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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 사람의 회동은 과거의 영수회담과는 다르다. 선거가 끝나면 야당이 먼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어야 하는데, 한나라당이 자기들 손으로 대통령을 탄핵해버려서 영수회담을 제안할 수 없게 되었다.

야당의 곤란한 처지를 역으로 찌르고 들어간 것이 정동영의 제안이다. 정동영의 의도는 적중했다. 착한 아마추어 박근혜가 멋모르고 영수회담에 비해 격이 떨어지고 의미도 없는 하수회담(?)에 응해준 것이다.

요는 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이 과연 구속력을 가지는가이다. 과거 이민우총재식으로 말하면 ‘실세론’이다. 그 시절 이민우총재와의 합의사항은 배후의 실세(양김씨를 가리키는 조중동식 표현)에 의해 뒤집어지곤 했다.

실세는 노무현이다. 원외인 정의장이 합의사항에 책임질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까놓고 말하면 두 사람의 합의는 단순한 정치선언에 불과하다. 의미도 없는 회담을 왜 했는가? 정동영의 얕은 꾀에 아마추어 박근혜가 넘어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정동영의 승리이지만 정치는 원래 자살골넣기 시합이다. 정치에서 성공은 곧 자살골을 성공시킨 결과로 된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야당의 탄핵성공이 대표적인 자살골 성공이다.

이번 회담의 최고수혜자는 박근혜가 된다. 물론 정동영도 얻은 것이 있다. 우선 전남도지사가 끼어있는 6.5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역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걸 노렸던 것이다.

우리당은 당의장과 원내대표의 쌍두마체 체제이다. 이번에 있었던 워크샵도 실질적으로는 김근태계보가 주도했다는 설이 있다. 정동영은 김근태를 제치고 당 서열 1위의 지위를 확인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장 김근태가 ‘탄핵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느냐’며 태클을 걸고있고 전여옥이 ‘오전에는 상생이고 오후에는 살생이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정동영으로는 얻은 것이 많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법칙이 있다. 같은 보수끼리 경쟁하면 상대적으로 더 보수인 쪽이 이득을 본다. 한나라당이 수구색을 탈피하는데 성공한다면, 보수경쟁에서는 무조건 한나라당이 승리한다. 우리당은 개혁이라는 어젠다로 성공한 것이다.

상생의 정치는 절대적으로 한나라당이 이득을 보는 정치게임이다. 왜냐하면 야당은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상생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잘못되는 일은 무조건 여당에 책임이 돌아간다.

야당은 기본적으로 욕먹을 일이 없다. 지금까지는 ‘상극의 정치’였다. 서로 죽이는 게임에선 명분을 쥐는 쪽이 이긴다. 야당도 책임을 나눠가진다.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 여당이 잘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

상생의 정치.. 서로 살자는 것이다. 서로 살기로 하면 어느 쪽에 유리할까? 책임질 일 없는 야당이 이득을 본다. 상생의 정치를 계속한다면 정권은 4년마다 교체되고, 여당과 야당은 번갈아가며 집권하게 될 것이다.

왜? 아무 생각없는 국민 입장에서는 여당도 좋고 야당도 좋은 것이다. 이번에는 여당맛을 보았으니 다음번엔 박근혜도 대통령 시켜놓고 어쩌는지 구경해보자는 식이다. 부동표들 입장은 당연히 그렇다.

실제로 지난 대선 때 PK에서 가장 파괴력 있었던 구호가 '이번에는 이회창, 다음에는 노무현'이라는 것이다. 부산에 사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이회창도 좋고 노무현도 좋다. 담에는 노무현 찍어야지 하면서 이회창 찍었다.

그렇다면 상생의 정치로 여당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뿐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여당은 경제성장이라는 당근을 던져줄 수 있다.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하여 업적으로 심판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이 성과를 내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민생을 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상생의 정치는 '실적'으로 말하는 정치가 된다. 문제는 과연 그 실적이 나와주는가이다. 과연 노무현정부는 국민소득 2만불을 달성할 수 있을까? 과연 빛나는 동북아중심국가시대의 비전을 완수할 수 있을까?

정리하자. 상생의 정치는 여야가 서로 사는 정치다. 여야가 서로 살면 국민은 양쪽을 다 원하게 된다. 이 경우 4년마다 정권이 교체된다. 고로 상생의 정치는 일방적으로 한나라당에 유리한 정치다.

대신 여당도 얻는 것이 있다. 국민소득을 향상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여 점수를 따면 된다. 결론적으로 상생의 정치는 우리당이 한나라당에 500만표를 자진헌납하고, 대신 경제에서 놀라운 업적을 세워서 그만큼 새롭게 표를 벌자는 야심찬 계획이다.

정말 꿈 같은 계획이다. 잘 되면 좋겠지만 그게 과연 그렇게 입맛대로 잘 될까?

개혁드라이브로 가야한다. 부시가 난동을 부려서 경기도 안좋은 판국이다. 경제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개혁업적으로라도 보상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결국 누군가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다. 개혁과 상생은 공존할 수 없다.

당장 이인제부터 배짜라는 식이다. 이인제의 배를 째지 않는 것이 상생이고, 과감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이 개혁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 야당을 압박하는 개혁드라이브로 점수따기
● 상생해서 국민소득 2만불 달성으로 평가받기

정동영과 박근혜는 후자에 합의했다. 상생하기로 하면 국민의 관심사가 '경제'로 가버려서 대단한 개혁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근데 오늘 주가가 1.37포인트 올라서 언제 2만불 시대를 열어제치지?

상생은 정치인들이 지들끼리 눈 맞추고 배 맞추고 짝짜꿍 하는 거고 우리 네티즌은? 범개혁세력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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