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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577 vote 0 2012.04.20 (12:01:11)

 


구조론의 깨달음

 

구조론의 이해는 학습만으로 부족하고 깨달아야 한다. 자동차 운전을 배운다면 이론과 실기를 배워야 한다. 깨달음은 실기에 해당한다. 그 실기의 대상이 자신의 뇌일 때 그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사고방식을 바꾸고, 그 사유의 기준이 되는 관점을 바꾼다.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며, 뇌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구조론의 중심은 존재론과 인식론이다.

 

인간은 인식론적으로 사유한다. 이를 존재론으로 바꾸어야 한다. 존재론은 툴이다. 수학공식처럼 외어야 한다. 그냥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쓰듯이 하는 것이다.

 

좌표를 그려놓고 빈 칸에 채우는 것이며, 모형을 만들어놓고 각각의 항목에 대입하는 방식을 쓴다. 문제의 파악이 중요하며 문제가 명확할 경우 1초만에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존재론은 에너지의 결을 따른다. 인식론은 사유의 결을 따른다. 인간이 잘못 판단하는 이유는 사유의 결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뇌구조가 원래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이며 상대의 반응을 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사유한다. 이때 댓구 쳐주는 상대가 없으면 곤란해진다. 일본 만담과 같다. 보케는 개그를 하고 츳코미가 받쳐준다.

 

보케가 김병만이면 츳코미는 류담이다. 이때 츳코미의 역할이 중요하며 츳코미가 적절하게 말대꾸를 해주지 않으면 보케는 관객을 웃기지 못한다. 인간의 뇌구조 자체가 이렇게 되어 있다.

 

이는 정치판도 비슷하다.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가며 보케와 츳코미의 역할을 한다. 보케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츳코미는 이를 꼬집는다. 대개 여당이 보케면 야당이 츳코미가 된다.

 

정치는 자살골 넣기 시합이 된다. 야당 입장에 있는게 일단 유리하다. 이번 총선은 야당이 너무 일찍 뜨는 바람에 여야가 바뀐셈이 되어 반격포지션에 선 박근혜가 이득을 보았다.

 

나꼼수가 보케를 맡아 헛소리 하고 박근혜가 허점을 찌르는 츳코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이겨서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박근혜가 보케를 해야 한다. 일단 불리해졌다.

 

존재론과 인식론은 필자가 지은 구조론의 용어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자 기준이다. 모든 인간의 오류는 여기서 헷갈리는 거다. 기준이 둘이므로 이중기준의 오류에 걸린다.

 

근대 과학의 출발점은 인과율이다. 인과는 사건을 구성한다. 사건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를 두 개별적 사건이 아닌, 한 가지 사건의 기승전결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며 존재론이다.

 

사건의 원인측 위주로 보는 것이 존재론이요, 결과측 위주로 보는 것이 인식론이다. 인식론은 결과론이다. 인간은 원래 결과를 보고 단서를 얻어 거기에 추론을 더하여 인식을 조직한다.

 

소실점은 눈으로 보면 보이지만 지난 5천년간 동양인 중에서 소실점을 본 사람은 없다. 소실점을 못 보듯이 보여줘도 못 본다. 인간의 뇌와 언어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누가 츳코미를 해주는 상황에서만, 누군가가 말대꾸를 해주는 상황에서만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 상대가 없을 때는 자신이 츳코미가 된다. 즉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이다.

 

시행착오 없이 처음부터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잘 해내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과감하게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이 오류를 시정하여 바른 판단을 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원초적인 한계다.

 

인간의 뇌와 언어와 문법이 원초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작용과 시행착오을 통해서만 바른 판단을 하게 되어 있다. 깨달음이 아니고는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궁수가 활을 쏜다. 화살이 과녁에 맞는다. 두 사건이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하나의 사건임을 인식하기다. 그러나 사람이 사건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화살이 과녁에 맞은 다음이다.

 

궁수가 쏘는 장면을 못 본다. 봐도 그게 과녁에 맞은 화살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궁수따로 과녁따로가 된다. 여기서 관점의 이동이 일어나며 그 때문에 상대성과 역설의 혼란에 빠진다.

 

문제는 기준이다. 하나의 기준에 맞춰 풀어야 한다. 원인에 기준을 맞추는 것이 존재론이고, 결과에 기준을 맞추는 것이 인식론이다. 훈련하면 모든 사건의 소실점, 센터, 기준점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건 우리가 항상 결과 위주로 사물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을 인식하기다. 민간인 사찰만 해도 사건의 원인은 모른다. 누가 지시했지? 명박이? 상득이? 영준이?

