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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593 vote 0 2012.11.26 (13:53:53)

 

    돈오는 역산방식이다.

 

    페이스북에서 본 마케터님 글을 인용한다.

 

    예전에 일본 사이트에서 본 파일이다. 심리학과 경영학에 대한 내용인데 그 중에 ‘여자꼬시기 비법’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역산계획방식이라고 했다. 먼저 목표를 정한다. 예를들어 두달 뒤에 자주가는 편의점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겠다 이렇게 목표를 정한다. 데이트를 하려면 사귀자고 고백을 해야 한다. 고백을 하려면 일단 말을 붙일 계획을 잡아야 한다. 이런식으로 계획을 시간의 역순으로 정리한다.

 

    D+60일 : 데이트 성공하기
    D+45일 : 고백하기
    D+10일 : 의외의 순간 만들기
    D+5일 : .....
    D+1일 : .....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오게 되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그래 지금부터 일단 운동을 해서 복근을 만들자. 이런 액션플랜이 짜여지는 것이다.

 

    많은 실패의 이유는 실행계획을 역산방식이 아닌 순차방식으로 짜기 때문이다. 오늘 뭘해야 목표에 다다르는지 그 연관성을 찾지 못한다. 그러니 계속 계획만 짜고 실행은 못하는 거다. (마케터 김형석)

 

    ###

 

    질의 개념은 이런 것이다. 차를 마시려면 찻잔부터, 찾잔을 놓으려면 잔받침부터, 잔받침을 놓으려면 테이블부터. 그 이전단계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질이다. 최종단계는 진리요 자연이요 완전성이요 역사요 신이다.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동기부여는 무엇일까? 욕망?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은 돈이든, 명성이든, 미녀든 어떤 것을 들이대도 시큰둥하다. 그들은 금요일에 주급을 받으면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는다. 술을 가져다 주면 조금 움직이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존엄이다. 세상의 중심에 선다면 바로 뛰어든다. 세상이 당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 그들도 분연히 일어선다. 그 어떤 게으럼뱅이도 미친 듯이 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는 아프리카나 남미 사람들에게 존엄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냥 ‘당신도 잘났어. 당신도 훌륭한 인간이야.’ 하고 말해봤자 시큰둥하다. 왜? 공동체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질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전제가 충족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역산방식에 따른 이전 단계가 준비되지 않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당장 서구인처럼 일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뭐하고 있어? 당장 데이트를 하지 않고?’ 하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남녀관계는 어색하다. 어색한 부분이 약한 고리다. 그 부분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길거리 작업을 시도한다면 곤란하다. 그것은 어색하고 창피하고 부자연스럽다. 마땅히 삼갈 일이다.

 

    길거리에서의 만남을 기대한다면 중고 외제차라도 뽑아놓고 ‘야 타!’를 시도하는게 맞다. 옷도 세련되게 갖추어 입고, 능란한 화술도 익혀놓고, 여성에 대해 충분히 학습한 다음에 시도하는게 맞다. 들이대기는 무리수다. 어색함을 정면돌파하라는 말은 무리수임을 인정하고 사전에 전제조건을 갖추라는 말이다.

 

    인터넷에 많이 올라오는 남자의 푸념은 여친이 이유없이 화를 낸다는 거다. 사과를 했는데도 화를 낸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느 거다. 여친이 이유없이 화를 냈다고 치자. 사실은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여성이 남성의 심리를 모른다는 거. 또 여성이 배란기, 황체기, 생리기 등의 신체리듬이 있다는 거. 여성이 사적으로 곤란한 사정이 있다는 거. 옷이나 머리모양이나 화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등의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남자에게는 우선 웃지 않았다는 이유가 있다. 한번 밖에 웃지 않은 이유도 있다. 목소리 톤이 어둡다는 이유가 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는 이유가 있다. 예쁘다고 말해주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한 번 밖에 예쁘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대화 중에 딴전을 피운 이유가 있다. 여친이 전에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여친이 신경을 쓴 화장, 복장, 머리, 향수에 무관심한 이유가 있다. 그 공간의 분위기에 맞는 행동이나 자세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유는 백 가지도 넘는다.

