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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2497 vote 0 2008.07.01 (00:00:41)

고정관념 깨기

구조론이 중요한 이유는 보통사람의 상식적인 판단이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오판을 저지른다. 오류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그러므로 항상 검증되어야 한다. 바로잡혀야 한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 생각해야 답이 보인다. 당연히 옳을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은 당연히 틀렸다. 반드시 의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판단의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 판단의 전제가 원초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식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인식의 틀이 틀렸다. 눈이 삔 것이 아니라 그 눈이 애초에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충격받아야 한다.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상시적인 오류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검증이 없으면 거의 틀린다.

바꾸어야 한다. 상식의 이름으로 미화된 고정관념과 편견과 타성과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 그 틀은 선형사고의 2분법에서 벗어난 입체적인 모형의 틀이어야 한다.

돼지 불을 까는 요령은 주둥이를 말뚝에 묶는 것이다. 돼지는 앞에서 공격받았으므로 한사코 뒤로 물러나려 한다. 뒤로 뻗댄다. 이때 농부는 뒤에서 불을 까버린다. 앞에서 바람잡고 있다면 타겟은 뒤다. 항상 이런 식이다.

우리는 야바위꾼이 빠른 손놀림으로 행인을 속인다고 여긴다. 천만에! 야바위꾼은 마술사가 쓰는 도구를 쓴다. 장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바위꾼이 장치가 숨어있는 도구를 이용하여 속인다고 안다. 천만에!

야바위는 손동작으로 속이지 않고 장치로도 속이지 않는다. 야바위는 바람잡이를 동원하여 행인에게 속임수의 수법을 넌지시 일러준다. 만약 당신이 어떤 계기로 야바위꾼이 쓰는 수법을 알아냈다고 믿었다면 그게 속은 거다.

어떤 사람이 야바위꾼에게 걸려서 큰 돈을 잃고 울상을 짓고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야바위 패거리의 두목일 때가 많다. 이런 식이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도 속는다. 야바위꾼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은 이토록 허술하다.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은 앞만 보다가 불을 떼이는 미련한 돼지와도 같다. 상식적인 판단이 틀리므로 상식 위에 건설된 시민의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상식적인 판단으로 투표했는데 결과가 이명박이다. 집단의 오판이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집단적 사고의 오류는 늘 있다. 검증되어야 한다. 양떼는 숫자만 많으면 안심한다. 다수가 가는 길은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는 다수가 저지른 잘못을 소수가 수습하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연속이다.

구조를 꿰뚫지 않으면 안 된다. 전모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1 사이클의 전체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뇌 속에 입체적 모형을 세팅해 두어야 한다. 두 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이 아니면 안 된다.

●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부분의 합은 전체와 같다는 판단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숫자 0의 존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0은 포지션이다. 자리다. 자리값이 있다. 포지션의 존재를 감안하면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시골다방의 배달커피가 홀손님보다 더 가격이 싸다. 이유가 있다. 역전다방은 역전 앞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 위에 건설되었다. 자리값이 있다. 배달손님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싸다.

신발을 잊은 채 출근하는 사람은 없다. 신발을 신지 않고는 발이 아파서 출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10층건물을 짓는 사람은 항상 1층부터 짓는다. 10층을 지은 다음 9층을 짓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다.

신발을 잊고 출근할 수 없듯이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지구 중력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포지션의 존재를 잊어먹는다. 자리값을 잊어먹는다. 그래서 0은 뒤늦게 발견되었다.

인간이 땅 속에 산다면 어떨까? 사과 한 개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사과 한 개를 놓아둘 빈 공간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밖으로 빠져주어야 한다. 0의 존재를 망각할 수 없다.

그렇다. 지구상에서는 중력이 포지션 문제를 대거 해결해준다.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포지션의 고마움을 잊어먹는다. 0의 가치를 잊어먹는다. 일상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만 그래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동차의 부품은 약 3만개에 달한다. 자동차 부품 3만여개의 가치는 완성차 한 대와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품들을 모두 모아도 뭔가 하나가 빠졌다. 부품들은 자기 포지션을 가진다. 포지션을 빠뜨렸다.

