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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를 말리는 반집승부를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못한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

이회창은 대세론을 등에업고 출주기가 열리자 마자 뛰쳐나가는 선행마다. 반면 노무현은 막판 직선주로에서 대역전을 노리는 전형적인 추입마 체질이다.

이러한 기본 구도를 놓고 정몽준보트와 이인제보트가 턴 마크를 앞두고 선보이는 인빠지기와 휘감기 묘기가 기대되었다. 그런데 상황이 좀 '아햏햏'하게 가고 있다. 전문가도 예상 못할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회창은 당연히 인코스의 잇점을 살려 선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연 주로변경을 해서 노무현의 앞을 막는 진로방해를 시도하고 있다. 가미가제식 자살공격이다.

"어 초반인데? 야가 돌았나?"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이회창이 5~7퍼센트 정도 앞서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이인제가 안전하게 이기는 이회창 쪽에 배팅하여 회창표를 3프로 정도 깎아먹으며 판세가 더욱 안정된다.

이 경우 이회창은 이미 승리하고 있으므로 표가 좀 깎이더라도 이인제를 영입하여 판세를 안정화시키는 쪽을 택하게 된다. 지금까지 쭉 이어져온 이회창의 퇴물영입은 표를 깎아먹더라도 돌출변수를 줄여 굳히기에 들어가자는 전략이다.

그래야만 젊은 층이 선거판에 흥미를 읽고 대거 기권함에 따라 원하는 반집승부를 확실히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제는 생뚱맞게도 자민련으로 갔다. 왜? 필자는 엊그제 이인제를 공격하는 한 방을 쏠까하다가 감이 이상해서 미루었다. 과연이다. 이인제의 자민련행! 이건 또 뭔가?

기본전략으로 말하면 이회창은 어떻게든 판세를 조기에 안정시켜 선거무관심을 유도하고 젊은 층의 참여를 봉쇄하여 노풍의 재점화를 막아야 한다. 지금까지 퇴물을 영입하며 이 전략을 지켜왔다.

그런데 지금 이회창이 도리어 불을 질러가며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이런 바보같은 전략이 있나? 으와 미치겠다! 모사꾼이 누구인지 몰라도 이렇게 멍청한 전략을 내놓아서 전문가를 물먹이다니.

이래서는 필자가 뭔가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뒤통수 맞기 딱 좋다. 필자는 어제와 그제 이틀간 선거와 관련된 글을 쓰지 못했다.

변수 중 큰 것은 정몽준이다. 몽은 되도록 단풍을 죽여야 한다. 노무현을 거의 죽여놓고 막판에 '암행어사 출도야' 하는 식으로 짠하고 나타나서 위기에 빠진 노무현을 구한다. 그래놓고는 일성을 던진다.

"노무현의 당선은 순전히 나의 협력 덕분이야. 내가 다 죽어가는 노무현을 구했지!"

이것이 정석이다. 일부는 필자의 예상대로이다. 몽은 뛰어들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반은 당연히 이회창이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느닷없는 도청 폭로! 예상은 빗나갔다. 이건 전형적인 네거티브다. 다 죽어가는 후보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막판에 재를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니죽고 나죽자? 그렇다면 시나리오 전면 변경이다.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간 친구들이 혹 물어오곤 했다.
"노무현이 70퍼센트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될 수 있지 않을까?"
필자 왈
"모르는 소리, 유권자의 균형감각을 무시해서 안되지. 한 치 앞을 보기 어려운 51 : 49로 갈거야. 판세가 아슬아슬해야 적들은 자만하고 위기의식을 느낀 노무현지지자들이 결집하여 반집 승리를 얻어낼 수 있을 걸세"
하고 초를 치며 아는 체를 했다.

유권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최종결정권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약자의 편을 들어서 판세를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원리가 이번 선거판에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회창의 자살골 덕분에 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노무현이 정몽준의 도움없이도 자력으로 우승할 분위기다. 이인제가 한나라당에 제꺽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인제의 자민련행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몽준이 충청지역을 잠식할까 두려워서 그걸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방법은 두가지다. 한나라당에 가는 것과 노무현과 손을 잡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갈 경우 이회창이 지면 끝장이다. 노무현과 손 잡을 경우 정몽준에 밀린다. 그렇다면 이인제는 어떻게 해야 충청맹주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자민련으로 가서 김종필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다음 자민련 대표자격으로 몸값을 높여 노무현과 다시 한번 흥정해 보는 것이다. 원래 이 가능성은 확률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 물론 확률은 30프로 정도로 여전히 낮다.


[참여정치냐 심술정치냐]
유권자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밖에서 쭈뼛거리며 심술을 부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유권자성향은 한 마디로 심술정치였다. 이른바 견제심리다. 한국의 유권자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꼴을 못 본다. 그래서는 자신의 입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에서 90프로? 이렇게 되면 이쪽에서는 표를 던지나 마나가 된다. 이때 유권자는 무기력해진다. 저항감을 느낀다. 심술을 부린다. 방해를 하고 딴지를 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인터넷이다.

유권자가 스스로 캐스팅보드를 자임하고 이쪽저쪽을 들었다 놨다 하며 심술을 부리는 이유는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지 못한다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력감을 깨부순 것이 월드컵과 인터넷이다.

월드컵으로 한국인들은 주술에 걸려 버렸다. 광화문에 모여서 응원을 했다. '백날 응원해봐라! 응원한다고 한국이 이기나?' '어? 이상하다. 응원했더니 진짜로 이겨버렸다.' 무력감이 해소되었다. '어? 하니까 되네!' 긍지와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이다.

인터넷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해봐도 안된다. 그러므로 밖에서 딴지나 걸자'가 아니라 '하니까 되더라 그러므로 참여하자'로 바뀌었다. '가만 있다가 나중 잘못하는 쪽을 응징한다'가 아니라 '지금 참여하여 잘하는 쪽을 응원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이번 선거는 지금까지의 모든 선거와 달리 엄청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 필자가 지난 6개월간 해온 말을 뒤집어야 할 정도의 혁명적인 결과를 점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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