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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뉴스메이커와 한겨레21의 만남이 묘하다 하오.(원판은 디시인사이드)

죄인 전두환은 아직도 숨붙이고 살아서 저리도 뻔뻔스럽다. 종범이 되는 한나라당과 그 대표자 박근혜는 여전히 치죄되지 않아서 오늘 두 눈을 꿈벅거리며 망월동을 찾았다고 한다. 그렇다. 너희는 죽지 않고 살아서 지켜보아야 한다.
 
‘인간이 불의를 용서할 때, 역사가 어떻게 벌하는지를.’
 
80년 5월..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대통령의 연설처럼 이제 용서하고 화해할 때가 되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피해자가 적들을 용서하더라도 역사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광주의 영령들이 그들을 용서하는 한이 있어도 역사가 그들을 용서하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역사는 전두환과 그의 독재를 용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후에서 방조한 미국과 세계 모든 나라의 지성들과 그 양심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 나라의 바보 지식인들과, 한 많은 세상에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평범한 우리 모두를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꾸짖고 추궁하며 응당한 실천을 주문하여 날로 채근한다. 필자 또한 그 추궁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5월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세아의 모든 나라들 중에서 오로지 한국만이 민주화에 있어서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5월의 광주가 없었고 우리에게는 있었다는 차이 뿐이다.
 
무수한 죽음들이 있었다. 광주 이전에도 부마가 있었고 4월이 있었다. 그 피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다. 625라는 큰 전쟁도 있었다. 수백만의 백성들이 난리통에 영문 모르고 죽었다. 어쩌면 광주의 죽음은 그 무수한 희생들 중에 작은 하나일 수도 있다.
 
무엇인가? 수백만의 인명을 희생시킬지도 모르는 큰 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광주의 수백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뻔뻔한 짖어댐이 아직도 있는 것이다. 악귀같고 야차같은 조중동들의 아가리에 말이다.
 
살펴야 한다. 그 해 5월 광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진실로 몇 명이나 희생되었는가, 누가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라고 지시했는가, 혹은 그 희생된 영령들이 적들의 주장과 같이 폭도였는가 아니면 무고한 시민이었던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역사의 입장에서 보라! 역사 자신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어느 면에서 광주는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625보다도 더 큰 사건일 수 있다.
 
625가 무엇인가? 양차 세계대전에서 방관자였던 조선민중이 러시아와 미국의 체제대결이라는 냉전의 와중에 희생된 것이다. 즉 625는 ‘김일성과 이승만의 대결’차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계사 차원에서 일어난 동서 양 진영 간의 대 충돌이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우리 자신을 해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차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전리품의 분배를 놓고 한반도에서 최종적인 ‘정산작업’을 벌였던 것이다. 세계사의 국외자였던 우리는 그 고래싸움의 와중에 어처구니 없는 희생자였던 것이다.
 
스스로 주인되지 못한 자가, 양차세계대전의 결과로 하여 주어진 해방에 무임승차한 죄로.
 
광주의 의미가 무엇인가? 625의 수백만 죽음에 비해 광주의 수천 희생은 작은 일이며,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작은 희생은 무시될 수도 있다는 위험천만한 생각을 가진, 조중동에 세뇌되어 잘못된 판단을 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은 씌어진다.
 
광주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1776년 일단의 미국인들은 세계 최초로 국왕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착상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국왕이 존재하고 그 국왕의 자산으로 국토가 존재하는 것이며, 백성이 그 토지에 깃들어 사는 것이다.
 
주권은 당연히 국왕에게 있고, 백성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그 터전에서의 삶을 보장받는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버린 것이다.(당연한 상식이 알고보면 편견과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는 깨우침!)  
 
국가다. 그러나 주권자 왕은 없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주인은 도무지 누구란 말인가? 왕이 없다니 이건 도무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걸 말이 된다고 생각한 자가 있었으니 토마스 제퍼슨이라는 한 젊은이다.
 
그는 독립선언서 27개조를 혼자 기초하였는데 이 문서에는 ‘국민에게 권리가 있다’는둥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둥 혹은 ‘삼권분립이 어떻다’는둥 하는 민주주의 이론이 씌어져 있었다.
 
일단의 무리가 7월 8일에 필라델피아에서 문서를 낭독하였고 ‘자유의 종’이라 불리는 종을 몇 차례 쳤던 것이다. 그 시점에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라 불리우기 잘하는 국민의 대부분은 왕당파에 속해 있었고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은 1/3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군대와 식민지군대가 충돌하여 천여명의 프러시아용병이 희생되자 국왕 조지 3세는 식민지의 반란을 선언하는 한편 일만명의 독일용병을 투입하고 해상을 봉쇄하였다. 국민 대다수는 여왕의 나라에 충성하고 있었으므로 초전에는 압도적으로 영국군이 우세하였다.
 
국가는 발견되는 것이다
반란이란 두려운 것이다. 커다란 상실이다. 충성의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맹목한 그들에게 있어 충성이야 말로 삶의 목적들 중 하나일진대 그 충성의 대상을 부인해야 하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부인이 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들은 승산없는 싸움을 벌였고 그 싸움의 과정에서 진정한 충성의 대상으로서의 국가를 ‘발견’한 것이다. 원래 그들은 국가가 왕의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이 새로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국가는 왕의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것이었다.
 
