던가?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지난 겨울부터 꼴보수가 다시 써먹던 개소리 아니었던가 말이다. 말이 ‘아마추어 정권’이지 이건 호남을 ‘라도 깽깽이’라고 비아냥 대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2. 노무현을 비판하는 장신기도 예외 없다는 데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필자는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한 노무현에 대한 그의 실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실망감이 노무현을 모욕하는 방향으로 튀어나온 것에는 분개한다. 보자

“<1>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스타일은 반대로 단기적인 낙관적인 예측에 모험을 거는 경향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장기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일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서는 분명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나는 정치인 노무현이 철저하게 검증받게 된 작년과 올해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 그와 같은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이 번 특검 수용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그와 같은 스타일이 그의 본질일 수 있겠다는 판단을 굳히게 되었다.”


<1>은 간결하다. ‘노무현 = 불안정’이라는 등식이다. <1>의 결론에 논거는 이 글 전반에 펼쳐져 있지만 <2>에 요약되어 있다. ‘특검 수용’이 그것이다. 좀 풀어보자면, 노무현이 특검 수용을 결단하면 한나라당이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특검 내용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는데 한나라당이 배반을 함으로써 결국 노무현이 이용당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단기적인 낙관적인 예측’으로 민주당이 극구 반대했던 특검을 수용했는데 그 예측이 틀렸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거 한방으로 노무현을 ‘낙관적인 예측주의자’로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을 가진 사람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장신기의 이러한 비판은 과연 옳은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노무현이 한나라당의 대북 송금 특검을 수용했던 것은 ‘낙관적인 예측’이라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 설령 배신을 당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할지라도 ‘신뢰’를 먼저 보임으로써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가?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손길을 ‘배신’함으로써 DJ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정치적 도의를 크게 저버렸다는 비난에서 앞으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반하고 막나가고 하지 않고서는 정치질을 할 수 없는 입장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신기가 저렇게 틀어져버린 문제는 뭘까? 바로 ‘특검 수용’이 DJ를 공격할 좋은 ‘밥’이 될 것이라는 것. DJ에 대한 공격은 민주당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 그럼으로 다음 총선에서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좃선일보 꼴보수들과 똑 같은 논리와 언어로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여기에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근거가 있다. “나는 정치인 노무현이 철저하게 검증받게 된 작년과 올해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 그와 같은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의 진술이 정당하다는 것을 근거를 제시해서 밝히는 것이다. 대체 그 “여러 사건”은 구체적으로 뭐며, 대체 어떻게 그것이 노무현을 ‘낙관적 예측’론자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그것이 대체 어떻게 그를 ‘불안정한 정치인’으로 볼 근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논지 강화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모욕을 가하는 작태는 꼴보수들이 숱하게 보여왔던 비열한 짓이다. 그것을 오늘, 소위 노무현 지지자였다는 논객들을 통해 다시 목격하는 일은 서글프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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