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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962 vote 0 2004.05.09 (17:30:02)

유교주의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유교적 합리주의’ 전통과 정동영이 주장하고 있는 ‘실용주의’의 관계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독자님의 질문을 소개하면..

『유교주의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인간의 가치관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유교의 현실주의 때문입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고시공부에 매달리고 장관 나부랭이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벼슬하는 것이 한 인간의 꿈이 될 수 있는지 말이죠. 꼭 유교를 말해야만 하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용옥이 월요일 마다 텔레비젼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유교적 합리주의’다. 예컨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되, 귀신이 무시로 등장하는 삼국유사와 달리, 또 날조된 일본서기와 달리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요즘 말해지는 ‘실증사학’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 ‘유교합리주의’ 전통이 되겠다.

유교주의의 변증법적 발전
왜 역사인가? 역사를 만만히 봐서 안된다. 역사에는 역사 자체의 논리가 있고 생리가 있다. 역사가 살아서 호흡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사가 스스로 변증법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

무엇인가? 우리가 유교주의를 부인하고, 마르크스교나, 기독교나, 불교나, 회교로 그것을 대체한다 해도 유교주의 전통으로 부터 물려받은 각종 악습과 부패의 노하우는 그대로 전수되고 만다는 뜻이다. 그 생명력에 유의해야 한다.

유교주의는 다른 종교와 달리, 교조주의에서 벗어나 업그레이드가 된다는 특징이 있다. 유교주의 내부에 변증법적 발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주의의 병폐는, 유교주의의 실체를 정면으로 직시한 상태에서 유교주의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으로만이 치유될 수 있다.

유교의 역사는 유교주의가 스스로 유교 자신의 병폐를 치유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유교 또한 종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조가 구획해 놓은 바운더리 바깥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는 일부의 한계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다르다. 기독교에도 종교개혁의 역사가 있듯이, 유교주의에도 부단한 자기개혁의 역사가 있다. 예컨대 주자의 성리학은 공자의 유교와는 다른 별개의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주자 당대에도 논쟁이 있었다. 과연 성리학을 유교의 계승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공자의 유교가 형이하학이라면 성리학은 형이상학이다. 이는 근본적인 차이라 할 것이다. 성리학은 주자가 불교의 영향을 받는 한편, 일부 도교의 관점(우주론)을 수용하여 창안한 완전히 새로운 학문이다. 왕양명의 심학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이것이 불교인지 유교인지 구분이 어려울 지경이다.

예의 독자님이 비판하여 말하는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고시공부에 매달리고 장관 나부랭이가 되기를 꿈꾸는’ 전통도 원래는 유교와 별개의 것이다. 공자가 과거제도를 발명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우리가 유교주의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 실제로는 서로 다른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느슨한 결합상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적시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1) 조상숭배.. 중국의 종교적 전통을 계승함
2) 음양오행.. 춘추시대의 자연학을 수용함
3) 유교예법.. 공자와 그 제자들의 밥벌이 수단
4) 성리학.. 불교의 영향아래 주자가 창안한 형이상학
5) 법가와 묵가.. 광의의 의미에서 유교주의의 일부
6) 현실주의.. 양주의 사상(도가의 일파)이나 유교에도 영향.
7) 기학, 양명학, 고증학.. 후대의 업그레이드 된 버전
8) 기타.. 제자백가, 풍수지리, 양생술 등의 영향을 받음.

유교는 종교이면서 종교를 초월하여 학문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 천년간 많은 중국인들의 지혜가 누적된 즉, 다양한 요소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나의 세계이다.

우선 독자님이 비판하여 말하는 ‘현실주의’도 엄밀히 말하면 유교보다는 도교, 특히 양주라는 넘이 만들어낸 사상이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양주의 극단적 이기주의(혹은 쾌락주의, 또는 자연주의)는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중국인이 요리에 집착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방중술은 논외로 하자^^) 모든 중국인은 양주의 영향을 받아 쾌락주의자가 되었다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모택동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모택동 또한 별수없는 중국인으로서 양주의 충실한 제자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양주의 가르침.. ‘옷은 검소하게 요리는 최고로’, ‘먹는게 남는 거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먹자,’ 인간의 생리적 욕구, 곧 먹는 문제와 싸는 문제에 충실하자는 사상이다. 한마디로 ‘불로장수’ 하자는 거다.

심지어 검소하기로 소문난 총리 주은래 조차도 옷은 거지같이 남루하게 입으면서도 요리는 짭짤하니 맛있는걸 골라먹었다지 않는가. 중국인 특유의 극단적 현실주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러시아와 달리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편법을 사용하여 용케 빠져나가는 이유도, 중국인 특유의 현실주의, 곧 실용주의 때문이며, 그 실용주의 전통의 뿌리에는 극단적 이기주의자에 양생술의 대가였던 양주가 있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정동영의 실용주의도 따지고 보면 이 양주라는 넘과 관련이 있다. 맹자가 맹 비판했던 ‘양주묵적’의 양주 말이다.

한국의 유교는 다르다. 한국은 중국인에 비해 현실주의 경향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더 합리주의에 가깝다. 흔히 독일인이 합리주의라 한다. 일본인들도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은 오히려 독일인들과 가깝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합리주의는 공자로부터 시작되지만, 점차 실용주의, 혹은 현실주의로 타락해갔으며 이걸 본래의 합리주의로 되돌려 놓은 사람이 성리학의 주자이다. 이렇게 변증법적 발전이 있다. 정리하면..

