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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817 vote 0 2011.05.11 (23:02:23)

 

창조론과 진화론

 

목수가 목수인 이유는 규구(規矩)라는 연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포수가 포수인 이유는 총을 가졌기 때문이고, 무사가 무사인 이유는 칼을 가졌기 때문이다. 연장이 있어야 그 방면의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필자의 정치칼럼이 다른 논객들의 글과 차별화 되는 점 역시 툴을 쓴다는 거다. 말하자면 연장을 쓰는 것이다. 왜 연장을 써야 하는가? 역설 때문이다. 필자의 글은 대부분 역설을 중심으로 논리가 전개된다.

 

역설은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노무현 대통령 때의 탄핵역풍이다. 이렇듯 정치에 역설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아무 때나 역설이 나타나는게 아니라는 데 있다.

 

이번 보선에도 역풍은 세게 불었다. 아마추어 엄기영의 거듭된 무리수는 확실히 강원도에서 역풍을 낳았고, 강원도와 수도권의 역풍은 한나라당 전패위기론을 조성하여 김해에서 역역풍을 낳았다. 상당히 복잡하다.

 

역설이 없다면 논객은 필요없다. 정치판 돌아가는 것이 일반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그것을 해설해 줄 논객이 필요한 것이다. 논객이 정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서 정치판을 안정시킨다.

 

역대 선거는 정치인이 까불다가 국민에게 뒤통수 맞은 역사다. 왜 정치인은 늘 국민에게 뒤통수를 맞고 반성과 사과를 하면서 또 뒤통수 맞기를 되풀이 하는가?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역설을 짚을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한 거다.

 

역설이 나타나는 지점과 타이밍이 있다. 전문가만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무게중심이 높으면 역설이 작동한다. 오뚜기는 유도기술로도 이길 수 없다. 상대가 오뚜기면 업어치기 기술이 먹히지 않는다.

 

오뚜기는 무게중심이 지구와 가깝기 때문이다. 역설은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역설의 메커니즘이 있다. 그러므로 훈련된 사람만이 역설의 연장을 다룰 수 있다.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다. 연장이 있어야 한다. 과학자의 연장은 인과율이다. 오늘날 과학의 병폐는 인과율 그 자체에 철저하지 않았다는 거다. 인과율이야말로 근대과학의 기반이라 하겠다. 그런데 인과율을 모른다.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고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정도는 안다. 그러나 대부분 시간적 순서에서 나타나는 원인과 결과를 겨우 파악할 뿐, 공간의 전개에서 나타나는 인과법칙은 모른다. 더욱 인과의 의미를 모른다.

 

의하여-출발점-of
통하여-통과점-by
위하여-도착점-for

 

인과는 모듈로 세팅되어 있다는 거다.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나타나는게 아니고, 원인이 있으면 이후에 결과가 나타나는게 아니고 실은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둘은 별개의 두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다.

 

기존의 인과율 개념 - 두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다.

구조론 인과율 해석 - 하나의 사건 안에 원인과 결과 두 포지션이 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늪에 빠진 사람의 머리를 발견했는데, 그 사람의 머리를 건지니 몸통도 따라오더라가 아니고 실은 머리와 몸통이 원래 하나이며, 머리를 발견했을 때 이미 몸통을 발견한 것이다.

 

아침이 지나간 다음에 저녁이 오는게 아니다. 저 높은 하늘 100만 키로 위에서 보면 지구 뒷편의 저녁이 보인다. 아침과 저녁이 한꺼번에 보인다. 아침 다음에 저녁이란건 지구에 납작하게 붙은 개미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아침과 저녁의 구분은 개미사정이고 개미입장이고 개미포지션이며, 지구의 진리가 아니라 개미만의 특수한 문제인 것이다. 봄 다음에 여름이 온다는건 한국인 생각이고 남반구엔 지금이 가을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동시에 존재한다. 결론은 포지션이다. 인과법칙이란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포지션 관계에 불과한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한 덩어리가 되어 동시에 존재하며 관측자의 위치가 원인과 결과를 결정할 뿐이다.