처음 극소수의 불순분자(?)들이 독립을 지지했지만, 연전연패를 거듭하여 필라델피아를 빼앗기고 눈 덮인 밸리 포지의 계곡으로 도망쳤던 워싱턴과 그의 군대가 이듬해 봄, 절망의 눈구덩이 속에서 살아돌아 왔을 때(많은 사람들은 워싱턴이 죽고 그의 군대가 전멸했다고 믿었다)는 모두가 독립을 지지하게 되었다.
 
워싱턴은 탁월한 전략가도 아니었고 변변한 무기도, 훈련된 군대도 가지지 못했다. 그의 임무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모두들 그가 죽었다고 믿었더랬는데 그가 그 고난에 찬 5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승리한 것이다.
 
처음 그들은 작은 것을 요구했다. 차 세금을 내지 않겠다, 인지세가 너무 비싸다는 따위였다. 싸움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차례로 드러났다. 그것이 곧 국가와 권력의 작동방식이다.
 
그 싸움의 와중에 감추어져 있던 ‘국가’라는 것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식민지와 본국 간의 정보단절로 인한 세금징수 등에서의 불합리한 의사결정 그리고 무리한 외국용병의 투입 등으로 국가체제의 근간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민중들의 시야에 알몸으로 노출된 것이다.
 
생각하면 광주의 시민들은 가난했던 워싱턴의 군대와 같다. 단지 불의에 저항했을 뿐이지만, 이후 모두가 그 사건을 들어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국가의 모습이 달라졌다. 그들은 광주를 계기로 하여 국가를 ‘발견’한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전두환의 유죄가 다는 아니다. 부시는 유죄가 다는 아니다. 전두환은 역사의 격랑기에 우연히 권좌를 탈취한 불한당에 지나지 않는다. 얼뜨기 부시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네오콘의 지령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부시의 명령에 따라 그의 군대는 이라크를 유린하였다. 우리는 그 죄를 부시에게 묻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명령에 따른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범죄사실도 용서되지 않는다는 진실의 깨우침이 바로 ‘국가의 발견’에 해당하는 것이다.
 
누가 유죄인가? 전두환 한 사람만이 유죄인가? 천만에! 모두가 유죄이다. 상사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 공수부대원들도 유죄이다. 하느님 앞에서 그들은 분명히 유죄이다. 진실을 보도하지 않은 조중동도 유죄이다. 양심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죄이다.
 
그러므로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단호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계엄군으로 참가한 7공수, 11공수들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처벌되어야 한다. 동 시대를 살아간 이 땅의 모든 양심들도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 한다.
 
신 앞에서는 누구도 용서되지 않는다. 역사 앞에서는 전두환도, 부시도, 린디 일병도, 무명의 공수부대원도, 조중동도, 나 자신도 용서되지 않는다. 왜?
 
그것이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퍼슨이 주장했던 국가, 광주를 계기로 하여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국가는 그 충성의 대상이 ‘나 자신’이다. 누구도 위정자에게 또는 권력자에게, 또는 명령하고 지시하는 자에게 충성해서 안된다.
 
나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양심의 명령에 충성하여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나라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양심에 충성하지 않은 죄 결코 용서되어서 안된다. 왜? 설사 광주의 영령들이 용서한다 해도 역사가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번 죽어도 부족한 주범 전두환은 오래 살아야 한다. 종범인 한나라당과 그 책임자 박근혜도 살아서 역사가 그 죄인들을 어떻게 응징하는지 똑똑히 지켜보아야 한다.
 
아직도 멀었다. 멀지 않은 장래에 5.18은 국가공휴일로 지정될 것이다. 3.1절과 맞먹는 위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5월의 광주를 계기로 하여 ‘국가’를 재발견했으며 6월항쟁을 거쳐, 역사적인 정권교체와 의회권력의 교체를 거쳐, 민주화된 국가를 새로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국왕에 충성하는 국가가 아닌, 주권자인 나 자신의 양심에 충성해야 하는 진짜 국가 말이다. 그 양심의 명령을 거스를 때 절대로 용서되지 않는, 천하가 다 용서해도 역사가 반드시 응징하고 마는 진짜 국가 말이다.  
 
우리의 건국기념일은 언제인가?
미국인들은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의 건국은 그로부터 13년 후에나 있었다. 즉 1776년 7월 4일은 실제로는 대단한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간 크고 작은 전투들이 그날 이후에 일어났다.
 
마찬가지다. 80년 5월의 광주는 625 보다 작은 사건이지만, 100년 후에는 625보다도 더 중요한 날로 기념될 것이 틀림없다. 광주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라 자신의 양심에 충성해야 하는 진짜 국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건국이라고 한다. 이는 국가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비로서의 의미부여일 뿐이다. 국가는 건국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며 어느 때에 발견되는 것이다. 국가를 발견하지 못한 무리들에게 국가는 있어도 없는 것이며, 탄핵을 가결한 193인과 그 동조자들은 국가 안에서라도 비국민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미 국가를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는가?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범죄가 결코 대악당 부시에게 떠넘겨지지 않는, 설사 상사의 명령을 받았다 하더라도,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범죄는 린디 잉글랜드 일병에게 물어지는 그런 진짜 국가 말이다.  
 
언젠가는 5월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통일된 우리나라의 국가로 채택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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