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사물은 인간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되고 명명된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이 개입되었으므로 과학의 관점에서는 이를 배척해야 한다. 인간의 관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의 최초 출발점은 규정되기 이전상태다. 그것은 에너지다. 보이는 것은 물질이다. 그런데 물질은 인간에 의해 임의로 규정된 것이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이를 배척해야 한다. 무규정적인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인간의 관측대상으로 존재하는 그것이 모습을 갖추기 전이다. 그 에너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은 일련의 의사결정단위들의 집합이다. 사건으로 보는 관점에 인과율이 있다. 인과율은 원인과 결과 둘로 구분한다. 이는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만 본 것이다. 외부에서의 투박한 관찰이다. 사건 내부를 들여다보면 의사결정단위로 다섯이 있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에 특이점 형성, 공간적 방향의 지정, 시간적 순서의 지정이 있다.
1) 에너지의 입력 사건은 포지션 간의 짝짓기 형태로 일어난다. 공간과 시간으로 짝짓는다. 곧 대칭이다. 둘을 대칭시키려면 마주보고 연결해야 한다. 그 연결의 시작점이 특이점이다. 처음 에너지는 무규정적인 것이며 형태가 없다. 일정한 조건에서 특이점이 형성되고 공간과 시간으로 짝짓는다. 사건을 일으킨다. 남녀가 결혼하든, 건물이 조립되든, 생물이 탄생하든 그것은 무수한 짝짓기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자연은 그렇게 짝을 지어 형태를 이루니 물질도 되고 햇볕도 되고 별도 되고 달도 된다. 흙도 되고 생명도 된다. 무규정적인 에너지가 대칭의 짝짓기를 꾸준히 반복하였더니 곧 형태가 일어났다. 어떤 것이 있다고 하려면 먼저 차별화 되어야 한다. 그 어떤 것과 그 어떤 것이 아닌 것의 구분이다. 자연에서 그것은 밀도차다. 밀도차가 있으면 거기에 무언가 있는 것이다. 그냥 없다는 것은 없다. 진공이라도 거기에 그 진공이 있는 것이다. 진공과 밀도차가 있다면 보나마나 물질이 있다. 어떤 대상 내부의 밀도가 균일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포착할 수 있다. 불균일하면 그것은 하나가 아니므로 사건을 일으킬 수 없다. 짝짓기를 할 수 없다. 짝짓기는 두 점의 연결이며 둘의 연결선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부가 균일한 상태라야 짝지을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균일한 상태의 어떤 대상 내부에 작용하여 특이점을 형성한 다음 그 특이점을 공간의 방향과 시간의 순서로 움직여서 짝지을 수 있다. 대칭을 일으키면 에너지의 진행방향이 꼬여서 온갖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 사건들의 집합이 널리 망라되니 곧 물질도 되고 세상도 되고 생명도 된다. 어떤 내적으로 균일한 상태에 밀도가 다른 외부에서 에너지가 투입되면 내부에 불균일한 특이점을 형성하고, 공간적 방향과 시간적 순서로 전개하여 대칭의 짝짓기를 일으키니 에너지의 방향이 꼬여서 세상은 크게 이루어졌다. 그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이후 모든 것은 이 하나의 모형을 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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