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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177 vote 0 2004.05.03 (10:35:01)

노무현대통령이 ‘원칙과 상식’ 그리고 ‘국민참여’를 화두로 내걸었다. 이것이 우리당의 초심이다.

총선 붓뚜껍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실용정당’이니 뭐니 하며 요상한 구호를 내걸어, 대통령의 ‘원칙’을 꺾어버리니 네티즌의 ‘국민참여’의지가 좌절되어 쓸쓸하기만 하다.

이해찬과 김부겸의 망언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칙과 상식’으로 돌아가고 ‘국민참여’로 돌아가야 한다. 말이 좋아 실용이지 원칙을 굽힌데 따른 너절한 변명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다행히 우리에겐 유시민이 있었다. 중앙당을 떠나므로써 깨어있음을 보여주었다. 원내대표로 나선 천정배도 제때 필요한 말을 해주었다. 바로 이거다. 우리 이 길로 가면 희망이 있다.  

우리당이 죽 쑤는 동안 민노당은 노동절을 기념하여 대학로에 1만명을 모아 기세를 올렸다. 당신이 20대 젊은이 입장이라 치고 생각해 보라. 어느 당이 더 매력적인가를. 당신의 눈으로 말고 20대의 눈으로 보라. 벌써 민노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추월하고 있다.

유시민의원의 글에 다 드러나 있지만, 우리당 이대로 놔두면 정형근의 예언대로 간다. 왼쪽에서 민노당 크고 오른쪽에서 한나라당 버틴다. 살아남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원칙과 상식으로 가고 국민참여로 가야한다.

바보들의 수법은 뻔하다. 정보를 통제하는 수법을 쓴다. 필자가 틈만 나면 정당에는 계보도 필요하고 난닝구도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 한나라당은 정보를 통제해서 의원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 결과가 이렇다.

유시민이 개혁파 의원들을 모아 모임(가칭 참여정치연구회)을 만들었다. 이 또한 계보라면 계보다. 돈으로 움직이는 계보가 아니라 정보를 공유하는 계보다. 당권파가 정보라인에서 소외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므로, 개혁파는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으로 뭉쳐야 한다.

민노당의원들은 ‘당이 시키는 일만 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당이 의원보다 높다. 의사결정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유연한 대응 못한다. 이념적으로 경직된다. 이거 망하는 길이다.

한나라당은 거꾸로다. 총재가 시키는 일만 한다. 당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이고 대표가 혼자서 다해먹는다. 식물정당으로 망한다. 이회창이 4년 동안 식상한 인물이 되어갔듯이, 박근혜도 점차 생기를 잃어간다. 대권을 잡으려면 지금 외국으로 나갔다가 2년 후에 돌아와야 하지만 그녀에겐 그럴 배짱이 없다.

우리당은 의원 한사람, 한사람이 당 대표여야 한다. 유시민은 재선이지만 대표처럼 행동해야 한다. 천정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면 내부에서 충돌한다. 당이 깨질 위험이 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우리당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진보니, 보수니, 책임정당이니 실용정당이니 말은 번드레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들이다. 항상 그렇듯이 진짜는 따로 있다.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을 보아야 한다.

독일식, 미국식 있지만 어느 나라도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과 지정학적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정치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가 정한 궤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선비당으로 가면 살고 양반당으로 가면 망한다.
한국정치는 유교주의의 전통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유교주의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다. 부정적 측면은 권위주의와 차별주의다. 긍정적 측면은 김용옥이 말하는 유교합리주의 전통이다.

양반당은 권위주의 유교전통을 의미하고 선비당은 합리주의 유교전통을 의미한다. 선비당으로 가면 살고 양반당으로 가면 죽는다.  

예컨대 한나라당이 김문수, 이재오 같은 원래빨갱이(김용갑류의 표현)들을 용인하는 이유는 진보냐 보수냐의 잣대가 아닌 ‘선비냐 양반이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들이 선비로 보인 것이다.

한국인들이 운동권출신에 관대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노선타령에 관심이 없다. 선비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뿐이다. 유권자 입장에서 볼때 ‘실용정당 컨셉’은 양반당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이거 안된다.  

인터넷당으로 가면 살고 종이신문당으로 가면 망한다.
한국정치를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안된다. 한국만의 특별한 힘이 있다. 그 힘은 광장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에겐 광장이 없었다. 비로소 광장의 정치가 시작되려는 것이다. 인터넷이 광장이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중요하다. 피드백있는 정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좌파들은 무오류주의의 경향이 있어서 모험을 두려워 한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이념, 완벽한 혁명을 꿈꾸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민노당이 그렇다.

