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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12 vote 0 2016.02.07 (18:20:25)

       

    자유가 이르되
    “임금에게 자주 간하면 욕이 되고, 벗에 자주 충고하면 사이가 멀어진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개입하려면 복제 단계에서 미리 개입해야 한다. 일은 상호작용이므로 일이 벌어져서 조합단계를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일이 일을 주도하게 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라 달리는 호랑이 잔등에서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공자도 재여를 꾸짖되 이미 지나간 일은 따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친구사이라도 마찬가지다. 충고하는 사이라면 진정한 친구라고 볼 수 없다. 애초에 가려서 사귀어야 하며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두말없이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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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5편 공야장公冶長


    자공이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너는 그릇이다. 제사에 사용하는 큰 그릇 호련이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공자는 제자를 복제하고, 자공은 여러나라에 벼슬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각 나라에 퍼뜨리고, 자로는 공자의 가르침을 용맹하게 실천한다. 공자와 자공과 자로가 한 세트를 이룬다. 그러나 공자의 복제가 가장 중요하다. 자공의 조합과 자로의 연출은 앞선 사람의 기반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사람이 벌여놓은 일에 묻어가려 할 뿐 스스로 개척하여 앞서가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회를 칭찬하여 자공과 자로의 분발을 주문한 것이다. 자공을 꾸짖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로 보면 도리어 큰 칭찬이다. 공자는 자공이 장차 공자를 빛내줄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사실 두 명의 공자는 필요하지 않다. 공자에게는 자공이 필요했고 자로가 필요했다. 공자가 불씨를 일으키면 자공은 그 불씨를 천하에 옮겨붙인다. 자로는 그 불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시범보인다. 일은 그렇게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자공을 꾸짖은 이유는 2번타자의 몫은 원래 희생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람은 앞사람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불씨를 옮겨붙이는 사람이 자기가 불씨를 만들었다고 우기면 곤란해진다. 만화가들이 스토리작가를 무시하거나 영화감독이 원작자를 무시하거나 이건희가 스티브잡스를 무시한다면 꼴이 어떻겠는가? 무도한 침범은 종종 벌어진다. 그러므로 견제 들어가는 것이다. 자공이 군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공자를 오해한 것이다. 크게 될 재목에 꾸지람이라도 더 베풀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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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차라리 뗏목타고 바다를 떠돌고 싶다. 자로를 데리고 가면 되겠네.”
    자로가 듣고 기뻐하니 공자 가로되
    "자로는 용맹이 나보다 나으나 재주는 취할 것이 없다.“


    공자가 용맹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공자의 용맹은 필부의 용맹이 아니다. 과단성있는 의사결정능력이다. 판단이 서면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결단력이다. 글만 읽은 선비는 말로 떠들되 행하지 못한다. 의사결정능력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능력은 회사를 경영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하여 고독하게 혼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어야 얻어진다. 의사결정은 지혜로 하는게 아니라 에너지로 하는 것이며, 선비가 행하는 것은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불의를 보고 의를 행하지 않으면 몸이 아파져서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가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공자가 거듭 자로를 꾸짖은 것은 오히려 자로를 돋보이게 하여 여러 제자들에게 자로의 결단력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 단 지혜가 없이 행동력만 있으면 반드시 사고를 치는 법이니 또한 경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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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말하기를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나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안다."
    공자 가로되
    “자공은 안회만 못하다.”


    안회는 공자의 분신이다. 그래서 역할이 겹친다. 하나의 팀에 골키퍼가 둘일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자의 나이가 많아 뒷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재주가 많은 자공이 수제자로 나서면 팀이 깨진다. 사후에 분열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공자는 안회를 키워 자공을 견제하려고 했다. 안회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공자의 계획은 실패가 되었다. 자공이 안회만 못한 사람은 아니다. 공자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고 자공은 일을 천하에 퍼뜨리는 사람이다. 일을 벌이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가르친 거다. 배움이 중요한건 아니다.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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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잠을 자고 있는 재여를 꾸짖어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뭉개진 담장은 손질할 수 없으니 내가 재여를 어쩌겠는가? 전에는 내가 사람을 볼때 말을 듣고 곧 행실을 믿었으나 이제는 행실까지 살피게 되었다. 재여 때문에 바꾸었다."


