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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82 vote 0 2022.07.24 (19:25:55)

    각국의 과학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온난화 위기 해결은 의외로 쉽다. 몇십조 원의 투자로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도 제안되고 있다. 아이디어는 다양하게 있다. 햇볕만 차단하면 되니까. 사막과 하늘과 바다 위에서 햇볕을 반사시키면 된다. 그런데 안 한다.


    왜냐하면 국가 간에 합의가 안 되기 때문에. 온난화로 이득을 보는 나라와 손해를 보는 나라가 있는데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온난화를 막았을 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는 나라가 있다면? 온난화를 막고 문제를 해결하면 그 틈새를 노리는 자가 반드시 있다.


    온실가스가 줄어든 만큼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는 반칙국가, 얌체국가가 반드시 나온다. 온실가스가 1퍼센트 줄었다면 이제 한숨 돌렸으니 몰래 1퍼센트 더 배출하자는 식이다. 여기에 상호작용의 균형선이 있는 것이며 균형선은 고통과 인내심의 균형이다.


    균형선을 찾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고통에 예민한 자가 피해를 보고 고통에 둔감한 자가 민폐를 끼친다. 사람은 원래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인다. 온실가스 문제 합의의 어려움이 100이면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해결하는 합의의 어려움은 1이다.


    인류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할 것이다. 100년 전에도 인류는 위기였다. 맬서스 트랩은 프릿츠 하버가 해결했지만, 비료 공급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므로 기어코 전쟁을 벌였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당시 세계인구의 3퍼센트가 죽었다. 인류는 다시 한번 양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재앙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특정 국가의 압도적인 생산력의 우위로 힘으로 밀어붙이게 되거나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내겠지만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 인류에게는 그만한 역량이 없다. 고통과 인내의 균형선을 찾으려면 고통을 겪어야 한다. 런던이 스모그에 찌들어도 영국인들은 잘 참았다. 놀라운 인내심으로 버틴 결과 1만 2천 명이 죽고 10만 명이 입원했지만, 처칠은 꿈쩍하지 않았다. 런던대공습도 견뎠는데.


    안개 따위에 호들갑을 떨다니 남자답지 못해. 런던 스모그는 처칠이 짤리고 1년 뒤에 청정대기법을 통과시켜 해결했다. 처칠 같은 곰들은 도처에 있다. 인류가 다 죽어도 엄청난 인내심으로 버틴다.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해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대재앙의 날짜를 조금 뒤로 미룰 수는 있다. 태양열의 90퍼센트는 바다가 흡수하므로 인류가 재앙을 실감하는 데는 시간차가 있다. 암에 걸려도 증상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 열의 대부분은 바다가 흡수하고 데워진 바닷물이 적도 부근에서 먼저 부피가 늘어난다.


    적도지역의 해수면이 먼저 상승하므로 극지방에 가까운 나라는 신경을 안 쓴다. 우리가 모르는 새 지구의 어떤 보이지 않는 균형력이 온난화를 막고 있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터진다. 바닷물이 더워져서 해류의 방향을 바꾸면 소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 이미 와 있다면? 


    우연히 찾아온 소빙하기가 온난화를 막고 있었다면? 갑자기 터진다. 균형추는 반대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기온이 더 올라가야 했는데 지구의 균형력이 온난화를 막고 있다가 한계에 봉착하여 균형추가 무너진다면 삽시간에 대재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지표가 움직일 뿐 바다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움직인다. 그때가 아마겟돈의 날이다. 과학자의 기술로 대기에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그 대기는 국경을 넘어간다. 인류가 합의해야 하지만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고집불통 사대천왕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온난화의 주범은 미국과 서방이다. 그런데 왜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가 고통을 분담하지? 미국과 서방의 고통전담이 정의다. 각국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때 드는 비용이 그래서 얻는 이익을 초과하므로 말 안 듣는게 합리적이다


    지구와 인류는 대멸종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지금 인류는 고통에 적응하고 있다. 온난화의 고통에 인류가 적응한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재앙이다. 뚝심을 발휘하여 스모그를 견디는 대악마 처칠처럼 인류는 점차 고통에 적응해 간다.  


    전선에서는 청년들이 매일 수천 명씩 죽어가는데 후방에서는 밤마다 댄스파티가 벌어진다. 625 때 그랬다. 인류는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 시행착오 없이 오류시정 하는 일은 인류 역사에 한 번도 없었다. 두 갈래 길이 있다면 인류는 언제나 나쁜 길을 고른다. 


    가다가 고통의 균형점을 발견하고 이 길이 아닌게벼를 시전한다. 만약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면 고통의 균형점을 찾지 못하므로 결국 더 큰 사고를 치게 된다. 매국노 플라톤은 스파르타를 이상국가로 여겼다. 이상국가는 고통을 잘 견디며 이상하게 망한다. 


    위험을 밖에서 철저하게 틀어막으면 조금 늦게 그리고 한 방에 망한다. 민주당은 눈곱만한 실수도 언론이 미친 듯이 물어뜯고 국힘당은 대놓고 반역죄를 저질러도 언론이 문책하지 않는다. 조중동이 스파르타식으로 완벽하게 반역자를 보호하다가 한 방에 뚫리는 거다. 


    민주당은 뼈가 속에 있어서 쉽게 피부가 찢어진다. 상처가 눈에 보인다. 국힘당은 조중동 보호막으로 뼈가 겉에 있어서 피부가 멀쩡하다. 그러나 게딱지가 뚫리면 한 방에 간다. 조중동 보호막이 뚫리면 한 방에 넘어간다. 민주당은 살이 찢어져도 뼈가 막아주는데.


    언론의 배신에 혼란은 계속된다. 인류는 고통의 균형점을 찾지 못했다.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도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도 견딜 만하다는 처칠 같은 곰들이 널려 있다. 대재앙을 맞아서 지구촌 인류의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해도 놀랍지 않다.


    하청업체를 쥐어짜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지? 약자를 억압하면 어디까지 견디지? 부모가 자녀를 닦달하면 어느 시점에서 더 못 견디고 가출하거나 자살을 결심하지? 고통의 방정식이 있다. 인류는 어떻게든 그것을 확인하고 만다. 그사이에 수억 죽는게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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