자동차는 3만개의 부품+3만개의 포지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합이 6만이다. 부품의 합+부품의 위치+부품의 결합순서+부품의 결합방향+부품의 결합에너지라야 비로소 전체가 된다. 비로소 한 대의 자동차가 완성된다.

포지션은 자리다. 자리는 0이다. 0을 포착하지 못하므로 우리의 상식은 틀렸다. 일상적인 판단은 0을 무시한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그 투박함으로 우주에 로켓을 쏘아보낼 수는 없다. 우주로 가려면 정밀해야 한다.

포지션은 우선순위와 접근경로를 지정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굳이 그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신발을 신지 않으면 출근할 수 없기 때문에 포지션을 일러주지 않아도 저절로 요령을 알게 된다.

언어가 다른 한국인과 일본인이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어떨까?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손짓만 해도 ‘먹거리를 나누자’는 의미를 알아듣는다. 궁하면 통하기 때문에 우리는 포지션의 중요성을 망각한다.

그러나 예술은 한가로운 것이다. 예술은 궁하지 않다.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에는 흔히 포지션의 오류가 있다. 김홍도의 씨름도에서 오른쪽 맨 아래 인물은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어 있다. 한가로우면 실수를 저지른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 소프트웨어는 부품의 포지션이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작은 이유는 포지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 채의 완성된 건물은 건축자재들의 합+설계도다. 완공되고 나면 설계도는 버려진다.

0과 같다. 0은 사라졌을까? 과연 설계도는 사라졌을까? 천만에! 완성된 건물 안에 설계도가 숨어 있다. 포지션들은 설계도에서 슬쩍 걸어나와 건물로 자리를 옮겨갔다. 인간이 꿰뚫어 보지 못할 뿐이다. 그곳에 있다.

●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상식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안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리더는 홀로 밖을 경계해야 한다. 변화는 항상 밖에서 온다.

모든 변화는 높은 질서에서≫낮은 질서로 이행한다. 밖이 안보다 더 많은 변수와 물려 있다. 밖이 더 높은 질서다. 사건은 항상 밖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처음에는 밖이 중요하다. 물론 나중에는 안이 중요하게 된다.

알맹이는 껍질에 쌓여 있다. 그 알맹이는 임신의 결과로 존재한다. 임신은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껍데기가 저 들판에서 수 개월 동안 알맹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이미 완수했기 때문이다.

껍데기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중요한 역할을 끝냈기 때문에 임무를 마치고 떠나가는 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비와 바람과 곰팡이와 벌레의 공격으로부터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형식의 전제 없이 알맹이만 빼먹으려 하다가는 실패하게 된다. 형식에 집착해도 물론 안 되지만 형식의 절차는 반드시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상식은 매우 위험하다.

중요한 일일수록 형식이 중요하다. 전쟁에서 형식은 특히 중요하다. 정치에서도 형식은 중요하다. 예술에서도 형식이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지 처음 시도할 때는 형식이 중요하다. 첫 인상이 대세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부터는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형식은 양식으로 대체된다. 형식은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는 복제되고 모방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형식을 멀리하고 실질만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표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방에는 형식이 필요하지 않다.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데는 형식이 필요없다. 그러나 짧은 글을 쓰더라도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창의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반드시 형식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 자전거는 달려야 중심을 잡는다

먼저 중심을 잡고 균형을 잡은 다음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상식이다. 틀렸다. 자전거는 속도를 내야 바로 설 수 있다. 팽이는 돌아야 바로 선다. 배는 빠르게 달려야 파도를 헤쳐 나아갈 수 있다.

헤엄치는 사람은 어떻게든 물을 헤어야 뜬다. 먼저 자세를 잡아 물에 뜬 다음에 물을 헤어 전진하려고 하면 실패한다. 먼저 균형을 잡고난 다음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우리의 당연한 상식은 당연히 틀렸다.

이런 점은 정치에서 잘 관찰된다. 진보냐 보수냐 노선투쟁을 벌여서 먼저 진로를 결정한 다음에 속도를 내려하면 끝내 출발하지 못한다. 평화시위냐 강경투쟁이냐를 결정한 다음에 투쟁하려고 하면 시작도 못해보고 주저앉는다.

