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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95 vote 0 2010.08.22 (23:46:00)


  질과 밀도

 

  질개념, 밀도개념이 구조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하겠다. 쉬운 거다. 그런데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도 이 부분이다. 사람들이 왜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 그게 궁금하다. 진짜 궁금하다. 누가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뇌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하여간 아주 뇌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밖에. 말하자면 필자는 원래부터 모든 생각을 질개념으로부터 풀어가는 훈련이 되어 있는 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더라.  

 

  질(質)은 바탕이니 출발점이다. 제품의 질이 좋다고 하면 좋은 거다. 제품의 질이 나쁘다면 안 좋은 거다. 굳이 국어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직관적으로 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양질도 있고 악질도 있다. 자질도 있고 기질도 있다. 질은 늘 쓰는 말이며 구조론의 질 또한 그 뜻 그대로다.

 

  금과 은을 차별하는 것은 질량이다. 질량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질을 판별한다는 거다. 금이 은보다 무겁다. 그러니 더 가치가 있다. 더 질이 좋다. 금이 더 양질이다. 질을 차별화 하는 것은 밀도다. 더 빽빽하게 들어찬 것이 더 무겁고 더 가치있다. 빈깡통은 밀도가 없으니 가치가 없다. 과일이라도 그렇다. 속이 꽉 들어찬 것은 가치가 있고 속이 텅 빈 쭉정이는 가치가 없다. 골 빈 녀석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 속이 비어있다는 말이다. 비어있는 것은 밀도가 낮으니 가치가 없고, 속에 생각이 들어차 있는 것은 밀도가 높으니 가치가 있다. 질은 밀도다. 밀도가 높은 것이 대개 질이 좋다. 이는 경험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 옷을 짜도 촘촘하게 짠 40승포 극세사는 임금이나 입었고 백성은 성글게 짠 12승포를 입었다. 촘촘한 것이 밀도가 높다.

 

  중요한 것은 밀도가 같은 것끼리 결합되는 원리다. 이는 원심분리기를 돌려보면 알 수 있다. 보통은 굳은 넘과 무른 넘이 공존하다가도 어떤 위기가 닥치면, 외부에서 강한 힘을 받으면 원심분리기 현상이 일어나서 한나라들과 후단협들은 싹 분리수거가 된다. 유유상종이라 했다. 밀가루는 밀가루끼리 반죽이 잘 되고, 나무는 나무끼리 가구가 잘 짜여지고, 쇠는 쇠끼리 볼트와 너트가 맞고 그런 식이다. 이 강도가 다르면 경계면에서 힘이 반사되기 때문에 분리되어 층이 지고 결이 생기고 금이 가서 계가 붕괴된다. 이 또한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가만 놔두면 저절로 공부 좀 하는 애들끼리 앞자리로 모이고 좀 노는 애들끼리 뒷자리로 모인다. 저절로 분리가 된다. 분리되면 도모하는 일은 대개 실패로 되기 때문에 결합하게 하는 질이 중요한 거다.

 

  질은 바탕이다. 그 바탕은 바닥이다. 그 바닥의 상태가 질이다. 바닥이 진흙이면 집을 건축할 수 없다. 보링을 해서 지반을 다져야 한다. 뭐 어디가나 다 그렇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잖아 하는 표현 많이 쓴다. 질이 근본을 결정하는 거다. 질이 낮으면 무슨 수를 써도 안 된다. 옷은 섬유로 만들어야 하고, 가구는 나무로 만들어야 하고 총은 쇠로 만들어야 한다. 질이 결정되어 있다.  

 

  닫힌계 개념이 중요하다. 닫혔다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하여간 계가 있어야 한다. 사건은 거기서 일어난다. 즉 사건의 범위를 확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거다. 그 사건의 범위를 결정하는 경계조건 혹은 바운더리 컨디션이 질이다.

 

  우사인 볼트가 허벌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방향을 확 틀었는데 그때 잘 따라다니던 혼이 급회전을 못하고 몸 밖으로 튕겨나가서 혼이 빠지는 수가 있다고 말하면 믿을라나? 어쨌든 조선시대라면 믿을 사람 제법 있을 거다. 살살다녀라 혼 빠져나갈라. 혼 낸다거나 혼 난다거나 하여간 혼이 빠져나갈까 넋을 잃어먹을까봐 옛사람들은 걱정을 했던 거다.

 

  과학자들은 눈의 망망까지 뇌로 친다. 즉 뇌가 뇌 밖에도 있는 거다. 어디까지가 나의 바운더리 경계선인지는 모호하다. 일조권 분쟁을 봐도 그렇다. 담을 넘어온 남의 집 감이 내감인지 네감인지 고민하던 이야기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에도 나온다. 많은 부분이 경계가 모호하다. 빠져나갈 수도 있고 뒤섞일 수도 있다. 인간 사회에서 대부분의 분쟁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 즉 어디까지가 네바닥이고 어디까지가 내바닥인지가 모호한 것이다.

 

  독일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몸이 스치는 정도의 신체접촉을 싫어한다. 접촉이 일어나면 반드시 사과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 영역을 확실히 주장하는 거다. 일본사람들은 전철안에서 휴대폰을 받으면 째려봄을 당한다. 끊고 전철이 서면 역에 내려서 통화하고 다음 차를 타야 에티켓이란다. 역시 영역주장이다.

 

  구조론은 사건을 다루며 사건은 요소들의 결합에 의해 일어나고 그 결합이 질이다. 밀도는 그 결합된 정도를 나타낸다. 사람들이 질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원래 결합되어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며 이는 입자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나 구조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유체는 입자형태가 불명하다. 원래 결합되어 있는게 아니고 질이라는 절차를 거쳐서 결합된다.

