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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62 vote 0 2015.03.24 (23:16:19)



    인류의 결정적인 한 방은 무엇인가?


    인간들 살아가는 꼬락서니 한 번 보라지. 한 쪽에서는 허블망원경을 교체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IS가 유물을 때려부수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사이좋은 공존이다. 어색하다. 여기서 위화감 느껴줘야 한다. 말이 통하는 친구가 되려면 말이다.


    구한말로 시계바늘을 되돌려 보자. 1905년 쯤이 좋겠다. 한 쪽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답 안 나오는 마당쇠 붙잡아놓고 멱살잡이 씨름이 한 창이다. 지금 우주의 비밀이 풀리느냐 마느냐 하는 순간에 마당쇠 녀석이 엽전 닷 냥을 훔쳤느니 말았느니가 대수란 말인가?


    답답함을 느껴야 한다. 사람으로 나서 세상을 통째로 털어먹지는 못할 망정 이게 무슨 비참한 꼬락서니란 말인가? 가슴에 큰 뜻이 있으나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다. 뒷집 이생원과 의논할 일이 못 되고, 건너마을 박첨지와 토론할 일이 못 된다. 이 시대에 우주의 비밀을 모르고도 태연하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자와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결정적인 한 방은 있다. 인류의 모든 철학적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줄 문제와 답의 공식은 분명히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개 화를 낸다. 그런건 없다고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무한동력은 없다. 영구기관은 없다. 절대로 없다. 그러나 말이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아예 전기라는 것이 인류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원래 없다면?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쓸만한건 디젤기관과 증기기관 정도다. 그 문명의 수준이 빤한 거다. 무엇인가? 20세기 인류에게는 전기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TV도, 전화도 전기에 의해 가능하다.


    만약 전기가 없다면 제법 증기기관을 돌려준다 해도, 19세기 초반의 청나라 부자보다 잘 산다는 보장이 없다. 봉건시대와 근대문명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대포와 기관총으로 사람은 제법 죽일 수 있겠지만 그걸로 존경받을 수는 없다. 동양의 사대부들은 ‘서양 원숭이들의 잔재주가 제법 구경거리는 되는군.’ 할 것이다.


    그러나 전기의 출현에는 고종황제도 넘어갔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개화시대에 도장 찍었다. 1879년에 발명된 전구가 불과 8년 만에 경복궁에 상륙한 것이다. 도성 안의 무당이 총집결하여 밤낮없이 켜져있는 경복궁의 불길한 도깨비불을 끄려고 굿판을 벌였지만 전구는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왕조를 마감시켰다.


    그 이전에는 신통한 것이 없었을까? 문자와 인쇄술이 역할을 했다. 무엇인가? 종이와 문자는 여러사람의 지혜를 합치는 수단이다. 인쇄술은 그 합치는 범위를 백만 단위로 확대시킨다.


    국경을 넘고 대륙을 떨게 한다. 전기와 컴퓨터는 그 합치는 정도를 몇 십억명 수준으로 높인다. 게다가 실시간이다. 미디어 혁명이다. 문명이 한 개인의 창의하는 힘에서 졸지에 몇 만명을 넘어 몇 십억의 결집된 힘으로 레벨을 높인 것이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 짐승은 한 개체의 팔뚝힘과 어금니 힘을 쓸 뿐이다. 인간은 짐승이 갖지 못한 언어를 가졌기에 동료를 끌어들여 100명의 힘도 조직할 수 있으니 부족시대다. 문자와 종이의 보급, 그리고 활판인쇄술로 나아가며 몇 십만, 몇 백만명의 힘을 결집하게 되니 국가주의 등장해 주시고, 미디어 시대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몇 십억명의 힘을 합칠 수 있게 되었다.


    기관총과 대포의 힘을 능가하는 참으로 멋진 것이다. 일본 무사는 대포의 힘에 놀라 쇄국을 철회했지만 조선의 양반은 전기의 힘에 반해 개화로 나아갔다.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대결로 가면 조선이 선비의 도덕으로 밀어서 자신있다는 거다. 해볼만한 판이 벌어진 거다.


    학문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학이다. 수학적 사유야말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더하는 수단이다. 동양이 서양에 밀린 것은 수학을 소홀히 해서 여러 사람의 지혜를 합치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교가 처음 출발할 때는 제법 근사했는데 갈수록 수구꼴통화 된 이유는 여러 사람이 각자 아이디어를 내면서 혼선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시초는 맹자와 순자다. 맹자는 유교를 종교화 시켜 제왕의 문화적 통치술로 변질시켰고, 순자는 제도화 시켜 역시 법가의 억압적 통치술로 변질시켰다. 이는 학문의 타락이다. 출발하자마자 망가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수학을 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중구난방으로 아이디어가 혼선을 일으켜 상황을 악화시킨다. 왕망의 신이 대표적이다. 이름부터 신新이다. 화폐만도 수십가지를 찍어내는 등 온갖 새로운 제도를 시험하다가 망했다.


