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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1571 vote 1 2008.02.27 (22:59:47)


구조론의 탄생


구조론은 새로운 학문이다

 

20세기 전후에 새로 성립한 학문들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생물학이 나왔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심리학이 나왔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경제학이 나왔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사회과학이 나왔다.


현대성을 규정하는 네 가지 새로운 학문이라 하겠다. 여기에 구조론이 가세하고 있다. 이전에는 그 존재가 없던 것이 문득 나타난 것이다. 학문이 새로 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인류의 지적 영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언제든지 새로운 학문이 나타날 여지는 있다. 구조론은 수학, 논리학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시스템과 패러다임으로 발전하며 그 탐구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간다.


진화론, 국부론, 자본론이 그러하듯이 구조론은 새로운 학문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문이다. 문을 열면 길이 나타난다. 길은 또다른 길과 이어지며 무수한 새로움들과 맞선다. 구조론은 거대한 드라마의 출발점이다.



첫 단추는 이렇게 꿰어졌다


모든 학문은 자연의 질서에 궁극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학문이란 자연에서 관측되는 질서를 인간의 이성으로 옮겨오는 방법이다. 형이상학이 특히 그러하다. 수레와도 같다. 어떻게 인간에게로 운반해올 것인가이다.


구조론은 일정부분 수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연과 수학 사이를 매개한다. 자연의 질서에서 기하학과 대수학이 차례로 유도되는 과정을 해명한다. 자연의 질서를 구조론의 수레에 실어 수학의 정거장에 운반한다.


학문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율에 따라 자연에서 유도되는 절차를 가진다. 자궁이 없이 태어나는 아기는 없다. 근거가 있고 토대가 있다. 과학의 자궁은 수학이다. 수학의 자궁은 구조론이다.


과학의 근거가 수학이면 수학의 근거는 구조론이고 구조론의 근거는 자연이다. 지연에는 패턴이 있다. 하나의 패턴은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1 사이클에 따른 내적 정합성과 자체 완결성을 성립시킨다. 


기하학과 대수학은 이 중에서 세번째 제어와 네번째 연산에 해당한다. 자연의 질서가 입력하면 구조론이 저장하고 기하학이 제어하고 대수학이 연산하여 과학으로 최종 출력된다. 자연이 모든 것의 어미다.


◎ 자연의 질서≫구조의 결정≫기하의 대칭≫대수의 전개≫과학의 분류


구조론은 모든 과학의 궁극적 근거인 자연의 질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과학일반에 반영되는지 그 유도과정을 해명한다. 구조론은 자연이라는 광산에서 과학이라는 금을 캐는 갱도와 같다.


수학이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수학은 수학적 개념의 정의에 기초하지만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 ‘무정의요소’라 일컫는다. 수학의 출발점은 1이다. 그런데 1이 왜 1인지는 수학이 해명하지 못한다.


점과 선과 각과 입체와 밀도가 어떤 원리로 하여 자연에서 유도되는지는 누구도 해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하학은 점의 정의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학 이전의 단계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이다.


점과 선과 각과 입체와 밀도는 구조론이 자연의 질서에서 수학으로 운반해온 것이다.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구조에는 결정이 있고 기하에는 대칭이 있고 대수에는 전개가 있고 과학에는 분류가 있다.


이들을 개별적으로 열거하는 모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인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연이 잉태하면 구조론이 낳고 수학이 키우고 과학이 수확한다. 자연에서 원리를 유도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된다.


자궁이 없이 태어난 아이는 없다. 모든 존재는 절대경로와 상대경로를 따라 고유한 자신의 주소지를 가진다. 구조론은 자연에서 수학을 거쳐 과학일반을 유도하는 고리들 중 하나이다. 잃어버린 고리를 찾은 것이다.



구조론은 비판될 수 없다


동양에서는 지난 5천년간 원근법이 없었다. 원근법은 그냥 보면 보이는데 다들 눈 뜨고 당한 것이다. ‘왜 원근법이 없지?’ ‘보면 보이는데 왜 못봤을까?’ ‘눈감고 다녔는가?’ 그렇다. 눈 감고 다닌거 맞다. 눈을 떠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화론, 심리학, 경제학, 사회과학들은 최근에 나온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다. 철학과 미학도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눈 뜨고 당하다가 차차로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학문은 더 나올 수 있다.


눈 뜨고 보고도 원근법을 몰랐듯이 모를 수 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새로 나올 수도 있다. 구조론은 새로 나온 학문이다. 효성에는 계단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원래 새로운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는 몇급이니 몇단이니 하는 급수를 부여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구조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구조론 뿐이다. 구조론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구조론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프로이드를 비판한 아들러나 융은 프로이드의 제자였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해도 역시 그가 창시한 경제학의 범주에 종속되고 만다. 구조론을 비판한다면 역시 구조론의 일부가 되고 만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을 극복했지만 뉴턴은 여전히 건재하다. 양자물리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판했지만 실로 아인슈타인의 큰 자리를 부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경로지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도(道) 단위를 해명하면 아인시타인이 시(市)와 군(郡) 단위를 해명하고 양자역학이 동(洞) 단위를 해명한다. 구조론은 이와 같이 자연에서 수학과 논리학을 거쳐 과학으로 나아가는 경로지정의 문제이다.


