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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126 vote 0 2021.12.15 (12:17:21)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건물주라는 점이다. 이런 것은 잘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가게만 열면 장사가 된다고 믿는다.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 전에 먼저 와서 나무를 베고, 늪지를 메우고, 바위를 캐내고,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은 사람의 노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건물주에게 피를 빨리고 죽는다.


    세상은 맞물려 돌아간다. 가장 무서운 놈은 그 '맞물려 있음'이라는 놈이다. 그것이 구조다. 인간들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의 배후에는 항상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뒤에서 리모컨으로 조정하고 있다. 건물주가 세입자의 피를 빨고 있다. 진중권이 저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주변을 보라. 뒤에서 월급 주는 놈이 있다. 그놈에게 영혼을 빨리고 있다.


    엔트로피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맞물려 있음'이라는 놈을 쥐어짜서 에너지를 조달한다는 거다. 맞물림을 쥐어짜면 풀린다. 톱니가 붙어 있던 것이 떨어진다. 기어가 빠지고 클러치가 풀린다. 닫힌계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맞물림이 소모된다.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맞물리지 않고 겉돌고 있음의 증가다. 자연의 저절로 굴러가는 모든 사건은 '톱니가 맞물려 있음'에서 '기어가 풀려서 겉돌게 됨'의 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어떤 것이든 사건의 이전단계가 있다. 이전단계와 맞물려 있다. 우리는 그 부분을 놓친다. 장사하기 전에 먼저 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전에 토목공사가 진행되었고, 그 이전에 대지가 확보되어 있었다. 그 이전단계의 영향을 놓치므로 다음단계를 예측하지 못한다. 우주의 근본은 구조의 맞물려 있음이다. 그것이 시장에서는 이윤이고, 정치판에서는 권력이고, 물질에서는 관성이고, 사건에서는 기세다. 맞물림이라는 숨은 플러스 알파가 모든 것을 컨트롤 한다.


    엔트로피를 안다는 것은 의사결정구조를 안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구조문제에 수학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반대로 구조론은 엔트로피를 수학의 언어가 아닌 일반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변화의 원인을 설명할 때는 우리는 세 가지를 추적한다. 하나는 주체의 변화다. 둘째는 객체의 변화다. 세번 째는 둘의 상성이다. 내가 잘해서 이길 수도 있고, 상대가 못해서 이길 수도 있고, 둘의 궁합이 결정할 수도 있다. 격투기라면 실력이 있는데도 특정 선수에게는 고전한다든가 하는게 있다. 그 경우 상성이 맞지 않은 것이다. 가위바위보와 같다. 그래플러는 타격가를 이기고, 타격가는 만능형을 이기고, 만능형은 그래플러를 이긴다는 말이 있다. 무하마드 알리를 이긴 바 있는 조 프레이즈가 조지 포먼에게 지는 것도 같다. 알리와는 대등하게 싸웠는데 포먼에게는 일방적으로 깨졌다. 현격한 신장의 열세 때문이다. 팔이 짧아서 주먹을 휘둘러도 닿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사정은 열린계에 속하므로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용해된다. 주사위의 눈이 균일하지 않게 나오면 객체인 주사위를 잘못 만든 것이다. 혹은 주체인 사람이 주사위를 잘못 던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대응된다. 주사위를 고쳐서 다시 던지면 된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둘의 상성이다. 상성은 닫힌계에 속하므로 해결할 수 없다. 연주자의 실력과 곡의 난이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악기들 간의 상성은 어쩔 수 없다. 현악 4중주단을 편성할 때는 고려해야 한다. 엉뚱한 악기를 집어넣으면 안 된다.


    화살이 안 맞으면 궁수가 분발하거나 더 좋은 활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둘 사이의 거리다. 활터의 사거리는 정해져 있다. 이쪽의 힘을 키우거나 상대가 기술을 못 쓰게 할 수 있다. 둘의 관계는 어쩔 수 없다. 열린계는 대응할 수 있는데 닫힌계는 어쩔 수 없다.


    상대성의 열린계 - 주체와 객체의 변수
    절대성의 닫힌계 - 둘의 상성, 궁합, 맞물림, 의사결정구조


    둘의 상성만 따지면 그게 수학이다. 다른 부분은 논외로 하고 그 부분만 보자는 거다. 상대성이 작용하는 주체와 객체는 놔두고 절대성이 작용하는 둘의 맞물림만 따지는 것이 수학이다. 에너지 개념이 그러하다. 세상을 알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물질의 변화를 궁극적인 단계까지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를 돌려도 태풍의 진로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알 수 있다. 북반구에서 모든 태풍은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외부변수를 닫아걸고 물레와 방아의 관계만 따지는 것이 엔트로피다. 수량이 줄어들면 물레방아가 돌지 않는다. 곡식의 껍질이 단단하면 방아를 찧기 어렵다. 물레를 돌리는 물의 수량과 방아를 찧는 곡식은 열린계다. 이런 부분은 조정된다. 더 많은 물을 끌어들이고 더 적은 량의 곡식을 찧으면 된다. 그런데 물레와 방아의 관계는 닫힌계다. 이건 고정되어 있다. 언제나 물레가 방아를 돌리지 방아가 물레를 돌리지 않는다. 톱니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과 수학과 엔트로피와 에너지는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둘의 관계를 보는 것이다.


    구조론 - 서로 맞물린 지점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수학 - 둘의 관계만 본다.
    에너지 - 일의 작용측에 주목한다.
    엔트로피 - 작용측이 수용측에 앞선다.


    자동차의 엔진과 바퀴 사이의 관계만 따진다. 엔진에서 피스톤이 한 번 움직일 때 바퀴가 몇 번 도느냐다. 운전기사가 누구든 도로가 어떻든 상관없다. 이건 고정되어 있다. 닫혀 있다. 엔진과 바퀴 사이에 다른 것이 끼어드는 일은 없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만 보고, 최성해와 진중권의 관계만 본다. 누가 영혼을 빨렸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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