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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427 vote 0 2004.04.19 (14:45:42)

경향신문 오늘, 김대중을 ‘3김’으로 묶지말라]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참패가 꽤나 안타깝다. 이미지와 바람이 휩쓸고 간 전장(戰場)에는 민주당 장수들의 주검이 즐비하다. 나라를 떠받칠 만한 미래의 일꾼들이 힘 한번 못써보고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정작 지역구에서 ‘표의 반란’이 진행중인데도 방방곡곡을 돌며 “민주당을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울먹이던 추미애 의원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이념과 정책, 그리고 철학을 계승한 적자(嫡子) 정당임을 외쳤지만 DJ의 추인이 없었기에 구원병력은 오지 않았다. 민주당은 절박했고, 그래서 DJ를 향한 구애는 절절했다. 몸이 대단히 불편한 DJ 큰아들을 앞세우고 다녔다. 하지만 DJ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결과는 참담했다. 아침마다 동교동의 뜨락을 쓸었던 가신들이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일부 언론은 DJ가 이번 선거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총선개입 대신 침묵선택-
정 많은 노인네가 측근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았으니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DJ는 꽃 지는 봄밤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현실은 노무현, 정동영, 박근혜, 권영길 같은 사람을 승자의 반열에 올려놓겠지만 역사는 DJ를 진정한 승자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는 이겼다. 어쩌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뒀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대로 정치판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청와대를 나온 지난 1년여동안 그에게는 다시 현실정치로 복귀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가 많았다. DJ표 정책들이 후퇴 내지는 폐기되고, 자신의 햇볕 전도사들이 잇달아 구속되고, 동교동계 사람들이 모두 구악(舊惡)으로 분류되고 있는 시점에 국면전환용 반격의 횃불을 들 수도 있었다. 명예회복을 명분으로, 호남 소외를 구실로 마지막 승부를 걸어볼 만도 했다. 어찌보면 승산도 있었다. 그에겐 여전히 여러 무기가 있다.

 

이번 선거만 봐도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주어진 한달도 버티지 못하고 중대한 말실수를 하고 말았지만, DJ는 아직도 ‘정제된 입’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논리적이고 판세를 읽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따르는 무리가 있다. 일각에서는 집권세력의 섭섭함, 야당의 무례함을 들먹이며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정확히 읽었다.

 

그는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따라다녔던 지역감정의 망령을 잘 알았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더라도 그는 지역감정의 한복판에 서있어야 했다. DJ는 자신이 나설수록 정치판이 혼탁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D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현장을 쫓아다니는 아들에게 연민의 정이 왜 없겠는가. 추미애 의원의 삼보일배가 DJ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선동하지 않았다. 그는 참았다. DJ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지지자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비로소 선거판에서 DJ가 사라졌다.

 

-가장 값진 승리자일수도-
그렇게 지지자들로부터 지워짐으로써 인간 김대중으로 돌아왔다. 그도 자유를 얻었다. 이제 목포나 하의도에 내려가 사람들이 내미는 탁배기를 ‘아무 복선 없이’ 받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세상사가 정치 아닌 것이 없지만 앞으로는 함부로 ‘정치인 김대중’을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김대중이란 인물이 ‘3김’으로 묶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복수하지 않았고 대신 고뇌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접었다. 그러나 봄밤이 아플 것이다. 봄이 가기 전에 이제는 늙어버린 가신들을 불러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소쩍새 울음을 타서 술 한잔 건네기를 바란다. 그들도 떠나갈 때가 되었음을 알 것이다. 〈/wtkim@kyunghyang.com〉

공감할 만한 글이다. 그러나 92년 정계은퇴 당시 조중동이 DJ를 극찬한 사실을 연상시킨다. 조중동의 DJ찬양은 확인사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DJ를 예찬하고 싶지 않다.

 

정치는 무한책임이다. 발을 뺀다고 해서 빼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DJ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최선의 위치설정을 했다고 믿는다. 소극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에서이다.

 

탄핵의 그날도 DJ는 침묵했다. 30여명의 네티즌들이 동교동 사저까지 찾아가서 외쳤지만 DJ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편 김홍일은 민주당을 탈당했다 복당했다 하며 어수선한 행보를 보였다.

 

추미애는 정확히 DJ를 향해서 삼보일배를 했다. DJ는 그 수만번의 절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받았다.(받았다에 밑줄 쫙) 그 뒤를 김홍일이 지켰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DJ의 ‘방벌론’을 기억한다. 그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탄핵을 전후로 한 선문답 같은 몇마디 발언의 의미도 알고 있다. 분명한 것은 DJ는 이 순간에 승리자라는 사실이다.

 

그의 마음은 우리당을 지지한 대다수 호남민중의 마음과 같다. 그는 민주당과 함께 자멸하는 길을 걷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견제카드 역시 버리지 않았다. 개입을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개입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그 방법은 앞으로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형태였다. 이것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순간 DJ가 존경스럽고 한편으로 무섭다.

 

민노당과는 상생의 정치, 한나라당과는 최후의 승부
조중동이 떠벌이고 있는 상생의 정치라는 표현은 출구조사를 하지 말자는 말이다. 지금부터 터져나오는 건수들은 대부분 지방건설업체다. 이미 B기업과 E기업의 각 300억설이 터져나오고 있다.