 

    치명적인 것은 여친의 불평에 남자가 ‘미안해’ 하고 사과 한 마디로 대충 때우려 하는 것이다. 마땅히 예쁘다고 열 번 말해주기, 옷이나 화장 등을 열 번 칭찬해주기, 서프라이즈 쇼 해주기, 개인기 발사 3회 반복, 생글생글 눈웃음 3회연속 시도 등을 실천했어야 했다. 여친은 남친의 사과를 바라는게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남친이 존경스럽지 않다는 거다. 존엄이 훼손된게 가장 큰 이유다. 남자는 여자의 웃음 한 번에 풀리고 여자는 존중받을 때 풀린다. 남자가 스스로 존엄할 때라야 여자는 존중받는다.

 

    이것이 챙겨야 할 질이고 전제고 밀도다.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일하지 않을까?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한국에 온 백인선교사들이 도무지 일을 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보고 왜 한국사람들은 게으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왜 사과를 했는데도 여자친구가 화를 풀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것과 같다. 무엇인가? 풀세트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존엄은 기승전결로 완전성의 풀세트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작동한다.

 

    지금은 필자가 아프리카나 남미를 거론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백년전 서양 선교사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지금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동기부여가 작동한 것이다. 무엇이 다를까?

 

    한국인은 마케터님이 말한 역산계획이 충족되었다. 전제조건이 갖추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데이트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그 이전에 열 번 웃어주고, 열 번 칭찬해주고 열 번 분위기를 맞추어 주었다. 한국은 625 때 처음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할 때 인간은 변한다.

 

    무엇이 다른가? 아프리카는 유교주의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끈끈한 가족주의도 없고, 조국이라는 가족도 희미하다. 더욱 세계사나 인류애는 배우지 못했다. 625로 주목받은 한국과 달리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즉 공동체의 밀도가 낮은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 특유의 부족주의는 개인의 튀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발전에 치명적이다. 부족 전체의 지위가 상승하지 않은 채로 개인이 부를 얻거나 명성을 얻는 것을 공동체가 용납하지 않는다.

 

    남녀관계의 밀도를 채우는 것은 생글거리기 열 번, 칭찬해주기 열 번이라면 공동체에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연결하는 긴밀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한국은 유교주의에 기초한 가족주의가 있기 때문에 그게 된다. 아프리카의 전체 아니면 전무를 요구하는 부족주의가 그것을 가로막는다. 가족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 국가, 민족, 인류, 세계, 우주, 진리, 신까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 발달과정이 정교하게 짜여져야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월드컵 축구중계 때는 미친 듯이 열광한다. 그 순간은 그들도 세상의 중심에 서서 존엄을 맛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나 보다는 가족과 친구, 가족 보다는 민족과 세계와 인류, 더 나아가 진리와 자연과 신에게 연결될 때 인간은 목숨을 건다. 그만큼 밀도가 채워져야 한다.

 

    존엄은 풀세트여야 한다. 욕망이니 금덩이니 출세니 하는건 파편화된 부스러기다. 르네상스가 위대한 것은 단순한 기술의 전파에 그치지 않고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와 라파엘로를 통해서 완전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최종단계의 신에게까지 닿는 풀세트가 갖추어졌다. 아프리카나 남미에는 그것이 없다.

 

    여러번 했던 돌도끼 이야기다. 백인들이 정글을 탐험하다가 돌도끼로 다섯 사람이 여섯시간이나 걸려서 나무 한 그루를 자르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혀서 가지고 있던 쇠도끼를 건네주었다. 쇠도끼의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백인이 시범을 보여주자 부족민이 이를 따라했고 그들은 쇠도끼로 5분만에 간단히 나무를 자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백인들은 몇 개월 후 탐험을 마치고 다시 그 마을로 돌아왔다. 그들은 상상했다. 자기네가 가져다 준 쇠도끼로 그 정글에서 작은 르네상스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목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주거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야자나무 잎사귀로 조그만 집을 짓던 그들이 큰 나무를 잘라서 제대로 된 집을 짓고 타 부족의 존경을 받으며 정글에서 크게 선풍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몇 개월 후 그 마을을 방문하자 부족민은 쇠도끼를 버리고 다시 돌도끼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정글의 작은 르네상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쇠도끼에 손가락을 다치는 사람이 나타나자, 제사장이 나타나 악령이 깃들어 있는 쇠도끼를 버리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들은 쇠도끼에 흥미를 잃었다. 목재로 잘 지은 큰 집에 대한 욕망 따위는 없었다. 큰 집? 필요없어. 움막이면 충분해.

