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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162 vote 0 2004.05.23 (18:12:15)

이런 문제가 건설적인 토론으로 진행되지 않고,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지켜보니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어떤 문제이든 반드시 정답이 있습니다. 최선이 없어도 차선이 있습니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세상에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뭐 간단합니다. ‘손을 댈 것이냐 말 것이냐’입니다. 덮어두려면 걍 덮어두는게 낫고, 손을 대려면 제대로 수리를 해야 합니다.
 
근데 이미 법원에 의해서 문제가 드러나 버렸으므로, 이제는 힘들더라도 공론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덮어둘래야 덮어둘 수 없는 단계로까지 와버렸다는 거죠.
 
지난 두차례의 선거가 의미하는 바 무엇입니까? 대충 편법으로 우회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용기있게 바른 길을 가라는 거죠. 우리 비겁하지 맙시다. 문제에 당당하게 맞섭시다. 어차피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아닙니까?  
 
집총거부가 곧 병역거부는 아니다
특정종교인들의 집총거부가 문제로 되는데, 제 생각엔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고 봅니다. 집총거부를 교리로 하고 있는 특정종교인들은 총을 들지 않는 상태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하면 됩니다.
 
군에서는 많은 할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총을 들어야만 하는 부분은 작습니다. 문제는 우리 국군의 방침상 모든 병사는 무조건하고 총을 들게 되어있다는 거죠.
 
상관이 ‘총을 쏘라’고 명령했는데 부하가 총을 쏘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근데 명령불복종이 어떤 경우에도 유죄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라크에서 만행을 저지른,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단지 명령에 복종했다는 이유로 ‘세계 양심의 지탄’이라는 처벌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설사 미국이 그를 사면하더라도 그의 유죄, 그리고 세계의 양심으로 부터 비난이라는 처벌을 받는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그 종교인들은 적에게 총을 겨누는 대신, ‘적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종교인들에게는 전쟁이 일어나면 최전방에 세워서 맨손으로 적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기면 됩니다.
 
힘들더라도 민주주의를 해야한다
부당한 명령은 거부해야 합니다. 80년 5월 광주에 내려간 공수부대원은 상관의 발포명령을 거부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사가 양심의 결정에 따른다면서 멋대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풍조가 생겨나면 나라는 어찌되나 하고 걱정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를 하기로 합의를 해버렸으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임의로 명령을 거부하는) 군법회의에 붙여 재판을 하는 수 밖에 없겠죠.
 
실용주의로 말하자면 독재가 실용적이지요. 독재로 간다면 명령불복종은 현장에서 총살이 되겠지요. 바로 그러한 맹목적 명령복종의 관행 때문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는 겁니다.
 
용기있게 양심의 명령에 따른 한 명의 병사 또는 장교가 있었다면, 전두환과 박정희의 쿠데타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의한 쿠데타에 맞서는 우리의 최후의 무기는 오로지 ‘양심’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문제는 일단 존중해줘야 합니다. 가짜 양심인지 진짜 양심인지에 대해서는 함부로 예단하지 말고 그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해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병사는, 현역이든, 방위든, 공익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총을 잡아야 한다는 국군의 방침을 깨버려야 합니다. 집총을 거부하는 특정종교인들은 총을 잡지 않은 채로 현역으로 복무해야 하고, 예비군훈련도 총 대신 삽이라도 들고 하게 해야 합니다.
 
사카모토 료마와 백범의 낙관주의
우리 용기를 냅시다. 과감하게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해버립시다. 그렇게 막 나가다가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요?
 
압니다. 이런 일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거 압니다. 개혁피로증 있다는거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일모도원이라 했나요. 가야할 길은 아직도 먼데 이런 작은 문제 하나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아서야 어떻게 개혁의 과업을 완수하겠습니까?
 
용기를 내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저력을 믿으세요. 그 많은 난관을 헤쳐온 우리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막부 말년 일본에 ‘사카모토 료마’라는 넘이 있었어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죠.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페리제독이 증기선을 끌고와서 개항을 요구했어요. 일본은 수도인 도꾜가 항구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함포사격을 하면 바로 죽습니다. 강화도 길목만 지키면 되는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말에요.
 
(당시 에도의 인구는 150만이나 되었는데 이 많은 인구를 함포의 사격으로 부터 보호할 방법이 없었음. 흑선이 나타나 함포를 쏘아대자 백성들이 보따리 싸서 피난을 가는 등 에도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함. 항전은 애초에 불능.)
 
그래서 막부는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이 어찌 항전의지가 없었겠습니까? 일본에 흥선대원군 같이 고집 센 양반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개항반대파들이 있었지요. 료마도 한 때는 그 반대파 중의 한명이었구요.
 
나중 료마는 개항에 찬성하면서 막부에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했는데 결국 자객에 암살당했습니다. 어느 한 편에 섰더라면 살아남았을 텐데 말이죠.
 
해방 직후의 한국도 그랬습니다. 미국이든 러시아든 어느 한 쪽에 붙은 넘들은 살아남았고 양자를 타협시켜 최선의 대안을 찾으려 했던 중도파들은 암살당했습니다. 왜 좀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싶은 분들만 암살당했을까요?
 
