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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828 vote 0 2014.01.27 (02:22:55)

 

    공간의 조화와 시간의 질서

 

    아래 글의 수정 혹은 추가된 내용입니다.


    식구가 늘면 새 집을 지어야 한다. 새로운 사유가 등장하면 사유의 주머니를 교체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입자로 이해하지만, 근래에 양자가 등장해서 곤란해졌다. 이제 사유의 집을 리모델링 해야한다. 비좁은 입자의 세계관을 버리고, 드넓은 완전성의 세계관으로 갈아타야 한다.


    입자는 공간에서 형태를 조직하고, 파동은 시간에서 에너지를 운용한다. 세상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고, 둘을 통합하는 양자도 아니다. 도무지 어떤 자子가 아니다. 물질이 공간에서 형태를 갖추기 전에 이미 중요한 의사결정은 일어났다. 실제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시공간의 지점을 포착해야 한다. 과학이 관측하더라도 바로 그 지점에 장비를 들이대야 한다. 양자가 들어서기 전에, 입자가 세팅되기 전에, 파동이 전달되기 전에, 존재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전에 인간의 손길이 들어가야 한다. 그 모든 것이 결정되기 전에 무엇이 있었나? 커다란 에너지의 요동이 있었다. 일은 거기서 터졌다.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운명은 시합 중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팀을 편성하는 중에 결정된다. 큰 덩어리는 결혼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애 중에 결정된다. 음식은 먹는 중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요리 중에 결정된다. 입자는 편성된 팀이자, 맺어진 부부이고, 요리된 음식이다. 이미 늦었다. 입자가 요리의 형태를 갖추기 전에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입자의 영역에서도 의사결정은 일어나지만 잔챙이다. 요리된 음식도 먹는 방법에 따라서 맛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차이는 작은 것이다. 우리는 세팅된 입자를 존재의 기본으로 놓고, 입자 내부의 고유한 속성에서 답을 구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그 시점에 이미 끝나 있으므로, 바른 해답에 이르지 못한다.


    이에 사유의 주머니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요가 생겨났다. 뒷북치지 말고 선제대응하려면, 요리되기 전에 메뉴를 선택하는 완전성의 세계관으로 바꿔줘야 한다. 물론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입자의 세계관으로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이미 결혼한지 10년이 지났고 자녀도 성장해 버렸다면 별 수 없다. 그럭저럭 맞춰가며 사는 거다. 이미 팀을 옮겨 버렸다면 박지성도 별 수 없다. 불만을 참고 옮긴 팀에 적응해야 한다. 소풍을 와서 식은 김밥을 먹게 되었다면 별 수 없다. 찬밥이라도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천하의 싸이라도 영장 받으면 입대해서 2년간 굴러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면 차라리 즐겨야 한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맞닥들였을 때, 처음 어떤 일을 시도할 때, 도와줄 선배도 없고 정해진 매뉴얼도 없을 때, 예술가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때,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될 때, 팀플레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타개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다.


    그런 때는 공간의 입자적 상황이 아니라, 시간의 파동적 상황이 아니라 시공간의 양자적 상황이다.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까지 보아야 한다. 사건은 시간을 타고 일어난다. 참된 답은 공간의 조직이 아니라, 시간의 운용에 있다. 공간의 파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정도는 남들도 안다. 시간으로 진격해야 한다.


    질서는 차례 질秩, 차례 서序다. 공간은 차례가 없다. 공간은 질서가 없다. 시간의 차례를 바꿈으로써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선착순으로 끊어서 시간순서를 할당하면 무리가 통제된다.