 

그런데 결과는 안다.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이다. 결과를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에러를 낳는다. 에너지의 결따라 원인측에 기준을 세워야 한다.

 

문제는 원인을 모르므로 원인에 기준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김용민과 김구라의 막말문제만 해도 결과만 판단되고 원인은 모른다. 8년전 인터넷 성인방송이 어떤 건지 그 배경을 모르는 거다.

 

이때의 인간의 방법은 경험을 원용하는 것이다. 경험있는 베테랑들은 통밥으로 때려잡는다. 보나마나 원인은 명박하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을 맞닥들인다면?

 

이 경우 인간의 거의 백 퍼센트 시행착오에 빠진다. 특히 정치판에는 항상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과거의 재현으로 착각한다. 새로운 현상을 과거 경험으로 해석하므로 오류가 일어난다.

 

구조론의 방법은 그 원인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모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세부적인 오류는 있으나 큰 틀에서는 정확하다. 계에 걸린 에너지가 강할수록 정확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론으로 사유하며 그것이 오류이므로 이를 폐기하고 존재론으로 사유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식론은 귀납이고 존재론은 연역이다. 귀납법을 버리고 연역법을 취해야 한다.

 

중요한건 무지의 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나의 사건을 둘로 나누어 본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본다. 원래 그렇다. 작용과 반작용에서 반작용만 본다.

 

상부구조는 은폐되고 하부구조 위주로 본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못 보고 감기환자의 이마에 끓는 열은 본다. 배후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지 못한다. 인식론의 병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하든 일단 스톱시키고 자신이 잘못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강용석 사건이 대표적이다. 강용석 입장에서는 의심이 들겠지만 일단스톱-다시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존재론의 문제는 문장이 길어진다는 데 있다. 존재론은 에너지의 결따라 가는 것인데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를 일일이 지정해야 하므로 문장이 길어지고 뇌가 꼬인다. 그러므로 편하게 결과만 본다.

 

태양은 뜨지 않는다. 지구가 뜨는 거다. 이것을 정확하게 말하려 할수록 문장이 길어지고 진술이 복잡해지므로 인간은 편의로 인식론을 쓴다. 큰 문제는 없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재자가 되면? 오만한 지식인이 되면? 무오류주의 환상에 빠져 상호작용없이 독단적으로 판단하게 되며 이 경우 백 퍼센트 오판한다. 인간은 강한 상대가 츳코미 해줄때문 정확하게 판단한다.

 

인식론의 문제는 바운더리 지정의 어려움이다. 사건이 정확히 어디서 일어났는지 모르기 때문에 오류에 빠져버린다. 불이 났는데 호롱불이 났는지 라이터불이 났는지 담뱃불이 났는지 모른다.

 

불이 난건 확실하다. 결과는 보이니까. 그러나 전모를 보지 못한다. 보이는 부분만 보는 것이다. 존재론은 바운더리를 먼저 지정하는 것이다. 산불인지 집이 불탄 것인지 담배 피우는 건지 확인한다.

 

다행히 담뱃불이라면 인식론으로 가도 별 문제는 없다. 불행히 산불이라면 인식론의 방법은 재앙이 된다. 바늘을 잃었는데 그냥 찾으면 된다. 결과만 쫓아가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바늘을 찾기 위하여 자석을 가져오고 계산기를 두들기고 나침반으로 방향과 위치를 파악할 필요는 없다. 바운더리를 몰라도 된다. 근데 바늘이 백만 개라면? 별수없이 존재론을 해야 한다. 그게 구조론이다.

 

작은 규모, 소소한 일은 인식론의 방법으로 상대방과 상호작용하며 조금씩 찾아가도 된다. 그러나 우주탐험에 나서는 과학자가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대사를 그르치고 만다. 존재론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0.JPG

 

구조론을 쉽게 풀었습니다.

만약 어렵다고 여겨지면 뒤에서부터 보세요.

 

http://gujoron.com




[레벨:10]하나로

2012.04.20 (17:00:35)

선생님 이야기는 맞다가도 알쏭달쏭 몰랐다가 문득 그렇구나하게되고 아무튼 선생님 글귀에 중독되어가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총선기대가 실망으로 끝난건 너무 아쉽고 사람이 미래를 예견함이 이렇게 어렵구나 합니다.

[레벨:1]블랙스톤

2012.04.20 (20:41:31)

미래를 예견함이라기보다는 미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예견하는게 아닐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8]귀족

2012.04.23 (12:26:40)

마자요ㅠ

구조도 아는거랑 체득한 거랑 다르드라구여

 

머리로만 알면 소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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