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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326 vote 1 2014.01.23 (17:25:45)

    딜레마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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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격하게 따지면 해리는 도깨비 그립훅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칸트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으며, 피치 못할 경우 해리 포터와 같은 선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친구가 옷장에 숨어있는데 살인마가 ‘친구가 어디에 있느냐?’고 캐물었을 때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대신 ‘조금 전에 PC방에서 친구를 봤다.’고 참말 만을 해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칸트는 말한다. 이때 조금 전에 친구와 PC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작위하여 적극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과 자기방어 차원에서 구태여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도덕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은 작위하여 에너지를 격발한 쪽에만 추궁되기 때문이다. 칸트의 엄격주의는 우리의 그러한 상식을 넘어선다.


    무엇이 거짓말인가? 상대방이 속았다고 느끼면 거짓말이다. 상대방이 성희롱이라고 느끼면 그것이 성희롱인 것과 같다. 여기서 핵심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신의가 깨지면 안 된다. 그러나 평소에 충분한 신의를 쌓아두었다면 거기서 좀 빼먹어도 된다. 철학자의 바른 가르침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평소에 신의를 쌓아두라.’다. 이것이 대칭을 비대칭으로 바꿈으로서 딜레마를 타개하는 시간지연의 방법이다. 신의의 축적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부의 작은 마찰은 외부의 큰 목표와 연계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용해된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기승전결로 이어지고, 기 단계에서 거짓말이라도 결까지 전개하여 가면 저절로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사건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그러한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다. 칸트는 거짓말의 상부구조로 인간의 원죄를 연결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에게 받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부모로부터 자식들에게 상속되듯이 인간이 거짓말을 하면 업보가 누적되어 죄가 가중되므로 어떤 거짓말도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칸트의 거짓말이고, 인간의 원죄는 없으며, 거짓말의 상부구조는 죄가 아니라 신의성실이다. 그러므로 충분한 신의를 축적한 경우에는 법적 표현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거짓말이지만 죄가 안 된다. 하부구조의 교착이 상부구조에 의해 타개된다.


    여기서 관점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칸트의 거짓말 해석은 죄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칸트가 보는 죄는 입자의 세계관이다. 거짓말 원소가 있다는 식이다. 그리스인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사랑의 신이 입김을 쏘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의 원소가 몸에 침투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는 식이다.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의 원소가 몸에 누적된다. 설탕을 먹다가 당뇨병에 걸리듯이 거짓말을 하면 죄가 축적된다. 과연 그런가? 완전성의 세계관은 입자를 부정한다. 사랑의 신이 입김을 쏘았기 때문에 사랑을 한다거나, 불화의 신이 다녀갔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성실은 개인에게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 일어난다. 입자가 아니라 완전성이다. 완전성이므로 99퍼센트 거짓말이라도 1퍼센트의 진실로 전부 진짜가 되고, 반대로 99퍼센트 참이라도 1퍼센트에 의해 전체가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의 누적에 의한 죄의 축적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이 액면에서 99퍼센트 틀렸더라도, 바닥에 1퍼센트의 진정성이 깔렸으면 김대중 대통령의 말은 백퍼센트 참이다. 지식인은 이를 가려볼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 몸에 손을 대면 성희롱이다. 그러나 자기 부인의 몸에 손을 대면 성희롱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부 사이에 신의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99퍼센트 성희롱이라도 1퍼센트의 신의가 있으면 성희롱이 아니다. 반대로 99퍼센트 성희롱이 아니더라도 1퍼센트의 악의가 있으면 백퍼센트 성희롱이다. 신의가 축적된 관계에서는 신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거짓말을 해도 된다. 단 도둑놈과의 관계는 신의관계가 아니므로 어떤 거짓말로 도둑을 속여도 상관없다. 그것은 강물이나 바위나 외계인과 한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항상 숨은 전제가 있고 은폐된 가정이 있고 이면에서 작동하는 상부구조가 있다. 칸트는 ‘개인의 죄’를 상부구조로 내세우지만 필자는 ‘사회의 신의성실’을 상부구조로 세운다. 개인을 추궁하면 입자의 세계관이고, 사회를 바로잡으면 완전성의 세계관이다. 노숙자의 문제를 개인의 상처 탓으로 돌리면 입자의 세계관이고 사회의 부족민 문화로 보면 완전성의 세계관이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대응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강신주가 가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광연 칼럼은 딜레마의 해결이 창의성의 핵심이라고 한다. 하부구조에서 공간적으로 교착된 딜레마는 상부구조에서 시간적으로 타개된다. 이때 숨은 상부구조를 찾아야 하며 그럴 때 얻어지는 것이 진정성이다. 역사와 진리 앞에서 큰 그림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장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큰 그림이 없이 현장의 팩트만으로 판단하려는 것은 지식인의 가식이다.


    중요한건 거짓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회적 신의성실 개념, 개인적 죄의 개념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이다. 이것이 원광연 칼럼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규정이다. 거짓말은 문제제기다. 해리의 방법은 문제해결이다. 둘 다 입자의 관점이다.


