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김윤상(경북대 명예교수, 사회정의/토지정책 전공)
‘평등한 자유’와 토지원리
이제는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토지가치 환수와 자본주의
토지공개념은 지금도 합헌
토지공개념 개헌안
우선 이자공제형 지대세부터
특권 없는 세상 - 좌도우기(左道右器)
‘평등한 자유’와 토지원리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고?’ 지금까지 토지공개념과 연관된 정책 중에는 시장경제의 핵심인 가격이나 거래를 규제하는 수단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토지공개념은 시장친화적이 아니지만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진정한 시장경제를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근본 원리부터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
흔히들 진보는 평등을, 보수는 자유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진보라면 평등의 이름으로 특혜 받는 계층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양식 있는 보수라면 약육강식의 정글형 자유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된다’는 원리에 동의할 것이다. 이 원리는 너무나 상식적이기 때문에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 많다. 기회균등,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신이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라…… 이 원리는 더 이상 증명이 필요 없으며 다른 원리를 도출하기 위한 공통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평등한 자유의 공리(公理)’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 공리로부터 ‘생산자 소유의 원칙’이 도출된다. 세상의 물자에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있다. 인공물을 인공을 가한 사람 즉 생산자가 소유하지 못한다면 결국 비생산자인 누군가가 소유하게 되는데, 이런 제도는 노예제도처럼 평등한 자유에 어긋난다. 또 평등한 자유의 공리와 생산자 소유의 원칙에 동의하면 ‘교환에 의한 소유의 원칙’에도 동의할 것이다. 생산자가 자발적 합의에 의해 각자의 생산물을 교환할 경우 타인의 생산물이라고 해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과 교환이라는 근거로는 사람이 생산하지 않은 자연물에 대한 사적 소유는 인정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토지공개념의 철학적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토지’는 일상적인 의미의 토지 외에 천연자원, 환경 등 자연물 전체를 의미한다.
토지를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는 것도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러나 토지는 그 특성상 단독 사용이 더 적절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주택과 같은 사적 생활공간을 다른 사람에게도 개방한다면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어렵다. 생산용 토지도 공동으로 사용하기보다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에 생산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회가 토지에 대한 사적 우선권을 설정하기로 합의할 경우에는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모든 국민이 토지에 관한 우선권을 취득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취득기회가 균등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하나의 토지는 한 사람이 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생산자 소유의 원칙에 어긋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지를 추첨에 의해 배분한다면 형식적 기회균등은 보장되지만, 생산성이 높은 토지에 당첨된 자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첨자가 자신의 생산적 노력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에 비해 유리해지는 정도를 반영하는 금액을 사회에서 환수하여 모든 국민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실질적 기회균등까지 보장할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조건이다. 셋째, 토지에 관한 우선권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인정하는 것이므로 권리의 내용과 행사가 취지와 무관하게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을 종합하여, 토지에 관해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원리 즉 ‘토지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평등한 토지권) 모든 국민은 토지에 대해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② (합의에 의한 우선권 인정) 사회의 합의에 의해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할 수 있다.
③ (우선권 인정의 조건)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하려면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 (취득기회 균등) 모든 사람에게 우선권 취득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
㉯ (특별이익 환수) 우선권에서 발생하는 특별이익을 환수하여 공평하게 처리한다.
