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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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365 vote 0 2019.09.20 (14:06:31)

   
    어둠은 등잔 밑에 있다


    무언가 잃어버렸다면 그것은 있을 만한 곳에 있다. 있을 만한 곳은 잃어버린 장소 주변이다.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지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곳이어야 한다. 일전에 일어난 청주 조은누리양 실종사건도 그렇다. 저수지의 물을 빼고, 우거진 억새밭이나 가시덤불 속을 막대기로 찔러가며 샅샅이 뒤져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면 항상 언론에는 수백 명씩 동원된 경찰이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을 수색하는 모습이 뉴스화면을 장식한다. 궁금한 것은 경찰이 정말로 등신짓을 하는지 아니면 기자의 요청에 응해 그림이 잘 나오는 억새밭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지다. 쓸데없는 곳을 뒤져야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시청자들이 감탄하니까.


    그 많은 저수지 물을 다 빼다니. 노가다가 만만치 않은데. 그 정도면 경찰도 성의를 보였다고 할 수 있지. 이런 식이다. 보여주기식 수색이다. 만약 살해되었다면 저수지나 억새밭에서 시신이 발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종초기에는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있을 만한 곳을 수색하는게 맞다. 과연 실종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곳은 필자가 처음 찍었던 장소였다. 사건 초기 나는 하루 이틀 안에 그곳에서 발견될 것으로 보았는데 수색이 열흘을 넘어가면서 조은누리양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결국 처음 찍은 장소에서 발견되니 황당하다. 등잔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과연 그 장소는 다음지도로 보는 것과 달랐다. 평범한 야산이 아니었다.


    실종장소와 가깝지만 가파르고 우거져서 특별히 등잔밑의 어두움을 조성했던 것이다. 그렇다. 가깝지만 특별히 어두운 장소가 있다. 잃어버린 것은 그곳에 있다. 예컨대 장롱 밑이라면 가깝지만 틈이 좁아서 들어갈 수 없다.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 액체설에 의하면 큰 고양이도 작은 쥐구멍을 잘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식의 특별한 등잔 밑의 어둠이 있다. 가깝고 간단하지만 사람들이 주시하지 않는 곳이 있다. 마술사들은 그런 것을 이용한다. 코끼리가 사라지는 마술이 있다. 거대한 코끼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가로방향으로 전시되던 거대한 코끼리가 세로방향으로 서면 의외로 좁은 틈에 몸을 숨길 수 있다. 상식 속에 허점이 있는 것이다.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이 그렇다. 결국 소년들은 실종된 바로 그 장소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멀리 가지 않았다. 전국의 섬들과 사찰과 오지를 뒤져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필자가 방랑시절 찍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당시 경찰은 30센티 간격으로 탐침봉으로 찔러봤다고 했는데 그러고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금속탐지기로 훑어도 뭐가 나올 텐데 말이다. 문제는 개구리 소년이 있을 만한 곳을 1천 평 면적으로 좁힐 수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능선은 아니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곳도 아니다. 있을 만한 곳은 능선도 아니고 아무런 특징 없는 곳도 아닌 바로 그곳이다. 그 면적은 잘하면 500평 이하로 좁힐 수 있다. 완만하면서 우거지고 계곡 근처다.


    있을 만한 곳을 집중수색하지 않고 먼 곳을 대강 수색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국의 무인도와 사찰과 자연인의 오두막을 수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유병언 시신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목격되고 사라진 곳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물론 일당들이 경찰에 실토하지 않아서 빨리 못 찾은 점도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도 그렇다.


    범인이 부근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인 것은 명확하다. 범인은 근처에 있다. 다수의 범행은 초기에 저질러졌고 후반에는 모방범이 두 건을 저질렀으며 범행이 어려워지자 초등생과 할머니를 공격하기도 했다. 어떻든 경찰의 대응에 범인이 반응한 것이다. 특히 초등생을 공격한 것은 나잡아봐라 하고 경찰을 상대로 게임을 거는 행동이다.


    이쯤 되면 굉장히 좁혀진다. 화성사건의 등잔밑은 혈액형 착오였다. 어떤 이유로 피해자나 제 3자의 혈액형을 잘못 채취한 것이다. 경찰이나 신고자의 체액이 묻었을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절대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틈새를 고양이는 쉽게 통과한다. 이런 식의 등잔밑이 곳곳에 존재한다. 등잔 밑은 가깝고 직접 연결되는 곳이다. 


    그러한 인간의 착오와 착시를 마술사는 역이용한다. 우연히 사건 속에서 마술사의 트릭과 같은 등잔밑이 조성되면 인간의 판단은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러므로 인내심을 가지고 등잔밑을 조사해야 한다. 잃어버린 물건은 있을 만한 곳에 있다. 보통은 엉뚱한 상상이 나래를 편다. 도깨비에 홀렸다는 식이다. 둔갑술을 부렸다는 식이다.


    제 3의 요소가 엉뚱하게 개입했다고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서 삽질은 시작된다. 무슨 뜻인가? 구조론적으로 사건은 한 다리 건너서 작동하지 않는다. 항상 물리적으로 직결된다. 물론 날아가던 갈매기가 물어간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뜻밖의 원인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런 귀신이 울고 갈 뜻밖의 원인은 만화책에나 나오는 것이며 사건의 99퍼센트는 등잔 밑에서 해결된다. 어떤 이유로 마술사의 보자기가 우연히 만들어지면 우리는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먼 곳에서 헛심 쓰지 말고 가까운 곳을 잘 살펴볼밖에. 무언가 잃었다면 반드시 그곳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찾아보도록 하자.


    정치라도 마찬가지다. 각종 음모론을 생산하는 것은 먼 곳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우리가 단결하는 것이며 용의주도하게 행동하는 것이며 역량을 끌어내는 것이며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 저렇게 하고 다시 요렇게 하면 된다는 식의 복잡한 해결책은 대개 책사들의 개소리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9.21 (03:04:53)

"각종 음모론을 생산하는 것은 먼 곳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얻을 수 있는 해답은 우리가 단결하는 것이며 용의주도하게 행동하는 것이며 역량을 끌어내는 것이며 에너지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http://gujoron.com/xe/112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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