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부유하게 살다가 집안이 망해서 어머니가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일을 잘 못하고 힘들어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적합한 신체가 따로 있을까? 이것은 생득적인 것일까? 노동을 안해도 되는 신체가 자연스러운 것일까? 양반, 상놈의 몸이 따로 있는가? 엉뚱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강신주 대답은 어머니의 경우는 그냥 몸이 아파서라고. 양반, 상놈의 몸이 따로있는건 아니고 어머니는 일을 안해봐서 그렇지 근육이 만들어지면 누구나 일을 잘하게 된다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은 없다고. 워드 치고 프리젠테이션 해도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정신노동은 일하기 싫은 양반들이 만든 개념이라고. 나쁘지 않은 답변이다. 그런데 육체노동을 안 해본 사람이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을까? 정신노동은 스트레스 받아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고, 육체노동은 근육통으로 골병드는 건데 어느 쪽이나 몸이 깨지는건 같다. 정신과 육체는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정신노동은 뇌를 일 시키는데 뇌가 힘들면 호흡을 정지시킨다. 몸을 쥐어짜는 것이다. 이때 육체에 데미지가 가해진다. 뇌는 심할 경우 인간이 먹고 호흡하는 산소와 당을 반이나 쓴다. 인간의 뇌는 어느 동물에도 없는 에너지 과소비 시스템이다. 인류의 조상이 과일과 구근을 먹기 시작하면서 남아도는 당을 뇌에 보내 사치해버린 것이다. 이는 역으로 머리를 쓸수록 육체에 많은 것을 부담시키게 되며 그 결과는 수명단축으로 나타난다. 정신노동을 심하게 하면 육체가 망가진다. 필자는 20대 시절부터 머리가 반백으로 되어버렸다. 복수의 화신 오자서는 국경의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신경이 곤두서서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내담자의 어머니는 갑자기 육체노동을 하면서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어 탈이 난 거다. 휴식을 하고 극복해야 한다. 3개월은 기본 적응기간이라고 봐야 한다. 이후에도 힘들다면 정신자세가 되먹지 않았거나 원래 건강이 안 좋은 거다. 책만 파던 범생이도 군대 가면 잘 적응한다. 훈련소에서 처음 며칠간은 응가가 안 나와서 고생하게 되지만 말이다. 꺼추도 안 선다. 그래서 군대 건빵에 딸려나오는 별사탕에 성욕감퇴제를 넣었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다. 하여간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것은 편견이다. 힘든 육체노동도 물론 상당히 있다. 생수를 배달하는 택배기사가 특히 힘들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고층에 생수를 몇박스씩 배달하려면 죽을 맛이 된다. 택배물건을 분류하는 물류센터 알바도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별로 힘들지 않아 보이는 택시기사라도 하루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하면 당연히 힘들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육체노동은 근육이 만들어진 다음에는 힘들지 않다. 몸이 적응되지 않은 사람만 힘드는 거다. 60킬로의 왜소한 몸으로 100킬로 정도를 지고 설악산 꼭대기까지 운반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시대 짐꾼들은 90킬로 정도를 지고 하루에 백리씩 갔다. 쌀 한 섬 무게가 80킬로인 것은 기본 그 정도를 짊어지기 때문이다. 200킬로 정도는 예사로 짊어지고 군졸이 호위경비를 요구하는 문경새재를 피해 훨씬 가파른 위화령 고갯길을 잘도 넘어다녔다. 육체노동이 힘들다는 생각 자체가 노동자에 대한 비하일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노동기피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육체노동을 존경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육체노동이 힘드니까 존경하는게 아니라 육체노동이 별로 힘이 안 들고 폼나니까 존경해야 한다. 요즘은 건설현장에도 거의 장비를 사용하므로 과거와는 다르다. 기사가 쓰는 하얀 화이바 쓰고 현장지휘하면 폼난다. 내 집 한 채 정도는 내 손으로 직접 지어보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결론은 정신노동이 더 많이 육체를 망가뜨릴 수 있으므로 자연과 교감하며 호르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육체노동자를 부러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에는 노동의 결이 있다. 그 결을 포착해야 노동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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