㉰ (사회적 제약) 우선권 내용과 행사는 우선권을 인정하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
이제는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토지원리 가운데 ㉰의 ‘사회적 제약’에 해당되는 각종 규제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 등 소유 제한, 용도지역제나 건축허가제 같은 사용 제한, 전매 금지 같은 거래 제한 등이 별다른 저항 없이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의 ‘특별이익 환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우선권에서 생기는 특별이익은 토지가치로 나타난다. 토지가치를 제대로 환수하지 않으면 토지에서 막대한 불로소득이 발생하며 그로 인해 투기, 부당한 빈부격차, 경제효율 훼손 등 심각한 사회적 병폐가 생긴다. 19세기 미국의 토지사상가 헨리 조지(Henry Goerge, 1839~1897)는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 등의 저서를 통해, 토지가치를 완전히 환수하면서 다른 조세를 대체하는 토지가치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제안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금은 1년 단위로 징수하는 게 보통이므로 토지가치세의 징수액은 당해 연도의 임대가치가 된다. 매매가치와 임대가치의 비율은 토지마다 다르기 때문에 매매가치를 과표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토지 임대가치는 교과서에서 지대라고 하므로 필자는 토지가치세제보다 ‘지대조세제’라는 용어를 선호하며 세목도 ‘지대세’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부터 부동산 투기가 빈발하면서 토지 불로소득의 병폐를 뼈저리게 겪은 나라다. 그래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늘 높았다. 이러한 국민의 여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제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땜질식 대책은 실패해 왔고 또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근본대책이라고 해서 정당한 사유재산을 침해하거나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아서는 안 된다. 사유재산과 시장원리를 침해하는 대책은 자체의 효과도 의문시되거니와 위헌 시비 등 역풍을 맞아 좋은 취지가 무산될 위험성도 있다. 이러한 여망을 바탕으로 하여, 부동산 관련 정책전문가와 학계에서는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치면서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불로소득이고
= 부동산 불로소득은 건물이 아닌 토지에서 생기며
= 토지 불로소득은 보유세로 환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토지가치 환수와 자본주의
위와 같은 합의는 토지원리 ㉯의 ‘특별이익 환수’와 일치하지만, 토지가치의 완전 환수는 자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요소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이므로 토지가치 환수와 두 요소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첫째로, 토지가치 환수는 사유재산제에 위배되지 않는다. 사유재산제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의 대가를 소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그러므로 세금도 가급적 노력과 기여의 대가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부과해야만 사유재산제와 충돌되지 않는다.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세제라면 불로소득부터 우선 징수하고 그것만으로는 세수입이 부족할 경우에 한하여 노력과 기여의 결과에 과세하여야 한다. 토지가치는 본질적으로 불로소득이다. 토지는 사람이 생산한 것이 아니고, 토지가치는 토지소유자의 노력 및 기여와는 무관한 요인 즉 토지의 자연적 형질, 사회경제적 상황, 정부의 조치 등에 의해 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력 및 기여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가치를 환수하는 제도는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제도다. 그런데 현행 세제에서 소득세는 노력과 기여에 의해 발생한 소득인지 그와 무관하게 발생한 불로소득인지를 따지지 않고 모두 과세 대상으로 삼는다. 부가가치세도 생산적 노력에 의해 증가한 가치에 과세한다. 이런 세제가 오히려 사유재산제에 위배된다.
둘째로, 토지가치 환수는 시장친화적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거래 대상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는 완전경쟁시장에서는 투기적 가수요가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이익을 얻을 수 없고 토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그러나 현실 토지시장은 그렇지 못하므로, 정부가 불로소득을 차단하여 완전경쟁시장처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토지보유세다. 토지는 존재량이 일정하므로 보유세를 부과하더라도 공급이 변하지 않으며 토지소유자가 세금을 전가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하면 시장은 정부 덕에 더 잘 작동하고 정부는 시장 덕에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처럼 토지가치 환수가 자본주의에 어긋난다고 하는 의문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토지가치 환수야말로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진정한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제도다. 그래도 토지공개념과 토지가치 환수에 대해 반시장적이라고 오해하는 경제학자에게는 시장주의의 대부인 하이에크(F. von Hayek)와 프리드먼(M. Friedman)을 소개하고 싶다.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 1960)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도시토지의 이용은 이웃효과(neighborhood effect)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토지 이용을 개별 토지소유자에게 맡기면 비효율을 초래하므로 광역적 관점에서 토지 이용을 결정하면서 개별 토지소유자에게서는 지대를 징수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또한 프리드먼은 일생 동안 강연, 인터뷰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대를 환수하는 세금은 “가장 덜 나쁜 세금(the least bad tax)” ― 정부 개입과 세금을 싫어하는 그로서는 가장 좋은 세금이라는 뜻 ― 이라고 하였다. 왜 대가들이 이런 말을 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다.
