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414 vote 0 2023.12.25 (15:36:36)


    옛날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사주팔자가 그것이다. 운명은 봉건사회의 신분제 한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민은 양인과 결혼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요즘은 운명적인 사랑과 같이 드라마틱한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


    신랑이 손해 보는 결혼이라거니 신부가 어쨌다거니 하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넘친다. 그들은 운명을 믿지 않는 속물이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운명을 극복하는 갑작스런 신분상승이 사라진 시대다. 운명에 맡기는 모험과 도전도 사라졌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떠올리자. 빠빠빠빰 하고 초장부터 세게 나간다. 다시 차분해진다.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듯 고요하게 호른 소리가 들리다가 콰콰콰쾅 하고 터뜨린다. 대포 소리 들리고 말발굽 소리 요란하다. 운명은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리는 것이다.


    베토벤의 귀는 나빠졌고 나폴레옹은 비엔나를 향해 진격했다. 이제 선택지가 없다. 죽거나 나쁘거나 운명을 따라간다. 운명은 선택지를 줄이는 외부의 힘이다. 운명의 힘을 믿는 사람은 스스로 선택지를 줄인다. 이몽룡은 성춘향이 아니라도 선택지가 있었다.


    혜가는 달마 앞에서 왼팔을 잘라 선택지를 없앴다. 유비, 관우, 장비는 도원결의를 해서 선택지를 줄였다. 그 방법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운명은 사회적 관습이나 물리적 한계로 정해진 것도 있고 스스로 개척하는 것도 있다. 에너지와 선택지의 교환이다.


    인생의 본질은 사랑도, 행복도, 쾌락도, 성공도 아닌 운명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여 우연을 필연으로 바꾼다. 신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운명이다. 신의 응답을 들었을 때 전율하는 것이 운명을 거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신을 믿는 것은 운명을 믿는 것이다. 운명을 믿는 것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믿는 것이다. 운명을 걸고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서로 연동시키는 것이다. 하나가 죽으면 모두가 죽는 구조를 만들면 그 군대는 무적이 된다. 운명은 구조의 힘을 이용한다.


    왜구가 강한 이유는 영주가 죽으면 가신도 죽는 구조 때문이다. 척계광의 원앙진이 강한 이유는 지휘관 하나가 죽으면 분대원 12명이 모두 처형되는 구조 때문이다. 테베의 신성부대가 강한 이유는 파트너가 죽으면 자신도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신성부대는 게이 150쌍 300명으로 구성되는데 파트너를 잃고 혼자 부대에 남을 수는 없다. 인생의 모든 자원을 한 곳에 연동시켜 몰빵한다면 그것은 운명이다. 그럴 때 답은 정해져 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직진한다. 곁눈질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사랑과 운명은 비슷하다. 둘은 에너지를 끌어모은다는 점이 같다. 다만 사랑은 소승적이고 운명은 대승적이다. 사랑은 자신의 호르몬을 변화시켜서 선택지를 좁히고 운명은 주변 물리적 환경을 변화시켜서 선택지를 좁힌다.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6656 유튜브 양자역학 텍스트 김동렬 2024-02-05 1547
6655 논리의 오류 김동렬 2024-02-04 1474
6654 양자역학 김동렬 2024-02-03 1625
6653 진평분육 김동렬 2024-02-02 2044
6652 호남 가서 약자혐오 이준석 1 김동렬 2024-02-01 2086
6651 존재는 도구다 김동렬 2024-02-01 1316
6650 조절이냐 선택이냐 김동렬 2024-01-31 1533
6649 주체의 사상 김동렬 2024-01-30 1641
6648 예뻐지고 싶다는 거짓말 김동렬 2024-01-30 2295
6647 조절장치 김동렬 2024-01-29 1524
6646 간섭 김동렬 2024-01-28 1808
6645 천공의 전쟁지령 김동렬 2024-01-27 2820
6644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828
6643 권력자의 심리 김동렬 2024-01-25 2527
6642 석가의 깨달음 김동렬 2024-01-25 2248
6641 이언주의 귀환 김동렬 2024-01-23 2909
664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577
6639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495
6638 클린스만은 손절하자 김동렬 2024-01-21 3369
6637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