    베니스의 상인으로 보자. 안토니오는 멋지게 샤일록을 속여먹였지만 칸트는 안토니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짓말 맞다.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를 가졌으므로 아주 흉악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쁜놈과의 관계는 신의관계가 아니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허용되는 거짓말인데 그것을 우리는 전략이라고 한다. 만약 이런 식의 거짓말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역사책에 나오는 모든 전략을 거짓말로 바꾸어 역사책을 다시 써야 한다. 나폴레옹의 전략≫나폴레옹의 거짓말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 아니다. 신의를 깨지 않는 거짓말은 허용되는 전략이며 전투 중에 적군과는 신의가 없다.


    문제제기≫문제해결의 입자적 세계관으로는 답을 낼 수 없다. 사건의 기승전결로 보는 완전성의 세계관으로만 바른 답을 얻을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1.23 (18:19:36)

1.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두 공범이 협력을 해야지 서로에게 이득인데, 합리적으로 선택을 하면 서로에게 해악이 되는 딜레마를 대칭으로 본다면

반복을 통해 - 이때 대표적인게 팃포탯 전략 - 이 딜레마는 비대칭으로 극복이 됩니다. 
늘 말씀하시던 시간지연을 통해 비대칭으로 나아가고 딜레마를 극복한다는 말씀이 여기에 적용이 되네요. 
반복된다는 것이 곧 시간지연을 의미하니까요.
*근데 사족을 달자면 여기에 왜 대칭, 비대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지는 아직 소화를 못했습니다.

2.신의를 쌓아두면 조금 빼먹을 수도 있게된다. 

해리 포터의 세계속에서 마법사와 도깨비는 서로에게 적은 아니지만 큰 불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 포터는 집요정(=소설속 노예계급)을 위해 눈물 흘리고 무덤도 만들어주고, 

도깨비인 그립훅을 구해주기까지 합니다. 이를 신뢰쌓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위의 거짓말 역시 해리 포터나 마법사와 머글을 위한 것이 아닌
도깨비와 집요정을 포함한 세상 전체를 위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해리 포터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신뢰가 이처럼 쌓여있기에
도깨비 그립훅에 대한 거짓말, 신뢰 빼먹기는 "위법성이 조각" 되는 것이겠네요. 

3.김대중 대통령의 정계복귀
역시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온 평생의 신뢰쌓기로 
김대중 대통령의 말바꾸기가 자신이 대통령 되겠다는 욕심의 발로는 아닐것이라는 신뢰로 인해서 
"위법성이 조각" 되는 것이겠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3 (20:04:02)

비대칭은 단순히 대칭이 깨진다는 거죠. 즉 죄수 중에 하나는 보스, 하나는 부하인 거죠.
[레벨:10]다원이

2014.01.23 (23:50:16)

알만한 사람들이 가다가다 부딛치는 지점이 딜렘마. 이 지점을 뚫는 게 늘 화두였슴다.
[레벨:10]다원이

2014.01.24 (00:08:56)

대칭 비대칭 이게 간단히 말해 수평선에서 저울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중심을 붙들어 위로 끌어 올린다는 것이군요.
[레벨:8]상동

2014.01.24 (10:31:58)

거짓말하지마라 같은 도덕률은 계몽주의자의 헛소리 입니다.

이유를 알 능력이 안되는 비지성인(비과학인, 주술사)이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귀차니즘(의사결정회피)을 극복하지 못해

그냥 단순하게 동어반복(언어능력부재)하며 설명한 척하고

결국은 명령(자기소개)한 겁니다. 그게 도덕이죠.


현실은 관계가 긴밀해지느냐, 깨어지느냐 이거 뿐이죠.

단기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장기적으로 깨지는 것이 있고,

단기적으로 깨진 듯해도 결국 장기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4 (10:47:47)

대칭은 50 대 50입니다.

비대칭은 이게 60 대 40으로 기울어지는 거죠.

가속적으로 기울어져서 결국 100 대 0으로 됩니다.

그 이유는 공간적 대칭을 시간적 대칭으로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갑과 을이 2 대 2면 공간의 대칭이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 상황.

갑과 을이 2 대 1+1이면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이건 시간적 대칭입니다.

즉 2 대 2가아니고 2대 1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1입니다.

대부분의 딜레마 문제들은 이런 원리로 돌파됩니다.

다른 경우도 많은데 따져보면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 상의 대칭은 그 시간이 되기까지 비대칭입니다.

드라마로 보면 기승전결에서 기 안에 흥부와 놀부의 대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기승과 전결의 대칭으로 바뀝니다.

 

[레벨:10]mensura

2016.11.23 (11:31:58)

"내부의 작은 마찰은 외부의 큰 목표와 연계함으로써 시간 속에서 용해된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기승전결로 이어지고, 기 단계에서 거짓말이라도 결까지 전개하여 가면 저절로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사건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아름답습니다...


동렬님, 그렇다면 내부의 마찰이 무척 큰 경우에는 외부의 더 큰 목표와 연계시켜야 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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