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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559 vote 0 2012.01.03 (23:38:44)

 

춘향전은 시소의 이쪽편에 올라탄 선이 저쪽편에 올라탄 악을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밀어낼 수 없다.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암행어사가 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설정되지만 설득력은 낮다.

 

암행어사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다. 영감을 받지 못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는 다르다.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교묘한 이간질로 박스터파와 로조파를 싸움붙여놓고 양쪽을 일망타진한다.

 

박스터 패거리와 로조 패거리를 시소의 양쪽에 태우고 자신은 탑 포지션을 차지한다. 이쪽 저쪽을 편들며 양쪽을 동시에 쓸어버린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다른 영화들도 다 비슷하다.

 

언제나 주인공이 탑 포지션을 장악하고 다른 두 사람이 바텀 포지션을 차지한 채 삼각대결을 벌인다. 주인공은 균형자이며 심판자이다. 룰을 정하는 사람이고 사건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센터를 장악하여 주도권을 쥐고 있다. 미리 설계하고 사전에 함정을 판다. 때로는 현상금을 챙긴 다음 현상범을 풀어주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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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작가의 주유소 습격사건 역시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철가방과 양아치를 시소의 양쪽에 태워 싸움붙여놓고 주유소에 휘발유를 뿌린 다음 라이터를 던져 버린다.

 

혹은 주유소에 들락거리는 폭주족과 경찰과 그 주유소의 종업원들을 차례로 시소에 올려태웠다가 다시 끌어내리기를 반복한다. 주유소는 인간의 본성을 계량하는 천칭저울과 같다. 차례로 저울에 올려져 그 인간성이 계량되는 것이다.

 

인간들은 주유소를 장악한 노마크 4인방에게 걸려 그 인간의 본성을 탈탈 털린다. 마지막에는 하부구조끼리 대결시켜 상황을 교착시켜놓고 주인공 4인방은 유유히 사라진다.

 

시소에 올라탄 The Bad와 The Ugly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놓고 잽싸게 튀어버리는 것이다. 박정우 작가는 ‘신라의 달밤’을 비롯하여 다른 작품에도 이 수법을 여러 차례 써먹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가 나오자 무려 400여편의 아류 마카로니 웨스턴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실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역시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들을 베낀 것이다. 한 번 형식이 만들어지자 그 틀을 널리 공유한 것이다. 창의는 대개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정통 서부극은 주인공이 시소에 올라타고 있다. 이런 식이면 이야기의 폭이 제한된다. 상상력이 차단된다. 먼저 무법자가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주인공 보안관은 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주인공의 선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악당의 악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그 장면은 마뜩치 않다. 악이 너무 심하면 정신병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미친 놈을 쏘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다지 멋있는 캐릭터가 되지 못한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은 주인공이 악당이므로 그런 부담이 없다. 무한한 상상의 자유가 있다. 주인공이 먼저 시비를 걸고, 먼저 주유소를 턴다. 이야기를 자유롭게 진행시킨다. 주인공이 여러 등장인물을 한 놈씩 붙잡아놓고 한 명씩 차례로 싸움을 붙인다. 맘대로 하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바운더리 싸움이 된다. 미리 총을 숨겨놓고, 미리 보물을 빼돌려놓고, 미리 판을 설계한 자가 막판에 다 먹는다. 이런 점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에서 잘 보여진다. 주인공 7인이 먼저 마을을 장악하고 사전에 온갖 장치를 해 두는 것이다.

 

미리 시소를 만들어 놓았다가 덤벼오는 악당을 차례로 시소에 태운다. 그리고 하나씩 떨어뜨린다. 그 방법으로 인간을 천칭저울에 계량한다.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부족하다. 더 진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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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나 게오르규의 25시는 주인공이 사건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소구조 자체가 사건을 끌고 가는 축이 된다. 주인공은 어벙하고 천칭저울이 도리어 주인공 노릇을 한다. 주인공이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은 배후의 시소구조를 포착하게 된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검은 옷으로 상징되는 성직자의 길과 혁명가의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낭만적 연애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며 시소의 탑 포지션을 차지하려 애쓴다. 그 상호작용 과정에서 시소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소는 주인공 쥘리앵을 성공의 극점까지 끌어올리지만 마지막 순간에 차디찬 바닥으로 패대기쳐 버린다. 문제는 주인공이 아니라 사람을 태워놓고 올렸다 내렸다 하는 시소다. 그 운명의 시소는 화려한 유혹이면서 동시에 차가운 심판이다.

