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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76 vote 0 2004.05.16 (20:57:37)

한류가 유행이란다. 비로소 그들이 한국과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다투어 한국인들에게 질문하곤 한다.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시오?”
 
관자(管子) 왈 ‘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안다’고 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뒤늦었지만 한국인들도 비로소 자기 정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도 그렇고, TV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문화계 전반이 그러하다.
 
왜? 도무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곧 예절이다. ‘당신은 누구시오?’ 하고 물어오는 질문들에 이제는 우리도 성의있는 대답을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껏 타인에게 배우는 입장에 서 있었다면, 이제는 간헐적이긴 하지만 가르치는 입장으로 바꾸어 서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배워야만 한다. 일본에게도 배우고, 미국에게도 배우고, 프랑스에게도, 독일에게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자라나는 우리의 10대들은 다르다.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10년 후, 20년 후를 생각하라.
 
도리어 가르쳐야만 한다. 그대 가르치려는 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나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자 만이 감히 타인에게 가르칠 수 있다. 그렇다. 미국인들도, 일본인들도, 프랑스인들도, 독일인들도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제퍼슨과 링컨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나는 세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의 나라 사람이다. 나는 에펠탑과 세느강의 나라에서 왔다. 나는 국화와 칼의 나라에서 왔더라.
 
한국인이여! 당신이라면 그러한 질문들에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와 내 민족의 정체성은?’
 
나는 도무지 무슨 명목으로 감히 세계사에 약간의 기여를 해보겠다고.. ‘인류’라는 이름의 지구촌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한 몫아지를 책임지는 식구로 기여해 보겠다고.. 이렇게 목에다 힘을 주고 버티고 서서 ‘내가 낸데!’ 하고 대답하여 나설 것인가?
 
생각하라!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동인을, 그 에네르기의 원천을 분명히 깨우쳐 알지 않으면 안된다. 밑바닥에서의 ‘동기부여’ 말이다. 혹자는 민주화의 성과라 하고 혹자는 ‘한강의 기적’이라 한다. 틀렸다. 빛은 더 높은 곳에서 비추고 있다.
 
그들은 공자 혹은 붓다의 제자들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일본인이 사무라이의 후예라면 그들은 선비의 후예들이다. 타 국가들에 비해 종교의 편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다종교의 나라이다. 그들은 한글이라는 독자적인 표음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들의 유교주의 전통은 독일인보다 더 합리주의적이다. 그들은 학문을 숭상하고 예의를 중요시 한다. 그들은 관대하고 포용력이 있다.
 
천만에!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약삭빠른 종족이다. 그들은 편법에 능하며 규칙을 잘 지키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이른바 ‘아세아적 가치’라 불리우는 가부장제 문화, 권위주의 문화에 찌들은 자들이다.
 
그들은 동아세아 특유의 연고주의, 정실주의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대개 매너없고 불친절하다. 그들은 약자 앞에서 교만하고 강자 앞에서 비굴하다. 그들은 아세아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권력이 작동하는 생리에 극도로 민감하다.
 
그들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 권세의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권력의 추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태도를 바꾸곤 한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법과 속임수를 생각해내고야 마는 일탈의 천재들이다.
 
그들은 공동체의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돈을 베개 속에 넣은 채 베고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로 사회를 위하여 기부하지 않는, 그래서 ‘돈방석’이라는 희한한 단어도 있는.. 마땅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족속들이다.
 
그대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노무현의 이름으로 항해하는 대한민국호의 기항지는 어디인가?
 
어제 임권택과, 김기덕과, 홍상수가 섰던 자리에 내일은 ‘올드보이’의 박찬욱과, 최민식이 서게 될 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국인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런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늘 질문하는 입장이었다.
 
한국인들, 그들은 외국인만 마주치면 텔레비젼에 불러다 놓고 질문하곤 했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외국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비판이나 충고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교육받고 입국했던 것이다.
 
“코리아 원더풀! 한국 참 조아요. 한국인들 친절하고 정 많아요. 김치, 불고기 맛있어요.”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잘 준비된 매너있는 대답에 만족해하곤 했다. 그러다가 이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거꾸로 한국인이 질문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임권택에게, 김기덕에게, 홍상수에게, 혹은 노벨상의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또는 월드컵 4강의 홍명보선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질문하였다.
 
이건 분명히 이제까지 경험한 바 없는 생소한 풍경이다. 그리고 내일은 그 대답하는 자리에 박찬욱과 최민식이 서야할지도 모른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시오?’
 
한국인, 그들은 늘 손님이었다. 그들은 늘 소외된 이방인이었다. 세계사의 한 귀퉁이에서 이름도 없는 비주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쩌면 주인으로 입장이 바뀌게 생겼다. 마이크를 든 손님들에 의해 질문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그렇다. 우리 세대는 이미 늙고 바래었다. 우리 세대에는 아마 단상에 올라 답변할 처지가 되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해외여행을 한다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느 귀퉁이에 붙었는지 설명하느니 차라리 일본인이라고 둘러대는 것이 편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라나는 우리의 10대들을 보라! 눈빛 초롱초롱한 젊은이들을 보라. 생기도 발랄하고 기운도 씩씩한 우리의 새내기들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
 
미처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질문들이 그들 우리의 자랑스런 새내기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들에게 어떤 답변을 준비시킬 것인가? 생각하라! 왜 이념이 필요하고, 부단한 진보가 필요하고, 공동체적 관심과 열정이 필요한가?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 아니라면, 지구촌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면 그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매너없는, 오로지 '먹고 싸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경제동물 한국의, 고리타분한 한국주식회사의 평사원으로서의 한류를 배척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세울 한 뼘의 멋대가리가 있느냐이다.
 
생각하라!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어떤 답변을 준비할 것인가? 우리에게 과연 그들의 우러름을 받을 자격이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인격에서, 또 문화에서, 또 도덕성에서 그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백범 김구선생이 꿈꾸었던 ‘경제력이나 무력이 아닌 문화력으로 존경받는’ 그런 나라로 가는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말인가?
 
아직은 이르다. 한류는 분명 과대평가되고 있다. 우리의 영화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의 문학으로는 여전히 명함을 내밀 처지가 못되고 있다.(빌어먹을 이문열)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먼 훗날 우리의 후배 세대들의 때에.. 한국이 세계로 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다면..
 
노벨상의 첫 테이프를 끊은 DJ와, 정치개혁을 통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양질의 ‘도덕적 우위’를 이끌어낸 노무현으로 부터 그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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