다양한 정치실험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부단한 오류시정을 통해 정치의 미시조정을 꾀하는 것이다. 양자택일이 아닌 단계적 수렴으로 간다. 우리당만이 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진보는 이판 보수는 사판이다
불교에 비유해 보자. 이판사판이라고 한다. 이판은 정진하는 수도승이고 사판은 살림하는 행정승이다. 이판이 잘 되면 종정이 되고, 사판이 잘 되면 총무원장이 된다. 종정이 높나 총무원장이 높나? 종정이 높지만 실권은 총무원장이 가진다.

이판을 진보, 사판을 보수로 볼 수 있다. 모든 승려는 이판으로 시작한다. 즉 모든 정치는 진보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 학승들 중 일부가 중간에 행정승으로 변신한다. 이판에겐 엄격한 수행이 요구되지만 사판에겐 비교적 관대하다.

가끔 곡차도 한잔씩 하는 스님, 탁발다니며 ‘엎어냉면’ 드시는 스님,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먹는 스님은 사판으로 볼 수 있다. 늘 신도들과 접촉해야 하는 사판승의 일탈행위는 어느 정도 용서하는 전통이 있다.

이판은 다르다. 용서가 안된다. 우선 신도들과 접촉할 기회조차 없다. 약간만 한눈을 팔아도 큰스님의 죽비가 나르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무엇인가? 입법기관이 상대적으로 이판에 가깝고, 행정기관은 사판에 가깝다.

입법기관이 종정이고 행정기관이 총무원장이다. 당이 민생 챙긴다는건 거짓말이다. 민생은 사판인 행정부가 챙긴다. 민생타령 해봤자 과거에 국회의원들이 주례나 서고 상갓집이나 찾던 짓이다. 까놓고 말하자. 민생행보는 선거운동이다.

박근혜가 그 짓거리를 하는 것은 대권에 눈이 멀어서 뻘짓하고 있는 거다. 선거 끝났는데 지 혼자서 선거운동 한다. 노무현이 민생행보 따위에 전념했으면 절대로 대통령이 될수 없었다.

국민은 살림꾼이 아닌 리더를 원한다. 리더는 강해야 한다. 민생한다는게 뭔짓이냐 하면 이곳저곳에 고개숙이고 다니는 거다. 절하는게 일이고 사과하는게 일이다. 그런 식으로 비굴하게 행동해서 강한 이미지 줄 수 없다.

행사장에 얼굴이나 내미는 민생행보로는 잘해봤자 김상현이다.  

신도가 사찰을 찾는다. 신도는 사판승과 접촉한다. 이판은 만날 수 없다. 만나려면 3000배를 해야한다. 성철스님이다. 사판스님은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다. 무엇인가? 신도가 시주를 사판에게 주지만 이판보고 그 절을 찾는다는 말이다.

진보, 보수 하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모두가 진보다. 그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자기 역할을 전문화 하므로서 보수가 된다. 서프를 조계종에 비유하면 학승들이 공부하는 선원과 같다. 선원에서는 100프로 이판이다. 보수는 서프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서프는 일종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판은 하는 일이 없다. 절 살림에 조금의 보탬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신도를 위하여 염불을 하지도 않고, 마을을 돌며 탁발을 하지도 않고, 망자를 위한 법회를 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조계종이 비싼 돈 들여가며 학승을 키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판은 씨앗을 뿌리는 역할이고 사판은 수확을 하는 역할이다. 뿌리지 않았는데 수확이 있겠는가? 진보가 없는데 그 진보과정에서의 부분적 오류를 보수(補修)할 보수(保守)가 무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실용정당 헛소리가 대통령을 해친다
헌재가 ‘5 : 4’냐 ‘9 : 0’이냐를 놓고 저울질 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체면을 살려주기로 하면 ‘5 : 4’가 되고, 한나라당의 체면을 무시하기로 하면 ‘9 : 0’이다. 알고 있겠지만 헌재는 원래 정치적 판단을 한다.

왜냐하면 헌법 자체가 정치선언문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 1조를 보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여기에 무슨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것이 정치선언문이기 때문에 헌재는 명백히 정치적 판단을 한다.

우리당이 앞장서서 상생의 정치니 실용정당이니 나사빠진 소리를 하고 있으니 헌재가 분위기파악을 잘해서 상생한다며 양쪽의 체면을 다 살려주기로 갈 위험이 있다. 그래서 결과가 5 : 4로 나온다면?

우리대통령은 돌아오겠지만 저 인간들 기세등등한 꼴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얼빠진 실용정당타령이 다 만들어놓은 ‘9 : 0’을 ‘5 : 4’로 되돌리고 있지나 않은가? 지금은 소추위원들 부터 착실히 응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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