 

    문명은 풀세트가 아니면 안 된다. 인디언들은 백인에게 술이나 달라고 할 뿐 별다른 욕망을 내보이지 않는다. 미녀나 돈이나 금이나 출세로 그들을 유혹하기는 불능이다. 왜? 그따위로 존엄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존엄은 싸이가 유투브 8억뷰로 세계를 한번 들었다 놓듯이 세계와 인류와 신에게까지 닿아야만 하는 것이다. 신과의 직통전화를 개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학의 완전성은 기승전결로 풀세트가 갖추어짐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기술의 전파가 아니라 근대성의 동기부여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와 라파엘로가 완전성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은 개인의 작은 이익에 만족하지 못한다. 신에게까지 연결시켜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단 돈 백만원에도 홀려서 사고를 치지만 이는 다른 부분이 넉넉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존엄의 토대가 상당히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어린 자녀를 조기유학 보냈다고 한다. 자녀는 미국에서 몇 년 생활했을 뿐인데 다시 한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선배가 ‘야 공 주워와!’ 하고 시키면 ‘내가 왜 공을 주워와야 해?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하고 불평하는 식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김경준의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무국적자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김경준은 한국문화에 적응할 마음이 없다. 미국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미국에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다. 한국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그 자녀의 부모는 무리한 조기유학으로 소년의 존엄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밀도가 낮아졌음을 모른다.

 

    크게 펑크가 나서 에너지가 새고 있음을 모른다. 밑빠진 독이 되었다. 물이 새고 있다. 위험하다. 조기유학은 보이지 않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어느 사회에든 제대로 적응할 마음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미국의 자유로운 공기가 한국의 엄격한 문화와 충돌한다는 식의 해석은 핑계다. 그런 식이면 미국에 가서도 똑같은 핑계를 댄다. 전제조건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이 빡빡하게 채워져야 한다. 그 밀도는 높은 것이어야 한다. 그 자녀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는 미국식 존중이 있고 한국에는 한국식 존중이 있다. 어디에든 기준을 맞추어야 한다.

 

    질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임신상태를 존재로 치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나이를 셈할 때와 같다. 아기는 입자다. 입자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아직 탄생하지 않았지만 아기는 존재한다. 만남은 우연히 촉발되지만 그 이전에 충분한 갖춤이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 이전에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그 만남의 북소리가 신에게 들릴만큼 충분히 팽팽하게 북가죽이 당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소리는 난다. 그것이 돈오다.

 

   

 s41.jpg

 

    인간의 행위동기 중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불완전한 것을 채워 완전하게 하고픈 마음이다. 그것이 사회관계에서는 의리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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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678.jpg

 

     한 번 뒤집으면 상대방의 입장이 보이고 두 번 뒤집으면 역산방식에 이릅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그 이전단계가 보입니다. 승부는 그 이전단계에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하고 절차가 중요하고 형식이 중요합니다. 그 전제들을 채울 때 그림은 아름답게 완성됩니다. 이 한 권의 책을 권합니다.

 

 

http://gujoron.com/xe/?mid=Moon




[레벨:12]비랑가

2012.11.27 (08:05:01)

류태영 박사의 성공법칙에도 이와같은 거꾸로 타고내려가는 원리가 나오더군요.

이 분도 보통이 아닌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2.11.28 (00:07:05)

사회와의 밀도가 낮아진 김경준이 어느 사회에던간에 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의 훼손된 존엄은 회복될 수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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