    이후 신통방통한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게 하는 풍조가 생겼다. 아이디어를 냈다가 두들겨 맞은 사람이 주자다. 그에게는 불교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유교를 왜곡한 혐의가 씌워졌다. 주자는 변명이 걸작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는 공자의 시경에서 훔친 것이며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우긴 것이다. 이 전통이 계승되어 명나라 때는 과거시험도 팔고문 외에 내지 않았고, 유생들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주장하면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망했다.


    무엇인가? 우리는 수학적인 사고에 힘입어 각자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판을 깨지 않도록 조율하는 방법을 얻었으며 그것을 최초로 해낸 것이 영국의 왕립학회다. 각자 아이디어를 내면 사공이 많아져서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를 학계의 시스템적 검증으로 막은 것이다.


    수학적 사고가 없을 때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위험하다. 되도 않은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뻥치거나, 혹은 혜성이 지구를 스치며 내뿜는 독가스를 막아주는 알약을 발명했다고 뻥쳐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해괴한 사건이 계속된다. 독창적인 사고를 막는 다양한 스킬들이 개발되었다.


    먹어주는 것이 ‘사문난적’ 위협이다. 아이디어를 내기만 하면 ‘너 사문난적.’ 이 한 마디로 간단히 유배를 보내거나 사약을 받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서 다른가? ‘너 종북이지?’ 이 한 마디로 단번에 5천 만명을 아무 생각없는 바보로 만드는 슬픈 세상이다.


    중국은 혁명직후에 백화제방을 주장했다. 각자 백 가지 아이디어를 내자 국가는 통제불능에 빠졌다. 이에 대한 반동이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더 큰 통제불능이다. 백화제방 분위기에 아이디어 낸 사람은 모두 주자파라는 이름의 사문난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


    어른들의 난리판을 지켜보다 흥분한 중딩과 고딩들의 덩달아 깽판이 문화혁명이다. 사실 이게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중국은 여전히 백화제방 트라우마, 문화혁명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의 한계를 규정짓는다.


    ◎ 제 1의 혁명
    언어로 타인과 힘과 생각을 공유. 전쟁 폐단.
    ◎ 제 2의 혁명
    문자와 인쇄술로 사유를 확대. 마녀사냥 폐단.
    ◎ 제 3의 혁명
    수학적 사유로 사문난적 극복. 전체주의 폐단.
    ◎ 제 4의 혁명
    전기와 미디어로 인류를 통합. 일베충 폐단.


    그렇다. 인류는 네 차례 위대한 도약을 했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가 요구된다. 이 모든 것은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방법이 나올때마다 새로운 폐단이 드러난다. 혁신에 따른 문명의 진보와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반동이 일어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무엇인가? 마녀사냥은 인쇄술의 보급 때문에 일어났다. 인쇄술이 보급되자 개신교도들이 페스트 하나도 해결 못하는 무능한 카톨릭을 타도하자며 ‘마녀감별법.’ 따위의 책자를 보급한 것이다. 인간이 글자를 써먹게 되자 큰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의 입장과 비슷하다.


    상놈들이 글자를 알면? 하극상이 일어나 콩가루집안이 된다. 실제로 그랬다. 마녀사냥은 중세의 뻘짓이 아니라 근세의 삽질이다. 중세 암흑시대에는 카톨릭 신부들이 권력을 가졌기에 마녀가 없었다. 마녀가 출몰한다는 것은 신부님들이 일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무지한 민초들이 글자를 배워 성경을 읽게 되자 권력욕이 생겨 곧바로 ‘아Q혁명’에 나선 것이다. 루쉰의 아Q정전에서 아Q는 그 시골에 혁명할 건수가 없자 공연히 사찰을 찾아가 야료를 부리는가 하면 비구니 스님의 볼을 꼬집기도 한다. 마녀사냥과 아Q소동은 정확히 같다. 비뚤어진 하층민의 권력욕이다. 지금은 일베충 소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무렇게나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려는 행동이다.


    혼란을 종식시킨 것은 뉴턴의 수학이다. 뉴턴이 정리해주자 마녀가 사라졌다. 뉴턴적 사고가 아니고는 지식인이 마녀소동을 제압할 수 없다. 마녀는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에 기생하는 바 뉴턴이 우주의 질서를 밝혀 두려움을 없애준 것이다.


