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모기는 누구를 물겠는가? 남자를 문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데요?’ 하고 시비하는 분은 강퇴를 피할 수 없다.
그림1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거다. ‘연역은 있고 귀납은 없다’고 만 번 쯤 말해줘도 당연히 귀납이 있다는 전제로 질문한다. 마이너스는 있고 플러스는 없다고 무수히 말했는데 알아듣지 못한다.
시계는 시계방향 밖에 없다. 시계반대방향은 없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진행하기 때문이다. 전기는 마이너스와 플러스가 있는게 아니다. 음전하가 양공을 찾아간다. 진행은 한 방향 뿐이다.
지구는 N극과 S극이 있는게 아니다. 실제로는 지구자전방향만 있다. N극과 S극은 나침반 만드는 아저씨가 걍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남철이 인간을 돕기 위하여 특정 방향을 가리키겠는가?
화살이 가는 방향만 있고 반대방향은 없다. 상행선은 앞으로 가고 하행선은 뒤로 가나? 아니다. 둘 다. 앞으로 간다. 자동차에 후진은 없다. 자동차 운전자의 눈이 보는 방향이 앞이기 때문이다.
역주행 하는 자동차는 뒤로 달리는가? 아니다. 차선이 바뀌었을 뿐이다. 후진이라고 부르는건 편의상이다. 후진이 아니고 기어가 바뀐거다. 사람이 뒷걸음질을 쳐도 그게 뒤로 가는 것은 아니다.
새우는 뒤로 가지 않고, 게는 옆으로 가지 않는다. 왜? 뒤가 앞이기 때문이다. 과거도 앞(前)이고 미래도 앞이다. after의 어원은 af(앞)+term인데 오후가 아니라 오앞이 맞다. 우리말로는 앞참이다.
새참을 먹는 참이 짬인데 짬이 타임이고 term이기 때문이다. 아침과 점심 사이의 타임이 사이참 곧 새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후기모더니즘이 아니고 전기모더니즘이다. post가 앞이니까.
우체통이 post인 이유는 집 앞에 우체통이 서 있기 때문이다. 앞(po~)+stand다. 뒤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플러스는 없다. 귀납은 없다. 세상의 모든 방향은 오직 한 방향이다. 두 방향은 없다.
이걸 인정해야 구조론이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로는 앞뒤가 있고 두 방향이 있잖아요 하고 시비하면 안 된다. 구조론 사이트에서는 구조어를 써야 한다.
하루는 오전 오후 각 12시간씩 있지만 기차표를 사거나 비행기표를 끊을 때는 24시간 단위를 써야 한다. 오전, 오후 그런거 없다. 1시라고 씌어 있으면 새벽 1시지 오후 1시는 없다. 그건 13시다.
구조의 세계에서 방향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이거 까먹으면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가운데 적군이 있고 좌우에서 적을 포위했다면 두 방향에서 포위한게 아니다.
외곽에서 중앙으로의 한 방향으로 포위한 거다. 절대로 방향은 하나다. 수레바퀴의 축은 하나고 바퀴살은 네 개이다. 그렇다면 수레바퀴의 바퀴살은 몇 방향으로 전개하는가? 정답 – 1방향이다.
바퀴살은 무조건 센터에서 변방으로 진행한다. 바퀴살이 몇 개이든 상관없다. 다스크 바퀴로 쳐야 한다.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도 확산이라는 한 방향, 산개라는 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병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도 중앙집결이라는 한 방향으로 모여든 거다. 원래 바퀴는 디스크바퀴라서 한 방향밖에 없는데 마차바퀴 만드는 아저씨가 바퀴살을 8개로 만들어서 8방인 거다.
아저씨가 바퀴살을 네 개로 만들면 사방이 되고, 두 개로 만들면 쌍방이 된다. 근데 시계부랄은 살이 한계다. 원래 한 개인데 편의로 두 개 혹은 네 개 혹은 8개를 만든 것이며 그건 임의다.
방향은 하나다. 끝까지 방향이 둘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강퇴다.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다.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 이야기가 된다. 직선은 있고 곡선은 없다. 없는 곡선이 있다고 말하면 대화가 안 된다.
곡선은 일정한 곡률을 가진 작은 직선들의 무한집합이다. 그러므로 귀납은 없고 연역만 있다. 우리가 편의적으로 양방향을 쓰고 쌍방향을 쓰듯이 귀납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다. 근데 가짜다.
비가 오면 강물이 불어난다. 구름에서 비가 마이너스 되면 강에서 수위가 플러스 된다. 구조론에서는 에너지가 있는 구름의 마이너스만 논하고 에너지가 없는 수위의 플러스는 연역에서 배제한다.
왜? 그것은 벼락을 치기 위하여 구름들이 충돌했다는 에트루리아인의 사고가 되기 때문이다. 구름이 충돌하였으므로 벼락이 쳤다는 로마인의 사고가 맞다. 세네카가 옳다. 둘은 하나의 사건이다.
