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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914 vote 0 2014.07.18 (12:02:52)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생님께 질문할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질문은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궁금한걸 질문하는게 아니다. 궁금한걸 질문하면 질문하다가 스스로 답을 내게 된다.


    진짜 질문은 툴을 가지고 한다. 핵심역량이다. 질문의 툴은 사무라이가 칼을 챙기듯이, 그리스 병사가 스스로 무장하듯이, 자기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흔히 흉악한 양비론이 질문의 툴로 쓰인다.


    흑백논리를 훈련하여 상대를 단 칼에 베겠다는 흑심을 가지고 정면으로 찔러야 한다. 그냥 궁금한건 검색해보면 다 나온다. 질문할 필요도 없다. 자객의 마음으로 상대를 찌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흑백구도로 세팅하여 코너로 몰고간다. 그래야 상호작용이 높아지고 진실한 이면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이걸 초등학교때부터 교육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지만 이스라엘은 학생들이 교수를 잡아먹을 듯이 비열한 질문을 던져 코너로 몬다고 한다. 말하자면 병사들의 소대장 길들이기와 같다. 의도적으로 난처한 질문을 활처럼 쏘아댄다.


    의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깊은 부분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공격에 방어하는 스킬도 늘어나게 된다. 나는 나름대로 ‘조지는’ 한 칼을 만들어놓고 있다. 누구든 걸리면 조진다.


    대부분 고정된 툴이 있는데, 맛의 달인이라면 음식 자체의 맛을 평가하는 관점과 분위기, 환경, 트렌드와의 상호작용을 평가하는 관점이 있다. 예컨대 이 음식은 몸에 좋고 맛도 좋다는 식이다.


    이걸 박살내는 방법은 지금이 7월이고 아침인데 그 음식이 상황에 맞느냐는 거다. 그런데 이런 바깥 환경은 늘 변하므로 상대는 늘 깨질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의 입자를 나의 질로 치는 것이다.


    맛의 달인도 이 논리로 수십권 연재중이다. 맛만 좋으면 안 되고, 계절, 장소, 분위기, 이념, 진정성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 스킬을 터득하면 누구든 조질 수 있다. 아주 조지는 것이 질문이다.


    상대를 조질 의도가 없으므로 질문이 안 되는 거다. 궁금한걸 질문한다고? 검색하면 되잖아! 질문 필요없다. 조져야 한다. 누구든 자기만의 칼을 갈아놓고 가슴에 품어야 한다. 걸리면 죽는다.


 


    어제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페북에서 본 양모님의 글을 인용한다.


   ###


    몇 년 전에 소설가 김훈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난 작가가 되기 전이었다.) 정독도서관에서 주최한 강연 프로그램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연을 보기 위해 모였다. 그는 강연 중 이런 말을 했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일컷는 말이라고 부연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마이크를 전해받아 그에게 이렇게 질문 했다.


    "독자 입장에서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차이가 없으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라고 하셨는데, 마찬가지로 작가 입장에서도 책을 쓰기 전과 후가 차이가 없으면 책을 쓸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작가 님은 작가가 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습니까? 책을 쓰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습니까?"


    김훈 작가는 나의 질문에 자신은 작가가 되기 전과 후, 책을 쓰기 전과 후에 변화가 없으며, 책을 쓰는 이유는 먹고 살려고 쓰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봄이 되면 얼음이 녹고, 꽃이 피어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은 있다고 했다.


   ###


    위에 없지만 양모님은 덧붙여 ‘왜 사느냐?’고 질문했다는데 김훈은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한다. 이건 공격이다. 칼로 찌르는 거다. 당연히 회피기동이 대비되어야 한다.


    왜 사느냐? 주체적으로 삶을 결정한 의사결정의 동기는 무엇이냐는 말이다. 당신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결정한 부분을 묻는 거다. 김훈은 그냥 먹고살라고 했다는데 이건 맞아죽어야 할 개소리다.


    죽은 자가 하는 말이다. 삶은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 화살은 날아가면서 구름과 만나고 바람과 만나고 참새와 만나고 나뭇잎과 만나서 더 많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쏜 자는 따로 있다.


    답은 상부구조에 있다. 무조건 상부구조다. 상부구조는 집단무의식이다. 그것은 진리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고 문명이기도 하고 인류이기도 하고 신이기도하다. 거기서 결정되고 쏘아진 것이다.


    왜 사는가? 왜 화살은 날아가는가? 누가 내 삶을 쏘았는가? 그것은 상부구조에서 결정된 삶의 완전성이다. 그것은 우주의 호흡이다. 원래 천재는 20대에 죽어야 한다. 30살을 살면 창피하다.


    그 경계지점에서 삶을 결정한 것은? 그것은 거대한 에너지다. 내 안의 잠 자는 열정을 불러 일으킨 것은?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까치는 엄지 때문이지만 나는 그 반대이다.


    엄지에게서 멀어지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면 10년간 안 하던 양치질을 해야하는데 무리다. 멀리 떠나서 다시 돌아오는게 아니다.


    멀리 떠나서 엄지를 재발견 하는 것이다. 지구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쏘아진 화살이 날아가는 이유다. 왜 사는냐는 네가 왜 사느냐다. 네가 있는 것이다.


    과연 네가 있을까? 아니다. 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야 진짜 엄지를 볼 수 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살은 끝까지 날아가야 비로소 나가 완성되는 것이다.


    날아가지 않은 화살은 아직 화살이 아니다. 살아가지 않은 삶은 아직 삶이 아니다. 화살은 끝까지 날아가고서야 날아가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삶은 끝까지 살아가고서야 그 삶의 주인을 만들어낸다.


    ‘너는 왜 사느냐?’ 너는 아직 없다. 끝까지 살아졌을 때 비로서 너는 탄탄하게 구축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냥모

2014.07.19 (00:24:01)

페북에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뺐음. 

이것이 그때 김훈과의 질문과 대답에 관한 원문. 

http://changtle.tistory.com/633


"독자입장에서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차이가 없으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작가 입장에서도 책을 쓰기 전과 후가 차이가 없다면 책을 쓸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작가님은 작가가 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습니까? 책을 쓰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차이가 없다면, 질문의 범위를 확장하여 왜 사는가? 라는 질문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훈 작가는 나의 질문에 자신은 작가가 되기 전과 후, 책을 쓰기 전과 후에 변화가 없으며, 책을 쓰는 이유는 먹고 살려고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봄이 되면 얼음이 녹고, 꽃이 피어나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질문에 관하여 이렇게 답 하였다.

 

"왜 사냐는 질문은 의미를 무한 확장한 것이며, 그것은 질문으로서 성립되지가 않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냥모

2014.07.19 (00:28:52)

그당시 그의 대답이 비겁하다고 생각했음. 

글로 밥벌이하는 직업은 많은데, 꼭 소설을 써야 할 이유가 없고, 그것이 먹고살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책임회피. 작가가 글을 잘 써야 하는데, 독자가 잘 읽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작가로서 책임회피. 

그렇다면 왜 사는가?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사발

2014.07.19 (00:46:17)

정독도서관에서 하는 강연에서 냥모님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다가 일격을 당하고 무척 당황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ㅎㅎ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4.07.19 (01:57:04)

김훈, 윤대녕...


윤대녕은 체질이 약골이라 그렇다치더라도, 기자까지해먹고, 알거 다 아는 김훈이가

먹고사니즘 외치고 다니는꼴이란, 공희준의 먹고사니즘이 생각나네...


넘어지고 쓸어져도, 자전거를 주행해야, 자전거를 익히는 법.


묵묵히, 잡고 가는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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