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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홀리는 사이버 논객

 

‘글발’로 세상과‘맞장’뜨다

외부기고자 정재학 인터넷 칼럼니스트(zeff@joins.com)의 글 중 일부 사실과 맞지 않은 부분은 수정했음. 

촌철살인의 글로 사이버 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는 사이버 논객들. 그들의 사이버 글쓰기로 인해 많은 네티즌이 일희일비한다. 과거 PC통신 시절 활약한 1세대부터 최근에 맹활약을 펼치는 3세대까지 사이버 논객들의 마우스 궤적을 따라가 본다.

인터넷이라는 ‘무림’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휘젓는 고수들. 우리는 그들을 사이버 논객(論客)이라고 부른다. 가진 것은 ‘글발’밖에 없지만 자부심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대통령을 만들었고, 정치 판도도 바꾸었기 때문이다. 또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정치의 계절이면 제1순위로 각광받는 것도 바로 이들 사이버 논객이다. 이미 몇 번의 선거에서 ‘전사’(戰士)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은 그들이다. 논리와 감성에 호소하는 이들의 글쓰기는 네티즌을 쥐었다 놨다 하며 사이버 공간의 여론을 주도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인정받은 유명 논객들의 경우 글을 올리기 무섭게 조회 수가 수백에서 수천 회까지 이른다. 또 무한복제라는 디지털의 속성과 함께 네티즌들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퍼나름’이 시작된다.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요즘. 사이버 논객들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론 주도자로 뚜렷하게 자리매김했다. 인터넷 공간을 누비는 사이버 논객들.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계급장 떼고 ‘글발’로 세상과 ‘맞대응’

사이버 논객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면서 여론을 형성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중 대다수가 PC통신 무대에서부터 글쓰기를 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이버 논객 1세대라고 부른다.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기성 언론이 여론의 대부분을 장악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PC통신은 유일한 해방구였죠. 기존 주류 언론이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무시하는 내용들이 PC통신을 통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진보정치 웹진 ‘대자보’ 발행인과 ‘브레이크뉴스’ 편집국장을 맡았던 이창은 씨의 회고다. 그 역시 PC통신 시절부터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1세대 사이버 논객 가운데 한 명이다.

하이텔의 ‘큰마을’, 천리안의 ‘나도한마디’ 등이 바로 이런 사이버 논객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누구나 아무런 형식과 내용의 제한 없이 글을 올리고 또 비판할 수 있는 자유 광장이었다. 학력이나 나이, 직업은 문제가 안됐다.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든, 고졸 백수든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오직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글솜씨 하나만이 수단이었다. 그야말로 ‘계급장 떼고 글발 하나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 바로 이들 사이버 논객들의 세계였다.

실제로 당시 PC통신을 통해 왕성한 글쓰기를 하던 사람들은 학생은 물론 직장인·자영업자 등 다양한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낙타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각 분야의 고수들이 모여들면서 PC통신은 거대한 담론의 장, 새로운 아젠다(Agenda, 의제)의 생산지, 치열한 논쟁의 터전이 됐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송곳은 주머니 속에 감추어도 저절로 삐져나오게 마련이라고 했던가. 탁월한 논리와 철학, 글솜씨로 무장한 논객들이 오래지 않아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사이버 논객의 탄생이다.

천리안을 무대로 활약했던 논객들 중에는 훗날 ‘딴지일보’를 창간하는 김어준을 비롯해 김동렬·최진순·민명기·김동업 등이 있었다. 하이텔에서는 ‘안티조선’ 사건으로 유명해진 김학찬을 비롯, 유정길·조중훈, 그리고 ‘대자보’의 이창은, ‘브레이크뉴스’의 변희재, ‘미디어몹’의 최내현 등이 대표적 논객으로 활동했다.

