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서는 같은 길을 백날 가도 길을 외우지 못한다. 한 번 핸들을 잡느니만 못하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건물이나 육교와 같이 눈에 띄는 표지 중심으로 보지만, 운전자는 길이라는 시소에 건물과 풍경을 태워서 맥락으로 본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조수석에서 보면 어렵게 느껴진다. 창조자의 관점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를 운용한다는 자세가 아니면 안 된다. 낙담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운전자가 될 이유는 없으니까. 운전기사를 믿고 두려움없이 갈 수 있는 좋은 승객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의 정석 101회] 구조론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은 일단 한국어가 안 된다는 근본적인 장벽에 막혀있는 것이다. 수학문제와 국어문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수학은 추상의 세계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추상은 살을 빼고 뼈를 논한다. 군더더기 추려내고 핵심을 논한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만 본다. 상대성이 성립하는 지점은 빼고 절대성이 성립하는 지점만 다룬다. 특수성이 성립하는 지점은 빼고 보편성이 성립하는 지점만 다룬다. 상대성의 문제를 들이대는 사람은 수학시간에 국어질문 하는 사람이다. 일단 국어가 되어야 한다. 대개 이 장벽에서 막혀 있다. 적어도 국어문제는 스스로 넘어야 한다. 한국어 정도는 익히고 와야 한다. 세상은 구조입니다. 구조는 일의 구조입니다. 일은 의사결정의 연결입니다. 그러므로 구조는 의사결정구조입니다.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그 부분만 논한다는 겁니다. 의사결정은 대칭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구조는 대칭구조입니다. 대칭은 축과 날개로 되어 있습니다. 즉 처음부터 두 개가 세트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절대성입니다. 상대성은 그 대칭을 이룰 상대쪽이 없는 상황입니다. 상대성이 작용하는 지점은 축 1과 날개 2의 대칭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의사결정을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 부분은 논외입니다. 강자와 약자가 싸우면 당연히 강자가 이깁니다. 그런데 강자가 지금 잠들어 있다면? 강자와 약자의 대칭이 성립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강자와 약자가 싸우는 상황이 아닌 거죠. 그럴 땐 약자가 이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약자가 이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싸움이 아니라 살인이니까요. 국어를 몰라서 진술을 잘못한 거죠. 국어공부를 안 하면 이런 오류가 일어납니다. |
[생각의 정석 101회] [YS특집] 김영삼의 리더쉽
정의 definition 를 제대로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