 

인과법칙은 시간상의 선후관계에도 적용되지만 사건이 전체에서 부분으로 범위가 좁혀지면서 작동한다. 위 of, by, for는 원인과 결과 둘로 세팅된 인과율을 더 세밀하게 파헤쳐 3단계로 해명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과법칙은 질, 입자, 힘, 운동, 량 5단계로 전개하고 다시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나눠지므로 상당히 복잡하다. 이러한 구조를 알아야 한다. 구조론이라는 연장으로 훈련된 사람만이 인과법칙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

 

의사가 의사인 것은 청진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연장이 있어야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내막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과학계는 여전히 쇠도끼 놔두고 돌도끼 쓰고 있다. 인과율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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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명한 과학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진화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진화는 매우 쉽다. 진화가 모듈 단위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1년 사계절을 겪어보지 않은 하룻강아지라면 과연 봄이 지나고 다음에 여름이 오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루살이라면 과연 오늘 다음에 내일이 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100만킬로 상공에서 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이 동시에 공존함을 알 수 있다. 북반구는 봄이고 남반구는 가을임을 알 수 있다. 북극은 일년내내 겨울이고 적도는 일년내내 여름임을 알 수 있다.

 

과연 원인 다음에 결과가 올까? <-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100만 킬로 상공에서 보면 원인과 결과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더 높은 공중에서 보면 1억년 전과 1억년 후가 동시에 공존한다. 모듈로 보면 보인다.

 

열린 눈으로 보면 사건의 기승전결은 동시에 공존한다. 원인과 결과가 공존한다. 포지션을 바꾸고 보면 전모가 보인다. 포지션을 바꾸어 사건의 전모를 보는 것, 이것이 깨달음이다. 인과법칙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인류사 1만년간 생태계에서 유의미한 진화의 모습은 관측되지 않았다. 물론 이 순간에도 진화는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고등동물 중에서 자연적인 진화에 의해 신종이 새로 출현한 예는 없다.

 

지구역사 50억년 중 결정적인 진화는 5억년 사이에 일어났고 그 중에도 실제로 대진화가 일어난 시기는 극히 짧다. 실제로는 1억년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시간에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이 탄생한 것이다.

 

1천만년 이하일 수도고 백만년 이하일 수도 있다. 왜 생명이 진화하는 데 수억년 혹은 수십억년의 시간이 걸렸는가? 진화의 가장 큰 방해자는 진화 그 자체다. 지구는 좁다. 그 중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뭍은 더욱 좁다.

 

우세한 종이 서식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전적으로 불안정한 신종이 정착할 요람은 없다시피 하다. 기존에 강성한 생물들이 갓난아기와 같은 신종의 득세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처음 지구에 출현한 생물은 급속도로 번식하며 생명체에 유해한 가스를 내뿜어서 생물이 스스로 사멸하게 만들었다. 생명의 파괴자는 산소다. 최초의 생물은 파괴자인 산소를 생산하여 생명이 살 수 없도록 지구를 오염시켰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이러한 파괴야말로 진화의 기폭제가 된다. 진화한다는 것은 복잡해진다는 것이며 기존의 구조가 파괴될 때 그러한 복잡성은 얻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밸런스가 있다. 진화의 속도조절장치가 있다.

 

만약 지구가 무한히 크다면? 갓난아기의 요람과도 같이 막 탄생한 신종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끝없이 제공된다면? 아무런 방해자도 없다면? 진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진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박테리아에서 현생인류까지 진화하는데 몇 년이 걸릴까? 이상적인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1백만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 고장난 시계가 1초만에 태엽이 풀려버리듯이 와장창 순식간에 진화할 수 있다.

 

구조로 보아야 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상부구조는 유전자이고 하부구조는 눈에 보이는 동식물의 조직과 기관이다. 지금까지 진화에 대한 연구는 하부구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부구조 관찰은 of-by-for 중에서 by-for를 관찰했을 뿐 of를 해명하지 못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실제로는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한 생명체가 요람에서 나와 적응해 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신종의 출현은 변이에 의해 일어나며 생존경쟁-적자생존은 출현한 신종이 생태계 환경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되어 가는 정착과정에 대한 설명에 불과하다. 즉 by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진화는 변이를 통하여 일어날 뿐 생존경쟁에 의하여 일어나지 않는다. 진화를 유발하는 변이가 일어나는 원인은 아직 누구에 의해서도 엄밀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이는 만유인력 이전의 지동설과 같다.

 

만유인력 없는 지동설은 불완전하다. 별자리 관찰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은 입증되지만 왜 도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지구는 태양을 도는가? 갈릴레이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틀렸다고 말하면 안 된다. 의하여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다윈 이래의 돌연변이설은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나온 진화에 관한 모든 학설은 불완전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뉴턴에 의해 만유인력이 밝혀져서 지동설은 완전해 졌지만 불완전해도 지동설은 확실히 맞는 거다.