1989년 BBS(Broadcast Bulletin board System)의 시작과 90년대 초 하이텔의 출범으로 시작된 PC통신을 통한 사이버 논객들의 활약은 97년 대선을 거치면서 정점에 이른다. 사이버 공간에서 수많은 사상검증과 비판 속에서도 지지의 목소리가 높았던 DJ가 38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이버 논객들의 주요 의제는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두 가지였다. DJ의 당선으로 어느 정도 정치개혁의 성과를 달성한 논객들은 언론개혁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안티조선으로 대표되는 기존 보수 언론의 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1998년 11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최장집 교수의 사상검증 기사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사이버 논객들은 “조선일보의 기사는 사상검증이 아니라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안티조선이라는 기치 아래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이버 논객들이 화(禍)를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유니텔에서 활동하던 공희준과 하이텔의 김학찬은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고액과외자’로 패러디했고, 결국 긴급구속되는 사태로 번진 것. 마치 면책특권이 주어지듯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던 무풍지대인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던 논객들에게 가해진 첫 물리적 제지인 셈이었다.

백가쟁명의 시대 연 웹진

주로 정치개혁이나 언론개혁 같은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사이버 논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 중에는 돌연변이 같은 ‘별종’ 논객도 있었다. 김완섭·신정모라·임욱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주로 부정적 글쓰기로 통신 사용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 이름을 얻은 논객이다. 이들의 글이 올라오면 반대의 글이 몇 페이지씩 줄을 이을 정도였다.

김완섭은 ‘모든 여자들은 창녀’라는 이른바 ‘창녀론’으로 PC통신 공간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이다. 그의 주장은 이후 창녀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기까지 했다. 신정모라는 극단적 페미니즘을 표출한 남성혐오증으로 수많은 남성들에게 비난받았다. 또 극우 자본주의와 반공주의를 내세웠던 임욱도 논란거리를 제공한 주인공이었다.

당시 PC통신을 달구던 사이버 논객들은 군 가산점 문제, 호주제 폐지, 양성평등 등 기존 언론이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애써 무시하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를 보였다. 이러한 사회 관심사들 중 많은 부분이 훗날 열매를 맺게 된다.

1998년을 거치면서 PC통신을 통한 사이버 논객들의 시대는 새로운 변화에 직면한다. 인터넷의 등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PC통신에서 이름을 얻은 논객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웹진이나 홈페이지 등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흩어져 갔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많은 사이버 논객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PC통신이 고립된 섬이었다면, 인터넷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다였다.

선두주자는 김어준이었다. 그는 지금도 ‘딴지일보’의 총수이자 논객, 라디오 방송 진행자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1998년 ‘조선일보’ 웹사이트를 패러디한 ‘딴지일보’를 만들며 인터넷 시대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논객의 대표 주자로 부상했다. 천리안에서 보여주었던 ‘왕입담’ 못지않은 화려한 이미지와 그래픽으로 패러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파란 화면의 하얀 글씨로 상징되는 PC통신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 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 코미디, 시니컬 패러디, 황색 사이비 사이버 루머 저널이며 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웃기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딴지일보’ 홈페이지의 머리글은 기성 주류언론들을 조롱했다. 당시 ‘딴지일보’의 등장은 네티즌들 사이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 ‘씨바’ ‘졸라’로 대표되는 김어준류의 글쓰기는 수많은 젊은 네티즌들을 사로잡았다.

‘딴지일보’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보’ 등의 수많은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처럼 PC통신에서 지명도를 높인 논객들은 스스로의 영토인 웹진을 만들어 나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인터넷 신문, 웹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는 웹진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바야흐로 웹진의 시대였다.

