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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28 vote 0 2022.12.27 (19:25:00)

    긴 겨울이 될 모양이다. 추사의 세한도를 떠올리자. 힘들수록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작은 싸움을 지면 큰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인구절벽 시대에 우리가 세계로 도약하는 큰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은 샅바싸움에서 밀렸을 뿐 큰 본질에서는 지지 않았다.


    작은 싸움을 지면 더 작은 싸움으로 받아치려는 유혹을 받는다. 저쪽에서 지엽적인 것을 물고 늘어졌으니 우리는 더 작은 것을 발굴하여 쉽게 이기자는 생각이다. 김건희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가야 한다. 진보는 역사와 문명의 흐름에 묻어가야 한다. 


    진정성이니 성찰이니 도덕이니 하며 작은 이미지 놀음에 매몰되지 말고 인터넷과 스마트와 인공지능이라는 큰 흐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냉전에서 데탕트로 갔듯이 신냉전에서 신데탕트로 가는 흐름을 타야 한다. 주기적인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맥놀이도 있다. 


    우리가 기술로는 세계 경제 5강에 올랐으니 할 만큼 했고, 문화로도 한류의 기세를 생각하면 부끄럽지 않다. 스포츠도 월드컵 16강이면 선전한 셈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한반도는 특별한 지정학적 실험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가 될 수도 있고 복이 될 수도 있다. 


    독일은 합리적이고, 영국은 실용적이고, 프랑스는 감성적이다. 그들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주변 국가들이 하는 것을 보고 적당히 빈틈을 채워주면 된다. 스위스는 일 년에 투표를 40번 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가 안 하니까 스위스가 한다. 스위스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정학이 중요하다. 서유럽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알프스 산록을 차지한 그들은 쉽게 특별해질 수 있다. 적당히 분위기를 보고 남들이 안 하는 것을 고르면 된다. 영국은 300년 동안 대륙에서 절대강자가 뜨면 그것을 막는 균형자 역할을 했다. 반대편 러시아도 같다. 


    나폴레옹을 막고 히틀러를 막은 것은 영국과 러시아다. 각자 지정학적 잇점을 살려 주어진 역할을 완수한 것이다. 남들이 쳐다보면 그 일을 해야 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막을 나라는 러시아 밖에 없다. 말 안 해도 눈치코치로 답을 아는데 아시아는 그게 안 된다.


    한국은 주변에 역할을 나눠가질 나라가 없다. 영국과 독일이 손잡고 프랑스를 치는가 하면 독일과 러시아가 손잡고 폴란드를 갈라먹고 하는게 있는데 한국은 주변에 편 먹을 이웃이 없다. 북한은 때려죽이려 하고, 일본은 씹어죽이려 하고, 중국은 밟아죽이려 한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만과 베트남도 거리가 멀고 문화가 다르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우뚝 서야 한다. 스위스가 서유럽 중간에서 그들만의 뭔가를 보여주듯이 한국도 중러미일 절대강자 사이에 끼어 한국만의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아시아가 힘을 합쳐 서양을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줘야 젊은이 생각이 바뀐다. 북한은 나쁘고, 일본은 밉고, 중국은 싫고 어쩌자는 것인가? 내부에서 답을 찾을 수 없으면 외부를 봐야 한다. 아시아에서 안 되면 세계로 가야 한다. 천하 단위의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일본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의 차이는 리얼리즘에 있다. 일본은 뭔가 과장되어 있고 대부분 코미디에 가깝다. 미국 드라마도 자연스럽지 않다. 시즌을 울궈먹는 틀에 박힌 전개가 있다. 한국이면 두어 달에 끝날 단순한 소재로 몇 시즌을 때우려 하니 카이지 현상이다. 


    긴장을 계속 높여가며 종국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힘을 줬다가 뺐다가 하며 패턴을 반복해서 관객이 지치게 한다. 범인을 잡았다가 막판에 놓치고 또 잡고 또 놓치고 반복하니 시청자가 예언자가 된다. 어차피 쟤는 범인을 못 잡아. 왜냐하면 내년 시즌이 또 있거든. 


    중드는 유치한 무협지가 판을 친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멀리하라고 가르쳤지만 중드는 죄다 음모에, 도술에, 장풍에 장난이 아니다. 계절은 언제나 꽃 피는 봄이다. 죽어보자고 공자 말씀을 듣지 않는다. 한드는 막장 재벌놀이라도 연기는 리얼하게 사실적으로 한다. 


    서구의 기독교적 편향에서 자유로운 한국식 사실주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식 사실주의 원형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에겐 몸에 밴 공자의 가르침이 있다. 기독교적 흑백논리와 다른 기생충의 시선은 라쇼몽과 깨달음과 같은 것이다. 일본은 몰랐다.


    라쇼몽을 외면하다가 수상소식이 들리자 뒤늦게 극장으로 달려갔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색다르게 보인다. 국뽕에 환빠짓 자기소개 곤란하고 우리는 대본대로 가야 한다. 한국의 전통과 역사와 철학과 지정학이 우리에게 주어진 대본이다. 


    내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한국에 요구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남들이 쳐다보면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 


[레벨:2]제리

2022.12.28 (10:11:35)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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