 

김기덕 감독의 모든 영화는 시소구조의 탐구다. 김기덕 감독은 시소를 물로 표현한다. 주인공은 호수 속의 섬이나 혹은 바다 위의 배를 떠나지 못한다. 시소의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주인공은 불안해하며 시소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줄달음질 쳐보지만 ‘적과 흑’의 쥘리앵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시소구조는 결국 시소구조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기능할 뿐이다. 시소가 모두 집어삼킨다.

 

창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들어져 있는 시소에 다양한 캐릭터를 태워보는 것이다. 혹은 그 시소를 발굴해 보는 것이다. 혹은 그 시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시소가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자는 정통서부극처럼 선과 악의 대결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선이 악을 이기지만 운이 좋아서 이기므로 설득력이 없다.

 

◎ 봉건소설 – 시소의 이쪽에 올라탄 선이 반대쪽의 악을 이긴다.
◎ 세르지오 레오네 – 시소의 탑을 차지한 주인공이 바텀의 둘을 이긴다.

◎ 스탕달, 귄터 그라스, 게오르규 – 시소가 인간을 이리저리 태우고 다닌다.
◎ 김기덕 – 스스로 시소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때려부순다.

 

여기서 시소의 어디까지 보느냐가 작품의 수준을 결정한다. 하수는 시소의 이쪽과 저쪽만 보고 가운데의 센터는 보지 못한다. 세르지오 레오네, 구로자와 아키라. 박정우는 시소의 센터를 보는데 성공한다. 스탕달, 귄터 그라스, 게오르규는 시소의 상부구조를 포착하는데 성공한다.

 

시소 위에 시소가 하나 더 있어서 자이로스코프를 이루고 있다. 지구팽이와 같다. 이때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시소다. 쥘리앵은 결코 그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소에서 내릴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인간이 적과 흑 중에서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미소를 가진 운명이 판을 설계해놓고 인간을 그리로 초대하는 것이다. 어떤 패를 잡든 인간은 그 게임에서 지게 된다. 인간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운명의 자이로스코프 안에서 질주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이 그를 멈춰세울때까지.

 

스탕달이 쥘리앵의 입을 빌어 삶이 돌아가는 자이로스코프에 갇힌 신세임을 설파했다면 김기덕 감독은 그 자이로스코프가 들어있는 파워볼을 돌리는 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까지 묘사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주산지가 그 운명의 자이로스코프라면 김기덕 감독의 깨달음은 그 자이로스코프의 바깥으로 성큼 걸어나와버리는 것이다. 악어는 마침내 한강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한강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관객은 한강 바깥으로 돌아가 버린다.

 

어디까지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 결정되며 그 작품의 수준에 따라 무한한 변주의 가능성이 확보된다. 낮은 수준의 작품은 줄거리가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 시소에 올라타버린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없기 때문이다. 그 시소를 때려부수는 수 밖에 없다.

 

그 시소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도 존재한다. 작품과 관객의 약속까지 깨부수는게 정답이다. 김기덕의 나쁜 남자는 관객의 마지막 한가닥 희망까지 때려부수는데 성공한다. 최후까지 밀어붙인다. 극에 도달하고 극을 초극한다.

 

나쁜남자의 주인공 남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자이로스코프의 일부가 된다. 지금까지는 자이로스코프에 갇혀 돌아가는 신세였으나 자신이 자이로스코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관객은 그 맞은 편에 선다. 파워볼을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의 포지션에 선다.

 

한강을 떠나지 못하는 악어는 마침내 스스로 한강이 된다.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자이로스코프는 계속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 시소에서 내려도 누군가는 거기에 올라탄다. 그대가 ‘파란대문’ 집을 나와도 누군가는 그 집을 드나든다.