경로는 더 정확해질 수 있을 뿐 부정될 수 없다. 도(道) 단위를 몰라도 군(郡) 이름만으로 주소지를 찾을 수 있다. 우편배달은 가능하다. 그러나 용이하지 않다. 구조론은 과학이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할 정거장이다. 


구조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환영하지만 구조론이 제기하는 무수한 문제들에 대한 답도 함께 제시하기 바란다. 예컨대 전술한 ‘수학에서 1의 정의 및 자연에서 이를 유도하는 절차는?’에 대한 해명 따위다.




구조론의 전개


구조론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구조론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다윈의 진화론,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 및 근래의 양자역학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들과 비교된다.


이들은 근대사의 곳곳에 족적을 남기고 두루 영향을 미쳤다. 사상을 바꾸고 철학이 바꾸었다. 구조론은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학문의 지평이며 새로운 철학과 가치관을 제시하며 구조론적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구조론은 근대철학 및 과학의 방법론을 이루는 원자론과 이에 따른 뉴턴의 기계론, 결정론 그리고 데카르트 이후 과학의 방법론으로 자리잡은 인과율과 이에 따른 요소환원주의 세계관과 비교될 수 있다. 


근대 합리주의≫인과율≫요소환원주의≫원자론≫기계-결정론들이 모두 하나의 사슬에 꿰어져 연동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 붕괴하는 것이다. 구조론이 이들 모두를 해체하고 재질서화한다.


그 반대편에 상대론적 세계관, 불확정성의 세계관, 양자역학적 세계관들이 있다. 이들은 확실한 토대를 구축하지 못하고 불안한 모색 가운데 있다. 구조론은 이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고리를 제시한다.


이론과 사상은 고립된 채로 존립하지 못한다. 다른 사상 및 이론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들 사상과 이론의 퍼즐조각이 모여 일정한 조형적 질서아래 내적 정합성을 구축하고 나아가 자체 완결성에 도달해야 한다.


그 완결된 동그라미 안에서 제 포지션을 찾고 정확한 주소지를 찾아 새롭게 자리매김할 때 알려진 이론과 사상의 퍼즐조각들은 진정한 현대성의 의미를 획득하고 비로소 시대정신과의 호흡을 시작한다.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구조론과 5


구조론은 5다. 구조론이 5인 이유는 구조의 핵심인 제어개념 때문이다. 구조의 핵심은 제어다. 인과율은 시작과 끝을 말할 뿐이다. 시작이 원인이면 끝은 결과다. 그러나 그 중간에 일이 있다.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에너지라 한다. energy의 어원은 ‘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에너지 작용이 없는 일은 없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반드시 에너지 작용이 있다.


일이 없고 에너지가 없는 원인과 결과는 없다. 그 에너지 작용은 저울이며 저울의 역할이 제어다. 구조가 5인 이유는 시작과 끝의 2, 원인과 결과의 2에 제어의 3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어가 3인 이유는 평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평형은 천칭저울을 이루는 하나의 축과 두 접시들 사이의 평형이다. 원인과 결과가 입력과 출력을 나타낸다면 평형의 3은 각각 저장과 제어와 연산을 나타낸다.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을 합하여 5다. 에너지가 들어가고(입력) 에너지가 일정한 질서를 얻어 내적 정합성을 획득할 때까지 저장되고(저장) 그 정합성을 판정하고(제어) 판정결과를 전달하고(연산) 에너지가 나온다.(출력)

 

구조는 에너지의 전달구조 및 순환구조다. 에너지의 전달경로를 판정하는 제어구조다. 에너지가 어느 길로 갈것인지를 구조가 결정한다. 그에 따라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성립한다.


주먹으로 유리병을 치되 약하게 쳐서 주먹이 깨질것인지 세게 쳐서 병이 깨질것인지를 구조가 결정한다. 주먹의 작용과 유리병의 반작용 사이에서 판정한다. 판정결과에 따라 주먹이 깨지든 병이 깨지든 하나가 출력된다.


구조체 내부에서 판정하는 제어부분 ┳가 3을 구성한다. 제어를 밖에서 감싸는 원인과 결과, 혹은 시작과 끝, 혹은 입력과 출력의 (와 )를 더하여 (┳)로 5다. ┳는 저울이다. 세상은 무수한 저울들의 집합이다.


◎ 입력-원인-시작

◎ 저장-작용

◎ 제어-판정

◎ 연산-반작용

◎ 출력-결과-끝


구조는 에너지 순환의 구조이고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 성립하는 닫힌계 안에서 에너지 순환은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5로 그 단위가 완성된다. 핵심은 제어이며 제어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서 판정한다.


기존의 논리학은 원인과 결과의 둘로 단순화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원인≫작용≫판정≫반작용≫결과의 5단위 절대경로를 가진다. 구조가 어느 정도로 반작용하여 결과를 제출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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