또 우리 현실에서도 자연공개념이 시장원리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 주파수 경매 사례를 들어 보자. 현재 이동통신에 사용하는 주파수는 각 통신사의 소유가 아니라 정부가 임대한다. 2016년 5월 2일에도 10년 또는 5년 임차권을 경매했는데, 정부는 경매 종료를 알리면서 이렇게 발표하였다. “이번 경매는 과거 두 차례의 경매에서 제기되었던 과열 경쟁이나 경쟁사 네거티브 견제 없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으며, 각 사에 필요한 주파수가 시장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공급됨으로써....” 정부가 “시장원리에 따라” 했다고 표현한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주파수와 토지는 모두 인간이 생산하지 않은 자연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므로 주파수의 공유가 옳다면 토지의 공유도 옳다. 토지는 주파수와 달리 과거에 어떤 식으로든 ― 대부분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 사유화가 이루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밖에 천연자원을 국유로 하고 환경 오염자에게 부담금을 물리는 것도 자연공개념에 근거를 둔 제도인데, 이에 대해 반시장적이라고 트집 잡는 사람은 없다.
토지공개념은 지금도 합헌
지금까지 토지공개념의 당위성을 철학적 및 경제학적 관점에서 검토하였는데 이제 법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토지공개념을 둘러싸고 위헌 공방이 있었고 일부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기도 했기 때문에 토지공개념 자체가 위헌일 것이라는 인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은 현행 헌법에도 근거가 있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서도 확인되어 왔다. 먼저 현행 헌법에 담겨 있는 토지공개념의 근거부터 살펴보자.
제23조 [재산권의 보장과 제한] ①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119조 [경제 질서의 기본, 규제와 조정] 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120조 [자연자원의 채취, 개발 등의 특허. 보호] ②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제122조 [국토의 이용 제한과 의무]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ㆍ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토지공개념을 합헌으로 인정하고 있다.
토지의 자의적인 사용이나 처분은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하고 특히 도시와 농촌의 택지와 경지, 녹지 등의 합리적인 배치나 개발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올바른 법과 조화 있는 공동체질서를 추구하는 사회는 토지에 대하여 다른 재산권의 경우보다 더욱 강하게 사회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관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헌재 1989. 12. 22. 88헌가13)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으로 인한 개발가능성의 소멸과 그에 따른 지가의 하락이나 지가상승률의 상대적 감소는 토지소유자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제약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토지를 장래에 건축이나 개발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능성이나 신뢰 및 이에 따른 지가상승의 기회는 원칙적으로 재산권의 보호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헌재 1998. 12. 24. 89헌마214 등)
과세대상인 자본이득의 범위를 실현된 소득에 국한할 것인가 혹은 미실현 이득을 포함시킬 것인가의 여부는 과세목적,과세소득의 특성, 과세기술상의 문제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입법정책의 문제일 뿐, 헌법상의 조세 개념에 저촉되거나 그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헌재 1994.7.29. 92헌바49).
위와 같은 헌법 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면 토지공개념 자체는 합헌이다. 다만, 구체적인 수단 중 일부가 문제였을 뿐이다. 예를 들면 헌법재판소는 종합부동산세 자체가 아니라 가구의 부동산을 합산하여 과세한다는 점에서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했었다.
토지공개념 개헌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원리 ㉯에 따라 특별이익을 환수할 경우에 토지의 매매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데, 토지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겨온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 시비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장래에 불거질 수 있는 소모적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현재 진행 중인 개헌 작업을 계기로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기하는 것도 좋겠다.
우선, 토지공개념을 경제 질서의 일부로 선언한다는 의미에서 헌법 제119조에 다음과 같은 제3항을 추가한다.
[현행]
제119조 [경제 질서의 기본, 규제와 조정] 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개정]
제119조 [경제 질서의 기본, 규제와 조정] ① ② 그대로
③ 국가는 국토와 천연자원으로부터 소유자의 생산적 노력 및 투자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
제2항의 “환수할 수 있다”는 “환수해야 한다”가 옳지만, 지대 환수의 근거만 마련하면 족하므로 표현을 누그러뜨렸다.
국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헌법 제122조도 제119조와 상응하는 개정이 필요하다. 제119조 제2항에 관해서는 정부의 간섭을 기피하고 규제 완화를 원하는 측의 개정 요구가 있어왔기 때문에 논란을 피하기 위해 혹 제119조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기로 한다면 제122조의 개정은 더욱 중요하다.
