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자가 스승인가? 어떤 지식을 갖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지식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그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권력기반이 중요하다. 집단의 의사결정권이 중요하다. 인류의 의사결정그룹에 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자의 의미가 그러하다. 그렇다. 공자는 시스템을 건설한 것이다. 에디슨은 어떤 발명을 한 사람이 아니라 발명공장을 차린 사람이다. 물론 특허는 자기 이름으로 낸다. 발명의 포드시스템이라 하겠다. 지식의 포드시스템이 필요한 거다. 그 역할을 상당부분 종교가 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는 거짓말을 하다 보수주의 본산이 되었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 종교를 퇴출시키려면 말이다. 철학자 중에 그 길을 간 사람은 공자뿐이다. 예수는 확실히 종교의 길을 갔다. 정교분리에 따라 종교는 의사결정권을 빼앗겼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권력을 잃은 것이다. 석가는 사상가에 가깝지만 결과적으로 불교는 종교가 되었다.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 역시 의사결정권을 빼앗겼다.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정치에 개입하곤 했지만, 신돈 이후 정치승려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정치를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철인정치를 주장한 것을 보면 정치를 할 의지는 있었던 거다. 결국 힘을 얻지 못하고 겉돌았다. 중세시대에 서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르네상스 이후 갑자기 아랍문화가 밀려들어 오면서 아랍도서관에서 잊어버린 그리스 기록을 찾아낸 거다. 공자는 확실히 정치를 했고 힘을 얻었다. 맹자의 대에 이르러서는 왕이 버선발로 모셔갈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유교도 점차 종교화되었다. 퇴계는 더 종교화되었기 때문에 필자가 비판하는 것이고 율곡이 그나마 정도를 지켰다. 노자는 아예 반정치적이다. 책을 팔았을 뿐 권위를 잃었다. 제자를 키우지 못하고 세력을 일구지도 못했다. 집단의 의사결정에 관심이 없었다. 왜 공자인가? 우리가 정치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단위를 넘어 인류단위 의사결정그룹을 조직해야 한다. 철학이 종교의 역할을 흡수해야 한다. 이런건 개별적 아이디어로 안 되고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공자의 의미다. 창의교육을 하면 곧 창의가 된다는 식의 생각은 멍청한 생각이다. 백날 해봐라 되는가? 안 된다. 반면 벤처를 일구면 저절로 창의가 된다. 학계에서 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정하고 자본을 투입하고 세력을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연구를 시키면 반드시 성과가 나온다. 일본은 이 방법으로 노벨상을 가져간다. 기발한 이명박 사대강 아이디어가 나와서 창의가 되는게 아니고 꾸준한 투자의 결실이다. 창의시스템에 투자해야 창의된다. 흥선대원군은 이양선보다 빠른 배를 만들려고 했다.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학의 깃털을 모아 가벼운 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전국적으로 학을 잡아서 깃털을 모았다. 한강 백사장에서 깃털을 아교풀로 붙여서 이양선을 따라잡는 최신형 전함을 만들었는데 당연히 실패했다. 명박삽질식 엉뚱한 짓거리 안 된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 공장에서 나오는 거다. 왜 한국인은 창의를 못 하는가? 30년 정도 길게 보고 꾸준히 투자할 오타쿠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별로 안 되고 세력을 일구어야 된다. 30년짜리 프로젝트를 띄우려면 그 정도의 권력이 있어야 한다. 30년 정도는 믿고 기다려줄 남편과 아내와 동료가 필요하다. 세력 안에서 가능하다. 남편이나 아내가 앞으로 30년간 한눈 안 팔고 연구만 하겠다면 그 말을 믿고 지원해주겠는가? 국가의 신분보장이 필요하다. 학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하다. 묘비에는 다 학생으로 쓴다. 학생부군신위다. 조선왕조는 국가에서 학자신분을 보장한 거다. 일단 방향은 옳았다는 말이다. 조선이 워낙 변방이라 콘텐츠가 빈곤해서 그렇지. 만약 조선이 유럽 한 귀퉁이에 붙어있고 국가에서 학생의 신분을 보장해주었다면 조선은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창의는 절대로 시스템에서 나온다. 개인기는 필요없다. 기발한 아이디어 소용없다. 기본이 되어야 한다. 구조론은 백 년짜리 프로젝트다. 가담할지는 당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공자의 인지의신예로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