 

진화를 일으키는 힘은 백퍼센트 유전자에서 나온다. 환경이 영향을 미치지만 by에 불과하다. 감기를 일으키는 힘은 백퍼센트 인플루엔자에서 나온다. 날씨가 영향을 미치지만 날씨는 by에 불과하다.

 

중요한 점은 구조론의 생장구조이론에 따르면 대진화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변이는 굉장히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3D 애니메이션이 2D 애니메이션보다 더 비용이 적게 들듯이 실은 어려운 진화가 더 쉽게 일어난다.

 

진화에는 확실히 예정조화설처럼 누군가 각본을 짠듯한 점이 있다. 예컨대 사자처럼 강한 동물은 자손을 적게 낳고 토끼처럼 약한 동물은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다. 이들은 생태계를 위하여 겸손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

 

생존경쟁을 벌여서 치열하게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이좋게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물소는 그 육중한 몸으로 숫사자를 밟아버릴 수 있는데 절대 밟지 않는다. 심지어 밟을까봐 애써 발을 피한다.

 

종교인들에 의해 신의 특별한 조치로 받아들여지는 점은 자연에 무수히 있다. 그러나 구조론으로 보면 이는 쉽다. 진화가 모듈 단위로 일어나므로 날개가 없는 악어가 갑자기 날개가 생겨서 날아다니는 것은 쉽다.

 

그것은 애초에 진화가 생명체가 가진 환경을 읽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둔중한 악어가 참새처럼 잘 날게 되려면 굉장한 노력을 거쳐야 하지만 공중이라는 환경을 읽는다면 금방 된다.

 

카멜레온은 주변의 색깔을 읽는다. 환경을 읽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기관 역시 환경을 읽는다. 그런데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보면 인체의 내부와 외부에는 뚜렷한 구분이 없다. 어디까지 외부라는 선이 없다.

 

개미처럼 바닥에 붙어 있으므로 봄 다음에 여름이 온다고 믿는 것이다. 100만 킬로 공중에서 보면 봄과 가을은 한꺼번에 공존한다. 열린 시야로 보면 인체의 안과 밖은 하나의 계로 통일되어 공존한다.

 

다시 말해서 뚱뚱하고 둔한 악어가 민첩한 참새로 진화하려면 아주 복잡한 단계를 수천만번 거쳐야 하므로 1억년쯤 걸릴것 같지만 공중이라는 환경을 읽는다면 그 환경에 맞추어 밸런스만 맞추면 되므로 금방 진화한다.

 

날다람쥐는 하늘을 날 수 있다. 비막이 있는 것이다. 날지 못하는 것이 날게 되려면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밸런스 개념으로 보면 금방 가능하다. 인간은 육상에서 밸런스를 맞추고 날다람쥐는 허공에서 밸런스를 맞춘다.

 

밸런스 개념으로 보면 진화의 단계가 단축되는 이유는 밸런스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측을 동시에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밸런스가 5겹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즉 5*5*5*5*5의 3125요소가 동시에 자리를 잡는다.

 

어떤 진화를 유발하는데 3125개의 조건이 우연히 일제히 맞아야 한다면 수천억번의 주사위를 던져야 할 것이다. 아니 수조번 주사위를 던진다 해도 3125개의 부품이 기적처럼 동시에 들어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라. 3125개 부품이 일제히 맞아버린다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는가 말이다. 아무리 기회를 주고 변이를 일으키고 유전자 조작을 한다고 해도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구조론의 밸런스 개념으로 보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에 종속되므로 단 한번의 우연으로 3125개의 부품이 들어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뚱뚱한 악어가 공중이라는 환경을 읽는 즉 바로 새로 진화한다.

 

공중은 가벼워야 하므로 새는 뼈 속이 빈다. 이때 비늘 속도 빈다. 비늘 속이 비어버린 것이 바로 깃털이다. 파충류의 비늘이 새의 깃털이 되려면 무수한 변이를 일으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뼈 속이 빌때 이미 깃털이 생겼다.

 

육상의 포유류 동물이 바다로 들어가서 고래가 되려면 손발이 퇴화해야 한다. 퇴화하려면 매우 많은 변이가 일어나야 하지만 물 속에서의 밸런스라는 하나의 신호만 입력하면 순식간에 일어난다.

