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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의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씌어진 글이어서 일부 내용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파병논란은 다면적인 접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익이다, 실리다, 명분이다 하고 내걸어놓은 간판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서 본질이 되는 ‘상품’을 봐야 합니다. 사실은 좀 복잡다기한 문제입니다. 돌아가는 판 전체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있어야 합니다.

파병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파병문제가 이토록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많은 평범한 독자들은 전쟁도 끝났는데 왜 뒤늦게 파병문제가 부각이 되는지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큰나라인데 자존심 좀 굽히면 어때? 1년에 교통사고로 1만명 죽는 나라에서 자원해서 이라크에 간 젊은이 한두사람 쯤 죽으면 또 어때?”

대한민국 국민의 70퍼센트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백범의 입을 빌자면 한일합방 당시 조선사람의 99퍼센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단군이래 수천년 중국에 속국살이도 이젠 지겹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일본을 주인으로.”

거봐요. 말 되잖아요. 중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명의만 빌려주는 것으로 알았던 거죠. 시간을 되돌려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1910년 그시절로 되돌아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조선백성들에게 식민지가 뭔지, 왜 독립을 해야하는지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과연 몇이나 설득할 수 있을까요?

백범일지에는 그러한 어려움이 무수히 토로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시점에서 파병반대가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의 경험칙으로 말할 밖에요. 삼국지에 대면 처음 황건적의 준동이 있었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황건적은 곧 소탕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거죠. 천만에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황건적은 방아쇠 역할입니다. 황건적이 소탕되면서 본격적으로 천하대란이 시작된 것입니다. 구질서가 물러가고 새질서가 올 때 엉뚱한 것이 계기가 되는 일은 역사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또한 본질을 봐야 합니다.

본질은 철제농기구의 대량보급으로 인한 농업기술의 진보에 따른 중화문화권의 대외적인 팽창이며 이로서 구질서가 물러가고 신질서가 요청된 것이며, 황건적의 준동은 양념에 불과합니다. 파병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질서와 신질서 사이의 근원적인 갈등이 파병논란을 계기로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파병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게임이 끝나는건 아니란 말입니다. 그 본질에서의 긴장이 잠복해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 갈등은 지속적으로 표출이 됩니다.

친노세력이 결집하고 있는 서프라이즈가, 노무현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파병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글에서 파병논란을 계기로 삼아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세대차이, 문화와 트렌드의 차이, 코드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자는 의도를 바탕에 깔고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구질서가 가고 신질서가 옵니다. 파병문제가 세상을 바꾸는 뇌관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뇌관까지는 못된다 해도 하나의 조짐이 되고 예고편이 됩니다.

파병문제가 일반의 예상 이상으로 증폭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민주당내 파병찬성파가 파병반대파보다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기에 아주 중요한 함의가 숨어있어요. 예컨대 제가 그동안 추미애의원을 두둔해온 이유도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비위도 좋지.. 그 능구렁이 같은 파병찬성파들 속에서 어떻게 버티는지 원. 추의원님.. 그 인간들 낯짝 보고 있으면 속이 메스껍지도 않습니까?”

서프가 파병반대에 열을 올린 이유 중 하나는, 내심으로 파병에 찬성하면서 노무현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목적으로 파병에 반대하는 척 사기치고 있는 동남쪽 식솔들과 파병반대의 배경이 다른 좌파들의 ‘반노연합전선’을 파괴하기 위한 의도도 일정부분 있습니다.

대통령의 결정과 상관없이 파병반대에 매진하는 것이 네티즌의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친노냐 반노냐 하는 저차원의 논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쳐볼 목적이 전부라면 불건전한 것입니다.

요구조건을 내걸고 대통령을 압박해서 뭔가 얻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결과가 좋으면 생색을 내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삐치고 돌아앉아 막말을 하고.. 이런 도올 김용옥식의 저차원에서 노는 일부 식솔들의 행각을 서프에 대입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자동차가 시동을 걸 때 처음은 모터가 엔진을 돌려주지만 한번 시동이 걸리면 그때부터는 제 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노무현이 서프의 발동을 걸었다면 이제는 제 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밑바닥에서 새로운 힘이 잉태되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구심점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부 매체(특히 최근들어 머저리로 퇴화한 한겨레신문)들은 찬반의견을 고루 반영한다며 계속 삽질하고 있는데(인터넷한겨레가 더욱), 이런 식의 힘의 분산으로는 안됩니다. 네티즌이 독자세력으로 밥값을 하려면 결집된 힘이 필요합니다.(오마이뉴스의 삽질 혐의도 부인할 수 없을걸.)

크게 보면 노무현 또한 하나의 코드에 불과합니다. 민중의 속성은 곧 죽어도 행동통일입니다. 공동보조를 하기 편한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명분이냐 실리냐 진보냐 보수냐는 먹물들의 논의에 불과하고, 민중의 입장에서는 ‘행동통일이 가능한가’가 중요합니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코드의 일치와 행동통일은 매우 쉽다는 점이 이 모든 사태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 점은 친노도 반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파병을 저지하는데 성공하건 실패하건 간에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 간의 코드의 일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민주당에 파병반대파는 6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보다 부시의 안위가 더 걱정되어 밤잠을 못이루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반면 신당은 코드가 맞는 사람이 제법 많이 모여 있습니다. 성향이 같은 사람들이 일정한 임계수치 이상 모이면 자체동력엔진이 장착되는 것입니다.

중요한건 그 숫자가 과연 임계에 도달할 수 있느냐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도 개혁파가 있지만 임계수치가 안되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신당에도 파병에 찬성하는 얼뜨기들이 일부 있지만 전체적으로 파병반대가 임계수치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에 유의미한 것입니다.

3.1만세운동은 실패했지만 상해임시정부는 그 실패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실패가 아닙니다. 파병반대세력의 구심점으로서 서프는 계속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공통되는 내재한 속성이 있으며 그 정서적, 이념적 동질성이 일정한 임계수치 이상 모여지면 하나의 엔진역할을 해준다는 점입니다.

미국이라면 X세대니 베이비붐 세대니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한 코드의 일치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고, 반전운동, 68학생혁명 등 부단한 투쟁과 그 과정에서의 ‘체험의 공유’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파병반대세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지난 여름 광장에서 환호한 시민들은 그렇게 열심히 응원하면 한국팀이 한골 더 넣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어서 그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좋아서 나간 것입니다. 파병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파병에 반대합니다.

“반만년 속국살이 이제는 지겹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우리 자신을 주인으로.”

‘일색’으로 세를 모아가는 것이 노무현지키기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안되면 될 때 까지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그날까지 계속 갑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가던 길을 서프라이즈의 이름으로 계속 가는 겁니다.

정리하면..
파병여부로 현안을 좁혀보지 마시고.. ‘새로운 질서의 태동을 알리는 전조’로 시야를 넓게 가져가주시기 바라며, 대통령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쳐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파병반대세력의 이념적, 정서적 동질성이 일정한 임계수치 이상 도달할 때 얻어지는, 우리 내부의 내재한 운동원리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수준에 도달할 때 까지 계속 간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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