당시 ‘딴지일보’와 견줄 만한 인터넷 웹진으로 이창은이 창간한 ‘대자보’가 있었다. 안티조선이라는 기치는 같지만 형식이 달랐다. ‘딴지일보’가 풍자나 패러디를 위주로 한 ‘가벼움’이었다면, ‘대자보’는 진보 정론이라는 ‘진지함’이 있었다. 특히 ‘대자보’는 훗날 ‘서프라이즈’ ‘시대소리’ ‘브레이크뉴스’로 이어지며 많은 사이버 논객을 배출해 ‘논객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민명기가 주도했던 ‘더럽지’(www.therob.co. kr)의 경우 노동문제를 포함한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에서 논객으로 활동하는 김동렬과 ‘서울신문’ 기자인 최진순은 ‘온라인뉴스’를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대표적인 1세대 논객들의 활약상이다.

오프라인, 비주류를 끌어내다

PC통신에서 시작해 인터넷 웹진에서 춘추전국시대를 꽃피운 사이버 논객들. 이들은 이미 온라인상의 주류로 부상했다. 논객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올린 글은 순식간에 수백, 수천 건의 조회가 이어졌다. 스타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논객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전혀 새로운 2세대 논객들의 출현이 시작됐다. 이 시대의 대표적 논객들로는 강준만·진중권·노혜경·김정란 등이 손꼽힌다. 엄밀히 말하면 사이버 논객이라기보다 오프라인상에서 꾸준히 글쓰기를 하던 논객들이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이들 역시 비주류였다. 이들은 1세대 사이버 논객들에 의해 온라인으로 끌려나온 셈이 됐다. 온라인 주류와 오프라인 비주류의 만남. 이것이 2세대 사이버 논객의 특징이다.

1세대 사이버 논객들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여기에 오프라인 논객들이 가세하며 사이버 공간의 담론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해졌다. 역시 언론개혁이 주요 의제였고, 안티조선이 이들을 묶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을 통해 최장집 교수의 사상검증을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를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청부살인업자’라고 써 ‘마조히즘적인 정신분열 증상’이라고 꼬집었던 월간 ‘말지’의 정지환 기자와 함께 명예훼손에 의한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결국 안티조선에 대한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2000년 초 ‘우리모두’라는  웹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모두’는 단기간에 급성장하면서 지지부진하던 웹진 사이트들을 급속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강준만은 1995년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발간하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최고의 논객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준만의 경우 오프라인 매체를 통한 글쓰기를 주로 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논객의 범주에 들지 않지만, 그가 쓴 글이나 반론 등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것을 감안하면 영향력 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진중권은 2세대 논객 중 가장 주목받았고 논란의 대상이 된 논객 중 하나다. 독일 유학 중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신랄하게 비판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펴내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진보누리’라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렇지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논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논쟁을 벌였다. 아예 ‘조선일보’ 독자 게시판을 놀이터 삼아 글을 써내려 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주요 논쟁의 한가운데에는 항상 진중권이 있었다. 진중권과 강준만은 지난 2002년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김민석과 이문옥 후보의 지지에 대한 이견으로 논쟁을 벌였다. 이후 논쟁은 ‘옥석논쟁’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밖에 유시민·김규항·신현준 등도 이 시대 대표적 논객들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정치에 ‘올인’, 대통령을 만들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웹진들은 이후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등 대안언론 사이트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사이버논객들도 자연스럽게 이 사이트로 옮겨가게 된다. 특히 ‘오마이뉴스’는 사이버 논객들이 논쟁을 벌이는 주무대가 됐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언론개혁에 집중돼 있던 사이버 논객들의 관심사는 2002년 대선을 계기로 큰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색을 강하게 띠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와 대립각을 세웠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선거 기간 내내 후보 흔들기가 지속되자 노무현 지지라는 정파 색깔을 띠면서 집결하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노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 정치웹진 ‘서프라이즈’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 정치부 서영석 기자가 ‘대자보’ 출신의 변희재, ‘우리모두’ 출신의 김동렬 등과 함께 시작한 이 사이트에 노무현 지지 논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김동렬, 공희준, 김형석, 지승호, 최용식 등이 이끌고 있고 서프라이즈에서 독립한 서영석은 '데일리 서프라이즈'를 창간하여 오마이뉴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서프라이즈’의 논객들도 정치적 노선에 따라 사분오열되는 위기를 맞는다. 2003년 초부터 대북송금특검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왔던 논객들은 2003년 5월 ‘서프라이즈’에서 떨어져 나와 ‘동프라이즈’라는 웹진을 만들었고 이후 ‘폴리티즌’으로 바뀐다. 변희재를 중심으로 한 일부 논객들은 ‘시대소리’라는 웹진을 통해 정파 색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시대소리’는 이후 ‘대자보’와 통합해 ‘브레이크뉴스’로 새롭게 태어난다. 최근 대자보는 브레이크뉴스를 이탈하여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동프라이즈’는 노무현 비판 세력이 중심이 되었으나 3개월도 가지 못하고 다시 분화하여 민주당 잔류파를 지지하는 ‘남프라이즈’를 만들어 낸다. 이후 동프라이즈는 민주노동당의 비판적 지지자들이 중심이 됐다. 남프라이즈에서 다시 분화한 논객들은 ‘씨알소리’라는 웹진을 만들었다. 이렇게 백가쟁명시대 수많은 웹진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모여들었던 논객들은 다시 정치적 견해차로 사분오열되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그야말로 사색당파를 연상케 하는 논객들의 변화다.