    공자가 일의 원리로 판단함을 알 수 있다. 재여는 논리를 앞세우는 진보지식인과 같아서 자신의 달변을 믿고 깨달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깨달음은 일이다. 일은 일과 연결되어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친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일의 흐름을 꿰지 않고 사안별로 각각 대처하려 한다. 하나를 움직여 열을 다스리지 않고 열가지 문제에 낱낱이 해결하려 한다. 그러다가 일이 커져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다. 재주가 넘치는 사람은 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식을 잘 습득하는 사람은 깨달음의 필요성을 알아채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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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이르되
    “남이 나를 제압하지 않기를 바라므로 나 또한 남을 제압하지 않겠다.”
    공자 가로되
    “너는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공자는 일의 흐름으로 해결한다. 일은 반드시 선수를 쳐야 한다.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먼저 덕을 베풀어 명성을 높이면 남이 나를 해칠 마음을 품지 못한다. 자공의 소극적 대응으로는 자연스레 덥치는 일의 흐름에 말려들게 된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누구를 해칠 마음 때문이 아니라 나쁜 일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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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공이 이르되

    "선생의 문장은 내가 듣고 이해할 수 있으나 선생의 언성言性과 천도天道는 내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있지 않다.“ 


    공자의 가르침은 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보통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동등하게 복수하라고 가르치거나 혹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예수와 같이 조건없는 용서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이는 단순해서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일의 흐름을 따르므로 복잡하다. 공자의 방법은 복수하되 말단이 아닌 근원에 복수하는 것이다. 왕도를 일으키면 애초에 복수할 일이 없게 된다. 일이 되어가는 시초를 바로잡으면 구태여 시시콜콜 개입하여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 공자는 융통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법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요구한다. 역시 일의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 일의 시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일의 결말에는 예외가 없다. 봄의 파종은 하루 늦어도 다른 작물로 대체할 수 있다. 콩 심는 날자를 놓치면 대신 팥을 심으면 된다. 그러나 가을의 수확은 때를 놓치면 서리를 맞아 못 먹게 되므로 어김이 없어야 한다. 자공이 말하는 공자의 천도天道는 이와 같은 자연법칙이며 언성言性은 일머리를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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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중은 거북을 두어 점을 쳤고, 집의 대들보를 조각하고 기둥을 장식했다. 어찌 지혜있는 사람이겠는가?”


    점술과 사치로 명성을 얻은 사람을 비판하고 있다. 대승의 팀을 이루지 못하는 개인의 지혜는 소용이 없다. 널리 인류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개인의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따위 소인배의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이념이 아니면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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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이와 숙제는 남의 지나간 악惡을 따지지 않으므로 원망하는 이가 드물었다.”


    일은 기승전결로 진행되어 흘러간다. 흘러간 일은 해결할 수 없다.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새 일을 일으키는 것이 맞다. 어린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이미 저지른 잘못을 책망하기 보다 어린이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어 그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지나간 잘못은 결코 용서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성과로 덮을 뿐이다. 내 인생에 백가지 잘못을 저질렀다면 하나도 용서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만 백가지 큰 덕을 일으켜 그 잘못이 작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의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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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꾸미고 낯빛을 바꾸어 아부하는 짓을 좌구명은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역시 그렇다. 원망을 숨기고 친한척 하는 짓을 좌구명은 부끄럽게 여겼는데 나 역시 부끄럽게 여긴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는 것이 예禮고,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것이 예禮다.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따라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여 얼굴빛을 가장하고 언어를 공손하게 하는 것은 가짜다.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하여 남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은 가짜다. 군자는 큰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일을 벌이려면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열정이 있어야 한다. 분노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개인의 열등감이 에너지가 되고, 때로는 사회적 분노가 에너지가 된다. 분노가 없고 열등감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사람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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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집이 사는 작은 마을아라도 나만큼이나 충忠과 신信이 있는 사람이 있겠으나 나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충과 신으로는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학문은 인류 전체의 공동작업이다. 춘추시대에 인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인류의 존재와 그 진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공자는 하夏, 은殷, 주周의 역사를 꿰고 있었으므로 인류문명의 진보를 알고 있었다.


   

aDSC01523.JPG


    '친구에게 충고하지 말라.'는 말을 두고 '충고'에 촛점을 맞추면 곤란합니다. '친구'에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선비의 교유는 부랄친구나 고향친구 따위가 아닙니다.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사이가 아니면 선비의 친구가 아닙니다. 사형판결을 받은 친구가 부모와 작별하기 위해 며칠 기한을 달라고 하자, 친구가 대신 잡혀 있었는데 홍수가 나서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해 친구가 죽을 뻔 했다던가 이런 이야기는 많죠. 선비는 이념이 같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며, 이념이 같다면 당연히 대신 죽어줄 수 있습니다. 충고할 때는 충고해야겠지만 진짜 친구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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