 

  중력은 보이지 않는다. 중력에 의해 피라밋의 석재들은 결합되어 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의해서 인간의 행동은 일어난다. 마음이 그 사람의 여러 면모를 결합하고 있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즉 중요한 것들의 다수가 보이지 않는 거다. 입자는 눈에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그것이 밀도다. 밀도를 봐야 한다. 어떤 것이 결합되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혼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살펴봐야 한다.

 

  밀도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사물이 밀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움직여가기 때문이다. 바람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고기압쪽에서 저기압쪽으로 간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질지 계란이 깨질지는 정해져 있다. 밀도가 낮은 쪽이 깨진다. 아주 세게 치면? 계란 + 속도의 합이 바위보다 강하면 바위가 깨진다. 이 경우도 역시 밀도가 낮운 쪽이 깨지는 거다. 여기서 계란이 깨질수도 있고 바위가 깨질 수도 있지만 역시 밀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가는 방향성은 불변임을 알 수 있다.

 

  입자 중심의 사고를 하면 그 계란의 속도를 생각하지 못한다. 질이 강조되는 이유는 건축을 결정하는 중력이 보이지 않고,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이 보이지 않고, 계란의 승리를 결정하는 속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으므로 그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듯 항상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질을, 밀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어떤 외부 충격을 당하면 질이 다른 것끼리 분리되어 버린다. 괴리현상이다.

 

  예컨대 타블로 문제처럼 네티즌들은 큰 관심을 가지는데 비해 언론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원심분리 현상이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처럼 젊은이와 여성이 크게 관심을 가지는데 비해 수구꼴통과 마초들이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나 어릴 때는 미군이 씹다 뱉은 츄잉껌도 주워서 단물 빨아먹고 그렇게 살았어. 그깟 쇠고기가 좀 위험하면 뭐 어때?’ 하고 반박하는 격이다. 사회에 이런 괴리가 있을 경우 그 사회는 위태롭다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괴리가 있으며 그 괴리의 존재가 무시되거나 은폐될 때 그 사회가 외부로부터 충격을 당하면 지역별로, 계급별로, 성별로, 소득별로 분리되어 서로간에 소통이 막혀 일치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결국 그 사회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오은선이 14좌 완등을 했는지 불확실하다. 이걸 그냥 덮고 간다면 역시 괴리다. 천안함이 과연 어떤 이유로 침몰했는지도 국방부는 속시원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역시 괴리다. 대한민국은 많은 괴리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왔다. 그러나 중국제 싸구려 제품은 괴리가 있어도 싼 맛에 사가지만 삼성이 생산하는 첨단제품에 괴리가 있다면 곤란하다. 명품은 괴리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저가경쟁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는 지금 우리도 이제 명품장사를 할 때가 되었다. 대만의 예가 그렇다. 질적으로 차별화하지 못하고 중국과 경쟁하며 몰락하고 있다. 한국은 확실히 대만을 추월했고 역전가능성은 없다. 질적으로 차별화 하려면 질을 알아야 하고, 밀도를 끌어올려야 하고, 괴리를 없애야 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0.08.23 (04:50:36)

조금 이해가 갑니다^. 중력, 마음, 공기, 속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큰 일을 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id: 심연심연

2010.08.23 (06:53:09)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지요

평면 상에서 입체를 나타낼때 필요한건 원근법이고
입체 상에서 질을 나타낼때 필요한건 ㅁㅁㅁ이다라고

즉,
2차원 캔버스 상에 3차원 풍경을 옮기자면
3차원 입체의 겹침이 나타나는데, 그걸 정리한게 원근법이고

3차원 입체 상에 4차원(?) 질을 옮기자면
4차원(?) 질의 겹침이 나타나는데, 그걸 정리한게 ㅁㅁㅁ이다라고

뭐 여기서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지만
저 'ㅁㅁㅁ'에 들어갈 말로 생각해본 몇가지가
-중력, 응력, 텐션, 강도(인장,압축), 압력, 역학, 밀도, 하중, 습도, 재질, 질감, 빛, 색, 파장
등이 있었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23 (18:26:58)


그러네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하는데..대체로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려드는 경향이 있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가치판단을 하려한다면 늘 낭패를 당하기 쉽상이지요.

질은 이미 결합해 있는 것이 아니고 밀도가 높아야 질의 결합이 좋은 것이기에, 밀도가 조밀하게 꽉 들어차 있어야 질이 좋은 것이구요.
명품은 처음 눈에 보이는 디자인부터 그안의 내용까지 잘 맞물려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겉과 속의 괴리가 없어야 합니다.
모두 명품이 되는 질을 선호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행하는데에 있어서는 질과 양을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좋은 디자인은 미학적으로 멋져야 하지만 그 내용을 채움에 있어서 볼게 없다면 질이 떨어집니다.
내용을 채움도 역시 디자인이 들어가야 합니다. 즉 구성과 구성의 맞물림이 좋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역시 맞물림에 있어서의 괴리가 없어야 합니다. 외형과 내형도 잘 맞물려야 하구요.

곧 질은 성능과 같아서 질이 좋으면 잘 굴러가고 질이 안좋으면 삐거덕 거립니다. 맞물림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은 서로가 맞물려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밀도가 조밀한 그 사이에서 질이 나옵니다. 경계가 괴리가 없이 잘 맞물려야 명품이 나오는 것이고, 질이 좋은 것입니다.
즉 질은 밀도의 수치인데 서로가 맞물려 있는 관계의 그 사이에서 질이 결정된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얼마나 서로가 잘 어울리고 있는가? 무엇으로 어울리는가? 서로가 갖고 있는 격들이 만나서 맞물릴 때 그 사이에서 질이 나타나며, 그 질은 맞물려 있는 조밀한 상태의 밀도가 높은가 낮은가를 보고 판단하게 된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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