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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465 vote 1 2007.10.16 (18:01:10)

너와 나의 구분이 없는 경지

불교 인식론이라 할 유식학에서 유식에는 계급이 있는데 이를 오, 육, 칠, 팔, 구식이라 한다. 여기서 제시된 숫자에는 얽매일 필요가 없고 중요한 점은 다섯 계급이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잡다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일단 무시하고 구조론으로 보면 전 5식은 지각, 6식은 감정, 7식은 분석, 8식은 통합, 9식은 소통에 대한 인식이다. 9식에 도달하는 것이 깨달음의 목표다.

너와 나를 구분함은 단지 샴쌍둥이가 아니라서 몸뚱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행동의 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몸뚱이가 붙었어도 행동의 단위가 다르면 너와 나는 구분된다. 행동이 기준이다.

인간의 행동을 촉발하는 것은 판단이고, 판단을 촉발하는 것은 인식인데, 이들은 서로 유연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종합하여 관(觀)이라 한다면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이 있다.

세계관은 과학적 지식이고, 인생관은 내 인생의 경험인 바 이들의 상호작용이 전개하여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인생관-가치관의 메커니즘을 흔히 철학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행동이다. 그 행동의 절대적인 기준은 내가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맞닥뜨려서 실천해야 할 일이다. 그 주어진 일 앞에서 나와 타자(他者)는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주체와 대상, 나와 사건이 대립하는 것이며 그 맞닥뜨린 갈등구조에서 기쁨과 슬픔, 자연스러움과 어색함, 떳떳함과 부끄러움,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유도되고 그것이 인간의 행동을 촉발한다.

나와 타자(일)의 문제는 단순하게 자연스러움과 어색함, 떳떳함과 쪽팔림의 감정이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경계의 어느 지점에서 형성되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과 내 인생의 경험의 상호작용에서 유도된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그리고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그 기준점의 위치가 다르고 그 기준점의 위치가 그 인간의 수준 곧 인격을 결정한다.

깨달음은 그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점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아기라면 제 손에 쥐어져 있는 사탕을 타인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하지만 엄마가 되면 제 입에 든 사탕도 도로 꺼내서 아기의 입에 물려주는 것은 그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우리편과 나쁜편을 구분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상대하여 맞선 지점이 달라진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오, 육, 칠, 팔식을 거쳐 구식에 도달할 때 미학적 기준을 얻는다. 미학적 기준이란 내 손에 있는 사탕이 네 손으로 옮겨져서 내게 이득이 되었느냐 손해가 되었느냐 하는 판단에서 자연스러움과 어색함, 떳떳함과 쪽팔림,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을 넘어 너와 나를 포함한 공간 전체가 미학적으로 완성된 정도를 따라 그 감정을 느끼는 경지다. 예술가들이 걸작을 낳는 것은 그 기준이 옮겨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라는 관념은 인간이 행동을 하기 위해 기준을 정해놓은 것이므로 행동의 목표가 달라지면 그 기준이 변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삶을 이해해야 한다.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며 일관성과 합목적성과 내적 정합성을 부여하는 테마를 얻는 것이다.

인간의 개별적 행동은 파편화된 것이므로 개별적으로는 의미가 없고 그 삶의 테마 앞에서 유의미한 것이다. 그 인생의 테마가 세계정신과 나와의 소통에서 얻어진다는 전제 하에 그 세계정신을 구성하는 진리와, 역사와, 문명과, 자연과, 신의 완전성과의 소통에서 그 가치기준을 얻는 것이다.

● 인식과 판단과 행동의 유연관계에 따른 메커니즘이 있다.
● 인식의 단계가 있다. (5, 6, 7, 8, 9식)
● 인식의 단계에 따른 판단의 단계가 있다. (진,선,미,주,성)
● 판단의 단계에 따라 부끄러움과 떳떳함을 느끼는 기준점의 위치가 이동한다.
● 인식의 최고단계에서 신, 자연, 진리, 문명, 역사 곧 세계정신을 만난다.
● 판단의 최고단계에서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를 얻는다.
● 세계정신(세계관)과 내 인생의 테마(인생관)가 만나 소통하는 접점에서 미학적 기준(가치관)이 얻어진다.

그렇게 얻어진 미학적 기준은 너와 나의 경계를 초월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역으로 낮은 인식의 단계에서 낮은 인생의 테마를 얻으면 결국 수준낮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이익이다 손해다 하고 정치인처럼 서로 물고 뜯고 다투는 경지다. 시정잡배의 그것은 낮은 세계관에서 낮은 인생관이 유도되어 낮은 가치관으로 전개하여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결론은 인간은 인격이 있고, 그 인격에 따라 수준차가 있으며, 그 수준에 따라 존엄이 결정된다. 개나 돼지는 그 수준이 낮으므로 존엄이 없다. 인간은 그 수준이 높으므로 존엄이 있다. 모든 인간이 그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소통의 전파하고 공명하는 원리에 따라 한 명의 수준높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으면 그 소통의 결과로 형성된 인류의 집단지능의 관점에서 볼 때 ‘너와 나의 경계가 없어져서’ 그냥 수준 높은 걸로 쳐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수준이 높아지거나 수준높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거나다.

모든 사람이 낱낱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인류 집단지능의 공명원리에 따라 공동체의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일제히 높은 수준으로 상승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돈오돈수다.

문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나란히 가야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집단지능이 상승한다 할지라도 물질문명의 발달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출하는데 실패하게 된다.

예컨대 미학이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소실점이론, 명암이론, 색채이론, 안료의 발달 등 과학적 물질적 분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그림은 결코 제작되지 않는다. 소통은 실패한다. 평론만 무성하고 작품은 없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이론물리학과 산업의 영역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깨달음이 높은 수준에 도달해도 손뼉이 마주치지 않아 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스님들은 여전히 산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점수에 매달려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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