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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586 vote 0 2005.01.26 (13:22:33)

화두(話頭)
 
조개가 진주를 키우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주는 조개의 몸 속에서 이물질이다. 조개는 진주를 거부한다. 조개는 부단히 진주를 배척한다.
 
진주 양식장의 어부는 조개의 살 속에 작은 심을 심는다. 조개는 심을 배척하기 위하여 거기에다 키틴질의 막을 씌운다.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는 우연히 조개의 몸 속으로 침투한 이물질을 조개가 부단히 배척한 데 따른 결과이다.
 
 
선사가 공안(公案)을 품는 것은 조개가 진주를 품는 것과 같다. 화두는 불완전하고 모순된다. 진주가 조개의 몸 안에서 이물질이듯이 화두는 내 몸을 찢고 심어진 내 안의 상처이다.
그 상처를 치유하려 하므로 그 공안이 점점 자란다. 그 공안을 깨부수려 할수록 그 공안은 도리어 영롱한 빛을 낸다.
 

 
말 꺼낸 김에 조금 더 진도 나가보기로 하자. 스님의 거룩한 단식 앞에서 방정맞은 소리가 되겠지만 필자의 글을 이해 못하는 독자들도 있는듯 하므로.. 이왕 버린 몸 치고 한번 더 실수해 버리기로 하자.
 
용기 있게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본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8천만 모두가 찬성해도 단 한사람이 반대하면 강행할 수 없다는 거다. 그것이 우리가 채택한 민주주의라는 불합리한 룰이다.
 
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 다른 점은 불합리의 합리성을 지향한다는 거다. 민주주의는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다. 모순으로 모순을 치료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이다.
 
논쟁을 통해 억지로 합리화시키려는 태도는 가엽기만 하다. 말로 이기면 뭐하나? 진실에서 이겨야 이긴 거지.
 
스님이 단식을 하는 이유는? 드라마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님은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 하나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며, 스님의 생사와 무관하게 대한민국은 이미 패배하였고.. 우리는 상처를 하나씩 가슴에 품게 되었다.
 
앞에 쓴 화두(話頭)의 의미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율스님 덕분에 각자 화두를 하나씩, 진주를 하나씩 품은 것이다. 우리가 화를 내고 그 진주를 배척할수록 오히려 그 진주는 영롱한 빛을 낼 것이다.
 
대한민국호가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대한민국 많이 컸다. 보릿고개 시절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배가 불러서 KTX도 싫다는 거다. 지율스님의 단식.. 한마디로 배가 불렀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난뱅이가 아니다. 우리는 부자다. 과거 박독재가 새마을 한답시고 초가집을 없애려 할 때 어떤 시인이 말했다고 한다.
 
“그 초가집 멋있는데 왜 볼품없는 쓰레트로 바꾸려고 하지?”
 
그 시인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먹고 살기 빠듯한데 당신의 시심(詩心)을 위해서 초가집에 살아야 되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도처에 웰빙 초가집이 들어서고 있다. 필자 또한 여유가 있으면 시골로 옮겨서 초가집을 지을 생각이다. 우리는 그동안 배가 불렀으니 이제는 여유를 찾아야 한다.
 
스님은 혼자서 1조 5천억을 깨 먹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거 멋진 거다. 통쾌한 일이다. 우리가 이런 멋진 나라를 살게 되다니. 서로 얼싸안고 축하할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진폐증에 걸려가며 탄광노동을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오염된 폐수를 마구 쏟아버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이쑤시개도 수출하고 굼벵이도 수출하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배가 불러서 2세들의 환경교육에 약간의 보탬을 줄 요량으로 스님이 혼자서 KTX를 막아서 1조 5천억을 깨 먹어 버릴 정도로 한국은 그동안 많이 큰 것이다.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피투성이님이 이 글을 읽고 열불내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보는 너른 시야를 가져야 할 터.)
 
까놓고 이야기하자. 먹고사니즘에 집착하는 공희준님은 당장 지율스님을 찾아가서 귀싸대기를 후려쳐야 한다. 당신 한 사람 때문에 노숙자들이 얼어죽고 실업자들이 직장을 잃고 1조 5천억이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고 꾸짖어야 한다.
 
먹고사니즘에 집착하는 박근혜는 당장 지율스님을 찾아가서 단단히 혼을 내야한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30년 전 박독재의 새마을운동을 방해하며 쓰레트 지붕 보다 초가집이 더 좋다고 우긴 그 시인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혼을 내야 한다.
 
그런데 왜 공희준님과 박근혜는 침묵하고 있지? 그렇다면 위선이 아닌가?
 
폭로해야 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까놓고 이야기하자. 대한민국은 이제 부자다. 웰빙시대가 열렸다. 배가 불렀으므로 쓰레뜨 지붕을 허물고 도로 초가집을 지어야 한다. KTX를 막고 도롱뇽을 살려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싸구려 중국제 수입품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월 30만원이면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당신이 여전히 가난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정신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자녀들 과외비를 걱정하고 유치원비, 유학비, 원정출산비를 걱정하므로 당신은 가난한 것이다.
 