    라면 한 봉지를 끓이더라도 면을 먼저 넣고 나중 파를 넣어야 한다. 그런데 입자개념에는 시간순서가 없으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냥 면과 파를 넣으라고 써놓았을 뿐, 무엇을 먼저 넣는지 써놓지 않았다. 그냥 잘해보라고 할 뿐 뽀뽀를 먼저 할지, 고백을 먼저 할지 말해주지 않았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은 시간순서가 바뀌어 있다. 시간순서를 바로잡아 영화를 다시 보면 재미없다. 세상을 공간으로 보는 법은 누구나 안다. 다만 세상을 시간으로 보는 방법은 아는 사람이 없다. 창의적인 성과를 일구려면 남이 모르는 것을 해야 한다. 시공간을 동시에 운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딱딱한 알갱이로 보는 입자의 세계관이 아니라 무른 사건으로 보는 완전성의 세계관이 필요하다.


    창의성은 입자적 상황이 아니라 양자적 상황에서 요구된다. 구체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간에서 교착된 딜레마를 타개하는 것이며, 딜레마는 오직 시간의 운용에 의해 타개된다. 공간의 조화가 아니라 시간의 질서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림은 공간을 조직하고 음악은 시간을 조율한다. 창의성이라면 당연히 공간의 조직으로 안다. 그림 그리기와 비슷한게 창의라고 생각한다. 음악 비슷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영화를 만들어도 한 컷의 그림 속에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한 장면 안에 온갖 상징과 기호를 삽입하려고 한다. 소설을 써도 그림이고, 시를 써도 그림이다. 무언가 집어넣는다. 큰 창의 안 나온다.


    진짜는 시간의 운용에 있다. 그림은 한 컷에 둘이 들어가지만, 음악은 한 라인에 한 음이 올라탄다. 그림은 채울수록 좋고 음악은 비울수록 좋다. 입자의 세계관은 존재의 그림만 보고 음악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물질과 세상이, 양자와 소립자가, 그림이면서 동시에 음악이라고는 생각지 못한다. 세상의 절반만 본다.


    길을 가다가 스치듯 미인을 만났다.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맡은 업무를 포기하고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양자적 상황은 시간제한이 걸려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인은 떠난다. 어쩔 것인가? 그런 때 입자의 세계관은 답을 주지 못한다. 매뉴얼에 없다. 그림 안에는 답이 없다.


    입자로 보는 세계관에 공간문제의 해결책은 있으나 시간문제의 해결책은 없다. 입자의 세계관은 금과 은 중에서 비교하여 그 중에서 보다 나은 금을 고르는 문제다. 당신은 입자의 세계관으로 금 고르기에 성공할 수 있다. 잘 생긴 남자나 똑똑한 여자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요리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서 뒷북이다. 큰 건수는 남들이 채갔다.


    시간을 공략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빠르게 선수를 쳤다. 그림 안에는 답이 없지만 음악 안에는 답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는 그림이 아니라 음악이다. 혼자서 두 명을 제끼면 마라도나의 멋진 그림이지만, 현대축구의 간결한 패스는 음악이다. 완전성의 세계관은 팀플레이를 통해 음악처럼 호흡을 맞춘다. 미녀와 추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호흡을 맞춘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눈으로는 한꺼번에 백 가지도 볼 수 있지만 귀로는 두어 가지 밖에 듣지 못한다. 선생은 60명의 학생을 동시에 볼 수 있지만, 60명이 동시에 떠들면 시끄러워서 알아듣지 못한다. 눈으로 하는 덧셈은 잘하는데 귀로 하는 뺄셈은 서툴다. 흔히 비우라고 한다. 내려놓으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잘 하는데 그것이 음악임을 모른다. 공간이 아닌 시간을 내려놓아야 함을 모른다.


    공간은 채울수록 황금이 넘치고 시간은 비울수록 여유가 넘친다. 진정한 세계에서 금을 고르는 당신의 능력은 소용이 없다. 당신은 공간에 있는 미녀와 추녀 중에서 미녀를 고를 수 있지만, 시간을 타고 흐르는 타이밍을 못 맞추기 때문에 딱지 맞는다. 완전성의 세계관으로 사유의 주머니를 확장시켜야 한다.


