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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505 vote 0 2011.10.18 (14:46:39)

 



구조론을 대하는 자세

 

구한말에 서재필 등 독립지사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불과 수 개월여 만에 영어를 뗐다는 말이 있다. 어학의 달인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니까 늘지를 않는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원근법을 배웠고 5분만에 이해했다. 김홍도는 중국까지 가서 원근법을 배우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사면측량화법이라 하여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언급되고 있다. 근데 엉터리다.

 

서구의 인상주의를 촉발한 일본의 우끼요에도 원근법을 배워 만든 것이다. 근경과 원경을 충돌시켜 강한 인상을 얻는다. 그 일본인들 역시 원근법이 엉터리다. 굳이 안 해도 되는걸 하니까 해도 제대로 안 된다.

 

그대는 원근법을 아는가? 모른다. 피상적으로 아는건 진짜가 아니다. 근대회화는 리얼리즘으로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리얼은 사실이다. 근데 사실이 뭐지? 왜 사실을 그리지? 사실은 눈으로 보면 되지 왜 그리냐고?

 

성경의 한 장면을 그리거나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리는건 대중들에게 뭔가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의도가 있는 거다. 초상화 역시 니네 할배가 이런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후손에게 전해주려는 의도가 있다.

 

근데 쿠르베와 밀레는 대중들에게 무슨 가르침을 주려고 그런 쓸데없는 것들을 그렸을까? real의 어원은 일어난다. 일으킨다는 뜻이다. 일어나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의 내부에는 기승전결의 결이 숨어 있다.

 

기승전결은 한시의 작법이고, 사건 내부에는 원인과 결과가 대칭되어 있고 그 사이에 사건의 향방을 결정하는 판단이 있다. 스위치가 있는 거다. 그것이 결이다. 그 결을 드러내는 것이 사실주의다.

 

고전회화가 들이대는 그리스 신화나 성경 장면들은 그림 바깥의 것들을 그림 안으로 업어온 것들이다. 그건 가짜다. real이 아니다. real은 그림 안에서 일어난 질서다. 주제나 목적이 있으면 이미 가짜다.

 

진짜는 ‘A면 B다’를 충족시키는 상호작용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질서가 세팅되어 있더라는 거다. 그 내부의 질서가 그림을 이끌어가는 핵심이 되는 것이 사실주의다.

 

그러므로 사실을 그려야만 사실주의가 아니라, 김기덕 감독의 추상적 사실주의도 있는 거다. 사실이 아니라도 이미 사실주의다. 물론 그걸 포착하는 능력이 없는 바보 평론가들은 김기덕 감독을 비난하지만.

 

인상주의란 그 질서를 강약과, 고저와, 명암과, 원근과, 정동의 대비에서 구한다. 배경을 생략하고 강력한 충돌을 일으켜 내부에서 질서를 얻어내는 과학이 인상주의다. 인상주의는 과학이다. 그러므로 진짜다.

 

그 이후에 나온 큐비즘이니 초현실주의니 극사실주의니 하는 모든 유파들은 자기류의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다. 질서가 있으면 이미 사실주의에 속해 있는 것이며 멀게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과 이어져 있다.

 

◎ 원근법=사실주의=인상주의=기타모든주의=그림 내부의 질서=과학성

 

햇볕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무지개가 나타난다. 내부의 결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돌리듯이 한 줄로 쭉 늘어선다. 그 방식으로 그림 내부의 결을, 숨은 과학적 질서를 무지개처럼 드러내야 진짜다.

 

과학과 토대가 연결되어 있어야 현대회화다. 그런 거 없이 그림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려면 이미 허당이다. 그건 가짜다. 전부 한줄에 꿰어져야 이야기가 된다는 거다. 이 관점에서 원근법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정립되었지만 아직 그 개념을 아는 사람이 없다. 구조론에 있어서도 원근법 따로, 사실주의 따로, 인상주의 따로, 초현실주의 따로, 다 따로 인식하면 허당이다. 한 줄로 꿰어야 진짜다.

 

하나의 모형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서 그냥 나열식으로 텍스트를 주워섬기면 의미가 없다. 필자가 초등 때 5분만에 이해한 원근법을 조선의 화공들은 무려 300년 배웠어도 터득하지 못했다.

 

왜 누구는 5분만에 되고 누구는 300년 동안 안 되는가? 이 문제를 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이 구조론을 대하는 자세는 김홍도가 중국 가서 대강 동냥귀로 얻어들은 원근법 대하는 자세와 달라야 한다.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 자체를 바꾸지 않고, 근본을 그대로 둔 채 텍스트로 된 개념만 나열식으로 주워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5분만에 배울 것을 무려 300년 이상 끌고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구조론은 쉽다. 5분만에 정수를 꿸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본 모습들은 대개 한 300년 끌어보자는 태도다. 미래에는 어린이가 구조론을 배우게 될 것이며 필자가 노력하는 것은 어린이도 이해하는 교재를 만드는 거다.

 

어린이가 배워야 제대로 된다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필자가 조선시대에 나서 성인이 되어 원근법을 배웠다면 역시 김홍도처럼 피상적으로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 분명히 명암이 있다.

 

김홍도가 명암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용주사 후불탱화는 명암법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광원이 없다. 광원은 소실점과 같은 하나의 점이다. 그 점은 그림 밖에 있을 수도 있다. 어떻든 그게 있어야 한다. 없다.

 

배웠는데 헛배운 것이다. 김홍도는 천재다. 근데 왜 헛배웠을까? 어린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줄에 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개석이 미국에 요청하여 미국 교관들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비행기 조종사를 양성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인들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인들은 지능이 나빠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다고. 과연 그런가?