[현행]
제122조 [국토의 이용 제한과 의무]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ㆍ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개정]
제122조 [국토의 이용 등에 관한 제한과 의무] ①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ㆍ개발ㆍ보전 및 불로소득 환수를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구체적인 수단은 시장친화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2항은, 헌법의 정신이나 제119조 제1항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내용이지만, 토지공개념은 반시장적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토지공개념을 빙자한 정부의 자의적인 규제를 예방하기 위해 두는 조문이다.
아울러 조세의 대원칙을 확인하고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정책에 대한 불필요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제59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면 더욱 바람직하다.
[현행]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
[개정]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 ① 제59조 그대로.
② 조세는 토지보유세 등 형평성과 효율성이 높은 종목을 우선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로 할 수 있다.
조세에 관한 제59조를 이렇게 개정하면, 생산적 노력에 의해 취득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헌법 제23조 및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헌법 제119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노력과 기여의 산물인 소득과 부가가치를 주 대상으로 과세하는 잘못된 현행 조세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우선 이자공제형 지대세부터
지금까지 보았듯이 지대 환수는 우리 헌법에 충실할 뿐 아니라 진정한 시장경제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제도를 개혁할 때는 단기적 충격이나 부작용도 고려하여야 한다. 토지사유제가 상당기간 지속되어 온 우리 현실에서 지대의 거의 100%를 환수하는 지대세를 일거에 도입하는 것이 좋을까?
지대세를 부과하면 지가 즉 토지 매매가격이 이론상 0이 되므로 지대세를 단기간에 도입하면 지가가 곤두박질친다. 잘못된 토지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을 현재의 토지소유자가 몽땅 떠안게 되는 셈이므로, 재산권 보호와 관련된 위헌 시비가 일어나게 된다. 또 금융기관이 대출 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보았듯이 일부 금융기관이 파산하면 급기야 실물경제 전체로 파급담보로 부동산을 많이 활용해 온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대출을 회수하기가 어려워져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면서 지대세를 도입하는 전략에는 점증형, 누진형, 이자공제형이 있다. 점증형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지대세율을 높여가는 전략이다. 지가 폭락을 막을 수는 있지만 세율이 상당히 높아지기 전까지는 토지 불로소득이 야기하는 폐단 즉 투기, 부당한 빈부격차, 경제효율 훼손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계속된다. 누진형은 소유 토지의 가치가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전략이다. 종합부동산세처럼 고액 소유자에게만 누진적으로 중과세하는 세금도 여기에 속한다. 중소 토지소유자의 부담을 덜어 조세 저항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지 불로소득의 폐단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계층 갈등을 야기한다는 단점이 있다. 조세 저항을 염려한다면 누진형 전략보다는 시장 작용을 방해하는 세금 중 부가가치세 같은 역진적인 세금부터 줄이거나 환수한 지대를 기본소득처럼 모든 국민에게 동일 금액을 분배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국민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다.
이자공제형은 지대를 전부 환수하지 않고 소유자가 토지를 매입할 당시의 지가에 대한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만 환수하는 전략이다. 매년 (토지의 임대가치 –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토지보유세로 징수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세금을 ‘이자공제형 지대세’ 또는 ‘지대이자차액세’라고 부른다.
현재와 같은 토지사유제에서 토지 소유자는 토지의 매입과 매각을 통해 매매차액을 얻고 토지 보유 기간 동안에는 지대를 향유하는 대신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비용으로 부담한다. 따라서 단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토지 불로소득은 (매매차액 + 지대이자차액)과 같다. 지대이자차액세를 징수하면 토지 소유자가 토지 보유 기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이자뿐이다. 따라서 지가는 그 이자에 상응하는 원금으로 거의 고정되어 토지 불로소득 중 지가차액은 거의 0이 된다. 또 토지 소유자는 세후 토지이익인 이자도 비용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토지 불로소득 전체가 거의 0이 된다. 따라서 토지 불로소득으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가 도입 즉시 해결되면서도 지가가 급격하게 변동하지 않는다. 또한 토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지대소득이 지대이자차액세의 지대 과표에 미치지 못하면 세액만큼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므로, 완전경쟁시장처럼 토지시장에는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고 실수요만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이자공제형 전략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대가 상당한 정도로 상승하지 않는 한 토지소유세로 다른 나쁜 세금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완전한 지대세로 나아가기 위한 우선 제1단계로 이자공제형 전략으로 효과를 본 후 토지보유세의 우수성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제2단계로 점증형 전략을 추가 도입하는 단계적 접근이 최선이라고 본다.
