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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좌석에 앉은 지체장애인은 계속 라이터를 깜박거린다. 위험한 눈앞에 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는 타인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지가 불가능하다. 내가 내 마누라를 팬다는데 이웃사람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못한다.

아니다. 이 사회는 터무니 없이 타인의 행위에 간섭하곤 한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관심법이 타인의 마음 속 까지를 투시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연인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기라도 했다면 어디선가 유림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회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진보하고 성숙한 사회는 후진국의 낙후된 사회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과, 개입하지 말아야 할 영역 사이에 적절하게 금을 긋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화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진보한 사회일수록 더 깊숙히 개입하고 참견한다.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대신 사적인 영역에서는 진보한 사회일수록 개입하지 않는다. 남이야 뭐라하든 개인은 자유롭게 방임한다.

『국가에는 더 많은 역할을, 개인에게는 더 폭 넓은 자유를』

세계에서 감시카메라가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빅 브라더'를 예언한 '조지 오웰'의 나라 영국이다. 도로에만 2만개 이상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다 한다. 덕분에 노상에서의 범죄는 50프로 이상 감소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번 이상 감시카메라에 노출되고 있지만 잘 살고 있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될 것이라 확신한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있다. 앞으로는 자기집 강아지에 발길질을 해도 이웃으로부터 고발을 당하는 사회로 간다.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해도 제지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공적인 영역에서는 점점 금제가 늘어나고 있다. 발신지 추적으로 119에 장난전화를 걸 수 없게 된 것이 그 예다.

반면 사적인 영역에서는 남이야 불온서적을 읽든, 내 집에서 나체로 생활을 하든, 국가나 사회가 간여하지 않는다. 물론 윤리와 도덕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어른과 어린이는 대접이 달라야 한다. 이등병은 통제를 받아도 말년 병장은 통제를 받지 않듯이 말이다.

어린이라면 사적인 영역에서는 적절하게 통제되는 반면, 공적인 영역에서는 오히려 자유롭게 방임된다. 어린이 놀이터나 학교운동장에서는 제멋대로 떠들고 뛰어놀아도 좋다. 오히려 집안에서 두 손 들고 벌 서기 일수다.

어른은 다르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적절한 감시와 통제가 뒤따르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는 무슨 짓을 하든 국가가 상관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윤리와 도덕은 타인에게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용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차원에서 개인이 스스로 신용을 관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생각하라! 사람으로 태어나서 산다는게 뭔가? 내나라 내 땅에서, 내 하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한다면, 성인이 되어서까지 윤리와 도덕의 이름으로 사상과 양심을 검열 당한다면, 존엄을 빼앗기고 그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전환수술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마리화나를 피우든, 나체춤을 추든, 오현경이나 백지영이 포르노를 찍든 내 맘대로다. 사회는 이 방향으로 간다. 그게 진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공적인 영역에서는 더 긴밀하게 조직되어야 한다. 문제는 국제사회다. 국제사회는 어리석은 전쟁의 교훈을 통해서만 진보하는가? 사진은 주인 잃은 카메라에 찍힌 장면

답은 진보주의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과학이 발달하는 정도에 비례해서, 또 첨단무기가 개발되는 속도에 비례해서, 또 도시화가 진전되는 속도에 비례해서, 인간의 사회 또한 고도로 조직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사회의 조직화에 찬성하는 것이 진보주의이고, 그러한 조직화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주의이다.

문제는 그 조직화가 사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로 침범한다는 사실에 있다. 현실 사회주의권의 실패원인이 거기에 있다. 역사의 경험칙이 증명하듯이 인류문명의 진보는 공적인 영역에서는 고도로 조직화하되, 반대로 사적인 영역에서는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서프라이즈는 말하자면 자유주의자들의 모임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자유이어야 한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국가의 개입과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 요즘 작은 정부가 구호이지만 필자는 프랑스처럼 공무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어디까지가 공적인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사적인 영역인지를 적합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이러한 구분이 적합하게 이루어진다면, 고도로 발달한 복지사회와 무제한적인 개인의 자유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사상 최대의 위험인물 부시

아무리 봐도 심신이 멀쩡해 보이지는 않는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면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아무도 부시 한 사람을 제지하지 못한다. 단세포의 야만 앞에서 지성은 무력하다. 그들의 콜롬비아호는 폭발해버렸고 한국의 지하철은 불타버렸다.

설계자는 만전에 만전을 기했을 것이다.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문명한 시대에 가장 원시적인 사고가 일어나는가?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인터넷 대란을 일으킨 웜 바이러스도 원시적인 형태의 컴퓨터바이러스였다고 한다. 첨단문명을 두들겨 부수는데는 가장 원시적인 망치가 최고다.  

환멸의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인류문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자연의 질서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 정교한 기계일수록 원시적인 방법 앞에 취약한 법이다. 지식인을 무너 뜨리는 방법은 조폭 식의 무대뽀로 가는 거다. 문제는 그 무대뽀의 망치가 부시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첨단무기가 개발될수록, 국제사회 또한 고도로 조직화되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보수주의의 방법으로는 지하철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난폭자의 등장을 막을 수 없다. 개인의 자유가 커질수록 같은 비례로 공적인 영역에서는 지성에 의해 감시되어야 한다.

지금 인류의 지성은 죽었고 난폭자는 등장했다. 어어.. 하고 있다가 당하고 말 것인가?

덧글..
통절한 마음에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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