“정치 과잉의 시대입니다. 모든 논객이 정치 하나에 목을 걸고 있었죠. 당시 유행어처럼 정치에 ‘올인’해 특정 정파색을 띠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전 ‘대자보’ 발행인 이창은 씨의 지적이다.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전문가들은 최근 논객들의 활약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논객은 있는데 논쟁은 없다는 것이다. PC통신 시절, 양성평등에서 군 가산점 문제까지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던 논쟁들에 비하면 현재의 메뉴는 너무 단순하다. 정치개혁에 몰입하다 보니 모든 논쟁이 정치에 집중돼 있고, 논객들도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에 너무 묶이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유무역협정(FTA)·새만금·부안핵폐기장 문제 등 민감하고 중요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논객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포털 사이트나 블로그 등 어떤 공간을 통해서도 자유스럽게 의견을 올리고 평가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전 국민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대. 주류언론이 부럽지 않은 시대다. 언제든 인터넷에 올린 한 줄의 글이 전국민에게 퍼져나가는 인터넷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크게 확대된 상황이다.  

수많은 네티즌을 울리고 웃겼던 사이버 논객들. 이들 중 많은 수는 웹 칼럼니스트나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형식면에서도 논객문화의 재미있는 변화가 눈에 띈다. 바로 텍스트에서 벗어난 이미지의 활용이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폐인족’들의 집결지 ‘디시인사이드’, 동영상 뉴스로 TV에 대한 비틀기에 나선 ‘미디어몹’ 등이 대표적이다. ‘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문화의 생산지로 우뚝 섰다. 최근 ‘헤딩라인 뉴스’라는 TV 뉴스 패러디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디어몹’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물론 전통적 개념의 논객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등장한 ‘딴지일보’를 떠올리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딴지일보’가 화려한 포토숍 기술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주류신문을 패러디했듯 ‘미디어몹’의 비디오 카메라가 TV 뉴스를 패러디하는 셈이다. ‘미디어몹’의 최내현은 ‘딴지일보’ 편집장 출신이기도 하다. ‘라이브이즈닷컴’을 통해 선보인 시사만화 패러디 역시 논객의 한계가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사이버 공간 곳곳에서는 내일의 사이버 논객을 꿈꾸며 내공을 키워 가는 네티즌들이 수없이 많다. 네티즌들 역시 자신들의 마음을 흔드는 탁월한 논리와 철학과 글솜씨로 무장한 새로운 ‘스타’들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한 시대를 풍미할 새로운 3세대 논객들이 지금 인터넷 곳곳에서 자신들의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월간중앙 200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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