 

왜냐하면 고래는 손발이 퇴화되고 없는게 아니라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손발이 퇴화되어 사라졌다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왜 100만킬로 공중에서 보지 못하는가. 인간은 꼬리가 없어진게 아니라 숨어있다.

 

올챙이는 꼬리가 있는데 개구리는 꼬리가 없고 파충류는 다시 꼬리가 있고 원숭이도 있는데 인간은 없다. 있다가 없다가 한 것이 아니라 다 꼬리가 있다. 단지 발현과정에서 호르몬 등의 작용으로 감추어지는 것이다.

 

개구리도 꼬리가 있고 인간도 꼬리가 있다. 유전자 상에는 있다. 단지 감추어진 채로 있다. 고래는 팔다리가 있다. 개구리에서 파충류로 진화하면서 없던 꼬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꼬리를 드러낸 것이다.

 

어류에서 개구리로 가면서 꼬리를 감추는 기능을 해제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모듈 개념으로 보면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다. 즉 외형적으로 매우 큰 것이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공작 수컷의 꼬리는 화려하다. 저렇게 진화하려면 무수히 변이가 일어나야 할듯 하지만 실제로는 간단하다. 암컷의 꼬리도 만만치 않다. 사람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있듯이 암컷 공작도 만만찮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

 

암컷이 화려한 수컷 꼬리깃을 선택했다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착각에 불과하다. 또한 100만킬로 공중에서 보라. 같은 사슴이라도 노루나 고라니는 뿔이 짧거나 없고 순록은 매우 뿔이 크다.

 

외형적인 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 여자가 예쁘다고 믿지만 과연 그럴까? 천만에. 암소와 황소의 차이는 인간 여자와 남자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확실히 암소는 황소보다 예쁘다.

 

황소가 예쁜 암소를 선택했을까? 천만에! 황소는 발정기에 냄새만 맡으면 쫓아다닌다. 분명히 말하면 암컷 오리도 예쁘고 암컷 원앙도 예쁘다. 수컷만 예쁘다는 생각은 인간의 주관이 작용한 거다.

 

여자가 예쁘듯이 암탉도 예쁘다. 필자는 중학생때 이런 점을 관찰하고 기존의 진화론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염소 수컷과 암컷의 차이는 사람 남자와 여자의 차이와 정확히 같다.

 

이런 차이는 성선택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호르몬에 의해 일어난 것일 뿐이다. 인간이 못생긴 이유는 그저 격리되어 근친혼을 했기 때문이고 인간이 아름다워진 이유는 그저 혼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성선택도 있다. 그러나 종을 안정화 시키는 장치일 뿐 진화시키지는 않는다. 성선택에 의해 근친혼을 막고 열성인자의 유전을 막는 정도이다. 이는 진화가 아니라 진화가 생존에 불리한데도 살아남게 하는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진화한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과 같다. 나가수가 김건모가 사고치고, 이소라가 실언하고, 김제동이 헛발질하고, 김영희 PD가 짤리는 등의 곤욕을 치른 것은 신종을 출현시켰기 때문이다.

 

신종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므로 상당기간의 적응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 다윈의 적자선택, 성선택이 작용할 뿐 신종의 출현 그 자체는 다윈이 설명하지 못한다. 진화를 일으키는 결정적 변이가 왜 일어나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구조론에 따르면 생명은 생장구조이론에 따라 환경을 읽는 능력을 가지며 환경과의 밸런스를 추구하여 단번에 비약적으로 진화를 일으킨다. 고래는 수중환경을 읽어서 곧바로 바다환경에 적응했다.

 

고래의 조상이 바닷가에서 물을 첨벙거리며 살다가 조금씩 바다로 들어갔다는 생각은 얼빠진 소리에 불과하다. 파충류도 바다와 공중환경에 적응한 파충류가 있듯이 처음 포유류가 등장할 때 바다환경과 공중환경을 예비하고 있었다.

 

박쥐나 날다람쥐는 공중환경을 읽고 밸런스를 맞추었고 고래나 물개는 물속환경을 읽고 밸런스를 맞춘 것이며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는 바보짓은 일어나지 않았다. 얕은 물가에서 얼쩡대기는 포유류에게 적합하지 않다.

