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대충 살 일인가? 세상 사람들 보아하니.. 생각없이 대충 사는 거 같다. 십여년간 인터넷 공간 이곳저곳을 뒤져보고 내린 나의 결론이 그렇다. 너무 생각들이 없다. 생각이 없어. 삶의 근본문제에 대해서 나만큼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있을까? 혹 한명 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을 지금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어쭈 이 녀석 봐라!’ 하고 꾸지람을 내려줄, 혹은 ‘당신이 그리도 대단하오?’ 하고 도전장을 던져올 미지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내가 오래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인생 별것도 아닌데 쉬운 인생을 참 어렵게들 산다는 거다. 특히 한국인들은 쓸데없이 너무 위축되어 있다. 기죽어 있다. 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적어도 기죽어 살지는 말자는 거다. 어차피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세상인데.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아지고 마는건데. 저승문 앞에서 돌이켜 보면 ‘한 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맘졸이고 긴장하고 위축되어 안달복달하며 살아봤자 나만 손해잖아. 미국눈치, 일본눈치, 북한눈치, 중국눈치, 선간위눈치, 조중동눈치, 사장님눈치, 식구들눈치..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고 왜 그렇게들 불쌍하게 사는지. 참!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두 눈 부릅뜨고 정면으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 앞에서 그리고 역사 앞에서 똑바로 바라보고 신과 정면승부 하는 거다. 호연지기를 있어야 한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서서 구름바다 자 너머에 신(神)을 똑바로 바라보면 신(神)과 나 사이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세상 모든 것이 그 동그라미 안으로 다 들어간다. 그 어떤 문제도 없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다. 성공도 실패도 없다. 오직 허허로움이 있을 뿐이다. 인생 별 거 아니다. 너털웃음 웃고 당당하게 살자. 세상에서 먹어준다는 성공과 출세, 위신과 평판 따위의 규칙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환경설정일 뿐이다. 어떤 일을 하든 작업 들어가기 앞서 환경설정부터 해야한다. 인간들의 문제는 그 환경설정에 가진 에너지의 90퍼센트를 투입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는 거다. 인생에서의 진짜 성공은 주변의 평가와 무관한 것이다. 내가 내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성취했는가에 달려있다. 자기 내부로부터의 결을 끌어내기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느냐이다. 내 안의 숨겨진 백퍼센트를 토해내었는가이다. 내 안의 잠재해 있는 모든 가능성을 남김없이 펼쳐보이는데 성공했느냐이다. 그게 인생의 진짜 게임이다. 진짜에서 이겨야 진짜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걸로 되어 있는 어쩌구들은 환경설정 단계의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아무 의미 없다. 우리나라라면 어떤가? 북위 38도 선에 걸쳐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어 잇점도 있고 그만큼 단점도 있다. 이건 정해진 환경이다. 사회로부터 인정되는 성공이나 출세나 위신이나 평판 따위는 그 환경을 약간 낫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조금 유리한 좋은 포지션을 차지하는 거다. 우리나라가 태평양을 끼고 극동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4대강국 사이에 낀 신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경계선. 그것이 하나의 포지션이다. 내가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난다든가 혹은 미녀로 태어난다든가 혹은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든가 하는 조건들은 그 포지션들 중의 하나에 다름 아니다. 인생을 걸만한 진짜는 따로 있다. 사람들은 본게임 놔두고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하기 위한 샅바싸움에 힘을 낭비하고 있는 거다. 그게 알고보면 헛심쓰는 거다. 축구시합을 하되 시합내용에는 집중하지 않고 서로 자기편 홈그라운드에 시합을 유치하려고 신경전이나 벌이는 거다. 인생이 통째로 샅바싸움 될 판이다. 성공이다 출세다 하며 인생에서 노력하는 90퍼센트는 실력발휘가 아니라 포지션 경쟁이다. 다들 그렇게 엉뚱한데 헛심을 쓴다. 그게 인생 헛사는 거다. 본게임에서 이겨야 진짜다. 미추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세상과 맞서는 자기만의 동그라미를 가져야 한다. 내 속에 품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품음이 있고 낳음이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이상주의를 품고, 꿈을 품고, 희망을 품고, 비전을 품고, 계획을 품고, 가치를 품고, 드라마를 품어야 한다. 내 안의 결을 드러내야 한다. 내 안의 감춰진 민감함을 찾아내야 한다. ‘이거 하나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음’이 있어야 한다. 그걸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내 일생을 걸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그것을 품고, 그것을 잉태하고, 그것을 내 안에서 키우고, 마침내 그걸 낳아내는 거다. 낳음이 있어야 한다. 사랑으로 낳고, 창조로 낳고, 성공으로 낳고, 인연으로 낳고, 소통으로 낳고 자유로 낳고. 그걸 낳아내야 한다. 그렇게 내 안의 숨은 결을 몽땅 쏟아붓는 거다. 당신은 품고 있는가? ‘다 용서되어도 이거 하나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다 양보해도 이거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그 무언가를 이미 품고 있는가? 그것을 품을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을 낳음으로 하여 이야기는 완성된다. 내 안에 동그라미 하나 품고 이야기 하나 낳아내기. 그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품음이 없고 낳음이 없다면 인생은 헛거다. 세상에서 알아준다는 온갖 성공과 실패의 규칙들은 그것을 품고 그것을 낳기 위한 보금자리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