방향을 찾은 다음에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가다보면 세가 모이고 그 기세에 의해서 방향은 저절로 찾아진다. 정치에서는 실천이 중요하다. 행동하지 않은 말빨은 사기다. 그리고 그 실천은 반드시 물적 토대에 기반한다.

만약 어떤 정치집단이 노선투쟁에 골몰하고 있다면 물적 토대를 잃었다는 증거다. 좌파들이 노선투쟁에 집착하는 이유는 토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대는 인터넷이다. 토대는 창의다. 토대는 미디어다.

자전거도 없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려고 하니 노선투쟁을 하게 된다. 물도 없는데 헤엄치려고 하니 노선투쟁을 벌이게 된다. 자전거가 토대고 물이 토대다. 이미 자전거를 얻고 물을 확보했다면 길은 저절로 분명해진다.

우리가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고 끝없이 창의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면 대세가 가는 방향은 절로 뚜렷하다. 그러나 사전에 방향을 정해놓고 출발하려고 한다면 백날 논쟁만 하다가 시기를 놓치게 된다.

● 우주는 총체적 인플레이션이다

우리는 무에서 유가 탄생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의 총량은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천만에! 우주의 탄생은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이다.

당연한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정보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늘지도 줄지도 않지만 우주의 총정보량은 순증가한다. 정보는 돌에 화석으로 새겨져 있고 나무에 나이테로 새겨져 있다. 그 정보가 늘었다.

깡통을 누르면 찌그러진다. 속부터 구겨져서 나뭇가지 모양의 주름살이 생긴다. 이때 중심과 주변의 차이가 성립한다. 심과 날이 얻어진다. 정보가 생겨난 것이다. 포지션이 생겨난 것이다. 그 포지션은 증가한다.

태초에 우주는 하나의 둥근 알과 같았다. 어떤 이유로 밖에서 압력이 작용했다. 계의 밀도가 높아졌다. 이때 사방에 미치는 힘은 균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중심이 주변보다 밀도가 높다. 중심으로부터 균열이 시작된다.

지금 우주는 대체로 균일해 졌지만 그것은 정보가 무수히 탄생하여 밀도차를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깡통의 찌그러짐이 중심부의 높은 밀도를 흡수하여 도로 환원시켰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총 정보량이 증가했다.

모든 존재는 점점 늘어난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은 증가한다. 너무 많아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둘로 나눠진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우주전체로는 무언가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자연이 우주탄생의 인플레이션 원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조금의 여유도 없다.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누군가가 그 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빼앗기고 만다.

자연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넉넉하다. 우주는 터무니없이 크다. 공간을 무한대로 낭비하고 있다. 별은 너무나 많다. 외계생명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별들에는 생명이 없다.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물이 너무나 많다. 공기도 매우 많다. 햇볕도 넉넉하다. 태양이 매년 지구에 공급하는 에너지의 극소량만 활용해도 지구인의 살림살이는 넉넉해진다. 우리가 그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식물은 꽃을 넉넉하게 피운다. 겨울이 되면 그 많은 잎새들을 아낌없이 버린다. 버리는 김에 화려한 단풍잔치 벌인다. 하늘은 많은 비를 내리지만 대부분은 그냥 바다로 흘러간다. 터무니없이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자연이 이렇듯 풍요롭고 넉넉한데도 우리의 삶이 팍팍한 이유는 톱 포지션을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상위 포지션은 넉넉하지만 한 단계 포지션이 내려갈 때 마다 그 넉넉함과 같은 비례로 재량권이 좁아진다.

왕에게 1 억이 있다면 귀족에게는 그 절반 혹은 십분의 1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작 백분의 1이 주어질 뿐이며, 평민에게는 다시 귀족이 가진 것의 백분의 1이 주어진다. 노예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톱 포지션을 차지하는 방법은 창의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바다는 무한히 넓다. 창의한다면 그 넓은 인터넷을 모두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려고 하면 그만 각박해지고 만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부족하다는 상식에 익숙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이류국가였기 때문이다. 창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마인드 바꿔야 한다.

