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음을 깨닫기
소통은 상대가 있다. 소통의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다. 상대와 닮아야 소통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존재는 크게 닮아 있다. 소통은 능동적인 실천이다. 사회적이고 참여적이고 대중적이다. 상대방과의 관계맺기에 따라 소통의 주파수가 달라진다. 그 주파수를 내가 선택한다. 그러므로 관계맺기가 중요하다.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친구가 될 것인가? 상대가 어른이냐 아이냐, 윗사람이냐 아랫사람이냐에 따라 소통의 코드가 달라지고 주파수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출력이 필요하다. 어른이든 아이든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구분없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높은 출력의 파워가 필요하다. 포스가 필요하고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깨달음은 세상과의 관계맺기다.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 찾기다. 위치는 성별로도 결정되고 신분으로도 결정된다. 소통의 코드는 인종으로도 결정되고 혹은 장애자로 혹은 정치적 소수자로도 결정된다. 그 코드는 자신이 스스로 정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자유다. 자신을 여자로, 혹은 남자로, 혹은 아버지로, 혹은 남편으로, 혹은 노예로, 혹은 주인으로, 혹은 친구로 자유로이 규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실패한다. 규정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주파수가 달라져서 실패한다. 주파수를 바꾸다가 실패한다. 코드가 맞지 않아 실패한다. 자유로와서 실패한다. 그 규정을 뛰어넘기 위해서 참된 자유가 필요하다. 진짜가 필요하다. 그것은 속되지 않고 성스러운 것이다. 날을 시퍼렇게 세워 예리한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의 넓은 주파수대가 필요하고 카리스마라는 이름의 높은 출력이 필요하다. 온 세상을 커버할 수 있는 파워가 아니면 안 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스스로 자기 존재를 규정할 수 있다. 그 규정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 만큼 세상과 만날 수 있다. 깨달음은 세상과의 거룩한 만남이다. 세상 전부와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 전부와 닮아야 한다. 깨달음은 근원의 거룩한 닮음에 도달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