● 공자합리주의..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나, 형이상학이 결여된 현실주의의 한계로 후대에는 점차 실용주의로 타락함.
● 주자합리주의.. 형이상학을 창안하므로서, 실용주의를 배격하고 유교를 본래의 합리주의로 되돌려 놓음.
● 한국유교주의.. 한국의 유교는 성리학으로 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음. 중국에 비해 실용주의적인 요소가 적고 합리주의 경향이 강함.
● 한국실용주의.. 실학이라 불리우는 조선조 말의 실용주의 붐은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현실주의로 타락한 결과임.

문제는 식민사학이다. 우리는 어려서 그렇게 배웠다. 우리나라는 폴란드와 더불어 수백번의 외침을 받은 불쌍한 민족이라고 말이다. 천만에. 유럽 여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 보라. 우리나라 만큼 외침을 덜 받은 나라는 없다시피 하다.

중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중국은 외침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오랑캐의 직접지배를 받았다. 5000년 중국사에서 중국인에 의해 중국이 통치된 시대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무엇인가? 유교는 본래 합리주의다. 그러나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 대의와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죽림칠현이니 청담사상이니 하며 도교주의를 일부 수용하는 방법으로 도피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유교주의의 타락(역설적으로 그것이 또한 변증법적 의미에서의 진보일 수도 있다)의 결과가 중국인 특유의 현실주의 혹은 실용주의인 것이다.

예컨대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녹색당 붐도 현실 사회주의권이 한계에 봉착한 결과를 반영한 곧 사회주의의 타락이면서 역설적으로는 사회주의의 진보일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죽림칠현이 오랑캐의 말발굽을 피하여 청담사상이니 하며 도교적 전통에 뿌리한 자연주의로 되돌아간 것이나 독일의 녹색당이나 판박이다.

중국인의 실용주의는 이렇듯 그 뿌리가 깊다. 아시다시피 중국인의 상술은 날로 유태인의 상술을 압박하고 있다. 모든 중국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사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런 풍조가 생겨났겠는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무수히 침략당했고, 침략당할 때 마다 굴복해 왔으며,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실용주의자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 효종의 북벌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대의명분을 주장하던 합리주의는 타격받았다. 현실적응을 강조하는 유교주의의 타락으로서의 실용주의, 곧 실학이 생겨난 것이다.

문제는 식민사학이다. 식민사학은 우리의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고 그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식민사학은 조선이 실패한 원인을 유교합리주의에 혐의를 두고, 있지도 않은 가상의 학문(?)인 실학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김용옥이 ‘실학은 없다’고 외치는 것이다.

식민사학은 틀렸다. 조선의 역사는 결코 실패한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실패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유교주의에 혐의를 둘 필요도 없고, 김용옥의 말대로 알고보면 허학인 실학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왜 이 점이 중요한가? 실학이 조선의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한 식민사학에서 생겨났듯이, 중국의 현실주의와 실용주의 또한 무수하게 오랑캐에 정복당한 즉 거듭된 피정복의 역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합리주의가 있다. 그 합리주의의 실패 혹은 한계를 반영하여 실용주의 혹은 현실주의가 있다. 그 주변에 자연주의도 있다. 유럽의 사회주의가 녹색당으로 변신을 꾀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변증법적 발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역사는 흐른다. 살아있는 역사 자신의 생리대로 말이다.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유교합리주의’가 정통으로 옳고 다른 것은 이단으로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유교주의는 부단히 업그레이드 되어 왔으며 이는 ‘유교주의 특유의 포용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기독교문명과 유교문명은 다르다. 기독교문명은 언제나 YES와 NO 중 하나의 택일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무오류주의 경향을 띠는 마르크스주의 또한 그 점에서 별 수 없는 기독교문명의 일부라는 말이다.

유교문명은 다르다. 그 저변이 매우 넓다. 실용주의 경향, 자연주의 경향도 유교주의의 한 갈래로 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곁가지일 뿐 주류는 여전히 합리주의 전통이다.

합리주의는 실용주의를 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합리주의를 포용할 수 없다. 왜? 실용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실천적 방법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위디렉토리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본말이 전도될 수는 없다.

(정동영의 실용주의가 문제인 것은 이념을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법론을 앞세우는 방법으로 본말을 전도시켰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도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이념을 포기한 것은 전혀 아니다.)

일본인들도 실용주의다. 그들은 외침을 당하지 않은 대신 자기네들끼리 죽기살기로 싸웠다. 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로 실용주의를 발달시켜 왔다.

결론적으로 실용주의는 좋게 말해서 방법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처세술이다. 결코 이념이 될 수 없다. 인류의 보편가치가 아니다. 환경에의 적응노력에 불과하다. 한국의 합리주의와 중국, 일본의 실용주의 중 어느 쪽이 더 세계사에 기여하겠는가? 필자는 단연코 한국의 합리주의가 더 기여한다고 본다.

필자가 우리나라의 정치가 앞으로 독일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한국식으로 간다고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독교문명과 유교문명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다. 기독교문명은 YES와 NO 사이에 중간이 없다. 기독교문명을 계승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유교주의는 중용을 강조해 왔다. 좌의 합리주의가 우의 실용주의를 포용하고 있다. 이것이 작은 차이는 아니다. 중용이란 것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실천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노하우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의 좌가 방법론의 우를 포용하는 데 있어서의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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