 

시소를 때려부숨으로써 파워볼을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드러내기다. 최후의 시소는 관객과 작품의 대결구도였다. 바로 그것을 깨라. 관객의 마지막 희망을 무산시켜라.

 

모든 것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부터 시작되었다. 돈 키호테의 의미는 캐릭터의 출현에 있다. 돈 키호테는 선한 주인공도 아니고 악당도 아니다. 시소의 이쪽에도 탈 수 없고 시소의 저쪽에도 탈 수 없는 이상한 넘이 나타났다.

 

이때 시소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을 이리저리 끌고다님으로써 인간 존재 그 자체를 해체하고 한편으로 해부하는 작업은 세르반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학은 줄기차게 달려왔다. 파워볼을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아내는데 성공하기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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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을 악당과 대결시켜라.
◎ 주인공과 악당이 대결하는 판 구조를 드러내라.
◎ 주인공과 악역은 빠지고 그 판구조에 다양한 놈을 올려태워 인간성을 테스트하라.
◎ 판구조 자체가 변신하여 스스로 판갈이를 하며 계속 룰을 바꿔가라.
◎ 인물과 판구조의 대결을 작품과 관객의 대결로 바꿔치기 하라.

 

처음에는 인물과 인물이 대결하지만 나중에는 인물과 판이 대결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판갈이가 진행되며 판과 판이 대결한다. 최후에는 작품과 관객의 대결로 되며 여기까지 밀어붙일 수 있어야 걸작이 된다.

 

게오르규의 25시나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은 공통적으로 판갈이가 있다. 주인공의 국적이 바뀌고 이야기의 룰이 계속 바뀐다. 마이웨이의 장동건은 조선인에서 일본군이 되었다가, 다시 러시아군이 되고, 마침내 독일군이 된다.

 

판이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다. 이야기는 장동건과 오다기리 죠의 인물대결에 머물러 있다. 근대적인 플롯인 인간과 판의 대결이 아니라 봉건적인 플롯인 선과 악의 대결로 퇴행한 것이다. 걸작이 될 수 있는 찬스를 제 발로 차버렸다. 강제규 감독이 판구조를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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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04 (01:30:54)

옆 방에서 인생에 지쳐버린 아버지가

잠을 못 이루고 권투를 티비로 보고 계시네요.

하루 종일 무기력 하십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살아 있는 게 살아 있는 게 아니시네요.

 

[레벨:3]창공

2012.01.04 (09:09:49)

 아버지와 얘기좀 더 해 보세요...

목욕탕 가서 등도 좀 밀어 드리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04 (10:10:51)

아버지도 그렇지만, 저도 살아 있는 게 살아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빨빨 거리며 여기저기를 돌아 다닙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솔숲길

2012.01.04 (12:18:26)

첫번째 그림에서 The Bad와 The Ugly가 바뀐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1.04 (12:48:15)

수정했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2.01.04 (16:22:50)

 

이리보면 이야기를 꾸미는 것은 참 쉬울 수도 있는데...

각본이나 소설을 제대로 쓰기는 어렵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8]귀족

2012.01.05 (02:21:55)

글이 정말 재밌네요 맛있고 냠냠..
내용도 풍부하고 깊고.
이 반찬은 뭐다 재료는 뭘썼다
알려주진 않아도

한 상 차려놓고
먹다보면 감동하는 그런 맛
이게 이 맛이구나
그래서 이런 재료를 썼구나
몸에 좋은 거구나 ^^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05 (13:23:39)

파워볼 부분에 관한 설명 좀 다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악어 포스터 아래 세 문장이 너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다시 설명 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붙이면, 저는 이 글을 주인공 악당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로 이해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 마음가는대로 살아야한다는 거요.

그것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냐구요.

그래서인지 위 부분이 이해가 될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1.05 (13:30:11)

예전 글을 다 읽어보세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호롱

2012.01.05 (13:39:22)

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전 글들을 최근에 많이 읽었는데요.

글의 행이 모두 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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