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41106221807258
이런 문제는 인류의 지도자가 될 마음을 품어야 정답이 보입니다. 자신을 약자, 혹은 피해자 또는 평범한 대중으로 규정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신과의 일대일 까지 가야 합니다. 거기서 기계적 형평성을 뛰어넘는 동적균형, 곧 밸런스의 원리, 진보의 원리를 포착하는 거죠. 인간은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피아간에 이분법적 대칭구조를 만드는 습성이 있으므로 본능적으로 오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판단은 무조건 오판입니다. 당신의 첫 번째 패를 쳐다보지도 말고 바꾸어야 합니다. 흑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누가 비판해야 할까요? 백인이 흑인을 비판하면 아무리 말조심을 해도 결국 인종차별이 됩니다. 흑인의 잘못은 당연히 흑인 지도자가 비판해야 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남자가 성문제를 끌어내면 어떤 경우에도 가해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의 밸런스와 인류의 진보를 위해 어차피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한다면 여자가 주도하는게 맞죠. 지식인은 기계적인 형평성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핸디캡을 감안해서 적절히 밸런스를 잡아야 합니다. 여자의 19금 발언은 허용하고 남자의 19금 발언은 제어해야 한다는 거죠. 강용석의 발언은 명백한 성희롱 범죄이지만 여자가 같은 말을 하면 성희롱이 아닙니다. 여자가 어떤 발언을 해도 남자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남자 화장실에 여자 청소부가 들어와서 밀대로 막 밀에대며 똥누는 작업을 방해해도 불만을 제기하여 회사를 고발하는 남자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남자는 그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거죠. * 남자가 똥을 누는데 모르는 여자가 밀대로 막 밀어붙인다. 나오던 똥이 도로 들어갔다. 불쾌감을 느꼈다. 성희롱이다. <- 왜 아무도 이런 고발을 하지 않죠? 그 정도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가끔 외국인들이 기겁을 하지만. 마찬가지로 강용석 발언도 피해자가 이 정도야 암것도 아니지 하고 넘어가면 넘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왜 고발했을까요? 그것이 인류의 진보방향과 맞다는 판단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겁니다. 인류가 기준입니다. 사회적 약자나 노동자, 하층민의 잘못은 약자, 노동자, 하층민 중에 지도자가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그런 지도자가 없죠. 그러므로 노조를 만들든가 노숙자단체를 만들든가 프로야구 선수노조를 만들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강자가 약자를 바로잡으려고 하면 더 어긋나게 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조선인은 너무 게을러. 우리 일본인이 바로잡아줘야 해.' <- 이거 폭력입니다. 절대 안 되죠. 설사 조선인이 잘못했다 해도 일본인은 발언권이 없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막 떠들면 안 되고 지식인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계적인 형평성은 답이 아닙니다. P.S. 수치심을 느꼈다는 사실 자체는 이유가 안됩니다. 안 느끼면 되잖아요. 그 자리를 피하면 되고. 영화 상영 중에 극중 인물이 욕을 하는데 수치심을 느꼈다? 이건 아니지요. 방송도 마찬가지. 수치심을 안 느끼면 됩니다. 문제는 권력관계죠. 직장상사의 성희롱은 보복문제가 따르므로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약자의 자기방어적 언어폭력은 문제가 안 됩니다. 권력관계가 범죄를 구성하는 본질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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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는 성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권력관계의 문제입니다.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적 공간에서
아는 남자가 여자를 향해 휘파람을 분 사건과
밤중에 으슥한 곳에서 모르는 남자가
여자를 향해 휘파람을 분 사건이 같은 사건일 수는 없지요.
'위력적'인 상황이냐가 중요합니다.
'위력적'이라는 말은 저의 표현으로 피해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위력'이라는 말은 법률용어로 많이 쓰이죠.
소설책의 내용이 음탕하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므로 위력적 상황이 아니죠.
그러나 독자가 선택능력이 없는 어린이라면 위력적인 상황입니다.
TV도 케이블방송은 시청자의 선택이지만 종편이나 공중파는 위력적 상황일 수 있습니다.
성이 문제가 되는게 아니고 '위력'을 느끼게 하는게 문제입니다.
소문이 날 가능성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형태로 '겁준다'는 말이지요.
그런 점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차별을 먼저 없애야 성희롱이 사라진다는 거죠.
성차별이 있는 한 모든 남자도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는 거.
선후배 따지고 위계서열 따지는 권력중독 현상도 마찬가지라는 거.
* 강자의 약자에 대한 위력행사가 범죄의 본질이다.
* 위력은 소문이나 평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잠복해 있다.
* 성희롱에 의한 직접피해보다 소문, 평판 등의 간접적 암시가 위력적이다.
* 성희롱은 성차별에 파생된 것이며 성차별이 본질적인 범죄다.
* 성차별 이전에 권력차별이 더 본질적인 범죄다.
성희롱 이전에 성차별이 본질이므로 남자는 일단 발언권이 없소.
남자가 피해자일 경우는 성희롱이 아니라 권력희롱인 것.
직장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불쾌한 별명을 부르며
'야 등신아 그것도 못해' 하고 모욕을 주면 그건 왜 문제삼지 않느냐고요.
그때 남자는 보통 '두고보자. 나중에 승진하면 되갚아주마.' 이러고 말죠.
남자가 불쾌감을 느껴도 위력적인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문제삼을게 못됩니다.
여자가 다수이고 남자가 소수인 직장인데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를 놀린다면 위력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남자가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력적인 상황은
우리 사회에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흑인이 백인에게 '야 이 흰둥아.' 하고 놀려도 놀림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옥동자가 장동건에게 '야 이 못생긴 넘아.' 하고 놀리면 모욕죄가 될까요?
불능범은 무죄로 판결되는 원리를 적용한다면
무리수는 모욕죄가 안 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주요 연예 시상식을 보면 친한 연예인들끼리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만지고, 여자는 남자의 성기를 만지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이건 말씀하신 "이정도야 암것도 아니지"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