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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513 vote 0 2014.01.28 (11:38:31)

    입자의 세계관과 완전성의 세계관의 차이는 말하자면 불교의 소승과 대승의 차이와 같다. 소승은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낱낱이 다 구원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태국사람은 모든 국민이 일정기간 동안 승려생활을 해야 한다.


    칸트가 모든 사람에게 어떤 죄도 짓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든다. 모든 사람이 승려가 되려면 일단 절을 크게 지어야 하는 거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지 감시하려 해도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대승은 큰 스님 한 사람이 깨달으면 모두가 구원된다는 입장이다. 예수가 인류의 대표자로 나서서 원죄를 해결해주는 것과 같다. 칸트는 기독교도지만 소승적이며, 어느 면에서는 예수를 부정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의 숫자가 많다. 일본의 신도나 인도의 힌두교라도 마찬가지다. 입자로 가면 일단 양이 많아진다. 갈수록 태산이 된다. 감당할 수 없다. 완전성은 하나의 근본으로 모든 것을 동시에 해결한다.


    근래에 의학계에서 모든 질병은 결국 유전자 하나로 환원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유전자 하나를 통제하여 거의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 경제도 그렇다. 소승은 개인의 게으름을 탓한다.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개인은 숫자가 많으므로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나무란다면 비용이 많이 든다. 미련한 짓이다. 대승은 사회를 탓한다. 사회의 어떤 핵심 하나를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덩달이로 해결된다는 식이다.


    공산주의자는 혁명 한 방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외치고 있고 일본의 아베는 돈만 찍어내면 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대승의 한방주의가 길을 잘못들어도 위험하다.


    이렇듯 살펴보면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소승적 관점과 대승적 관점이 대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구를 해도 개인기를 강조하는 남미의 소승파와 조직력을 강조하는 독일의 대승파가 구분된다.


    총기를 만들어도 미국의 M16은 기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소승적이고, 러시아의 AK소총은 호환이 잘 된다는 점에서 대승적이다. 기업의 경영방식에도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대승경영과 꼼꼼하게 품질관리하는 소승경영이 있다.


    한국은 재벌 밀어주기는 지나친 대승의 환상이다. 반면 삼성의 성공은 대승적 한방주의 성공사례로 볼 수 있다.


    대승만 중요하고 소승은 필요없다는 태도라면 곤란하다. 팀의 조직력이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도 중요하다. 그런데 진보는 대승이다. 대승과 소승은 둘 다 필요하지만 지식인이 맡은 임무는 큰거 한방이다.


    조직력도 중요하고 개인기량도 중요하지만 개인기량은 선수가 각자 책임질 몫이고 감독은 조직력만 책임지면 된다. 철학은 감독이고 진보는 감독이다. 사회가 철학과 진보만으로 다 되는건 아니지만 일단 철학과 진보의 임무는 그렇다.


    개인의 자질과 사회의 선제적 대응이 둘 다 중요하지만 진보는 개인탓보다 사회탓을 한다. 원래부터 그러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게임이다. 대승은 철학이고 소승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대승은 방향제시로 큰 거 한 방을 노리고, 과학은 꼼꼼하게 실적으로 뒷받침한다.


    조선왕조 시대로 돌아가 보자. 예송논쟁이 왜 일어났는가? 왕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이 다르고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가 다르다. 전혀 다른 국가개념, 왕권개념을 가지고 노론과 남인이 대립한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충돌이자 타개되어야 할 딜레마다.


    숙종은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서얼을 차별하는 나라인데 실제로는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가 드물다.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 정도이다. 연산군은 짤렸고 단종도 짤려서 노산군이 되었다. 단종은 어려서 즉위했는데 숙종도 14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했다. 정비 소생은 짤리거나 단명한다는 징크스를 숙종은 피해갈 것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수렴청정도 안했기에 징크스가 신경쓰인 거다.


    비유로 말하면 사정은 이렇다. 숙종은 신하들에게 ‘왕은 왜 왕인가?’를 물었다. 왕에게는 천신으로부터 부여받아 왕의 리니지를 따라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왕의 엑기스가 있다는 것이 남인의 소승적 입장이고, 왕은 선비세력의 대표자이며 선비가 세력을 이루어 왕을 지지하므로 왕이라는 것은 노론의 대승적 입장이다.


