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을 깨닫기
이성은 감성을 극복하게 하고 영성은 본능을 극복하게 한다. 본능은 자아를 공격과 방어의 진지로 삼고 영성은 자아를 소통의 정거장으로 삼는다. 욕망이 공격이면 두려움이 방어다. 인간은 욕망을 앞세워 외부세계에 참견하고 두려움을 앞세워 장벽을 쌓아 자신을 보호한다. ● 본능 - 생존을 위한 욕망과 두려움, 떳떳함과 부끄러움. 깨달음의 목적은 근원의 자연스러움에 도달하기다. 자연은 본래 자연스럽다. 인간의 마음을 자연의 흐름과 일치시킬 때 평상심에 도달한다. 공자의 중용, 노자의 무위, 석가의 중도, 선종불교의 평상심이 한결같이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이 떳떳한 것이다. 추(醜)가 어색함이면 미(美)가 자연스러움이다. 두려움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욕망 앞에서 추잡하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다. 예술가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여 인위의 어색함을 극복한다. 철학자는 신성(神聖)의 떳떳함을 추구하여 세속의 부끄러움을 극복한다. 그것은 본능에 맞섬이며 본능을 극복함이고 한편으로 본능에 호응함이기도 하다. 본능을 억압함이 아니라 본능과 동반하여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다. 욕망을 부정함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자연의 욕망을 일치시키기다. 나의 꿈을 사회의 이상주의와 일치시키고 역사의 진보와 일치시키기다. 일치할 때 전율한다. 자연과 일치할 때 전율하고 욕망과 일치할 때 오르가즘을 느끼고 사회의 흐름과 일치할 때 그 울림과 떨림이 전파된다. 이성은 감성과 호응하며 감성을 극복한다. 이성은 철학으로 도달할 수 있다. 가치관의 정립으로 감성의 변덕스러움을 극복하고 일관성을 얻을 수 있다. 영성은 본능과 호응하며 본능을 극복한다. 영성의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다. 죽음의 극복은 철학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로 하면 죽음 앞에서 깊은 허무의 바다에 빠져버린다. 지구가 끝나는 시점이라면 그 어떤 가치판단도 소용이 없다. 욕망이 인간을 부끄럽게 하고 두려움이 인간을 비굴하게 한다. 막상 내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 이성이 받아들이려 해도 본능이 막아선다. 나와 너의 경계를 넘어섰을 때 죽음은 극복된다. 나는 죽어도 너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너와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할 때 죽음은 극복된다. 부모는 죽어도 자식은 살아있다. 자신은 죽어도 세상의 삶은 계속된다. 죽음을 앞둔 부모가 삶을 계속할 자식과 소통할 때 죽음은 극복된다.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과 소통한다. 십자가 앞에 선 예수는 하느님과 소통한다. 본능의 극복은 깨달음의 소통으로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