    어디에 무엇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이 당연히 공간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 찬스를 놓치더라도 내일 그 장소에 다시 오면 된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는 다르다. 그것은 시공간의 지점에 놓여있다. 기회는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입자로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시시한 거다. 그것은 남이 먹다 버린 뼈다귀에서 살점을 찾는 것과 같다. 입자는 이미 세팅된 세계이며, 중요한 의사결정이 끝나 있는 나머지의 세계이며, 싱싱하지 않다. 진정한 것은 새로 창의하는 것이며, 진정한 창의는 시간의 조직으로 가능하다.


    그림을 그리더라도 관객의 눈이 가는 동선이 있다. 관객의 눈은 시간을 타고 간다. 눈이 먼저 가는 지점에 엣지가 있어야 한다. 옷 한 벌을 디자인하더라도 관객의 눈길이 가는 순서가 있다. 그 순서를 정하려면 비워야 한다. 눈에다 진하게 포인트를 줬다면 입술은 가볍게 가야 한다. 짙은 눈화장에 짙은 입술화장을 보태면 아줌마 화장이 되고 만다. 눈길이 가는 순서 1번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남자라면 넥타이가 1번이기 쉽다. 여자라면 귀걸이든 목걸이든 브로치든 하나만 남겨야 한다. 두 개의 음이 동시에 가면 소음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림 안에 음악을 태워야 제대로 된 디자인이다. 음악 안에 그림을 태워야 제대로 된 창의다. 그림은 설명하기 쉽다. 보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설명하기 어렵다.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음악은 어떤 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과 음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은 미술의 화려한 칼라가 아니라 음악의 리듬감이 느껴져야 한다. 그림은 그냥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하지만 음악은 언제나 어떤 둘의 만남으로 있다. 그냥 빨갛게 칠해놔도 그림이 되지만 그냥 쿵 소리는 음악이 아니다. 음악은 반드시 고저와 장단과 강약이 있어야 한다. 박자가 있어야 하며 최소한 두 번의 소리가 나야 박자가 된다.


    그림은 대상을 보지만 음악은 둘 사이 간격을 본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림은 가득차 있는 것을 보지만 음악은 비워진 부분을 본다. 극적인 장면에서 그림은 눈길을 끌어 당기지만, 극적인 장면에서 음악은 숨이 막혀 밀어낸다. 동양의 산수화는 비움을 강조하지만 산과 물의 만남이 아니면 비움이 아니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을 보여주면 그림이지 음악은 아니다.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멀어졌다 하는 아슬아슬함을 보여줘야 음악이다.


    그것이 완전성의 세계다. 그것은 위대한 만남의 세계다. 만나서 팽팽하고 아슬아슬한 세계다. 입자는 혼자로도 존재를 성립시키지만 양자는 반드시 둘씩 짝지어야만 존재를 이룬다. 입자를 넘어, 양자를 넘어, 물질을 넘어, 시공간을 넘어, 에너지의 세계까지 올라가야 한다.


    영화의 명장면에는 리듬감이 있어야 한다. 만남이 있어야 한다. 스침이 있어야 한다. 짜릿한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거리가 좁혀지고 넓어지며 아슬아슬함이 있어야 한다. 어디서 북소리가 들려와야 한다. 호흡이 가빠져야 한다.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를 씨줄 날줄로 엮어야 한다. 공간의 조화와 시간의 질서를 동시에 보는 것이 창의성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4.01.28 (01:24:49)

"세상을 공간으로 보는 법은 누구나 안다. 다만 세상을 시간으로 보는 방법은 아는 사람이 없다. 창의적인 성과를 일구려면 남이 모르는 것을 해야 한다. 시공간을 동시에 운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딱딱한 알갱이로 보는 입자의 세계관이 아니라 무른 사건으로 보는 완전성의 세계관이 필요하다."

***

"공간에서 교착된 모든 딜레마는 시간(의 질서)로 풀어낸다"

아래 반지빼는 기술을 보라.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46068&s_no=146068&page=1

***

인류 창의의 보고라 하겠소. 내가닥친문제, 공동체가, 국가가, 세계가, 우주가 닥친 문제를 푸는 공식을 제시하다니!

[레벨:11]비랑가

2014.01.28 (03:47:19)

타이밍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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