특권 없는 세상 - 좌도우기(左道右器)
지금까지 토지를 중심으로 한 지대개혁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일반화하면 특권의 문제가 된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에는 노력, 운, 특권이 있다. 특권이란 “노력과 운에 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원인”이다. 소득을 예로 들면 노력과 운이 동일하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특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선택에 따라 노력해서 벌어들인 소득이 정당한 원인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고,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작용한 운의 결과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평등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특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할 것이다.
특권의 대표적인 예는 토지소유권이다. 누구도 생산하지 않은 자연을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또 같은 죄를 짓더라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차별이 흔히 존재한다면 부자가 특권을 누린다는 증거가 된다. 특권과 차별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간 사회에는 의외로 특권이 많이 있다. 사회가 공익의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설정하는 공인된 특권도 있고 사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비공인 특권도 있다. 또 비특권자가 특권적 지위로 진입하는 과정에 자연적 제약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적 제약은 없지만 사회경제적 사정으로 진입이 매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특권을 분류하고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표 1>과 같다.
진입 제약 공인 여부 | 자연적 제약 | 사회경제적 제약 |
공인 | 토지소유권, 탄소배출권 | (일부) 면허, 특허 |
비공인 | 남성특권, 인종특권 | 학벌특권, 정규직특권 |
특권은 인간의 평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을수록 좋지만, 어떤 이유로든 특권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특권을 공인할 때는 그 특권이 공익을 증진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입증해야 하며, 공인하지 않았는데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라면 특권 자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공인/비공인 특권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그 취득기회라도 균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 특권에서 생기는 이익을 모두 환수하여 국민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특권 대책 3원칙이 된다. 앞에서 제시했던 토지원리와 다르지 않다.
- 첫째로, 꼭 필요한 최소한도의 특권만 인정한다.
- 둘째로, 특권 취득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
- 셋째로, 특권이익을 환수하여 공평하게 처리한다.
평등한 자유에 동의하는 양식 있는 우파라면 위의 3원칙을 당연히 지지할 것이다. 특권과 차별에 의해 기울어진 운동장은 시장경제의 전제에도 어긋난다. 또 인간의 평등한 존엄을 위해 복지와 사회연대를 강조하는 좌파의 가치도 이 3원칙만으로 달성할 수 있다. 환수한 특권이익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동일한 지분을 가지므로, 이 지분을 활용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좌파의 가치를 우파도 동의하는 방식으로 달성하는 것을 필자는 좌도우기(左道右器)라고 부른다. 좌도우기를 통해 합리적인 좌파와 양식 있는 우파가 소신을 지키면서도 연합할 수 있다. 좌도우기는 부당한 불평등을 방지할 뿐 아니라 이념 갈등까지 조화롭게 해소할 수 있다.
참고문헌
김윤상 (2017) 『이상사회를 찾아서』, 경북대 출판부.
김윤상 (2013) 『특권 없는 세상』, 경북대 출판부.
김윤상 (2009) 『지공주의: 새로운 토지 패러다임』, 경북대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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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man, Milton (1978) “An Interview with Milton Friedman”, Human Events, 38(46), 1978 November 18. Quoted in Charles Hooper, “Henry George”, The Fortune Encyclopedia of Economics, New York: Warner Books, 1993.
George, Henry (1879) Progress and Poverty, New York: Robert Schalkenbach Foundation, 1979. 김윤상 옮김 (1997, 2016)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김윤상 옮김 (2012) 『간추린 진보와 빈곤』, 경북대출판부.
Hayek, Friedrich, A. (1960) The Constitution of Liberty,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60. 김균 역, 『자유헌정론』Ⅰ, 자유기업원, 1996, 『자유헌정론』Ⅱ, 자유기업센터, 1998.
김윤상 교수의 지공주의(地公主義)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