료마라는 인간의 매력은 그 어떤 험난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고야 만다는 점입니다. 대단한 낙관론자였던 거지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적들과도 거리낌없이 만나야 했습니다. 즉 그는 '열린 인간'이었던 거죠.
 
그는 서로 적대적이었던 사츠마와 조슈를 단결시켰습니다. 이른바 삿쵸동맹이죠. 이 삿쵸동맹이 막부를 타도하고 개화를 성공시킨 메이지의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구요.
 
당시 조슈와 사츠마의 적대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조슈인들은 게다에다 사츠마라고 글자를 써서 밟고 다녔답니다. 사츠마도 마찬가지였겠죠. 불구대천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료마가 이 두 원수들을 화해시킨 겁니다.
 
그 결과는? 암살로 보답되었습니다.
 
왜 백범 김구는 암살되었을까요? 왜 몽양 여운형은 암살되어야만 했을까요? 러시아든 미국이든 어느 한쪽에 붙은 사람은 암살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수상한 사람은 일단 만나지 않으니까 암살되지 않는 겁니다.
 
중도파였던 백범과 여운형은 누구든 만나서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백범은 평양에 가서 김일성과 만났죠. 몽양 또한 좌우익을 막론하고 두루 만났지요. 두 분은 그 어떤 험난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암살된 거에요.
 
민노당과 수구세력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어느 한 편에 치우쳐서 적대세력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전합니다. 그들은 절대로 암살 당하지 않습니다. 왜? 만나지 않으니까.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으니까요.
 
료마는 어디로 갔을까?
시바 료타로는 왜 제목을 ‘료마가 간다’라고 했을까요? 도대체 료마가 어디로 갔길래 ‘간다’라는 표현을 제목에 붙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료마는 갔습니다. 해결사 료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츠마와 조슈를 찾아간 것입니다.
 
당시 조슈인들은 사츠마인들은 닥치는 대로 죽이는 분위기였고, 사츠마인들도 조슈에서 왔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베는 형편이었습니다.(당시 사츠마 번은 일본 안에서 다른 번 사람들은 못 오게 하는 쇄국정책을 펴고 있었음)
 
그는 목숨을 걸고 사지에 뛰어든 겁니다. 그래서 ‘료마가 간다’는 말이 생긴 거에요. 백범 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료마가 목숨을 걸고 사츠마를 찾아갔듯이 백범도 38선을 넘어 평양엘 간 거에요. 그리고 이제 '노무현이 간다' 바뀌어야 하겠죠. 
 
이와 비슷한 캐릭터가 수호지의 흑송강입니다.(송강은 송사(宋史)에도 나오는 실존인물이라 함) ‘급시우(及時雨)’가 뭡니까? 급할 때 오는 비 입니다. 료마가 흑선의 협박을 당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조슈와 사츠마를 찾아갔듯이, 송강 또한 짠 하고 찾아온 겁니다. 멋진 캐릭터죠.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있습니다. 비관론자는 어차피 안된다며 적을 설득하기를 포기합니다. 낙관론자는 끝까지 설득합니다. 설득하기 위해 사람을 만납니다.(당시 일본에서도 어차피 개항해봤자 미국의 노예가 될 뿐이라는 비관론이 압도적이었음)
 
낙관론자 료마가 갔듯이 낙관론자 백범도 갔습니다.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습니다. 료마가 살해되었듯이 백범도 살해된 겁니다.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있습니다. 비관론자는 어차피 부르조아들은 설득이 안되므로 엎어야 한다는 극좌이고, 어차피 공산당은 설득이 안되므로 주석궁에 탱크를 몰아야 한다는 조갑제입니다. 극우와 극좌는 비관론으로 통합니다.
 
서프는? 낙관론입니다. 설득하고 토론하면 된다는. 인간을 한번 믿어보자는.. 그렇게 인간을 믿다가, 낙관하여 인간을 믿고 설득을 하다가 료마와 백범은 암살된 겁니다.   
 
백범과 료마.. 그 두 사람은 개방된 사람이었습니다.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만나자면 만나주었습니다. 그 결과 자객의 방문을 받게 된 거죠.
 
그 시대에 살아남은 자들은 닫힌 자들이었습니다. 적과는 만나지 않겠다는 자들입니다. 누구입니까? 김일성과 이승만입니다. 닫힌 자는 살았고 열린 자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당은 열린우리당입니다.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꼼짝없이 죽었네요.
 
지난 두 차례의 선거로 하여 우리는 용기있게 그 험한 길, 암살될 수도 있는 길, 백범이 가고 몽양이 가고 장준하가 간 그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의한 겁니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이 길을 가야 합니다. DJ가 용기있게 평양을 갔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인내심 있게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행복 끝 불행시작입니다.
 
두렵습니까? 편하기로 말하면 적들과는 대화하지 않는, 닫혀있는 민노당과 수구가 배짱도 좋고 편한 포지션입니다. 그 쪽으로 가겠다면 저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덧글.. 이 글을 쓰는 이유.. 토론이 감정싸움으로 치단는 이유는 낙관적 전망의 부재 때문으로 봅니다. 어떤 문제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유쾌해 지겠지요. 설득할 찬스를 얻었으니.(참고로 제 결론은 집총은 거부해도 군대는 가야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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