    왕이 세력화된 선비들의 지지를 받아 통치권을 얻는 것이 성리학에 따른 우주의 법칙이라는 노론의 견해는 매우 기분좋은 말이지만, 남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급정색하게 된다. 거기에 역린이 숨어 있다.


    만약 선비가 지지를 철회하면? 선비의 입장은 상관없고, 왕의 몸에는 천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기가 서려 있다는게 남인의 입장이다. 큰스님을 다비하면 몸에서 영롱한 사리가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왕을 원심분리기로 돌려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번쩍번쩍하는 왕국물이 줄줄 흐른다는 식이다.


    그게 더 기분좋은 말이다. 그래서 송시열은 죽었다. 노론은 대승이라 세력을 일구므로 의리를 강조하고, 남인은 소승이라 덕을 닦으므로 시류에 영합한다. 남인은 개인의 덕을 닦았기 때문에 퇴계처럼 점잔을 빼며 주변으로부터 사람좋다는 말을 듣는다.


    노론은 노무현처럼 깐깐하고 남인은 김종필처럼 노회하다. 물론 전성기때 이야기고 후기에는 청나라 경제가 부흥하면서 인삼수출로 돈이 돌자 배금주의가 대두되어 노론도 개판이 되었다. 의리는 돈을 이기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은 대대로 무반으로 출세했다. 덕수 이씨는 이후 300여년간 267명의 무과 급제자를 배출한 반면 문과 급제자는 1명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리니지에게는 특별한 무인의 기운이 유전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순신 후손이면 무조건 무과급제가 따논당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법정다툼은 조상묘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대개 힘있는 양반이 남의 묘자리를 빼앗았다거나,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몰래 조상의 유골을 이장했다거나 하는 식이다. 풍수지리라는 것은 역시 입자개념이다.


    지금 한국, 일본, 중국, 북한, 태국이 모두 세습정치인이 지배하는데 역시 소승의 입자설 관점이다. 김정은이나 박근혜나 시진핑을 착즙기로 쥐어짜보면 뭔가 특별한 국물이 줄줄 나온다는 생각이다. 막연하게 그런 것을 믿는다.


    품성을 닦는다거나 덕을 닦는다는게 다 소승이다. 소승은 매일 검술을 연마하지만 대승은 그냥 총을 나눠준다. 총으로 안 되면 기관총으로 바꾼다. 기관총으로 안 되면 외국과 연합하여 전쟁을 막는다.


    어떻든 상부구조에서 답을 내려는 것이다. 2차대전으로 말하면 일본군은 하사들이 유능하고, 독일군은 장교들이 유능하고, 미군은 장군들이 유능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랬을 리는 없다. 사람은 다 똑같다.


    일본은 주무기가 박격포라서 하사가 담당이고, 독일군은 주무기가 전차라서 장교가 담당이고, 미군은 주무기가 원자탄이라서 장군이 담당이다. 조금 더 큰 분야에서 답을 찾는 것이 대승적 태도이다.


    개인의 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소승적 태도이며 소승적 태도는 반철학적 태도이다. 철학이란 인류 전체가 결집하여 하나의 뇌를 세팅하고 거기서 답을 구하는 것이다. 개인은 팀플레이만 하면 된다.


    현실이 그렇다. 당신도 핀란드에서 태어났다면 사민주의자가 되어 있을 것이고,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있을 것이다. 큰 덩어리에서 많은 것이 결정된다. 개인의 노력은 큰 의미없고 큰 세력에 가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야구를 해도 김성근 감독이 경기의 맥을 끊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소승의 입장이 있고, 오히려 맥을 끊어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작전의 묘미를 살렸다는 대승의 입장이 있다. ‘거 참 야구 볼 줄 모르네.’ 하는게 김성근의 입장이다.


    대승과 소승은 영원히 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방향은 머리와 꼬리가 동시에 발생한다. 화살의 머리와 꼬리는 동시에 성립한다. 대승 가는 곳에 반드시 소승 간다.


    기관차 가는 곳에 객차 간다. 객차 없는 기관차는 가봤자 허무하고, 기관차 없는 객차는 가지도 못한다. 소승 없는 대승은 허무하다. 소승을 끌고가는 대승이 멋진 거다.