 

인간은 처음부터 직립했다. 나무에서 내려올 때 육상환경을 읽었고 거기에 밸런스를 맞출 때 등은 곧게 퍼졌고 두 다리는 튼튼해졌고 나무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팔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인간이 오늘날의 모습을 가진 것은 단지 중력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나무에 의존할 때는 중력에 대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며 중력에 대응하자 거기에 연동되어 여러 유전자가 일제히 발현한 것이다.

 

◎ 기존의 진화론자 생각 - 날다람쥐는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조금씩 비막이 넓어졌다.


◎ 구조론의 관점 - 날다람쥐는 허공에서 밸런스를 맞추려다가 바로 넓은 비막이 생겨났다.

 

요즘 학계에서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졌으므로, 조만간 진화의 백퍼센트는 유전자에 의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입증될 것이다. 유전자와 환경이 작용반작용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유전자는 환경을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입증된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양을 쫓는 모험

2011.05.12 (00:28:43)

인간이 고릴라처럼 꾸부정하게 걸으면, 단박에 허리디스크 걸린다. 요추 사이에 수핵이 터져버리는 것.

인간은 처음부터 직립하지 않으면 존재자체가 어렵다. 

[레벨:15]오세

2011.05.12 (03:16:10)

전송됨 : 트위터

생명은 신의 반영이구려.

작은 유전자 하나에 신의 청사진이 담겨있구려.

하늘로 때리면 날개가 생기고, 물로 때리면 물갈퀴가 생기고

중력으로 때리면 직립보행한답시고 인간이 되고.

 

구조론을 공부하다보니 유신론자가 되는구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1.05.12 (10:45:59)

그런 점이 있소.

기독교의 창조론자는

'자연적 진화가 확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전제하에 진화론을 부정하지만

실제로 자연적인 진화는 매우 쉽소.

구조로 보면 아주 간단하오.

그저 디폴트값 몇 개만 슬쩍 바꿔주면

겉보기에 엄청난 진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도록 세팅되어 있소.

그러나 자연이 굉장히 고도화 된 고급툴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오.

즉 자연은 2D가 아니라 3D가 아니라

그 이상의 4D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오.

무슨 말인가 하면 구조의 대칭성에 따라

고급툴을 사용하여 쉽게 진화를 일으키는 대신

고급툴 자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오.

말하자면 생명은

우연히 부속품이 맞아져서 자전거가 조립되었는데

굉장히 뛰어난 자전거였다가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자전가가 만들어질 수 있지? 그러므로 창조론이 맞다.)

우연히 부속품이 맞아져서 자동차가 조립되었는데

쉽게 만들 수 있는 허술한 자동차였다 이렇게 되오.

(자동차이기는 하지만 만들기는 쉽다. 그러므로 진화론이 맞다.)

그런데 문제는 자동차의 운전이 더 어렵다는 점이오.

아니 운전하기는 쉽소.

그냥 시동걸고 액셀레이터 밟으면 되니까.

자전거가 더 운전하기 어렵소.

자전거 배우기는 몸으로 익혀야 하므로 쉽지 않으니까.

몸으로는 자동차가 쉬운데 머리로는 자동차가 어렵소.

운전석 계기판에 좌우차로에 전방의 신호등까지 봐야하니까.

자전거는 몸이 적응하기 어려운 대신 한번 배워두면 평생가니까 쉽소.

하여간 자연은 일반의 인식과 달리 2D가 아니라 3D가 아니라 4D 프로그램이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의 단계를 더 거치고 있는 것이오.

설계비용은 매우 많이 들고 대신 제작비용은 훨씬 적게 드는 도구를 이용한 것이오. 

 

[레벨:2]wson

2011.05.15 (22:47:18)

제법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책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http://www.yes24.com/24/goods/1405744

 

번역이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서 자체가 대중적 글쓰기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던 책이었기 때문에 내용 이해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눈먼 시계공(Blind Watchmaker, 진화의 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제목 그대로,

진화 현상을 보면서 굳이 '신'을 떠올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별다르게 특별한 논리들을 다른 곳에서 따로 가져올 필요도 전혀 없이, 사실상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진화 논리들만으로도 충분히...

[레벨:2]wson

2011.05.13 (15:45:33)

어떻게 얘기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생뚱맞지만 아예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기 있는 정말 많은 얘기들에 대해 하나 하나 맞춰 보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 될 것 같아서, 감당하기가 벅찹니다.

