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read 4077 vote 0 2002.09.09 (15:11:25)

모든 존재하는 것은 또한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필요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존재하는 것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한다. 그것은 타인들을 깨달음의 급류에 빠뜨려버리는 것이다.


세가지 이야기


/명상 수행 깨달음/
명상과 수행 그리고 깨달음의 셋은 하나다. 자동차 운전면허에 비유하면 쉽다. 학과시험은 이론적 깨달음과 같고 코스연습은 수행과 같고 도로주행은 명상과 같다. 셋이 하나되어서야 운전할수 있다.

삿된 견해들은 건축에 비유될수 있다. 명상은 벽돌쌓기, 수행은 층수 높이기, 깨달음은 새집에 입주하기다. 입주한 다음에는? 깨달음 이후에는? 명상은 움직이지 않는 집같을까 아니면 움직여가는 자동차같을까?

천국이나 내세를 말해서 안된다. 모든 것은 현세의 삶 안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깨달은 부처가 할수 있는 일은? 출발점이라 보았던 것이 귀결점이며 귀결점이라 여겨졌던 것이 출발점이다. 깨달음이 시작이며 명상이 완성이다.
/명상이 먼저인가 깨달음이 먼저인가?/
운전을 배운다면 전문학원에서 학과공부를 먼저 하고 다음 코스에서 기능연습, 맨 마지막이 도로주행이다. 깨달음이 먼저다. 이것이 정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대개 이웃집 형들에게서 주행을 먼저 배운다.

거꾸로다. 먼저 명상하고 다음 깨달으려 한다. 학과공부는 재미없다. 흥미가 길을 인도하므로 삿된 길로 간다. 무턱대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고서야 정신차리고 다시 기능을 연마하는 격이다.

운전은 쉽다. 해외토픽에 의하면 4살 꼬마가 아빠 몰래 12키로나 운전한 일도있다. 명상은 쉽다. 그저 눈감고 있으면 된다. 그러나 과연 쉬운가? 꼬마의 운전은 진짜가 아니다. 흉내내기 쉬울 뿐 참되기 어렵다.

진정한 것을 이야기하자.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쉬운 것이다. 깨달음이 쉽고 수행이 다음이고 명상이 어렵다. 존재론과 인식론이 교감하는 이치에 대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 높은 경지로 올라간다는 것은 점점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산꼭대기처럼 높을수록 단순하다. 그러나 그 쉬움은 아래의 복잡한 낮음들을 거친 후의 단순함이다. 높을수록 접근하기 어렵고 일단 접근한 다음에는 움직이기 쉽다. 낮을수록 접근은 쉽고 움직이기 어렵다. 그것이 이치다.

/접근과 운용/
두가지 의제가 있다. 하나는 접근의 문제이고 하나는 지배, 운용의 문제이다. 지배는 존재론이요 접근은 인식론이다. 명상은 접근하기 어렵고 하기(운용) 쉽다. 깨달음은 접근하기 쉽고 하기(운용) 어렵다.

왕이 되기는 어렵지만 왕노릇하기 쉽다. 백성되기 쉽지만 백성노릇 하기 허리가 휘어진다. 겉보기로 말하면 명상은 쉽고 깨달음은 어렵다. 진실로 말하면 깨달음은 쉽고 명상은 어렵다.

어떤 것이 있으면 집합구조라서 거기에 많은 부속품들이 딸리어 있다.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을 잡으면 매우 쉬워진다. 자동차에는 수만개의 부품이 있지만 핸들과 기어만 잘 조작하면 달릴수 있다.

깨달음이 어려운 것은 자동차를 발명하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깨닫기는 원시인이 자동차를 만들기 만큼 어렵다. 수행은 어려울수 없다. 수행이 어렵다면 그 자동차는 형편없는 고물자동차이다.

명상도 어려울수 없다. 명상이 어렵다면 도로체계에 문제가 있다. 깨달음은 쉽게 만들 수 없다. 복잡한 자동차의 구조를 단순화할수 없다. 만약 단순화된다면 그것은 손수레이지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다.

수행은 단순화 할수 있다. 자동차의 기능과 성능을 개량할수록 조작은 쉽다. 명상도 단순화 할수 있다. 도로체계를 정비할수록 사고위험은 줄어든다. 그러나 깨달음은 절대 단순화 할수 없다.


/삿된 길, 참된 길/
삿된 길을 추구하는 이들은 깨달음과 수행을 한없이 어려운 것으로 만들려고만 한다. 물론 자동차의 발명은 어렵다. 그러나 가솔린의 폭발력을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핵심을 알면 나머지는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깨달음은 어렵지만 이미 발명한 자동차를 두 번 발명할 필요는 없다. 이미 부처가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자기 안에 부처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키만 건네받으면 운행할수 있다.

깨닫는다는 것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수행한다는 것은 신의 방식으로 자기를 재정렬한다는 것이다. 명상한다는 것은 신의 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신이 주인공이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또한 인류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깨달음은 사사로운 개인적 성취목적의 까다롭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어떤 작업이 아니라 여러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대사건이다.

공든 탑을 쌓듯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끝에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급류에 휘말려들 듯 깨달음의 사건에 휘말려들면 헤어날수가 없다. 역사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을 향한 미소를 마다할수 없다.

빛나는 지혜의 금강석으로 깨달음의 탑을 쌓으라 명령하지 않는다. 벼랑가로 유인한 다음 밀어서 급류에 빠뜨려버린다. 깨달음이 먼저고 수행과 명상은 선택과목이 아니다.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른 길은 없다.

문득 깨달음이 쇠몽둥이 되어 후려친다. 그대는 쓰러지고 그대는 파괴되고 그대는 사라지고 그대는 변형되고 그대는 거듭난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것은 일대사건이다.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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