    그러나 철학은 그 중에서 대승이고 진보는 그 중에서 대승이다. 개인의 덕성을 닦으라니 어쩌라니 잔소리 하는건 철학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철학이다. 하부구조는 과학에 맡기고 철학자는 곧 죽어도 상부구조에서 답을 내야 한다.


    혼자 있으면 덕이 있지만 둘이 있으면 의가 있다. 의리는 자연법칙이다. 법칙대로 가는게 대승이다. 개인의 덕보다 집단의 의가 중요하다. ‘넌 왜 덕이 없느냐’ 하는 식의 추궁은 소인배들이 좋은 주인님을 섬기고 싶을 때 하는 이야기다.


    드리블 못해도 패스만 잘 하면 된다. 덕이 없어도 의만 지키면 된다. 덕은 개인에게 있지만 의는 사람 사이에 사랑으로 있다. 퇴계의 덕보다 조식의 의가 윗길이다. 먼저 세력에 가담하여 큰 의를 얻고, 남는 시간에 덕을 닦아 세력 안에서 승진을 노리는 거다.


    미아리 철학관은 철학이 아니고 풍수지리는 과학이 아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검술을 연마해야 하는게 아니고 원자탄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것에도 답이 있지만 그건 과학이고 철학은 큰 방향을 찾아야 한다.


    안철수는 덕이 있고 문재인은 의가 있다. 일단 외견상은 그렇다. 안철수의 덕은 철학이 아니고, 문재인의 의는 철학이다. 덕은 혼자 닦으므로 구태여 학을 표방할 일이 아니다. 의는 둘 사이에 관계하므로 타이밍을 맞추고 호흡을 맞춰봐야 해서 학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 앞에 오고 덕이 뒤따른다. 철학은 도다. 덕은 그걸로 장사하는 거다. 내가 도를 닦아서 챙긴게 있으니 너희가 금전을 지불하면 조금씩 나눠주겠다고 하는게 덕이다. 도가 진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1.28 (13:31:45)

이해가 쉬운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4.01.28 (14:40:54)

대승과 소승

철학과 과학

노론과 남인

조직력과 개인기

문재인과 안철수

의 절묘한 조화와 

대칭이 필요한 거...

[레벨:8]상동

2014.01.28 (14:40:55)

대승은 철학이고 소승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대승은 방향제시로 큰 거 한 방을 노리고, 과학은 꼼꼼하게 실적으로 뒷받침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용어수정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곳은 인문에 과학을 적용하는 곳이고, 그게 철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 모두에게 동시에 적용되고 있지요. 해서 과학은 대승과 연결시키는 것이 부합된다 보여집니다.
내부에서 쥐어짜는 것은 산수, 계산, 수학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울릴 듯 한대요.

대승은 철학..소승은 수학 .....수학은 꼼꼼하게 실적으로....?

ps. 과학은 단일 법칙이고, 수학은 풀이방법인데 풀이방법은 다양하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8 (14:44:26)

언어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과라는 말에는 이미 쪼개고 나누었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철이라는 말에는 이미 합쳤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철학과 과학을 대칭시키면 당연히 철학은 건물이고 과학은 건물에 딸린 방입니다.

원래 철학자가 과학을 만들었습니다. 

과학과 미신을 대비시키는 경우와 다르지요. 

[레벨:8]상동

2014.01.28 (15:09:16)

과학은 원래있던 것을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엔트로피법칙 등등이 발명한 것은 아니잖아요.

철학자(과학자)가 수학을 만들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8 (15:20:32)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원래 있던 것을 손대면 안 되는줄 알았지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손대자 해서 건들게 된 거.

[레벨:8]상동

2014.01.28 (15:42:37)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

[레벨:10]다원이

2014.01.28 (14:46:58)

계층구조 라는 관점에서 철학이 상위 과학은 하위구조다 이렇게 봐야 하나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8 (15:00:40)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제주도를 갈지 목포를 갈지 먼저 철학이 결정하고

제주도는 비행기, 목포는 자동차, 대구는 KTX로 과학이라는 수단을 정하는 것입니다.

 

[레벨:8]상동

2014.02.05 (18:11:14)

참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소승은 도덕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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