전에 김동렬님에게서 들은 얘기와 같이, 여기는 구조론 사이트이지 진화학 토의 장소는 아닌 것도 같고요.

김동렬님도 결국 진화 그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있어 보이지 않으니까요.

 

사실 제가 꺼내려는 얘기는 제가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과학사 강의를 들을 때 선생에게 흘려들었던 얘기일 뿐이고, 그리고 과학사 전공하는 사람들에게서 몇 차례 옮겨 들었던 얘기일 뿐, 제가 근거를 적시한 문헌을 찾아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냥 편하게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여기 사이트 분위기에 맞게.

 

2차 대전이 끝나고 구소련 내부 정세가 좀 안정되자, 구소련의 기초과학 분야도 나름대로 성장(비교적 급속한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물리학 분야에서. 공정한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자는 기초과학 분야에 관한한 구소련의 학문 수준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소련의 기초과학 분야들 중에서 생물학 분야만큼는 꽝입니다.

그냥 자극적인 한 예로, 2차대전 후 구소련에서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에서는 가끔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왔지만, 생리의학상 분야에서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들었던 수많은 생물학자들 중에서 주목할만한 구소련 과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의미있는 생물학적 연구에 대한 얘기도 단 한 건도 듣지 못했고요. (물론 제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구소련에서 생물학이 망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멘델 유전학이 구소련에서 인기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더군요. 그냥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한동안은 자본주의 반동 이론으로 취급되었었답니다.

......유전학이 없는 생물학이라니! 상상하기도 힘들죠. 하지만 구소련의 생물학이 그랬다는군요.

 

그렇게 된 이유를 엥겔스의 '자연철학'에서 찾더군요.

맑스의 친구였던 엥겔스는 '변화'의 생물학인 다윈 진화론을 옹호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마치 '변함 없음'의 생물학처럼 보였던 멘델 유전학을 '비과학적 접근'으로 간주했다네요!

(사실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한 때는 다윈 진화론과 멘델 유전학을 서로 상반되는 주장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과학자가 아닌 진화론자들이요!)

 

도그마로 변한 유물론이 구소련의 생물학을 절음발이로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사회주의화되기 전의 러시아에는 이미 파블로프와 같은 뛰어난 생물학 그룹들이 성과들을 쌓고 있었는데도 말예요.

 

그런 유물론 도그마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한 예가 아마도 미국에서 활동한 도브잔스키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윈과 도킨슨 사이에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진화학자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는 도브잔스키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가 반드시 구소련의 유전학 천시 분위기만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구소련 출신 생물학자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학자인) 도브잔스키가 이룬 업적이라는 것이, 결국 바로 그 멘델유전학으로 진화의 실체적 과정을 최초로 실증해보인 것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만약 그가 구소련에 남았을 경우에 그와 같은 업적을 이뤘을 가능성은 희박했었겠지요?

 

종교적인 이유이든, 정치적인 이유이든, 어떤 철학적인 이유이든,

결국 '비과학의 도그마'들이 무엇이 더 '옳은' 과학인지를 판단하게 되면 벌어지는 '희극(?)'들의 한 예이네요.

 

그리고 이런 예들은 결국 현대 과학이 그 '과학성'이란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그 '과학적 연구 과정'에 많은 비중을 둘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런 '과정'들은 빼고 표면적인 '연구 결과'들만으로 엮어놓은 것을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적잖이 누더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요.

인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생물체의 유전체(유전자들이 위치한 실체인 genome 등의 복제성 유전물질의 총합)가 사실상 누더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하지만 바로 그 누더기 유전체들로 그렇게 다양한 생명현상들을 성공적으로 구축해오고 있듯이,

한 때의 시간을 잘라 들여다보면 누더기가 보일 수 밖에 없는 그 과학 자체도 결국 살아있는 생명체들마냥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세계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불완전한 과학의 실체입니다.

하지만 자체의 '과학성'을 다른 '비과학 도그마'들에 빼앗기게되었을 때 한번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던 경험들 또한 과학의 일부 어두운 역사들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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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개인적 감상이지만,

김동렬님의 정치, 사회 평론이 뛰어난 감각을 보이는 것은 그 분야가 그래도 좀 더 김동렬님에게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덜 익숙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건축에는 당연히 우수한 설계도가 먼저 필요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아무래도 익숙한 재료(잘 이해할 수 있는 분야)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김동렬님에게 진화학 분야도, 어느 정도만큼이라도 좀 손에 익은 재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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