누가 과외시키래? 누가 자녀들 무리하게 대학 보내래?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꾸던 일이 아닌가? 다 배부른 소리다.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아직도 3D업종은 무려 30만이 구인난이다. 외국인노동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직업이 없으면 외국인 노동자 내쫓고 공장에 취직하면 된다. 당신은 신분상승을 위해 노동을 기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당신이 져야한다.  
 
왜 본질을 보기를 두려워 하는가? 이제는 먹고 살만해진, 그래서 배가 부른, 한달에 150만명씩이나 해외로 여행을 가는, 부자 대한민국이.. 그 정도면 여유를 찾을 때가 되었지.. 뭐가 부족해서 눈까리 벌겋게 해가지고설랑 볼따구살을 씰룩거리며 그렇게 앙앙불락이란 말인가?
 
임꺽정은 의적인가 악당인가?
임꺽정이 화적질을 하면 그 피해는 누가 입는가? 민중이 당한다. 민중의 적은 누구인가? 임꺽정이다. 임꺽정이 의적이라지만 임꺽정 덕분에 혜택본 민중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백성들만 죽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왜 임꺽정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일까? 왜 민중은 장길산을 끝끝내 숨겨주었을까? 왜 장길산은 민중의 도움을 입어 끝끝내 잡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왜 민중은 그들을 괴롭히는 악당 임꺽정을 존경하고 임꺽정을 배반하여 민중을 도탄에서 구한 먹물 서림을 증오하는 것일까? ('서림이 같은 놈!' 이란 표현은 임지현, 손호철류 쥐나 족제비의 무리를 일컫는 최악의 욕이었다.)
 
전봉준의 농민전쟁으로 죽어난 사람은 민중들 뿐이다. 수백만명의 농민들이 죽어간 것이다. 그러나 강증산은 말하였다. 전봉준 덕분에 천하의 인두세가 서푼에서 두푼으로 내려가지 않았냐고. 그러니 혜택보고 있는 너희는 전봉준 욕할 자격 없다고.
 
마찬가지다. 임꺽정 덕분에 조정은 이후로 민중을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 임꺽정 이후 조정은 민중을 억압하던 많은 관행을 고쳐서 민중을 우대하게 되었다. 백성의 지위가 한 단계 상승한 것이다.
 
귀족노조 중심의 노동운동 또한 마찬가지다. 민중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다는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노조의 비리는 물론 비판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말이다. 좁은 시야로 보고 트집을 잡는다면 곤란하다.
 
스님의 단식이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값을 적어도 몇천만원 더 올려놓은 것은 사실이다. KTX를 막아서 1조 5천억을 깨먹은 잘못과 스님이 단식으로 한국인의 목숨값을 한 사람 당 3천만원 쯤 더 올려놓은 공과 어느 것이 더 비중있는 일인가?(왜 3천만원이냐고 묻는 사람에겐 왜 1조 5천억이냐고 되물을 수 있다. 어느 쪽도 합리적인 가격산정은 아니다.)
 
임꺽정 한 사람 때문에 수없이 많은 백성이 고초를 겪고 죽어갔지만, 실제로는 임꺽정 한 사람 덕분에 조선왕조가 백성을 존중하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변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스님을 이해할 수 없다.  
 
스님의 단식.. 대한민국이 드디어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나라로 변하고 있다는 거대한 조짐이다. 왜 이 조짐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라. 스님 덕분에 우리가 보이지 않게 얼마나 큰 혜택을 보고 있는가를. 여기까지 아는 사람은 서프라이즈에도 참으로 적을 것 같다.
 

 
덧글..1
오해를 무릅쓰고 약간 위험한 발언을 덧붙이는 실수를 범하기로 한다면.. 스님의 단식은 천성산이나 도롱뇽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임꺽정 때문에 죄 없는 백성이 죽어간 사실과 임꺽정 때문에 백성의 지위가 향상된 사실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지는 순전히 가치관의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일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며.. 반대로 이 일을 계기로 우리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것이며.. 그 값어치는 월드컵 우승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가치관의 문제는 기독교도와 불교도의 논쟁과 같은 것이라서 백날 논쟁해도 답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하기사 한국이 월드컵 4강을 해도 그게 무슨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과는 대화를 안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죠.
 
천금의 가치를 지닌 보물이 있어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격이니.. 도무지 대화가 안통하는 찌질이나 꼴통들과는 대화를 그만둘 밖에요. 오늘밤 한일전에서 박주영이 골을 넣든 안넣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람과 논쟁해봤자 시간낭비.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
 
스님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관이 다른 기독교와 불교가 공존하듯이 서로 다른 가치관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쪽도 존중하지만 제가 맡은 역할은 아무래도 이쪽이 아닌가 합니다.
 
덧글.. 2
용기있게 본질을 직시해야 할 것.. 본질은 너와 나 사이에서 확연히 다른 가치관의 차이..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격의 존재.. 대한민국 안에서 우리는 저 찌질이나 꼴통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니들은 연속극 봐라 나는 박주영 나오는 축구 볼테니. 논쟁은 불필요. 양보도 불필요. 타협도 불필요. 니는 니대로 나는 내대로 그럭저럭 살아내기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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