구조론에서는 사건 중심으로 판단하고 에너지의 입력측을 중심으로 판단하므로 구름의 마이너스만 논하고 수위의 플러스는 배척한다. 둘은 하나의 사건이고 주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왜? 상부구조인 구름측을 제어하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마이너스측은 인위로 조절할 수 있지만 플러스측은 통제할 수 없다. 왜? 이미 엎어진 물이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하므로 논외다.
어른과 어린이가 동시에 잘못했다면 당연히 어른에게 책임을 묻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잘못하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상황이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재발이 방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조의 세계에서는 통제가능한 상부구조 곧 가해자측, 곧 원인제공측, 책임자측에 제어장치를 부착하여 천하를 널리 제어하는 것이다.
앞뒤라는 것은 없다. 뒤에서 앞으로의 한 방향이다. 좌우라는 것도 없다. 좌에서 우거나 우에서 좌거나 한 방향이다. 상하라는 것도 없다. 아래에서 위로 아니면 위에서 아래로 가는 거다.
어둠과 밝음은 대칭되지 않는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밤과 낮은 대칭되지 않는다. 밤에서 낮으로의 한 방향으로 간다. 오른손은 무기를 드는 즉 올리는 손이고 왼손은 남는 손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방향 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 앞과 뒤, 좌와 우, 빛과 어둠으로 구분하게 된 것은 원래 인간들이 방향치라서 대략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밤이 낮이 되고 다시 낮이 밤이 된다. 그렇다면 어디가 앞인가? 사슬구조로 머리와 꼬리가 계속 이어져 있다면 어디가 머리인가? A가 B를 때렸다. 다시 B가 A를 때렸다. 다시 A가 B를 때렸다.
다시 B가 A를 때렸다. 이렇게 한 백번쯤 반복했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그래도 먼저 때린 놈에게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때렸는지 어떻게 아는가? 복잡한 실타래의 실마리는?
모기는 암컷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하여간 수컷인 남자를 문다. 백명의 사람이 있고 백마리의 모기가 있다면 남자도 물고 여자도 문다. 그렇다면? 그래도 모기는 남자부터 문다. 방향성은 있다.
맨 먼저 물린 사람은 분명히 남자다. 실험했는데 여자가 먼저 물렸다고? 구조는 확률로 말하므로 그거 안 쳐준다. 아무리 뒤죽박죽인 상황이라도 극한의 법칙을 적용하면 분명히 책임소재가 있다.
여당도 잘못했고 야당도 잘못했다. 여당도 잘했고 야당도 잘했다. 이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어도 큰 흐름으로 보고 확률로 보면 진보가 머리고 보수가 꼬리임을 알 수 있다.
진보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향이고 보수는 무방향이다. 진보방향과 보수방향이 둘 다 있는게 아니고 진보가 방향을 강조하느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을 보수가 자기네 방향이라고 우기는 거다.
진보가 개인을 강조하고 보수가 가족을 중시한다는 것은 보수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진보를 주장하는 주동자들이 천재들이고 이들이 잘난척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가족을 소홀히 하게 된거다.
그건 진보의 방향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노선도 아니고 진보인사 개개인의 특성일 뿐이며 그것도 상대적 특성일 뿐이며 그것도 실제의 특성이 아니라 환경과 마찰한 결과로 생겨난 현상일 뿐이다.
김성근 감독은 일년에 3일 밖에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족을 무시하는 사람이라서? 천만에. 야구하느라 시간을 못 낸 거다. 보수가 가족을 중시하는게 아니고 이런 식의 낙전수입을 올린 거다.
보수가 법치를 강조하는게 아니라 진보가 새로운 법을 외치다보니 자연히 보수는 기존의 법을 강조하는 걸로 보여진 것 뿐이다. 실제로 법을 무시하는건 보수다. 법대로 했다면 14범 이명박은?
진보만이 방향을 가지며 보수는 방향이 있는척 위장할 뿐이다. 역사에 표면적으로 나타나기로는 진보가 보수를 끌고 다시 보수가 진보를 끌고 다시 진보가 보수를 끌고 다시 보수가 진보를 끈다.
이게 계속 반복되는데 그래도 전체로는 진보가 보수를 이끈다. 보수가 진보를 끌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보가 보수를 끌었던데 따른 2차효과이므로 안 쳐주는 것이다. 그것도 진보의 업적으로 기록된다.
백만마리 모기가 백만마리의 남녀 사이에 바글바글해도 51대 49로 나누어지고 엄밀하게 따져보면 모기는 남자를 문다. 그 작은 차이를 꿰뚫어보는 센스를 가져야 한다. 0.1이라도 앞선쪽이 머리다.
모기가 여자도 물던데요? 강퇴다. 실이 아무리 복잡하게 엉켜 있어도 실마리가 전체를 결정하는 것이다. 방향은 하나 밖에 없다. 이거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방향판단에서 결읽기는 시작된다.
방향이 둘이면 이미 관점의 이동이다. 판단기준을 바꾼 것이며 이중기준의 오류에 해당되는 것이다. 수학자들이 나눗셈을 쓰지 않고 분수로 곱하는 것도 방향이 둘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림2
A B
오징어는 A방향과 B방향 중에서 어느 쪽이 앞일까? 어느 쪽이 머리일까? 어느 쪽으로 움직일까? 힌트 - 달팽이와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