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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8605 vote 0 2012.10.21 (20:48:55)


 

    구조의 복제

 

    같은 공간으로 끝없이 되돌아오는 되돌이표 구조를 가질 때 리얼리즘 문학은 제 빛깔을 낸다. 굳이 리얼리즘을 표방하지 않아도 그 안에 리얼리즘의 요소가 있다. 사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를 다루어야 진짜다.

 

    효시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이다.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다. 파리의 공기는 인간을 들뜨게 한다. 혁명의 열정이 떠도는 뜨거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곳에서는 그렇게 된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주의다.

 

    진실로 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보편’이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공간이다. 그 공간의 복제능력이다. 구조주의는 보편주의다. 보편되면 통하고 통하므로 복제된다. 복제되면 닮는다. 닮으면 똑같다. 그래서 사실주의다.

 

    사실주의를 표방하고 르포기사를 쓴 것은 가짜다. 공간의 구조를 복사해야 진짜다. 인간희극은 70여편의 개별적인 작품이 연결된 장대한 시리즈다. 발자크는 52살 전성기에 죽었는데 그동안 무려 2000명의 인물을 창조했다.

 

    짧은 기간에 18편을 생산한 김기덕 감독의 복제능력을 떠올려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왜? 그것이 보편성의 힘이다. 보편성은 복제되는 성질이다.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을 떠올려도 좋다.

 

    가운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소실점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인물을 무한히 추가할 수 있다. 흔히 예술의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소실점이 없으면 난삽해지고 만다. 질서가 있어야만 오히려 다양성이 보장된다.

 

    발자크는 벽돌을 쌓듯이 캐릭터를 하나씩 쌓아서 커다란 피라미드를 지으려 했다. 그것이 가능했다. 복제하면 된다. 공간의 구조 안에 소실점이 형성되어 있어야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 낳음의 자궁이 그 안에 있다.

 

    무엇인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각별하다. 이야기는 산티아고 노인의 작은 보트를 떠나지 않는다. 끝없는 되돌이표다.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는 각별하다. 이야기는 그의 작은 소행성 B612를 떠나지 않는다.

 

    이상의 날개는 33번지를 떠나지 않는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고리오영감의 3층 하숙집을 떠나지 않는다. 소실점에 잡혀 있다. 시트콤은 거실 가운데의 소파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야기는 결코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떠날 수 없다. 조형적 질서에 의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 안에서 강인함과 허약함을 대비시키고, 이를 다시 상어와 청새치의 대결로 전개시킨다.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되돌이표다.

 

    노인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또 현재와 미래가 만난다. 여전히 산티아고 노인의 보트 안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입체적 구조를 얻는다. 히치코크의 현기증과 같다. 종탑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종탑에서 사건이 종결한다.

 

    인물들은 거듭 같은 공간으로 되돌아오며 과거와 미래가 콤파스의 두 다리처럼 다시 만난다. 수미일관이다. 그 이야기의 완결성이 보편성을 낳는다. 관객은 거기서 사실성을 느낀다. 왜? 현실공간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일반의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는 이야기가 어딘가로 한없이 달려간다. 왕자님과 공주님의 결혼식장으로 달려간다.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그 날개가 한 번 날개짓할때마다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간다. 이야기는 꿈나라로 간다.

 

    시트콤은 언제나 그렇듯이 거실의 소파로 되돌아온다. 입체적인 구조에 의해 소실점에 잡혀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시소가 올라가봤자 결국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듯이 리얼리즘은 언제나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이상의 날개에서 33번지는 안해의 방과 안해의 방을 통과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방이 나선구조로 되어 있다. 히치코크의 종탑을 올라가는 계단 역시 나선구조로 되어 있다. 하이킥 시리즈에 등장하는 옥탑방 소방서 봉과 개구멍, 땅굴 역시 같은 되돌이표 구조다.

 

    이상의 날개는 끝없이 같은 장소로 되돌아오며 아스피린과 아다링의 대결구조를 이룬다. 날개는 시트콤이다. 상황을 던져놓고 캐릭터에 따라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이는 무한도전과 비슷한 포맷이다.

 

    서양식 건물은 원래 이층인데다 지하실과 차고가 딸려 있다. 한국의 주택은 이층도 없고 지하실도 없고 차고도 없다. 별 수 없이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 거실 가운데 소파가 소실점이다. 카메라를 소파에 고정시켜 놓고 인물이 화면 안을 드나들게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집 속에 집 짓기다. 방 속에 또다른 방이 있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과 같다. 어린왕자의 소행성과 같다. 축과 대칭의 구조로 소실점에 잡힌 입체적 구조다.

 

    발자크의 파리에는 은행가와 의사와 혁명가와 매춘부와 고리대금업자와 변호사와 군인과 상류사회 진입을 노리는 신출내기와 허영심 많은 귀부인과 신사가 있다. 그들은 거리의 모퉁이들과 구석들과 담벼락 사이에서 모두 만난다.

 

    누구도 그 굴뚝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 발자크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처럼 하나의 소실점을 중심으로 방사형 구조로 전개시켜 모두 채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리얼리즘이다.

 

    왜 리얼리즘인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입체적 구성에 따른 완전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처음과 끝이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서 꿈나라로 날아가지 않고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자기 안의 조형적 질서다. 질서가 있다. 고로 멀리 떠나지 못하고 전부 연결된다. 전체가 한 줄에 꿰어지므로 흩어져서 날아가지 않는다. 이야기가 어딘가로 한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적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척점에 아라비안 나이트가 있다. 입체적 구조가 없다. 소실점이 없다. 이야기는 끝없이 어딘가로 굴러가 버린다. 실패에 감긴 실이 풀리듯 이야기는 술술 풀려서 어딘가로 가버린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몽마르뜨 언덕이 보이는 고리오 영감의 하숙집 골목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리얼리즘이 없다. 김기덕 감독의 모든 영화는 전혀 사실이 아닌데 매우 사실적이다. 공간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아라비안 나이트 – 무슨 전(傳)으로 되어 있다. 알리바바전, 알라딘전, 신밧드전 등이다. 인물은 여행을 하며 이야기는 여행자의 행선지를 따라 떠나버린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물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 발자크의 인간희극 – 혁명의 열정이 파리의 인간군상들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은 결과 다들 제 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신분상승이라는 소실점에 갇혀서 온갖 기묘한 욕망의 파티를 벌인다. 그들은 그 공간에 갇혀 있다. 공간이 중심이고 인물은 그 공간에 층층이 포개져 있다.

 

    인물은 떠나도 공간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은 떠났어도 파리의 그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트콤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서술하지 않고 관계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대소설은 대개 근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이문열 소설은 대개 무슨 전(傳)이다. 인물중심이다. 다른 소설가들도 대동소이하다. 알리바바전, 신밧드전, 알라딘전을 소설이랍시고 쓰고 있다.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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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라는 집에는 언제나 낯선 사람이 다녀가곤 한다. 그러라고 비워둔 집이다. 어린왕자가 다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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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양성이 전혀 없다. 획일적이다. 소실점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가 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과 활이 만나는 급소가 없기 때문이다. 세헤라자드와 임금의 설정으로 억지 소실점을 만들고 있지만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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