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사기꾼 하인리히 창클 지음 자, 여기 한 과학자가 있다. 인간의 배아세포를 연구하던 그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내 예기치 않은 사건이 생겼다. 동료과학자가 논문의 배아 사진은 가짜라고 폭로한 것. 그래도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배아 사진은 ‘비교를 위한 합성’이며 ‘도식을 위한 조절’이었다.” 논문 조작 시비에 대해 ‘인위적 실수’라고 강변한 한국의 과학자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에! 140년 전 독일 의학자 에른스트 헤켈의 이야기다. 1866년 헤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발생 초기 단계에서 아가미 구멍이나 꼬리의 흔적 같은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는 ‘진화재연설(進化再演說)’을 주장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유명한 명제로 요약되는 이 생물학 법칙은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증거로 높이 평가됐다. 문제는 헤켈이 자신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조작과 위조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 배아의 초기단계 모습이 올챙이처럼 보이도록 꼬리뼈를 줄이거나 늘리는 방식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조작했다. 심지어 개의 배아 사진을 인간의 것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헤켈의 법칙은 당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받아들여졌다가 130년이 지나서야 “생물학에서 가장 위대한 위조”(‘사이언스’ 1997년 9월)로 최종 판명됐다. 독일의 수의학자이자 인간유전학 전공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자연과학과 심리학, 의학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뒤흔든 50여 명의 지적 사기꾼들을 고발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사기술은 가짜를 만드는 ‘위조(forging)’, 미리 정해놓은 답에 맞춰 측정값을 조작하는 ‘다듬기(trimming)’, 입맛에 맞는 자료만 선택하는 ‘요리하기(cooking)’ 등이다. 헤켈이 ‘위조’의 대가라면 뉴턴은 ‘다듬기’의 선수였다. 그는 관찰 값이 자신의 이론에 맞지 않으면 이론에 맞는 값이 나올 때까지 다른 변수들을 조작하면서 실험을 되풀이했다. 아인슈타인과 멘델은 ‘요리하기’의 달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원하는 측정값과 큰 차이가 있는 것들은 버리고 가장 가까운 값만을 택해 이론을 전개했다. 멘델도 완두콩의 숫자 비율이 자신의 유전법칙에 맞을 때까지 다른 실험 결과는 계속 무시했다. 저자는 ‘위조’와 ‘다듬기’를 한 ‘사기꾼’에 대해선 단호히 비판한다. 하지만 ‘요리하기’의 경우엔 자료 조작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이나 멘델처럼 과학적으로 중요한 지식을 만드는 경우가 있음을 빼놓지 않는다. 엄청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쓸모 없는 것들을 버리고 어떤 값들이 의미 있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천재적인 과학자의 역할이란 것이다. 원제는 ‘위조자, 사기꾼, 협잡꾼(F?lscher, Schwindler, Scharlatane)’. 우리말 번역판은 자연과학 부분을 ‘과학의 사기꾼’으로, 의학과 인문학 부분을 ‘지식의 사기꾼’으로 나눠 두 권으로 출간했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