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 심경(心境)에 부딪히다 】


김광섭(金珖燮)님의 [수필문학 소고]는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더라.

/수필(隨筆)이란 글자 그대로 붓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며 심경(心境)적이며 경험적이다./

심경(心境)이라니 무슨 뜻일까? 차라리 심경(心鏡)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을. 마음의 지경? 마음의 거울? 김광섭선생은 심경이라는 오묘한 말 한마디를 던져놓고 풀이하기를 이렇게 어렵더라.

/우리는 오늘까지의 위대한 수필문학이 그 어느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딪히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심경적이라기 보다 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중략)~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 된 평정한 심경이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음에서 제작되는 형식이다. 제작이라고 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아하! 선생께서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겠다.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이다.' 바로 그거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이나 모름지기 문학이라는 것은 독자들에게 읽히려고 쓰는 것이다. 독자들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강박, 바로 그것이 선생께서 부정한 '의식적 동기'가 아닐까? 나는 이제 수필을 쓰고자 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수필은 선생의 말씀대로 심경(心境)에 부딪힌 그런 수필이다.

'심경에 부딪힌다.' 선생은 왜 부딪힌다는 표현을 썼을까? 나는 차라리 '심경(心鏡)에 비추인다'고 말하고 싶다. 아 그러나 부딪혀야 하리라. 더 부딪혀야만 하리라. 마음의 지극한 경계에 치악산의 타종하는 까치처럼 부딪혀야만 하리라.

우리는 배워서 안다. 에세이와 미셀러니는 다르다는 것을. 에세이는 그야말로 심경에 부딪혀 피토하고 쓰러지는 울음이요, 미셀러니는 시장거리 아줌마의 신변잡기다. 에세이를 써야하리라.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가득차더니 기어이 심경에 부딪혀서 피토하듯 울컥 써져야 하리라. 그래야 붓이 먼저가고 사람이 붓따라가는 隨筆이 되리라.

수필을 쓸수 있을까? 심경에 부딪혀 본 적이 있는가? 가히 수필의 전성시대라 할수있다. 도처에서 에세이를 만난다. 그러나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 심경에 부딪히지 않은 글들, 붓이 앞서가고 작가가 붓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붓 끌고가는 에세이들, 정확히 말하여 미셀러니라 불리어져야 할 에세이들을 본다. 진짜 수필을 써야 하리라.

소년의 나를 흥분시킨 책들이 있다. 서점 한구석에서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묵은 책들에도 새로 붙인 인상된 가격표가 붙어 있어서 가난한 소년을 위축시킨 그 책들 말이다. 그것은 /빠스깔의 빵세, 몽테뉴의 수상록, 잠 못이루는 밤을 위하여, 채근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들이다.

소년은 서점 한 구석에서 혹은 도서관의 서가 한 모퉁이에서 좋은 구절하나, 혹은 빛나는 글귀 하나에 감동하곤 했었다. 거기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심경에 부딪힘'이 있었을 것이다. 공고한 지성, 빛나는 인격, 멋들어진 교양, 지적인 세련됨 그런 거. 소년의 나 숭배하였던 것은 그러한 인격적 고결함이었다.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아닌 수필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하곤 하였던 것이다.

/시골에 가면 초목처럼 무성하고 싶다 - 헤즐리트/

산문정신의 정수라 할만하다. 그 인격은 그 글에 힘으로 나타나는 법. 문체가 비굴하고 조악하다면 인격 또한 마찬가지. 소년을 매료시킨 것은 그 주장의 그럴싸함이나 내용의 흥미진진함이 아니라 문장이 가지는 힘이었다.
글자 한자 한자에 힘이 들어있다. 기개가 있고 얼이 있다. 이시대 글쟁이들 글에 가장 없는 것들이 소년의 나를 흥분시켰던 고전들, 특히 수상록으로 쓰여진 그 수필들에 있었다. 그 인격이 그 글에 비추어 보이네. 하여 나는 '心境(심경)에 부딪힘'을 '心鏡(심경)에 비추임'으로 표현하고 싶은 거. 수필을 써보라. 네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보라.

우리 세대를 386세대라고들 한단다. 60년대에 나서 80년대를 앓던 30대들, 이 나라를 한참 이끌어가야 할 30대들이 이른바 엑스세대니 신세대니 하는 젊은이들보다 사고나 감각이 뒤처진 대서 그런 조롱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때때로 세대 차를 실감한다. 젊은 그들은 랩음악과 인터넷에 익숙하고 햄버거와 피자에 길들여졌으며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하다. 그러나 무언가 빠진거 같다. 나의 소년이 빵세와 수상록, 채근 담 따위에 감격할 때 그들은 제법 소쉬르와 라깡, 브레히트, 들뢰즈를 운위하였던 모양이다.

고전이 아니면 책이 아니라고 믿었던 뽕짝문화의 맨 끝줄에 서서 80년대를 앓았던 386세대야 말로 진지함과 치열함이 남아있는 마지막 세 대일 것이다. 제법 의식화를 말하고 인터넷과 햄버거 랩음악으로 무장한 소쉬르, 라깡, 들뢰즈를 아는 펜티엄 세대와 차별을 느낀다. 그들이 심경(心境)을 알까?

에세이가 사라진 시대다. 그들의 글에는 심경에 부딪힘이 없다. 대신 능란함과 흥미진진함이 있다. 서술이 치밀하기에 주장이 그럴싸하고 깔금하기를 햄버거 피자같은 산뜻함이 있되 줏어듣고 줏어섬기기 바쁠 뿐 심경에 부딪히지 않더라. 울림이 없고 떨림이 없다. 낭독될 뿐 메아리치지 않더라.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청담(淸談)이다.

무인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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