    동양은 공자가 괴력난신을 경계해서 마녀가 없었으나 역시 수학적 사유의 부재에 따른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서구문명이 동양에 전해지지 않았다면? 동양은 지금도 암흑이다. 왜? 수학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깝치는 자는 어디에나 있다.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려면 사문난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개인의 창의를 막아야 한다. 그 경우 진보가 죽는다. 진보와 마녀는 한 몸이다. 모든 진보적인 가치는 수상한 마녀처럼 오는 법이다.


    인쇄술이 등장하자 한 개인이 단 번에 100만 명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소문 듣고 흥분한 촌놈이 가장 쉽게 1만 명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마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종북이가 나타났다.’ 하고 고함지르는 거다. 인터넷은 한 사람의 생각이 70억을 놀래킬 수 있다.


    이에 흥분한 아Q 일베충을 제압하려면? 그렇다.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을 검열하여 사문난적의 감옥에 가두고 있다. 뉴턴이 한 방에 해결했듯이 이 시대에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미국의 폭스뉴스나 한국의 조중동처럼 미디어가 악마가 된 아Q시대에 말이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를 체계화 하는 것이다. 수학은 한계가 있다. 지금은 수학 이상의 수학이 필요하다. 그것은 의사결정원리다. 수학 위에 미학이 있다. 미학적 의사결정원리로만 인터넷 시대에 흥분하여 제 멋대로 떠들어대는 일베충의 각개약진을 막을 수 있다. 지금 인류는 미학적 완전성에 기반을 둔 제 5의 혁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를 합치는 방법’이다.


    옛날 사람은 우주의 불완전성을 걱정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 것이다. 17세기에 소빙하기가 찾아오고, 페스트가 연거푸 유럽을 덥치고, 아랍의 득세에 몽골의 침략까지 가세하였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지구가 돈다.’는 소문이 번지자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진 느낌을 받은 것이다. 혹시 하느님이 지구를 포기하고 어디로 떠나버린게 아닐까? 그때 ‘아니다. 별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든 것은 정해진 법칙대로 간다.’고 만천하에 밝힌 사람이 뉴턴이다.


    지금도 비슷하다. 인터넷이 등장하자 일베충들이 깽판칠 근거를 얻었다. ‘미디어시대라면 허풍 잘 치는 사람이 먹는 거지.’ 하고 의기양양 해 하는 판이다. 미학적 완결성의 논리가 최종적으로 판을 정리한다.


    30여년 전 필자는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시골에서, 공장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전두환 저새끼 쳐죽일 놈 아닌가요?’ 어른들은 말했다. ‘얌마! 니가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데, 세상 절대 안 바뀐데이.


    내가 이제껏 살아왔지만 한 번도 바뀌는거 못봤데이.’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이다. 그 생각이 틀렸다. 세상은 한 방에 바뀐다. 당신은 누구의 편인가? ‘사문난적’ 한 방으로 정적을 사약받게 만드는 쓰레기들의 편인가? 아니면 단 방에 그 폐단을 해결한 뉴턴의 편인가?


    세상에서 가장 센 것은 여러 사람의 힘과 생각을 합치는 기술이다. 거기에는 혼돈이라는 자궁과 질서라는 아기가 공존해 있다. 혼돈이 없으면 질서도 없다. 혼돈이 먼저 오고 질서는 나중 온다.


    혼돈이 올 때 에너지는 응축되고, 질서가 올 때 에너지는 격발한다. 움츠린 다음에 크게 도약하듯이. 혼돈에는 마녀사냥의 폐단이 따르고, 질서에는 전체주의 폐단이 따른다. 혁신과 반동의 패턴은 끝없이 반복된다.


    지금 세상은 미디어 혁명의 반동에 따른 또다른 혼돈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종편과 일베충이 기승을 부린다. 최후에 해결할 자는 누구인가? 답은 모든 개인이 인류 전체를 대표하여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미학적 완전성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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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위에 문자 있고, 문자 위에 수학 있고, 수학 위에 미디어 있고, 미디어 위에 미학이 있습니다. 언어의 폐단은 전쟁, 문자의 폐단은 마녀사냥, 수학의 폐단은 전체주의 득세, 미디어의 폐단은 일베충 난동입니다. 미학적 완전성에 바탕을 두고 한 개인이 전체를 대표하여 의사결정하는 구조론의 의사결정원리로만 여러 사람의 힘과 지혜는 부작용없이 온전하게 합쳐집니다. 뉴턴이 한 방에 바보들을 쪽팔리게 만들었듯이 한 방에 해결합니다.


   


[레벨:5]국궁진력

2015.03.25 (15:16:36)

매번 배우지만, 오늘 또 크게 배우고 갑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5.03.25 (16:14:45)

본문에 상당부분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레벨:5]vandil

2015.03.25 (16:25:35)

미학적 완전성에 바탕을 두고 한 개인이 전체를 대표하여 의사결정하는 구조론의 의사결정 원리


구조론의 핵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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