 

중국인들은 원래 비행기 조종을 못하는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실패했을까? 지금 아프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여전히 미국인들은 쩔쩔 매고 있다. 그때 중국인들에게 비행기 조종술을 전하지 못했듯이.

 

결국 미국은 미군 퇴역장교들을 주축으로 용병을 모집하여 버마전선에 투입했다. 구조론이 어렵다면 그 중국인들의 마인드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 중국인들은 끝내 조종술을 배우지 못했다는 거다.

 

중국의 산서상인들은 진작부터 주식회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일찍이 영국과 프랑스에 진출하여 런던과 파리에 객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면 뭐하나? 런던까지 가서 배워온게 하나도 없는데.

 

중국 광동성에는 서양식 건물들이 수천 채가 있다. 명나라때부터 이미 서양식 건물을 지어놓고 서양문물을 소비하며 살았으면서도 300년 동안 전혀 배운게 없다. 그런데 일본은 불과 30년 만에 다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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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이 30년만에 하는 것을 중국은 300년 동안 못했을까? 안 해도 되니까 안 한 거다. 중국인들은 자기네가 서양보다 앞서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구태여 배우고 싶지 않았던 거다. 배워서 뭐하게?

 

문제는 자세다. 여러분은 300년동은 눈으로 보고도 배운게 하나도 없는 중국인 자세인가 아니면 30년만에 유럽을 추월해버린 일본인 자세인가?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전모를 보느냐에 있다.

 

◎ 독일사신 – “이것이 최신 발명품 자명종 시계입니다.”
◎ 강희황제 – “내 시계방을 보여줘? 그런 시계가 40개나 있어.”

 

서양사람이 아무리 새것을 자랑해도 중국인들은 ‘아 그런거 중국에도 있어. 광동성에 가봐. 쫙 깔렸어.’ 이런 자세로 대하니 서양문물의 중핵을 보지 못한 거다. 안 봐서 못본게 아니고 보고도 못본 거다.

 

일본은? 시커먼 미국 배가 동경만에서 대포를 쏘아대는 판이니 대포 사정거리 안에 있던 도쿄는 절망적이었다. 배우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라 기를 쓰고 배운 것이다. 그들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전모를 봤다.

 

중국은? 그들은 이미 자기네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 원근법? 그거 이야기 나온게 언젠데? 명나라때 마테오 리치가 하던 말 아닌가? 300년 전에 다 배운걸 새삼스럽게 왜 꺼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원근법 안에 구조의 모형이 있다. 따로 구조론 배울 필요없이 원근법을 제대로 이해하면 된다. 사람들이 구조론을 모른다는 것은 원근법도 모른다는 거다. 그러면서 원근법의 연장선에 있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논한다.

 

구조론은 간단히 2가 1보다 크다는 거다. 두 명과 한 명이 싸우면 당연히 두 명이 이긴다. 그런데 두 명은 두 칸을 차지해서 비용이 두배로 드니 도로아미타불이다. 만약 두 명이 한 칸을 쓰면? 꿩 먹고 알 먹고다.

 

그게 구조론이다. 두 명이 한 칸을 쓰면 룸메이트 구하듯이 신경을 써야 한다. 예컨대 한 명은 주간조로, 한 명은 야간조로 편성해서 주야 맞교대로 방을 쓰면 방 하나를 둘이서 넓게 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최대 다섯이 하나를 공유할 수 있다. 다섯이 공유하면 당연히 마찰이 일어난다. ‘너 왜 똥싸고 화장실 물 안내렸냐’ 하고 시비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애초에 순서를 잘 정해야 한다.

 

이쪽방에서 밥먹을 때 저쪽방에서 똥 싸면 안 좋다.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순서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이미 소실점 안에 다 있다. 원근법만 제대로 배우면 그냥 알게 된다.

 

필자는 아홉 살 때 핵심을 잡았고 아직까지 써먹는다. 그것은 관점의 이동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논쟁을 하면 무조건 내가 이기도록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내가 판단기준을 계속 바꾸기 때문이다.

 

대부분 판단기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므로 무조건 깨진다. 기준을 무작적 바꾸는게 아니라, 먼저 시간적으로, 다음 공간적으로 바꾸며 토대를 넓혀가는 순서가 있다. 순서대로 바꾸면 상대는 꼼짝없이 걸려든다.

 

의제로 된 사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애초에 생각지 못했던 더 큰 문제를 먼저 짚고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우는 형식이다. 대부분 보이는 것만 보므로 이면까지 보는 사람이 무조건 이긴다.

 

논쟁이 일어나려면 접점이 있어야 한다. 접점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접점은 토대 위에 얹혀 있다. 판단기준은 토대가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피아가 공유하고 있는 토대를 흔들면 상대는 무너진다.

 

그냥 아는 지식을 읊조리는 것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계속 진도를 나가주는 것은 애초에 레벨이 다른 거다. 수준차가 있다. 그 안에 과학성이 있어야 한다. 질서가 있어야 한다. 가지를 치고 새끼를 낳아야 한다.

 

그런 혁신성, 진보성 없이 그냥 좀 안다는 것은 안 쳐주는 거다. 그건 지식에 불과하다. 아는 것이 또다른 앎을 낳으며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계속 뻗어나가는 것이 지혜고 지성이다. 이런 애초에 레벨이 다르다.

 

정리하자. 중국은 마테로 리치로부터 300년 동안 배웠어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를 못 한게 아니다. 배워서 써먹을 데가 없었을 뿐이다. 바꾸려면 다바꿔야 하는데 그게 엄두가 안 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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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마음의 장벽이 있다. 제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거다. 잔기술이나 테크닉 정도로 보고 있다. 서양사람의 기특한 잔재주 정도로 여기는 거다. 그런 자세라면 이 사이트에 올 이유가 없다는 거다.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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