자연은 넉넉하다. 창의할 수 있다면 우리도 넉넉해질 수 있다. 경쟁의 방법으로는 절대 넉넉해질 수 없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는 넉넉해질 수 없다. 오직 창의의 방법으로만이 우리는 자연의 본래와 닮을 수 있다.   

● 양질전환은 없다

양이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질적인 비약을 이룬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널리 퍼져 있으나 틀린 상식이다. 닫힌계 안에서 양은 질로 전환되지 않는다. 바다에 물을 아무리 많이 모아두어도 질의 변화는 없다.

양적변화가 질적변화를 촉발한다는 착각은 닫힌계 개념의 부재로 인한 오류다. 변화는 일정한 범위의 닫힌계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계 밖에서 촉발되어 계 안으로 진행된디. 그 영역 안에서 양은 질로 비약하지 않는다.

양질전화의 예로 알려진 사건들은 한 부분에서 이미 일어난 질적 변화가 계 전체에 파급되는 과정이다. 질은 공명된다. 복제된다. 전파된다. 닮아간다. 그 과정은 양질전환처럼 보이지만 착각에 불과하다.  

지구상에 사람이 둘 뿐이었던 에덴동산에서는 글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래야 뻔하다. 주로 먹고 싸는 일이었다. 언어 없이도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인구가 증가한다. 인구가 증가할수록 소통은 어려워진다. 언어와 문자가 창안된다. 이때 인구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 문명의 질적인 비약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간 내부에 잠재한 역량이 촉발되어 드러났을 뿐이다.

소떼는 아무리 늘어나도 소떼고 쥐때는 아무리 늘어나도 쥐떼다. 질적인 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질적인 비약을 이루고 있다. 이는 특별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언어와 문자의 가능성이 있었다.

질은 사전에 담보되어 있었다. 그 질의 파급을 촉발시킬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을 뿐이다. 인구증가는 그 방아쇠가 당겨질 확률을 높여준다.  타이밍이 문제였을 뿐 그 확률 또한 사전에 예비되어 있었다.

문명의 진보를 위해서는 양적 증가가 아니라 질적 비약이 필요하다. 그 질의 변화는 확률에 의해서 얻어지며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성 뿐이다. 다양성은 계에 동시에 물려있는 변수의 수다.

하나의 구조체 안에서 중심의 심이 많은 날개를 가질 때 질의 변화는 작동한다. 질의 비약은 창의에서 얻어지고 창의는 다양성에서 얻어지고 다양성은 질서의 자궁이라 할 무질서에서 얻어진다.

노력하면 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포지션의 조합이 잘못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얻어지지 않는다. 천재는 결코 99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99개 촉수의 이상적인 조합에서 얻어진다.

천재는 포지션과 타이밍에서 얻어진다. 톱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무한히 창의할 수 있다. 그것은 신대륙을 얻은 절대군주가 그 신대륙에 국가를 건설하며 무한히 창의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독재자가 흔히 그러하듯이 온갖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다. 반면 가장 낮은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소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조금의 소득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포지션은 다섯이며 한 단계 내려갈 때 마다 1/5씩 몫이 줄어든다. 일의 1 사이클이 진행되는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 중에서 가장 낮은 다섯째 출력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디자인을 개선하여 1을 얻을 수 있다.

이때 더 높은 네번째 연산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효능을 개선하여 5를 차지할 수 있다. 포지션이 한 단계 상승할 때 마다 몫이 5배 증가한다. 세번째 제어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성능을 개선시켜 25를 얻을 수 있다.

두번째 저장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기능을 발명하여 125를 얻을 수 있고 가장 높은 포지션이라 할 입력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은 소재를 개발하여 625를 얻을 수 있다. 소재≫기능≫성능≫효능≫디자인 순이다.

MS의 빌 게이츠가 톱 포지션을 차지한 사람이다. 그는 소재를 개발했다. 소스를 쥐고 있다. 교류전기를 발견한 테슬라나 플라스틱으로 전기용품을 개발한 마쓰시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적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무한에 가깝게 얻는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나 다음, 구글은 톱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그저먹기로 성공하고 있다. 물론 그 포지션을 차지하는 과정에서는 노력이 따랐겠지만 한 번 선점한 다음에는 공짜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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