 

앞으로 터져나올 돈이 적으면 1000억이요 많으면 2000억에 달할 것이다. 지방기업이 내는 돈은 중앙에 전달되지 않는다. 그 돈들 중 다수는 이회창과 노무현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 돈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김홍일은 왜 결사적으로 원내진입을 시도했는가? DJ는 왜 홍일을 막지 않으면서도 추미애의 읍소를 끝끝내 거절했는가? 왜 박근혜는 탄핵을 철회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멸의 길을 걷는가?

 

분명히 말한다. 계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무현의 1/10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근혜는 탄핵을 철회하고 싶어도 철회할 수 없게 되어있다. DJ는 민주당에 애정을 가졌지만 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역사가 무섭다.

 

결론적으로 얄밉지만 민노당과는 상생의 정치를 해야한다. 한나라당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계산부터 확실히 끝내야 한다. 박근혜는 정몽준의 허무개그를 인수한 댓가를 조속히 지불해야 한다.

 

민주당은 왜 몰락했는가?
결과가 있으면 원인도 있다. 오판하기 쉽다. 연습문제를 풀어보자. 신창원이 교도소에 잡혀온 이유는? 1)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 경찰에 걸렸기 때문이다. 물론 1)번이 정답이다.

 

한민공조 때문에 망했다고들 말하는데 틀렸다. 그건 신창원이 경찰에 걸렸기 때문에 교도소로 잡혀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제 1원인이 있다. 민주당이 망했기 때문에 한민공조라는 극약처방을 쓴 것이다.

 

DJ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 민주당은 그 이전부터 망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이 망한 이유는, 첫째 수구성 탈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안에서 DJ가 가장 왼편에 있었다. 유시민을 빨갱이 정도로 보는 박상천들은 결코 DJ의 이념적 동지가 아니다.

 

이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념이 달라도 대화는 된다. 박상천의 수구는 극우 + 권위주의다. 우파와도 대화할 수 있지만 ‘극우+권위주의’와는 대화할 수 없다.

 

둘째 민주당 특유의 패배주의다. 남프를 보면 알 수 있다. 자기네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땅바닥에 데굴데굴 뒹굴며 떼 쓰는 애기들처럼..

 

“니들이 앞으로 이렇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므로, 나는 이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어.”

 

..하는 식의 퇴행적 행동을 보인다. 이는 민주당 내부에 뇌가 없기 때문이다. 패배주의 조심해야 한다. ‘노무현이 영남에 올인할 것이다. 정동영은 팽 당할 것이다.’ 하는 식의 점장이 예언이 당을 망친다.  

 

우리당도 마찬가지다. '민노당이 방해를 놓을 것이다.' 하는 식의 점장이 예언은 백해무익하다. 민노당이 우리당을 괴롭히더라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우리당이 민노당을 포용하는 능력을 보고 우리당에 표를 몰아주게 되어 있다.  

 

세째 DJ에게서 노무현으로의 권력승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권력이란 무형의 것이다. 넘겨준다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라면 옥새을 넘겨주면 되지만 민주주의는 다르다.

 

권력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정당이라는 그릇'에 담아서 주는 것이다. DJ는 정당개혁에 실패하므로써 권력을 승계하지 못했다. 첫번째 실패는 경선 직후 일어난 홍삼사태이고 두번째 실패는 후단협의 난동이다.

 

DJ가 순조로운 권력승계에 실패하므로써, 노무현은 권력을 스스로 창출해야 했고, 그 방법은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이었으며 이것이 민주당 몰락의 진짜 원인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는 함께 할 수 없다. DJ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임기 내에 정당개혁을 했을 것이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정치개혁이 없으면 18대에 가서 또 당명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민정당은 왜 망하지 않았나?
이변은 민주당의 몰락이 아니라 민정당의 건재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대선 직후 민정당은 둘로 쪼개졌어야 했다. 쪼개져야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을 선택했다.

 

왜? 도무지 왜 그들은 행정부를 뺏기고도 부족해서, 의회까지 우리당에 내주어 버렸을까? 그래도 괞찬다고 생각할만큼 그들이 겸손해졌다는 말인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정당이 수술을 포기하고 자연사를 택한 진짜 이유는 ‘자원의 부족’이라는 원초적 한계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100으로 놓고, 이 안에 청년 야심가가 10쯤 있다면, 그 10이 모두 우리당과 민노당에 붙어버린 것이다. 나라도 그렇다. 미쳤다고 민정당에 붙나? 광주가 역사 앞에서 두 눈 부릅뜨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민정당은 희망이 없다.

 

전략이나 전술의 차원이라면  몰라도 ‘자원의 문제’는 원초적으로 답이 없다. 우리나라에 석유가 없으면 외국에서 수입해 올 수 밖에 없듯이, 자원의 빈곤은 원초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이다.

 

민정당이 건재한 이유는 분열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분열되지 않은 이유는 내부에 야심가가 없기 때문이며, 이는 인적자원의 절대부족 때문이다. TK 안에서 지각있는 사람이 탈TK를 해버린 것이 원인이다.

 

그들은 수술 대신 자연사를 선택했으므로 조만간 자연사할 것이다. 피곤한 일이지만 우리는 4년간 박근혜의 허무개그와 함께 민정당의 자연사를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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